테드버드가 싸우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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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버드가 싸우는 방식
넵시의 특징은 단 하나 빠르다. 평범한 사람은 눈으로 그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운 마족이다. 그들은 미친 듯한 속도를 내세워 단검과 같은 길이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정없이 찢어 버린다.
넵시가 휘두르는 발톱에 한 번이라도 그어지면 근육과 신경은 물론 뼈까지 잘려 나간다. 평범한 인간은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그 공포를 로만 울프가의 군대는 겪어 보지 못했다.
테드버드는 잉겔리움의 판을 씌운 라운드 쉴드를 착용하고 있는데 이건 윌슨이 자신이 만든 방패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자부한다며 침을 튀기며 칭찬한 방패이다. 테츠가 기념으로 손도장을 찍어 줄 만큼 테츠도 인정한 걸작품이었다.
무려 로안의 은신전 마져 튕겨낼 정도이니 마교의 상징적 방패라 해도 손색이 없는 방패였다. 그 문양 또한 걸작이니 마교의 상징인 반달과 별 문양을 순수 잉겔리움 금속만으로 양각시켜 놓았으니 방패병이라면 군침을 흘릴 만한 방패였다.
솔직히 이 방패 하나면 성 서너 채는 사고도 남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방패다. 만약 이 방패가 왕가나 귀족의 손에 들어갔다면 전장에서는 사용되지 못했을 거다. 아예 봉인하여 가보로 물려 줄 정도며 혹이나 생채기가 나면 기절할 테니까.
-카카캉
넵시의 발톱이 잉겔리움을 때리자 푸른 불꽃이 일었다. 예전의 테드버드 같으면 넵시의 압력에 밀려 휘청거렸을 거다. 하나 다크시럼 포션을 마셨던 관계로 넵시의 근력은 아예 느껴지지도 않는 수준이었다.
'뭐지? 이 허약함은?'
비단 테드버드뿐만 아니었다. 다른 마교의 제자들도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이것이 마족의 힘인가?'
검을 휘두르니 뭔가 쉽게 쓱쓱 잘려 나갔다. 바닥은 검은 피로 흥건했다. 칠앵검진이 톱날처럼 회전했고 근접하는 마족은 토막이 나며 쏟아져 내렸다.
마족은 무기가 없고 단단한 갑옷도 없다. 무기를 들 필요도 단단한 갑옷도 입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발톱이 인간의 무기보다 월등히 단단하고 날카로웠고 가죽은 인간의 철판 강화 갑옷보다 갑절은 단단했다. 인간의 무기로 상처조차 낼 수 없었다.
베른은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넋을 놓아 버렸다.
"뭐냐? 저들은? 분명 저것들 마족이 맞는 거지?"
감히 마족에 덤벼들지 못하고 뒤에서 구경하던 병사들은 웅성댔다. 특히 마교의 칠앵검진의 위력에 감탄과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우와 저건 무슨 기술이냐?"
"마교의 용병이라고 그 위력이 소문을 능가하는구나."
"이보게 이건 마치 신들이 내려와 싸우는 것 같은 기분이야."
"무서운 자들이다. 마족을 때려잡았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어."
칠앵검진의 위력은 당사자인 테드버드도 놀라울 정도였다. 공방의 합이 척척 맞아 들어가며 한 사람이 방어하면 곧이어 뒷사람이 검을 찔러 넣는데 마족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이거 전투가 아니라 학살인데요?"
거버트는 눈앞에 만족하나를 쪼개 버리며 씩 웃었다.
"힘이 줄지 않습니다. 바위와 같은 마족을 수 마리를 통째로 베었는데 아직 힘이 넘칩니다."
'교주께서 주신 비범한 포션이 이토록 위력적일 줄이야. 앨빈이 마족 일만을 학살했다는 말이 이제 실감이 가는군.'
거버트가 거들었다.
"장로님 이 정도면 굳이 칠앵검진을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이 무쌍을 하여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마교의 제자들은 흥분한 상태지만 테드버드의 명령에 따라 침착하게 칠앵검진을 유지하고 있었다. 칠앵검진은 호흡이 정말 중요한 검진이다. 단 한 사람만 튀어도 검진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방어하는 쪽과 공격하는 쪽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어느 한쪽이 공을 세우기 위해 앞서 나선다면 검진은 바로 무너진다. 검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비로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니 마족이 터무니없이 쓸려나가니 굳이 칠앵검진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테드버드는 눈앞에 달려드는 마족의 머리를 날려 버리고 외쳤다.
"마교의 제자들은 들어라. 가진 능력을 모두 발휘해 마족을 제압해라. 다치는 놈은 오늘 저녁은 없을 거다."
"우와!"
"그 말씀 기다렸습니다."
"이제 내 검을 휘두를 수가 있구나. 하하."
기다렸다는 듯이 칠행검진의 진형이 해체되며 마교의 제자들을 날아올랐다.
"우와."
"와."
"저들은 사람이 아니다."
"마치 신들의 싸움을 보는 것 같습니다."
뒤에서 넋 놓고 구경하는 병사들은 이 압도적인 광경에 완전히 몰입하며 정신을 빼앗겨 버릴 정도였다.
살이 베이고 피가 튀는 실제 전장이다. 그 긴장감은 말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런 긴장감은 없었다. 뭐랄까 팽팽한 대결이 아닌 일방적인 학살이었기 때문이다.
힘에서 밀리지 않을뿐더러 속도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속도라면 마족 최강의 넵시였기에 그 충격은 더 했다.
마족과의 전투를 지켜보던 베른 장군은 의아심에 휩싸였다.
마족인 넵시는 눈으로 좇기도 버거울 만큼 빠르게 움직여 댔다. 검으로 상대를 베어야 하는데 상대를 맞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마교의 용병들은 넵시처럼 빠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움직임. 그런데도 정확하게 넵시를 베어 넘겼다. 비명을 지르는 것은 마족뿐 마교의 용병 중 쓰러진 자는 단 사람도 없었다.
전투는 너무나 싱겁게 순식간에 끝이 나버렸다. 이삼백 마리 넵시가 눈 깜짝할 사위 처리되어버린 것이다.
검은 피바다 위에 서 있는 자들은 마교의 용병뿐이었다.
테드버드는 방패를 등 뒤로 돌리며 외쳤다.
"다친 녀석 있나?"
마교의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없습니다."
테드버드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승리했다고 자신에게 도취 되진 마라. 그것은 큰 독이 된다. 교주님이 하신 말씀을 잊지 말도록 하자.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 긴장감이 떨어지면 틈이 생기고 적은 그 틈을 파고 될 것이다."
거버트는 말 위에 오르며 외쳤다.
"마족의 본진이 밀고 들어오니 정찰을 나가겠습니다."
테드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천 마리 정도에 겁을 먹을 필요가 없지 않나? 오백 마리가 먼저 와 죽어 주었으니 나머지 것들 기다릴 필요 없이 밀고 들어가면 되지 않겠느냐?"
마차에서 들려오는 윌리엄 대공의 목소리에 테드버드는 알겠다는 듯이 외쳤다.
마족은 후퇴란 없다. 마지막 한 마리가 죽어 넘어질 때까지 그들은 밀고 들어올 것이다. 그것이 마족 특유의 본성이다.
마교의 용병이 선두에 서고 윌리엄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족이 생각보다 허약하지 않은가?"
"인간의 무기로 베지 못한다는 것은 다 헛소리가 아닌가?"
"마교 용병들이 저리 쉽게 마족을 처리하는데···."
"그들이 뛰어나기는 해. 하지만 우리도 하지 못할 것은 없지."
"우리 드라고나 정규군이 용병 뒤에서 싸움 구경만 하는 건가?"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누군가? 드라고나 정규군이야. 마족 한 마리에 서너 명이 붙으면 놈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 그렇지 않아?"
이들은 전사 집단이다. 전투는 평생 그들 주위를 맴돈다. 평화의 시대에는 격투장에서 무위를 논하고 전쟁이라도 나면 당장 짐을 꾸리고 달려 나갔다.
드라고나 정규군의 보상은 특이하다. 정규군에 복역하면 나라의 녹봉을 받지만 별도로 전장에서 공을 세우거나 무위를 떨치면 추가 보상이 있다.
사실 다들 노리는 것이 추가 보상이다. 추가 보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은화와 금화다. 싸움도 즐기고 돈도 벌고 전사들에게는 꽤 달콤한 소리다. 특히 그 보상이 녹녹지 않다. 유명한 전장을 몇 번 누비면 집 한 채 정도 장만 할수 있으니까.
돈을 버는 목적은 다양하다. 가족 부양을 위해, 향락을 위해. 그런 전사의 나라이기에 드라고나 왕국에서는 산적이니 해적이니 일절 없다. 솔라리스에는 넘쳐나는 것이 산적과 도적이지만 드라고나는 산적 따위 발붙일 곳이 없다.
그래서 상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방금 마교의 용병들이 싸우는 모습은 엄청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지만 자신들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호승심까지 곁들이게 했다.
벌써 마족 한 마리에 금화 한 닢이니 하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니. 이거 한 번 해볼까 하는 눈빛에 물든 전사들이 하나둘 입술을 핥았다.
할수 있다는 자신감의 독은 혼자일 때 보다 무리가 있으면 그 중독성이 훨씬 강해진다.
앞서 나갔던 거버트가 지평선에 모습을 보였을 때 부대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테드버드는 좀 더 신중히 대처하기를 바랐다. 조금 전 전투는 무리에서 이탈한 넵시 이삼백 마리였지만 이번에는 다양한 종족이 섞인 본대다. 특히 마족의 방어 담당인 넵탈리온의 무식한 비늘은 잉겔리움도 종종 씹어 버리는 경우가 있는 만큼 전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테드버드는 성군 출신이다. 그것도 지휘관급 계급이었다. 성군에서 배운 것은 절대적인 통제와 규율에 따른 부대의 움직임이었다.
개개인이 나서서 무쌍을 찍어 대는 것은 군이 아니다. 그런 경우 잘못하면 일순간에 무너진다.
무너지는 속도가 빠르면 대비책도 무용지물이게 된다. 하지만 탄탄한 전술에 의지하는 전투 방식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적에게는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테드버드는 마교에 있으면서 성군의 전술을 상당수 도입시켰다.
"대형을 유지해. 최대한 적을 끌어들인 다음 대응한다. 먼저 나서지 마라. 길을 여는 것은 나와 거버트가 할 것이다."
지평선에서 먼지구름이 일었다. 마족의 본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먼지구름은 기마대가 돌진해 오는 듯한 광경을 연출했다.
테드버드는 이곳이 사방이 탁 트인 개활지라 칠앵검진을 활용하기 무엇보다 좋다고 생각했다.
"너머지 제자들은 칠앵검진을 활용해 적의 수를 줄이는 쪽으로 전술을 구사한다. 검진의 위력은 이미 증명되었으니 적을 앞에 두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모두 알겠지?"
"알겠습니다."
마교의 우렁찬 함성이 군단을 자극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빛냈다.
먼지구름 사이로 마족의 모습이 보일 만큼 가까워져 갔다.
천여 마리가 일제히 달려왔지만, 생각보다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 고작 일천기다. 지금 군단의 기마대만 추려도 2만을 헤아린다. 이 천여 마리 정도 잡지 못하면···.
흥분이 고조되고 무기를 뽑아 드는 자도 있었다. 눈앞까지 마족이 달려드는데 마교 용병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무얼 하는 거야?"
"어이, 어이 적이 눈앞에 왔다고."
"이번은 포기하는 건가?"
"혹시 적의 수에 겁을 먹은 것이 아닌가?"
"아무리 전투력이 높아도 일백으로 일천은 무리지."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테드버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선두가 거의 백 보 안으로까지 밀려들었다.
"단장님 용병이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저희가 치고 나가 마족의 전투력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마족과 싸워 보겠습니까? 비록 마교의 용병이 대단하나 우리는 머릿수가 훨씬 많습니다. 한 마리에 서너 명이 붙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늦기 전에 돌격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베른은 망설였다.
"만약 윌리엄 대공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선두에 있던 저희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베른은 어쩔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마족의 전투력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허락이 떨어지자 일제히 쏟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뒤에서 소란이 일며 기마대가 뛰쳐나오자 테드버드가 기겁하여 외쳤다.
"무얼 하는 거야? 멈춰!"
하지만 일개 용병의 말을 들은 정규군은 아무도 없었다.
"저런 멍청한 것들 주제 파악도 하지 못하고!"
거버트도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막아. 저들은 불길로 뛰어는 나방일 뿐이야."
마교의 제자들이 고함을 질렀지만, 그들은 백 명도 안 되는 소수였고 지금 뛰어나온 기마대는 만 명도 더 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뛰어나왔다.
앞사람이 달리자 분위기에 휩쓸려 덩달아 달려 나온 것이다.
테츠는 고함에 내공을 섞어 외쳤다.
"멈춰. 멈추라고 너희들의 행동은 자살일 뿐이다."
그러나 그 소리에 반응하는 병사는 없었다.
"놔두시게. 검에 베여 봐야 검이 무서운 줄 알아."
마차 안에서 윌리엄 대공의 목소리가 들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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