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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 두목이 주인공을 먹음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언늘
작품등록일 :
2024.03.20 00:36
최근연재일 :
2024.04.17 18:50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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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84
추천수 :
717
글자수 :
176,134

작성
24.04.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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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연극

DUMMY

케이젤은 속된 말로 지랄 발광을 했다.


“이 모욕은 내가 똑똑히 기억할 거요! 여러분, 다들 나갑시다.”


그는 ‘인간 주제에’ 장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장로들도 어어하다가 얼떨결에 그를 따라 나가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


“왜 엘프들, 그것도 장로라는 작자들이 저 녀석 말에 끔뻑 죽는 거지?”

“원체 해온 게 많아서 그래요.”


그렇게 대답한 필라어트가 한숨을 내쉰다.

내가 물었다.


“세계수를 살리는 거 말입니까?”

“아뇨. 그것도 있지만...... 세계수가 약해진 탓인지 근방 몬스터들이 가끔씩 우리 영역을 침범해 오거든요. 특히 최근 들어 잦아졌어요.”

“......”

“케이젤은 치유사의 몸임에도 직접 맨 앞에 서서 몬스터들을 물리쳤고요. 그는 신성 마법도 다룰 줄 아는 자이니까.”


솔직히 케이젤의 도움이 컸던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고 필라어트는 말했다.

잠시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자일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떡할 거죠? 아크릴 씨.”


베리타로서의 대화인지라 존대를 사용하고 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고민에 잠겨들었다.


‘원래는 그냥 저 케이젤 놈만 족치면 끝나는 일인데.’


녀석은 지금 엑스트라다.

그러니 내 손가락으로도 가볍게 짓누를 수 있을 터.

하지만 다짜고짜 녀석을 죽여 버리면 내 호감도가 급전직하할 것이다.


-아니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그냥 단칼에 죽인다고?

-진짜 개연성 똥망이네 ㅋㅋ

-산적놈 솔직히 실망했음. 저렇게 무식하게 주먹이 먼저 나가는 캐릭터 아니지 않았나.

-작가놈이 버렸나 봄~ 이제 속 편히 페이드만 밀면 되겠네

-기대가 많았는데 아쉽네요.


이런 댓글들이 달릴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가림막으로 여론의 시선을 가린 뒤 처단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개연성에 치명적인 지장을 주는 장면은 가림막으로 가릴 수 없습니다.>


가림막으로 케이젤을 족치는 장면은 숨길 수 있겠지만, 가림막이 사라진 뒤 녀석이 죽었다는 ‘결과’ 는 감출 수 없다.

독자 입장에서는 전후사정도 모른 채 케이젤의 죽음을 목도해야 한다.

그러니 내가 케이젤의 목을 따는 장면은 가림막으로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자. 그럼 어쩐다.’


그때였다.


뎅뎅뎅.

바깥에서 미친 듯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필라어트는 깜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침입 경고에요. 또 몬스터들이 쳐들어왔나 봐요!”

“음.”

“이, 일단 여러분은 여기서 피하...... 아니. 여기가 제일 안전하지 참. 그럼 잠깐 기다리고 계세요. 저 나가봐야 해서.”


이 어린 엘프들의 수장은 확실히 아직 부족한 면이 보인다.

나는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함께 나가봅시다. 나도 도울 일이 있을지 모르니.”

“아. 원래 용병이었다고 했죠. 그것도 악취 퀘스트를 해결한.”

“그런 일도 있었지.”

“그래도 아크릴 씨가 나설 일까지는 없을 거예요. 최근에는 어지간하면 케이젤 선에서 처리되었으니까.”

“......”

“그래서 다른 엘프들도 나보다 더 그를......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녀는 찰싹 제 양 뺨을 쳤다.

그리고 빠르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따르는데 한스가 입을 열었다.


“형님. 종소리가 멎지 않습니다.”


뎅뎅뎅.

확실히 아까부터 울리던 종소리는 오히려 더욱 커진 것 같았다.


“그런데?”

“저희도 산적 일 하던 중에 비슷하게 규칙을 정해놨지 않습니까. 가벼운 소란은 다섯 번, 지원이 필요하면 열 번, 위험한 수준이다 싶으면 스무 번으로요.”

“......”

“지금 백 번도 넘었어요. 저 종소리.”

“규칙이 우리와 다른가 보지.”


그때 자일리가 내 말을 받았다.


“아냐. 그게 아니야...... 요.”


컨셉 놓치지 마라.


“엄청 거대한 게 나타났어요.”

“엄청 거대한 거?”

“저기 안 보여요? 아, 밤이라 위장색이 되어버려 모르겠구나.”

“......?”

“저기 저 형상.”


척.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털썩, 털썩.

갑자기 내 주위 엘프들이 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먼저 앞서 가던 필라어트도 비틀거리다 쓰러진다.

장로회들이나 대장로 에텔도.

아까 전 건방을 떨었던 아렌도. 대장이던 그웩도 무기를 바닥에 툭툭 떨어뜨렸다.


“끝장이야. 이제 세계수는 끝났어.”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린다.

대체 뭔데 그래?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다시 한 번 찬찬히 하늘을 살폈다.


‘......’


그러자 하늘에 갑자기 화면창이 떠올랐다.



<블랙 드래곤 기아르>

-등급 : 엑스트라

-설정 : 마계 서열 301위. 신마대전에서 마계 측으로 참전하여 활약을 한 블랙 드래곤이다.

신마대전 종료 후 한동안 조용히 지냈으나, ‘오시스’를 드래곤 나이트로 맞이하며 다시 대륙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런 신발.

저 시야를 가득 메운 게 하나의 개체...... 블랙 드래곤이란 말이야?


‘기아르? 오시스? 너네들이 왜 벌써부터 나오냐?’


나는 그냥 이번에 케이젤 하나만 족치고 끝내려 했......

아. 그랬지.


‘케이젤과 오시스는 재림회 7인의 일원들.’


내가 정곡을 집어 다급해진 케이젤이 오시스의 힘을 빌리려 한 것이로군.

그때였다.

마치 내 그런 생각이 맞다는 것처럼 케이젤이 척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기아르를 향해 목청 높여 외쳤다.


“위대한 존재 드래곤이여. 나는 케이젤 게르만이라는 자입니다.”

-미천한 인간의 이름 따윈 알 바 아니노라.

“한 가지만 묻게 해주십시오. 이곳은 어쩐 일로 찾으셨는지요.”

-여기는 엘프들의 영역 아닌가? 왜 인간인 네놈이 나서는지 모르겠군.


그러자 그는 열심히 성자 코스프레를 하며 외쳤다.


“저는 이곳에 객으로서 머무는 자입니다. 엘프들에게 여러 가지로 받은 게 많기에 이리 나서게 되었죠.”

-그래서?

“아까의 질문에 대답해 주십시오.”

-왜 내가 찾아왔냐고? 그건 너희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기아르는 크르르 가래 낀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최근 나의 아이들이 이 엘프들의 영역에서 떼죽음을 당했더군.

“모, 몬스터들 말입니까? 그건 저들이 먼저 침범해 왔기 때문입니다.”

-전후사정은 아무래도 좋다. 어쨌건 너희들은 내가 아끼는 아이들을 죽였어.

“위대한 드래곤께서 한낱 몬스터들의 생명을 챙기시다니요!”

-감히 나를 판단하려 드는가?


케이젤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바로잡는다.

......

애쓴다, 애써.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렇게 연기하는 거냐.


“부디 노여움을 가라앉혀 주십시오. 위대한 존재시여.”

-아니. 그렇게는 못하겠다. 너희들이 내 아이들을 죽인 것과 동일한 피를 보기 전까진!

“이건 협정 위반입니다. 300위부터 1000위까지는......”

-먼저 공격을 받기 전까진 공격할 수 없다, 라는 거겠지? 너희가 내 아이들을 죽인 것은 선제공격을 한 것이다. 협정은 그것을 인정하고 있어.

“......”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


그렇게 말한 기아르가 포효를 내질렀다.


-우오오오오오!


물론 녀석이 엑스트라인 이상 나에게는 아무 타격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으헉!”

“으아아. 사, 살려줘. 살려줘.”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케이젤 님. 제발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


잘들 노는구만.

애초에 기아르랑 케이젤은 ‘재림회’ 로 엮인 한 패라고.

니들 연극에 놀아나는 중이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갑자기 내 옆에서 호들갑 떠는 소리가 들렸다.


“꺄악!”

“뭐냐. 자일...... 베리타.”

“바, 방금 포효는 드래곤 피어에요.”

“그런데?”

“......”


그녀가 슥 머리를 쓸어넘긴다.

나는 거의 반자동으로 가림막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자 자일리가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아니 드래곤 피어라니까?]

‘그런데?’

[이 멍청아. 너 절대자들의 금제 때문에 약한 척 해야 하잖아. 하찮은 인간이 어떻게 드래곤 피어에 견디냐고.]

‘아. 그 얘기로군. 일리가 있어.’

[이럴 때 보면 참 허술하단 말이야. 빨리 나처럼 비틀거리는 척이라도 해.]

‘너도 한 박자 늦었었다.’


그러자 자일리의 얼굴이 빨개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곧 괜찮은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혹시 저 블랙 드래곤하고도 인연이 있나?’

[인연? 물론 있지. 신마 전쟁 때 내 부대에 속해 있었는 걸.]

‘크란트라처럼 말인가.’

[크란트라하고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 크란트라는 99위였고 쟤는...... 몇 위였더라?]

‘301위다.’

[왜 네가 더 잘 아는데.]

‘그렇다면 네 말빨이 좀 먹히겠군? 2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말빨 뿐일까. 쟤는 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던 놈이야.]


음. 아주 좋다.

어차피 케이젤도 작정하고 연극 중이지 않은가.

본인이 엘프들의 절체절명 위기를 무사히 넘겨줬다는 연극을.

그럼 거기에 올라타 보자.

나는 자일리에게 말했다.


‘너,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이 드립도 꼭 한 번 쳐보고 싶었던 거다.





케이젤은 생각했다.


‘좋아. 잘 풀리고 있다.’


저 엘프들의 눈빛을 보라.

모두가 자신을 구원자로, 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위인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는 마음속으로 기아르에게 말을 걸었다.


‘이쯤에서 슬슬 물러나 주십시오.’


케이젤은 드래곤 나이트는 아니지만, 재림회 일원인 오시스의 허락 하에 기아르와 비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기아르가 답했다.


[감히 이 몸을 이런 저급한 연극에 동참시키다니. 몬스터들을 주기적으로 보낸 것만으로 모자랐던가.]

‘정말 죄송합니다. 웬 괴상한 덩치 한 놈이 끼어들어서......’

[괴상한 덩치?]

‘아크릴 데이그라는 자입니다. 그 자가 정곡을 집는 바람에 제 처지가 난처해지기 직전이었어요. 저는 엘프들의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세계수를 완전히 죽이기 전까지.’

[흥. 이 몸은 세계수 따위에 관심 없다. 허나 내가 인정한 드래곤 나이트, 오시스의 부탁이니 이번만은 넘어가도록 하지.]


케이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그럼 이쯤에서 슬슬 물러가 주십시오.’

[......]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제 간곡한 청탁에 못 이기는 척 물러가 주시면 됩니다.’

[......]

‘기아르 님?’


케이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나 기아르는 ‘그딴 것’ 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다.


[오랜만이네?]


또 다른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영혼을 진동시키는 목소리.

공포의 대명사이자 드래곤 하트에 깊이 각인된...... ‘주인’ 의 목소리다!


‘서, 설마 이 목소리는?’

[그래. 나야.]

‘자일리님!’

[오래 대화는 못해. 그 녀석이 ‘5분 내에 끝내야 한다.’ 라고 했거든.]


그건 가림막의 제한시간이 5분이었기 때문이다.

즉, 지금 이 장면...... 자일리와 기아르의 대화는 가림막에 의해 가려진 상태였다.

나중에 여론의 시선이 지금 장면을 보아도 둘의 은밀한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 따위의 부탁이나 들어주고 앉아 있고 정말 한심하네.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어?]

‘이, 이건 사정이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 당신께서 왜 이 대륙에 있는 것입니까. 이건 협정 위반......’

[맞아. 나 협정을 위반했어. 그래서 뭐 어쩌게? 신계 측에 이르기라도 할 거야?]

‘저도 마계 측에 참전했던 몸. 그 가증스러운 신계 측에 고자질할 일은 없습니다. 허나 만약 그 분이 당신의 일탈을 알게 된다면.’


그러자 자일리가 콧방귀를 뀐다.


[그 분? 마계측의 절대자 마키아를 말하는 건가?]

‘......! 자, 자일리 님! 아무리 당신이어도 함부로 그 이름을 입에 담다니.’

[내가 최근에 간이 많이 커지긴 했나 봐. 이상한 놈이랑 함께 다니면서.]

‘무슨?’

[됐고. 어디 이를 테면 일러 보렴. 내가 마키아에게 제제를 당할 수는 있겠지만, 너는 그 꼴을 보지 못할 거야.]


그 전에 내 손에 죽을 테니까...... 라는 생략된 말을 이해 못할 기아르가 아니었다.

기아르가 침을 꿀꺽 삼킨다.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제야 좀 공손한 태도로 돌아왔네. 고작 200년 만에 내 무서움을 잊은 줄 알았어.]

‘잊은 적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 명령을 충실히 이행해 주겠지? 네가 왜 인간의 말을 따르는지는 몰라도, 설마 나의 명령보다 우선하지는 않을 거라 믿어.]


당연히 그럴 일은 없다.

드래곤 나이트 오시스의 부탁이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어.

하물며 이번 일은 오시스를 직접 돕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의 동료를 좀 거들어달라는 수준이었지 않은가.

결국 기아르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엇이든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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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개소리 +5 24.04.12 411 20 13쪽
25 브레스 +8 24.04.11 417 18 12쪽
» 연극 +6 24.04.10 439 19 13쪽
23 악역 +10 24.04.09 448 22 14쪽
22 지진 +10 24.04.08 475 25 13쪽
21 조전죽 +8 24.04.07 539 24 12쪽
20 착각 +10 24.04.06 539 20 12쪽
19 신뢰 +2 24.04.05 575 16 12쪽
18 인정 +8 24.04.04 576 26 13쪽
17 드래곤 나이트 +12 24.04.03 592 28 12쪽
16 꿇어라 +4 24.04.02 605 25 14쪽
15 유희 +14 24.04.01 622 21 13쪽
14 악취 +10 24.03.31 644 25 13쪽
13 주인공스러운 +16 24.03.30 663 27 13쪽
12 재회 +12 24.03.29 698 21 12쪽
11 기준 +7 24.03.28 719 27 14쪽
10 만물감별사 +10 24.03.27 738 20 12쪽
9 인면조 +10 24.03.26 771 23 13쪽
8 클리셰 +5 24.03.25 819 24 12쪽
7 고유 능력 +2 24.03.24 855 23 12쪽
6 대현자의 묘약 +2 24.03.23 844 23 13쪽
5 맥거핀 +2 24.03.22 895 22 12쪽
4 철인 24.03.21 1,040 25 13쪽
3 세상 속으로 +3 24.03.20 1,219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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