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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던전 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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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스토마
작품등록일 :
2024.02.09 14:17
최근연재일 :
2024.03.01 18:3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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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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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5,873

작성
24.02.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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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회장님과 브로커 (5)

DUMMY



유현은 힐끗, 최만식 회장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그도 아직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죽어서 실려 나가는 김진우의 모습도 보지 않는다.


다시, 조재영을 보았다.


‘쐐기를 박으려는 건가.’


그가 여기에 자리하고 있다는 건 여러 가지를 함의하고 있다. 그와 새연그룹 사이의 연관성. 그리고 방금 일어난 경기의 결과에 그가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까지.


여기까지만이라면 아슬아슬하게 고객과 브로커 정도의 관계로만 인식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를 통해서 얻은 물건에 크게 기뻐한 조재영이 그를 이 자리에 초대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유현이 직접 무대에 나선다는 건 양측의 관계가 단순한 브로커와 고객의 관계가 아니라는 걸 시사하게 될 게 분명하다.


이런 자리다.


산진그룹의 최만식 회장과 새연그룹의 조재영 회장이 선수를 내세워 싸움을 붙이는 곳이다. 분명,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도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몇몇은 뉴스 등에서 본 얼굴인 것 같다. 아마 재계의 유명인들일 것이다.


‘······ 저 여자는 국회의원 비서와 염문 찌라시가 돌았던 여배우잖아?’


유현이 발견한 여자는 나름 연예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여성이다. 시작은 아이돌. 성숙미를 내세워 드라마, 광고 등에 하나씩 도전하더니 어느샌가 여배우로 정착한 인물이다. 얼마 전에 봤던 뉴스에서 한 국회의원의 젊은 비서와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는 내용을 본 적 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옆에서 옷 안에 손을 넣은 채 젖가슴을 만지는 남자는 그 비서가 아니었다. 넓게 벗겨진 이마에 검버섯이 듬성듬성 자라난 노인이다. 노인의 곁에서 최만식이나 조재영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정장과 선글라스로 무장한 수행원들이 그를 지키듯 서 있었다.


‘찌라시는 찌라시군.’


하지만 덕분에 한 가지 알게 됐다. 관중석에 있는 이들은 기업인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재계만이 아니라 정계, 연예계 사람도 있다. 어쩌면 이들 중 상당수가 혹은 전부가 음지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증인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유현은 쓸데없이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다.


“하하하하핫! 농담이야, 농담! 뭘 그리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러나? 응?”


어떤 식으로 거절해야 할지 궁리하던 유현의 등을, 조재영이 크게 웃으며 두드렸다.


‘농담이라고? 그냥 한 번 떠본 건가?’


유현의 등을 두드리던 손이 이번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플 정도로 세게 잡은 건 아니나, 분명하게 상대에게 붙들렸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그래도 생각이 바뀌면 얼마든지 말만 하게. 사람을 죽이거나 싶다거나 급전이 필요할 때 말이야.”


“급전······ 이요?”


그의 의문에 대답한 건 조재영이 아니라 스피커에서 나온 사회자의 목소리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그 누가 산진의 왕자를 신인이 끌어내릴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요? 박기호 선수의 배당률은······ 오, 맙소사! 300배로군요!]


“싸움꾼으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자네라면 저것보다 더욱 높은 배당률이 나올지도 모르지. 크게 한 방 땡기긴 좋을 걸세.”


‘농담이라며?’


“어······ 음······ 네. 생각해 보겠습니다. 급히 돈이 필요하면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지요.”


“그래. 그 말, 기억해 두겠네.”


조재영은 흡족스러운 미소로 다시 무대를 보았다. 유현도 그를 따라 다음 경기를 관전했다.


여러 기업의 후원과 지원을 받는 격투가들의 싸움이 이어졌다.


김진우와 박기호의 경기와 같은 싸움은 없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 혹은 서로에게 영구적인 장애를 몇 개씩 안겨주는 처절한 싸움이 펼쳐졌다.


개중엔 새연그룹의 선수도 몇 명 더 있었지만, 그들은 박기호와 달리 포션을 사용한 것 같진 않았다.


10여 회의 싸움이 이어진 뒤에야 오늘 준비된 모든 무대가 막을 내렸다.


“즐거웠나?”


“네. 무척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걸 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종종 부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회장님.”


거래처의 높으신 분을 위해 관심도 없는 골프에 주말을 낭비하는 회사원의 심정이 이러할까? 유현은 속으로 쌍욕을 내뱉으면서도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순 없었다. 그저, 이것이 ‘언제 한 번 밥이나 한 끼 하자’는 인사와 비슷한 의미이길 바랄 뿐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유현은 조재영에게 허리를 푹 숙여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렸다. 이제 한 발짝 떼려는 순간 조재영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잘 생각해 보게.”


“······ 네, 회장님.”


다시, 걸음을 옮겼다.



*



금일 최만식 회장의 운전수를 맡게 된 김경태는 숨을 죽인 채 룸미러를 통해 최만식의 상태를 살폈다. 시트에 기댄 채 천장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쉰다.


“후.”


그의 오랜 경험에 따르면 지금 최만식은 타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이 타이밍에 조금이라도 신경에 거슬리는 짓을 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전에도 한 부하가 최만식의 심정도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을 걸었다가 골프채에 맞아 정강이가 부서진 적 있었다. 김경태는 그날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어떡하지.’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눈치다. 이럴 때 괜히 ‘출발할까요?’ 같은 말을 꺼냈다가는 괜한 호통을 들을 수도 있다. 반대로, 이대로 있다가는 어서 출발하지 않냐는 불호령과 함께 앞니가 날아갈지도 모른다.


초조함에 소변이 마려웠다.


‘차라리 화장실에 간다고 말 걸면서 대충 의중을 살펴볼까?’


하고 생각한 그때, 누군가 차 뒷문을 노크했다.


똑똑-!


“······ 들어와.”


최만식이 말하자 노크를 한 사람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최만식의 옆에 앉았다.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요염한 여성이다.


한 번도 햇볕을 쬔 적 없는 것처럼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에 깡마른 몸, 그리고 무척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여자다.


“기적이 일어났네요.”


여자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최만식이 빠득,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튀기 새끼!”


“후훗. 산진그룹에서 확실하게 처리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요.”


여자의 물음에 최만식이 그녀를 찌릿 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 날카롭고 따가운 시선을 운전석에 앉은 김경태에게로 돌렸다. 별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았지만,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진 김경태도 알 것 같았다.


최만식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 그건 사소한 일이야. 애초에 그런 물건들을 중개할 수 있는 새끼라는 걸 알았다면 그 새끼를 선택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래요. 일단은 거래처를 알아낸 다음에 처리했겠죠. 하지만 실패했고, 일이 이렇게 흘러가네요.”


“음지에 그런 물건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 없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최만식이 여자를 향해 으르렁댔다.


룸미러로 쭉 두 사람의 모습을 살피고 있던 김경태의 손에 땀이 잔뜩 잡혔다. 쥐고 있던 핸들이 축축해질 정도로.


“저도 마찬가지예요. 무슨 짓을 한 건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면 속임수인지 아닌지라도 조사할 수 있을 텐데······. 일단은 다른 나라의 음지와 접촉해서 정보를 모으려는 중이니까 조금 더 기다려보세요.”


“외국의 마술사들이 과연 이 작은 나라의 잡종 브로커와 거래를 할까?”


“모르죠. 그리고 음지에 있는 마술사만이 아니에요. 문화권과 국가에 따라서는 마술사보다는 토종 신앙이나 주술사들이 대세인 곳도 많아요. 한국도 비슷하고요.”


“한국이?”


“한국에 마술이 들어온 건 일제 강점기 때에요. 일본을 경유해 들어온 마술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해외 유학을 가서 마술을 배워온 이들을 통해서 퍼졌어요. 무척이나 역사가 짧죠. 당장 중국만 해도 비슷하잖아요? 그쪽도 마술사보단 도사가 더 많으니까요.”


“그리고 무림인도.”


최만식의 말에 여자의 미간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그들은 음지에 속했다고 보기 조금 애매하지 않나요? 그보단 양지의 흑사회에 가깝죠.”


“신비한 힘을 사용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여자는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대체 어느 문화권에서 그런 물건을 만들 수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으니까요.”


최만식은 고개를 뒤로 젖혀 다시 차의 천장을 보았다.


몇 초를 그렇게 있던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너무 서두를 건 없어. 다만, 확실하게 알아내. 그리고 그쪽과 접촉해서 브로커가 아니라 우리와 직접 거래하자고 타진해보고.”


“글쎄요. 외국의 브로커를 이용해 물건을 팔 정도라면 상당한 위험을 품고 있을지도 몰라요.”


“상관없어. 그 정도 리스크는 감수해야지.”


“거래를 거절하면요?”


“처리해야지.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두지 않을 거야.”


“후후훗. 그런 건 확실하시네요. 내 편이 아니라면 모두 적이라는 건가요? 그럼 새연그룹과 그 브로커는 어떻게 할 셈이세요?”


여자의 물음에 최만식은 빠득, 이를 갈았다.


그의 얼굴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의원들 앞에서 내게 망신을 줬어! 하필 오늘! 이건 나에 대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야. 어떻게 해서든 새연그룹과 그 잡종 새끼를 죽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지만 콜로세움에서의 일을 복수하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브로커를 처리할 건가요?”


“새연그룹 측에서 놈을 지키기 위해 감시망을 깔아놨겠지. 대비하고 있는 곳에 칼을 찔러 넣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다른 방면으로 공격한다. 콜로세움의 치욕을 갚아주는 것도 포함해서.”


“생각해둔 방법이라도 있으신가요?”


“몇 가지 있어. 안 그래도 조회장 그놈, 사사건건 끼어드는 것 때문에 벼르고 있던 참이니까.”


“······ 설마하니 콜로세움의 불문율을 어기시려는 건 아니겠죠?”


최만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언을 통해 그의 뜻을 짐작한 여자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너무 티 나게 행동하진 말아 주세요. 아직은 때가 아니니.”


“괜찮아. 당신이 말한 대로 음지보다는 흑사회에 가까운 놈들이니까. 애초에 어쩌다가 그런 불문율이 생겨난 건지도 모르겠단 말이지. 모든 게 가능한 게 콜로세움의 묘미인데.”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반발이 심할 거예요.”


“이런 것도 이겨내지 못한다면 다음 일도 꿈도 못 꿔.”


“뭐, 그건 그렇죠. 알겠어요. 그럼 그쪽은 회장님께 맡길게요. 저는 계속해서 외국의 마술사들과 연락하겠어요. 몇 번 해외에 나가야 할 것 같으니, 당분간은 연락하기 힘들지도 몰라요.”


“필요한 정보를 얻기 전까진 연락하지 않아도 돼.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는 건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으니까.”


“알았어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여자가 차에서 나갔고,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 화가 가라앉은 건지 최만식은 이전보단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지시했다.


“출발해.”


“네, 회장님.”


차에 시동이 걸리는 것과 동시에 고개를 차창으로 돌렸다. 유람선에서 내려오는 조재영의 모습이 보였다.


‘조재영이. 웃는 것도 지금뿐이다. 그 잡종 새끼랑 같이 가라앉혀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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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새연그룹과 브로커 (2) 24.02.13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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