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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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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스토마
작품등록일 :
2024.02.09 14:17
최근연재일 :
2024.03.01 18:3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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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105,873

작성
24.02.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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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새연그룹과 브로커 (2)

DUMMY



톡톡톡-!


검지로 반지를 때리자 유현의 몸이 투명해졌다.


‘지금 시간이 밤 열한 시 이십 분.’


투명화의 지속은 한 시간.


그가 마신 이세계인의 기억에 따르면 두 세계의 시간 개념은 거의 비슷했다. 오차가 있을 순 있으나 그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유현은 여유를 가지고 한동안 투명화된 자신에게 적응하기 위해 시간을 사용했다.


‘생각보다 빡신데.’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불편했다. 어딘가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눈앞에 적용해야 했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흘렀다.


슬슬 투명화 상태에 적응한 유현은 곧장 방으로 가 창문을 열고, 그곳으로 뛰어내렸다.


바닥에 닿는 것과 동시에 몸을 굴려 소리와 충격을 완화했다. 한 바퀴를 구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주변을 살피고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그를 알아챈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유현은 소리를 죽인 채 그곳에서 벗어나 시내로 향했다.



*




톡톡톡-!


어둡고 더러운 뒷골목.


유현은 그림자 속에서 투명화를 풀었다. 몇 번이고 자신의 몸이 보인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그는 가로등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대단하군.’


유현은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몇 번이고 사람의 옆을 지나쳤다. 그러나 유현의 존재를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뒷골목에 들어선 뒤에야 길 잃은 개와 고양이가 냄새를 통해 그의 존재를 알아채 짖거나 도망갔을 뿐이다.


‘앞으로 여덟 번.’


유현은 반지의 남은 사용 횟수를 세며 골목에서 나와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자정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대부분은 밤의 유흥을 즐기기 위해 거리를 활보하는 듯 보였다.


유현은 유흥가를 지나,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한적한 헌책방 거리로 접어들었다.


자정에 근접한 깊은 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헌책방은 문을 닫은 상태다. 그러나 개중에 몇 곳은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아직도 망설임의 빛을 밝히고 있었다.


유현은 아직 문을 연 헌책방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간판에 가게 이름 하나 없이, 그저 ‘헌책방’이라고만 적힌 가게였다.


열고 들어가는 문은 따로 없었고, 쌓인 헌책 사이로 입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안에는 두툼한 감색 파카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홀로, 아니, 어깨에 작은 다람쥐를 앉힌 채 둘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턱이 접힐 정도로 살집이 두툼하고 정수리 부근이 추수를 마친 논처럼 시원하게 뚫린 남자였다.


유현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다람쥐가 다급히 중년 남자의 파카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무서운 손님이 오셨구먼. 다람쥐가 겁을 먹고 도망칠 정도로.”


“너무 잘생겨서 부끄러움을 느껴 숨은 게 아니라요?”


“얘는 수컷이야, 미친놈아.”


“성별과 종을 초월하는 매력이 느껴지나 보죠.”


“하. 이 새끼. 진짜 한 마디로 안 지려고 하는 건 여전하네. 그래, 무슨 일이야? 책 사려고?”


“아뇨.”


“하긴. 초등학교도 못 나온 놈이니 책은 못 읽겠지.”


“글 정도는 읽을 줄 알아요. 반 이상이 한자로 도배된 신문이나 책 같은 건 무리지만.”


“그래? 좋은 선생에게 과외라도 받았어? 아니면 인강?”

“독학이요. 이래 봬도 대가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거든요.”


유현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나르시시즘도 여전하구나. 그 일로 온 거라면 문부터 닫아.”


“그러죠.”


유현은 책방 입구로 가 셔터를 내렸다.


드르륵-!


“따라와.”


남자는 가게 안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유현은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다다른 곳은 작은 방이었다.


노란색 장판에 지퍼가 달린 옷장. 잘 개어진 검은색과 흰색 조합의 목화솜 이불과 자수가 새겨진 베개, 네 발 달린 밥상, 황동색 주전자와 움푹 파인 양은그릇이 엎드려 있는 은색 쟁반 등의 물건이 놓인 방.


예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방에 들어간 남자가 방 중앙에 밥상을 펴고 위에 주전자와 양은그릇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그릇에 주전자의 내용물을 따른 뒤 유현의 그릇을 채웠다.


“자, 마셔.”


“됐어요.”


“왜? 뭐라도 탔을까 봐?”


“그럴 리가요. 정보상 문동훈이 담피르에 대해 모를 리 없는데, 그런 돈 아까운 짓을 하겠어요? 물 한 잔을 내놓고도 뭘 요구할지 모르는 사람이니 그러는 거죠.”


“크하하핫.”


남자, 문동훈은 재밌다는 듯 호쾌하게 웃으며 그릇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탁-!


거칠게 내려놓은 그릇에 다시 물을 따르며 말했다.


“이름 유현. 나이는 올해 스물. 만인지 아닌지는 정확하지 않음. 생일을 몰라 본인은 매년 1월 1일마다 나이를 세고 있음. 부친은 인간이며 모친은 뱀파이어인 담피르. 3년 전인 17살에 브로커를 시작함. 그중 2년은 자리를 잡지 못해 브로커라기보단 심부름센터 직원처럼 이런저런 일을 하며 보냄. 1년 전부터 제대로 자리를 잡고 음지와 양지를 중개함. 브로커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음지의 마술사들에게 고용되어 온갖 더러운 일을 해옴.”


무언가 서류라도 읽는 듯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정보를 나열하는 문동훈의 모습을 본 유현이 혀를 내둘렀다.


“저에 대해서 그 정도까지 알고 있다고요? 모르는 게 없다는 정보상답네요. 혹시 내 팬티 색깔도 알고 있는 거 아니에요?”


“검은색 트렁크. 무늬는 저작권이 사라진 쥐새끼 그림.”


짧은 대답을 들은 유현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 내 가게에 cctv라도 설치했어요?”

“그랬다간 새연그룹이 나를 조지려고 하겠지. 남의 영역에 그런 걸 설치할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아.”


“그럼 드론이라도 띄웠나 봐요?”


문동훈은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 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6개월쯤 전엔 산진그룹을 상대로 사기를 쳤지. 거래금 3억에 더해서 물건값에 중개료를 합하면──.”


“자, 잠깐만요. 사기? 그건 사기가 아니었어요. 아저씨가 가진 정보의 신뢰성에 의문이 드는데요?”


“네가 중개한 마술사가 돈을 먹고 튀었어. 그럼 너도 공범이지.”


“아니라니까요? 저는 그 인간이 그런 짓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사람을 소개할 땐 거기까지 책임을 지는 거야, 애송아. 그게 브로커라는 거라고.”


“······ 그렇다고 치죠. 그런데 이걸 저한테 말해주는 이유는 뭐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고 싶어서?”


“가끔 말이지. 시답잖은 자기 얘기를 가져와서 정보랍시고 팔아먹으려는 병신 머저리 같은 새끼들이 있거든. 시간은 돈이야. 그런 길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듣는 게 얼마나 큰 낭빈지 알기나 해? 그래서 미리 얘기해준 거다.”


문동훈은 두 번째 물을 비운 뒤 세 번째로 그릇을 채웠다.


“그리고 네놈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 예전의 너는 정보를 모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였으니까.”


“그럼 지금은요?”


“차고도 넘치지. 어때? 네가 새연그룹에 중개하는 물건을 어디서 구했는지 그 정보를 팔 생각은 없어?”


“누굴 죽이려고 작정이라도 하셨나. 제가 미쳤다고 그걸 나불대요?”


“잘 생각해 봐. 그 정보만 팔면 외국으로 나가서 신나게 평생 즐기면서 살아갈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고!”


“외국에 나가야만 한다는 시점에서 아웃이죠, 아웃.”


“흥. 그럼 뭣 때문에 온 거냐? 그 사기꾼 마술사의 정보를 사려고?”


“있어요?”


문동훈이 머리와는 다르게 가지런하고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당연하지.”


“······ 지금은 괜찮아요.”


“왜? 그 녀석 때문에 넌 죽을 뻔했잖아.”


“가만히 두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단지, 지금은 아니라는 거지. 오늘은 팔 정보가 있어서 온 거예요.”


“무슨 정본데?”


유현은 품속을 뒤져 작은 병을 꺼냈다.


플라스틱 재질의 100ml 용량의 휴대용 구강 청결제 병이었다. 병을 꺼낸 유현은 주머니를 뒤져 라텍스 장갑을 꺼내 손에 꼈다.


“그건 뭐냐?”


“신제품이에요.”


“신제품? 새연그룹의?”


“글쎄요. 아직은 확실치 않아요.”


“어떤 건데?”


“그걸 지금부터 보여드리려고요.”


유현은 병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라텍스 장갑을 낀 손에 조금 뿌렸다.


투명한 젤을 손에 올린 유현이 그것을 문동훈에게 내밀었다.


“불치병을 치료하는 약이에요.”


“······ 뭘 하려는 거냐? 나는 병 같은 거 없다.”


김하영과 똑같은 반응. 유현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 머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요?”


“뭐?”


유현의 손이 문동훈의 머리를 향해 움직였다. 그는 경계하는 얼굴을 하긴 했지만, 유현의 손을 밀어내진 않았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유현이 새연그룹과 거래를 해 여러 가지 일을 일으켰다는 걸 그도 알고 있다. 그 정보가 망설임을 낳았다.


철퍽-!


빈 정수리에 젤이 묻었다. 유현은 전병 반죽을 펴듯이 젤을 얇고 넓게 펴 발랐다. 꼼꼼하게 젤을 채워 넣은 뒤 장갑을 뒤집어 벗었다. 그리곤 휴대전화를 꺼내 문동훈에게 그의 모습을 비춰주었다.


“내, 내 머리가?!”


문동훈은 기겁하며 머리를 만졌다.


손을 타고 분명하게 느껴졌다.


30대라는 이른 나이에 잃어버렸던 녀석이 돌아왔다는 게.


“내가 팔고 싶은 정보는 이거예요. 세상 어딘가에 바르는 것만으로 머리카락을 자라게 만드는 기적의 발모제가 있다. 어때요?”



*



“믿어도 되는 거죠?”


“몇 번이고 말했잖아. 정보상의 철칙 세 가지. 하나. 정보의 가치는 정확하게 매긴다. 둘.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판매한다. 셋. 정보의 출처는 팔지 않는다. 이 세 가지는 확실하게 지켜.”


“흐음. 믿어보죠.”


“건방지긴.”


그렇게 말하는 문동훈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나이 올해 마흔.


30대부터 시작된 원형 탈모는 그에게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어떤 마술로도, 어떤 약으로도 탈모는 치료할 수 없었다. 탈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많은 중상비방과 편견에 시달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괜히 욕을 먹었고,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카락이 자라나니 그동안의 설움이 모조리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었다.


환희와 자신감이 영혼을 채웠다.


그래서일까? 평소 그에게선 기대할 수 없었던 자비심과 타인에 대한 걱정이 조금 피어났다.


“야. 너 혹시 산진그룹에 원한이라도 품고 있는 거냐? 네 심정은 이해한다만, 그런 마음이 있다면 얼른 버려. 복수니 지랄이니 하는 것보다는 목숨이 중요해.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다간 제 명에 못 죽는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네가 하는 짓을 보면 견적이 나오니까. 지금 이 정보를 판 것도 그래. 두 그룹 사이에 끼어들었다간 진짜로 좋은 꼴 못 볼 거다.”


“그걸 물은 게 아니에요. 왜 제가 산진그룹에 원한을 가졌을 거라 생각한 거예요? 제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해요?”


“······.”


“정보를 판 이유를 캐묻는 거라면 말해줄 생각 없어요. 아저씨도 고단수네요. 이런 식으로 사람을 떠서 공짜 정보를 얻으려고 하다니.”


“사람이 기껏 걱정해서 말해줬더니만······ 마음대로 해, 새끼야.”


“아, 그보다. 머리카락도 자라나게 해줬는데 서비스 하나 없어요?”

“서비스? 아까 그 충고가 서비스였어, 임마.”


“그러니까 완전 헛다리 짚은 거라니까요? 그냥 간단한 거 하나만 알려줘요. 근처에 돈 주고 고용할 만한 양아치 새끼들 없어요?”


“고용? 뭔 짓 하려고?”


“그냥, 여자 꼬실 때 도움 좀 얻으려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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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새연그룹과 브로커 (3) 24.02.16 1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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