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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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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스토마
작품등록일 :
2024.02.09 14:17
최근연재일 :
2024.03.0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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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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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5,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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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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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과 브로커 (4)

DUMMY



쇠창살이 쳐진 무대에 들어간 남자는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며 섀도 복싱을 선보였다.


복싱이나 다른 격투기를 배워본 적 없는 유현이라도 그 주먹의 날카로움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평범한 여자들의 캣파이트는 재밌긴 하지만 쭉 이어서 볼 맛은 없네. 설탕을 봉지째 때려 넣은 커피와 같거든. 애피타이저처럼 가볍게 한 판 보는 정도면 충분해.”


[미들급 복서로서의 전적은 16승 0패 14KO! 그리고 콜로세움에서의 전적은 5승 0패! 밖에서나 콜로세움에서나 무패의 신화를 이어가는 기적과도 같은 남자, 김진우! 오늘 이 무패의 전사에 맞서는 용기 있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미들급?”


스피커의 음성을 들은 유현이 저도 모르게 그의 체급을 중얼거렸다.


복싱의 정확한 체급은 알지 못하나, 100kg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몸매의 저 남자의 몸이 미들급의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체급은 무의미하네. 그런 걸 세세하게 따지면 재미없으니까.”


[······ 격투기라 불리는 것을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다. 하지만 그걸 배웠던 사람에게 진 적도 없다! 공식 대회에 나선 적은 없기에 전적은 없으나, 스트리트 파이트에서는 100전 100승이라 주장하는 거리의 싸움꾼! 새연그룹의 새 전사, 박~~~ 기호!]


새로운 남자가 무대 위에 올랐다.


스피커에서 나온 설명대로, 긴 시간 단련한 것 같은 몸은 아니었다. 격투기 선수들이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근육 위에 지방을 입힌다고는 하지만, 박기호라는 남자의 몸은 그 정도가 조금 심했으니.


“무기를 제외한 모든 걸 사용 가능. 그 모든 것의 범위에는 신체를 강화하기 위한 수술, 도핑과 같은 걸 죄다 포함하고 있어. 무기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허용돼. 불알을 잡아 터뜨리든, 손가락으로 눈알을 후벼파든.”


“······ 진정한 무규칙 격투기네요.”


스피커의 목소리와 조재영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유현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이 앉은 자리에서 정면, 무대 너머에 있는 관중석에. 정확히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중노년의 남자에게.


조재영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는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들이 경호원처럼 서 있었으며, 그 수는 조재영을 수행하는 이들보다 많았다.


유현은 그를 안다.


조재영의 얼굴을 보고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챘듯이, 그 남자 또한 종종 TV에 얼굴을 비춘 유명인이니까.


[천부적인 재능! 뼈를 깎는 노력! 수많은 대전자를 때려눕힌 압도적인 경력! 거기에 산진그룹의 완벽한 지원까지! 몇 년째 콜로세움의 챔피언으로 군림하고 있는 김진우를 도전자 박기호가 과연 꺾을 수 있을 것인가!]


“허용되는 모든 것이라는 말에는 신체 개조, 약물 등을 이용한 도핑도 포함되지. 캣파이트와는 달라. 이건 선수의 싸움임과 동시에 선수를 후원하는 기업 간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하지.”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착각이 아니었다. 이윽고, 그 남자의 곁에 서 있던 남자와도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그래서 산진그룹의 최만식 회장님도 이 경기를 보러 오신 거군요?”


“그런 거지. 기업이 개발한 신기술과 입수한 물건 등을 쏟아부었는데, 그만큼의 성과를 내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이잖나? 우리 측 선수에겐 자네를 통해 얻은 포션을 사용했네.”


“아! 제게 그 물건의 힘을 보여주시는 거군요?”


“그런 거지. 신체 능력이 올라가는 걸 확인하는 데에는 싸움질이 최고니까.”


동시에, 이 경기를 보러 온 산진그룹의 최만식 회장에게 자신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리라.


‘영악한 새끼.’


대충 말로만 엄포를 놓았던 오혜진과는 달랐다. 그랬던 그녀를 굽히게 만들어 긍정적인 관계를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산진그룹의 회장인 최만식에게 자신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유현을 통해 얻은 포션으로 강화한 격투가를 통해 산진그룹의 격투가를 박살 낼 생각인 거다. 최만식 회장 앞에서 말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이걸로 유현은 확실하게 두 그룹 간의 경쟁에서 새연그룹 측에 서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결과적으론 이리 될 거였긴 하지만.’


유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편하게 앉았다.


시선을 돌려 무대에 선 두 명의 선수에 집중했다.


두 남자는 약간의 거리를 둔 상태에서 천천히 몸을 풀고 있었다.


[자, 그럼! 경기이이이잇! 시작합니다!]


스피커의 커다란 울림과 함께 종이 울렸다.


땡땡땡-!


박기호는 양팔을 들어 머리를 보호한 채 천천히 김진우를 향해 다가갔다. 김진우는 적당한 거리에서 견제하듯 몇 번의 잽을 날렸지만, 그 정도로는 박기호를 물러나게 할 수 없었다.


“저 복서는 참 대단한 놈이야. 규칙이 없는 이곳에서도 늘 자기만의 규칙을 지키지.”


조재영이 말했다.


“자기만의 규칙이요?”

“오직 복싱. 복싱만 사용한다는 말이야. 발차기를 쓰지도 않고 상대를 메치거나 그라운드 기술을 쓰지도 않아. 오직 주먹. 심지어는 뒤통수를 때리거나 불알을 까지도 않아.”


“그래 보이네요.”


유현은 곁눈질로 무대를 살폈다.


프로 출신답게 자신을 몰아붙이려는 박기호의 움직임에 휘말리지 않고 무대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견제를 위해 잽을 날리긴 했지만, 발차기나 다른 기술을 사용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주먹만 쓰면 불리하지 않나요? 발차기에 비해 약하고, 그라운드 기술에 걸리면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던데.”


“그러니까 대단한 거지. ‘복서로서의 자존심을 압도적인 힘으로 관철하는 남자’라는 게 놈의 캐치프레이즈야. 그걸 위해 산진그룹 측에서도 돈을 쏟아붓고 있지. 트레이닝에다가 식단관리, 그리고 약품까지.”


“약품이요?”


“내가 말했잖나. 무엇이든 허용된다고.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나 기타 도핑 약품을 주입해 몸을 기르고 있어. 미들급은 원래 70kg대 초중반이야. 72kg쯤부터 시작이었나? 지금은 100kg이 훌쩍 넘지. 얼마더라?”


“123kg입니다.”


옆에 서 있던 수행원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아, 맞아. 그랬어.”


조재영이 웃으며 박수를 짝, 쳤다.


“몇 년째 스테로이드를 계속 맞으면서 저 거구와 근육을 유지하고 있어. 스테로이드의 부작용 중 하나인 공격성을 억제하기 위해서 마술사의 물품을 사용하는 것 같더군.”


“공격성이 있는 게 더 좋지 않나요?”

“놈의 컨셉은 스마트한 복서니까. 컨셉이 무너지면 이름도 무너져.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과 시간이 날아가는 거지.”


조재영의 설명을 듣고 보니 새삼 김진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현대의 격투기에 있어서 복싱은 기초 중의 기초 아니던가? 다들 거기에 다른 격투기를 섞어서 사용한다. 한데, 그는 그 복싱 하나만을 가지고 쭉 연승을 이어왔다는 것이니.


“그런 고고한 놈이기에, 무너졌을 때의 파급력은 더욱 크겠지.”


잽이라고는 해도 120kg대의 거구 복서의 잽이다. 맞고, 맞고, 또 맞아 대미지가 누적되니 박기호도 견디지 못한 듯 보였다. 몸이 살짝 비틀렸고, 그에 맞춰 양팔을 머리에 딱 붙였다.


김진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잽. 잽. 그리고 머리를 가드하느라 빈 복부를 향해 들어가는 주먹.


퍽-!


복부에 주먹이 꽂히니 가드가 내려간다. 그렇게 가드가 내려간 얼굴을 향해 퍼부어지는 펀치 세례.


퍼퍼퍼퍽-!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쏟아지는 펀치의 세례 속에서 활로를 찾고자 한 것인지 박기호가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컴팩트한 김진우의 주먹과는 달리 서툴고 야만적인 느낌이 드는 훅이었다.


후웅-!


하지만 섬뜩할 정도의 파괴력을 머금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주먹이기도 했다.


김진우는 위빙으로 가볍게 그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격.


가드가 열린 무방비한 얼굴을 향해 주먹이 쏟아졌다.


퍼퍼퍽-!


다시금 박기호가 저항하듯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부우웅-!


그 순간, 김진우의 라이트훅이 박기호의 얼굴을 강타했다. 커다란 충격에 드디어 박기호의 몸이 옆으로 무너졌다.


관중석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조재영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더군다나 상대가 복싱 같은 걸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격투기의 초짜라면 더더욱.”


모두가 박기호의 몸이 넘어질 거라 생각했다.


결정타를 먹인 김진우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이제까지의 복서로서의 태도를 관철해, 그는 추가타를 먹이지 않았다. 쓰러진 상대를 때리는 건 복싱에선 반칙이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얼마나 오만한 속단이었는지 밝혀졌다.


무너지는 듯 보였던 박기호가 자신을 때린 김진우의 오른팔을 붙잡아 체중을 실어 꺾어버린 것이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콜로세움 전체에 진득하게 울렸다.


[박기호! 박기호 선수의 반격!]


“끄아아아악!”


김진우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러나 박기호는 그가 바둥거릴 틈도 주지 않았다.


엎어진 김진우의 위에 육중한 엉덩이를 올렸다.


“끄윽!”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인 팔을 부여잡고, 크랭크를 돌리듯이 마구 돌렸다.


“끄아아악! 아아아악!”


김진우의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복싱만을 고집해 연승을 반복해오던 고독한 늑대의 추락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자네가 구해다 준 그 포션. 신체 강화 포션이랬던가? 정말 대단하더군! 근밀도나 근육량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근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어.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 동체시력이나 반사신경도 모두 놀라보게 향상되더군. 저놈은 지금 피칭 머신이 쏘는 야구공에 적힌 숫자를 읽을 수도 있어.”


“처음부터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마음만 먹었다면 10초 내에 팔다리를 모두 부러뜨릴 수 있었을 거야.”


조재영은 관중석을 크게 훑었다.


“하지만 왕자의 추락엔 좀 더 극적인 긴장감이 필요하니까. 일종의 쇼 비즈니스이기도 하거든.”


관중석에서 흥분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몇 년째 왕좌를 차지하고 있었던 챔피언의 몰락에 기뻐하고 있었다. 아니, 모두는 아니다.


유현은 멀리서도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최만식 회장이 자신과 조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박······ 뭐였지?”


조재영이 김진우의 위에 올라타 그를 망가뜨리는 박기호를 가리켰다. 그는 어느새 타깃을 김진우의 왼쪽 팔로 돌려, 그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분지르고 있었다.


“박기호입니다.”


수행원이 대답했다.


“그래, 박기호. 저 녀석이 아니었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 거야. 맷집 차이가 있으니 연출은 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조재영이 말하는 사이 김진우는 양팔을 잃고 아래위로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김진우는 항복을 외치려고 하는 듯 보였지만, 박기호가 그의 입을 붙잡아 놓아주지 않으니 소릴 칠 수 없었다.


“승부가 난 거 아닌가요?”


“승부의 판가름이 나는 조건은 세 가지 중 하나야. 선수 중 한 명이 항복을 외치거나 소속사가 수건을 던지거나. 아니면 누구 한 명이 죽든가.”


유현은 최만식 측을 보았다.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상징성이 사라졌으니 이대로 버리겠다는 건가.’


박기호는 어느새 김진우의 왼팔마저 너덜너덜하게 만든 뒤, 이제는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는 부러진 팔을 대신해 두 다리로 탭을 했으나, 그것을 보고 두 사람을 떼어낼 심판 같은 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싸움깨나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조재영의 말을 들은 유현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애써 미소지으며 조재영을 보았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그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어떤가? 자네도 한 번 나가볼 생각 없나? 그 포션만 있다면 자네도 저 정도는 거뜬할 텐데.”


[승부 났습니다! 김진우 선수 사망! 새연그룹의 전사 박기호 선수의 승리입니다! 이로써 근 3년간 지켜온 왕자의 자리에서 산진그룹이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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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새연그룹과 브로커 (3) 24.02.16 11 0 15쪽
6 새연그룹과 브로커 (2) 24.02.13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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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 던전에 떨어진 브로커 24.02.09 37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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