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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 두목이 주인공을 먹음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언늘
작품등록일 :
2024.03.20 00:36
최근연재일 :
2024.04.17 18:50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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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43
추천수 :
717
글자수 :
176,134

작성
24.04.0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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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조전죽

DUMMY

나는 그런 흐뭇한 생각에 미소 지었다.

그때 자일리가 다시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냐구요.”

“우리의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고 있었소.”

“흐응.”


그녀는 기대된다는 표정을 해보였다.

그때 한스가 말했다.


“자꾸 형님께 달라붙지 마쇼.”

“내가 언제 달라붙었다고.”

“형님이 허락하신 마당이니 더 뭐라 하진 않겠지만...... 형님의 오른팔은 바로 나, 한스 라임이라는 잊지 마요. 알겠습니까?”

“하.”

“참고로 여기 폰은 형님의......”

“왼팔?”

“아니. 코털 한 가닥 정도지.”


폰이 발끈해서 뭐라 끼어들려 한다.

나는 그를 만류하고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는 서쪽으로 가겠다. 다들 짐 챙기도록.”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자일리가 흥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서쪽에는 뭐가 있는데요?”

“아무것도 없소.”


나는 잠깐 멈칫하다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있지.”


이 드립 꼭 한 번 쳐보고 싶었다.





우리는 제법 큰 마차와 준마 두 마리를 정식으로 구매했다.

이번에 이동할 거리는 제법 멀어서, 마차를 빌리는 것보단 그냥 직접 운용하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비용은 전부 자일리가 내주었다.

그녀는 과감하게 마차를 결제하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돈 들어갈 일이 있으면 뭐든 말해요.”


그러자 한스와 폰의 기가 죽었다.

자칭 내 오른팔과 코털 한 가닥의 위용을 지닌 부하들인데, 새로 들어온 파티원과의 금력(金力) 차이가 너무 커서겠지.


‘괜찮다. 기운 내.’


무력 차이는 그것의 수천억 배는 더 날 테니까.


어쨌건 전직 복학 준비생, 마계 서열 4위, 오른팔, 코털 한 가닥으로 구성된 4인 파티는 별 탈 없이 여정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한 달 쯤 지났을까.


“그렇구나. 이제 알겠어.”


갑자기 자일리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참고로 한스와 폰은 바깥 마부석에 자리한 상태다.

둘밖에 없는 고요한 마차 내부에서 자일리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네 목적지를 이제 알겠다고.”

“어디......”


어디냐고 되물어보기 전.

갑자기 내 머리가 번개가 쳤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화면창을 불러내 가림막 능력을 사용했다.


<가림막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5분 간 여론의 시선은 아크릴과 자일리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이제 안심.

내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한 가지 방침을 정해두려 한다.”

“응?”

“네가 ‘베리타’ 가 아니라 ‘자일리’ 로서 나와 대화하고 싶으면, 사전에 미리 시그널을 주도록 해. 눈을 찡긋 한다던가 헛기침을 한다던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자일리로서 말을 건다는 건, 그 주제가 극비일 것이 뻔하니까.”


개떡같이 말했는데 자일리는 찰떡같이 알아듣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드래곤과 드래곤 나이트의 비밀 대화를 시도했다.


[네 부하들에게 들킬까봐 그래? 그럼 이렇게 마음속으로 말하면 되잖아? 따로 신호를 정해놓을 것 없이.]


안 돼. 이것아.

비밀 대화는 우리들 끼리나 비밀이지, 3인칭 시점으로 구경할 여론의 시선이라면 속속들이 알 수 있다고.

그들의 시선을 가리려면 먼저 가림막을 쳐두어야 한단 말이다.

나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이 비밀 대화조차도 알아내 버릴 상대가 있다.’

[......절대자들 말이구나.]


아니. 걔네 말고.

그러나 자일리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들이라면 드래곤 나이트와의 마음 속 대화조차 꿰뚫어버릴지도 몰라. 어쨌건 그 한계의 끝을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

[협정 위반 중인 나도 나지만, 너는 특히나 절대자들의 눈을 피해 ‘약한 척’ 연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지. 알았어, 앞으로는 미리 신호를...... 응?]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리 신호를 주면 뭐 어쩔 건데. 너는 절대자들 눈을 피할 방법이 있는 거야?]

‘그럭저럭.’

[......역시 대단해.]


자일리는 진심으로 감탄한 듯 입을 헤 벌렸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지 원.

아무튼 가림막의 제한시간은 5분.

빠르게 이번 대화를 마무리지어야 한다.


‘아까 전에 내 목적지를 알겠다고 했던가. 어디지?’

[처음 네가 한 말에서 힌트를 얻었어. 사실 한 달이나 고민 끝에 알아낸 거라 대단한 건 아니지만.]

‘들어보겠다.’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게 있는 곳. 바로 엘프의 숲...... 더 정확히는 그 안의 세계수를 찾아가는 거 아니야?]


맞다.

맞긴 맞는데 어떻게 맞췄는지 모르겠네.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 하며 물었다.


‘정답은 맞다만...... 내가 힌트를 줬다고?’

[세계수는 그냥 덩치만 거대한 나무일뿐이잖아. 엘프를 제외한 모든 종족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과해.]

‘......’

[하지만 엘프들에게 세계수는 ‘모든 것’ 이나 다름없지. 참 절묘하면서도 정확한 힌트였어.]


언젠가 페이드와 함께 이 녀석도 정신 감정을 한 번 해보고 싶다.

페이드가 인격파탄자라면 얘는 착각병 환자구만.

그래도 이유가 무엇이건 정답을 맞춘 셈이라 칭찬해 주기로 했다.


‘정확하다. 역시 내가 너를 고른 건 정답이었던 것 같아.’

[......! 차, 착각하지 마, 딱히 너한테 칭찬 받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거든?]

‘거 참 유행 지난 전형적인 멘트로군.’

[무슨 소리야?]

‘됐다. 아무튼 내가 그...... 절대자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다음에 자일리로서 말을 걸 때는 꼭 참고하도록 해.’

[잠깐. 그 전에 신호를 정해야지. 우리의 비밀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신호 말이야.]


그딴 거야 대충 아무렇게나 정해도 되지 않나?

그러나 자일리는 진지하게 고민에 잠겨들었다.

그 사이 가림막 시간이 끝나버렸다.

나는 자일리에게 손가락으로 X표를 만들어 보였다.

이 정도면 대충 그녀도 알아들었겠지.


스윽.

그때 자일리가 머리칼을 곱게 쓸어넘겼다.

그리고 자신의 귀가 보이도록 머리카락을 걸쳤다.


“......?”


내가 무반응이자 그녀는 고개를 흔들어 머리칼을 떨어뜨렸다.

그런 뒤에 또다시 쓱 머리칼을 쓸어 귀 뒤로 넘긴다.


“......”


스윽. 스윽.

그녀는 그런 행동을 다섯 번이나 반복했다.

내가 그게 ‘신호’ 라는 걸 알아차린 건 여섯 번째나 되어서였다.

왜 하필 저런 걸 신호로 삼은 거래?





“두목. 잠시 괜찮으십니까.”


마차를 몰던 폰이 쪽문을 열고 말을 건네왔다.


“무슨 일이냐.”

“말씀해 주신 루트대로 가고 있습니다만...... 이대로 가면 ‘엘프의 숲’ 이 나옵니다.”

“그래. 거기가 이번 우리의 목적지다.”

“네에?”


폰이 기겁한다.

그런 그를 대신하여 한스가 말했다.


“엘프의 숲이라니. 왜 그런 귀쟁이들을 만나러 가십니까요.”

“안 되나?”

“아니, 형님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엘프들은 그 왜.”


그는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재수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설정하긴 했지.

신마전쟁에서 엘프들과 인간은 함께 신계 측에 서서 마계 군단과 맞서 싸웠다.

말하자면 옛 동지인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종족은 사이가 안 좋은 편이다.

엘프들은 그 잘난 수명과 정령술을 기반으로 신마대전에서 맹활약을 했단다.

물론 인간 측에서도 여러 영웅들이 그 못지않은 활약을 했지만...... 그건 특출난 일부만 그랬을 뿐, 전체적인 진영을 놓고 보면 아무래도 엘프들에 못 미치는 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비 부대나 화살받이 같은 역할이었던가.’


덕분에 원래부터 타고난 성품도 오만하게 태어난 엘프들은 신마전쟁 이후 더더욱 인간들을 무시하게 됐다.

인간들은 그런 엘프들을 고까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말이다.

나는 가물가물한 원작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무튼 계속 이동하도록.”

“아, 알겠습니다요.”


둘은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마차를 몰았다.

그사이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생각에 잠겨들었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해.’


드래곤 나이트가 되면서, 나는 본래 노렸던 것 이상의 강한 무력을 얻게 됐다.

호감도도 낭낭하게 챙겨서 여론의 시선으로 하여금 ‘페이드의 주요한 조력자’ 급으로는 성장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뻔히 나와 있다.


‘자일리는 무려 마계 서열 4위임에도 불구하고 <엑스트라> 다.’


그건 그녀의 정체가 여론의 시선에 들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직 정체가 들키지 않은 악당들이라면 전부 엑스트라일 확률이 높다는 뜻!

원작에서는 페이드의 앞을 가로막은 수많은 장애물들이, 지금 시점에서는 내 손짓 한 방에 작살날 거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완벽한 기회인가.

지금부터는 원작의 악역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버릴 생각이다.

그들의 음모가 더 뿌리 내리기 전에.

그들의 이름이 여론의 시선에 알려지기 전에.


‘즉, 조연이 되기 전에 죽인다.’


이른바 조전죽 작전!


덜컹.

그때 마차의 바퀴가 멈췄다.

그리고 밖에서 웬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멈추시오. 어디서 온 누구시오?”

“흐익. 형님. 귀쟁이들입니다.”

“방금 뭐라고 했소?”

“고명한 엘프가 잠시 우리를 멈춰 세웠습니다.”


달칵.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봤다.

거기에는 훤칠하고 귀 뾰족한 엘프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엘프에게 말했다.


“그쪽이 책임자요?”

“그렇소만. 당신은?”

“나는 아크릴 데이그라는 용병이오. 귀하들의 영역에 볼일이 있어 찾아왔소.”


그러자 엘프가 입 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눈빛만으로 ‘가당찮은......’ 이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돌아가시죠. 우리는 허가 받지 않은 이종족을 들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말투는 공손하게 바꿨기에, 나 역시 조금 정중하게 대답했다.


“일단 용무는 들어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아니.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방금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다른 종족과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으니.”

“......”

“특히 인간들은 말입니다.”


그러자 한스와 폰의 얼굴이 불퉁하게 바뀌었다.

반대로 자일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에게는 인간이나 엘프나 하등한 미물인 것은 똑같을 테니까.

X밥 싸움을 지켜보는 재미가 적잖을 것이다.

뭐, 아무튼.


‘슬슬 썰을 풀어볼까.’


일전에 나는 바바리안의 영지에도 내가 만든 원작 설정 ‘모험가 자이드’ 이름을 팔아 손쉽게 들어간 전적이 있다.

지금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는가.

어차피 이 세상은 내가 창조한 것을.


“그렇게 뻣뻣하게 나오는 게 이상하군요. 엘프들과 인간들은 충분히 왕래가 있을 텐데요.”

“허가 받은 이들에 한해서는 그렇죠. 우리에게 필요한 물자를 판매하는 상인이라던가, 백작 이상의 위임장을 받은 방문인이라던가. 그쪽은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소만.”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

“무슨?”

“세계수.”


우뚝.

엘프들의 몸이 굳는다.

나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썩어 들어가는 세계수를 고칠 법한 위인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습니까?”


분위기가 싸하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차앙. 타악.

엘프들은 모두 각자 무기를 끄집어내었다.

검을 뽑아 겨눴으며 활에 시위를 먹인다.

성급한 놈은 정령까지 불러놓고 있었다.

그리고 대장 놈이 혼신의 힘을 다해 인내를 발휘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발뺌하지 마십시오. 방금 내 발언에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증거잖습니까.”

“......”

“세계수를 자신의 목숨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러분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내가 세계수를 고쳐줄 테니.”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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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개소리 +5 24.04.12 410 20 13쪽
25 브레스 +8 24.04.11 416 18 12쪽
24 연극 +6 24.04.10 437 19 13쪽
23 악역 +10 24.04.09 447 22 14쪽
22 지진 +10 24.04.08 474 25 13쪽
» 조전죽 +8 24.04.07 538 24 12쪽
20 착각 +10 24.04.06 538 20 12쪽
19 신뢰 +2 24.04.05 574 16 12쪽
18 인정 +8 24.04.04 575 26 13쪽
17 드래곤 나이트 +12 24.04.03 591 28 12쪽
16 꿇어라 +4 24.04.02 604 25 14쪽
15 유희 +14 24.04.01 621 21 13쪽
14 악취 +10 24.03.31 641 25 13쪽
13 주인공스러운 +16 24.03.30 662 27 13쪽
12 재회 +12 24.03.29 697 21 12쪽
11 기준 +7 24.03.28 718 27 14쪽
10 만물감별사 +10 24.03.27 737 20 12쪽
9 인면조 +10 24.03.26 770 23 13쪽
8 클리셰 +5 24.03.25 818 24 12쪽
7 고유 능력 +2 24.03.24 854 23 12쪽
6 대현자의 묘약 +2 24.03.23 843 23 13쪽
5 맥거핀 +2 24.03.22 894 22 12쪽
4 철인 24.03.21 1,039 25 13쪽
3 세상 속으로 +3 24.03.20 1,218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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