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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 두목이 주인공을 먹음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언늘
작품등록일 :
2024.03.20 00:36
최근연재일 :
2024.04.17 18:50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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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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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6,134

작성
24.03.2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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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맥거핀

DUMMY

미하르잖아?

조연급 미하르잖아?


‘이상하다. 원작에서 페이드는 이렇게 바로 미하르를 만나지 않았을 텐데...... 앗.’


그건 3개월 뒤의 일이었지.

시간대가 다른 만큼, 지금은 미하르가 이곳의 경비를 맡고 있었나 보다.

꾸욱.

그녀는 내게 정확히 활을 겨누며 말했다.


“나는 제국말을 할 줄 알아. 그런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걸 감사해. 다른 녀석이었다면 바로 화살이 이마에 꽂혔을 테니까.”


아니. 나는 그냥 다른 놈이 내 이마에 화살을 꽂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 화살은 통하지 않을 거거든.

하지만 미하르가 겨누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엑스트라 최강 능력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심 식은땀을 흘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성지로 들어가고 싶다.”

“......!”


휘익. 퍼억.

이번에는 화살이 내 바로 발 앞에 꽂혔다.

와 뭐될 뻔했네.

지금 움찔하지 않은 건 내가 담대해서가 아니다.

그저 화살이 너무 빨라 반응할 시간도 없었던 것 뿐.


“성지는 우리 부족조차 일 년에 두 번만 들어갈 수 있는 신성한 곳이야. 그런 곳에 더러운 제국 놈을 들여보내라고?”

“외부인이라고 무조건 성지 방문이 안 되는 건 아닐 텐데.”

“무슨 말을?”

“너희들 중 가장 강한 전사와 싸워 이기면 성지 출입이 가능한 것으로 안다만.”


순간 미하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스와 폰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미하르보다 부하 놈들이 난리법석을 편다.


“아니, 형님. 아무 말이나 주워 담으시면 안 됩니다요.”

“그래요. 두목. 두목이 이들의 전통이나 규율을 어떻게 아신다고!”


바로 그게 내 계획이지!

김명철로서의 내가 만들어뒀던 여러 설정들 중에는 원작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전문 용어로 맥거핀이라고 한다지.

떡밥은 잔뜩 뿌리고 회수하지 않는 게 (못하는 게) 초짜 작가의 비애 아니겠는가.

지금 끄집어낼 설정은 어느새 묻혀버린 맥거핀 중 하나였다.


“우리가 산적질을 할 때 인질들 잡고 몸값을 요구한 적이 있었지?”

“많았죠.”

“그들 중 한 명이 자이드 톤이라는 자였다.”

“자이드? 누굽니까 그 자는.”


그러자 오히려 미하르 쪽에서 반응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제법 부드럽게 풀린 어조였다.


“너 자이드의 친구야?”

“지인 정도로 해두지.”

“그렇군. 우리의 전통도 자이드에게 들은 건가.”

“......”


아니. 자이드와 일면식도 없어.

단지 자이드를 내 손으로 창조했을 뿐.

자이드는 대륙을 떠돌아다니는 유명한 모험가다.

제국 뿐 아니라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미지의 지역까지도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중에는 자기 모험기를 책으로 남겨 유명해지는데, 그가 방문한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야만인들의 영역이었다.


자이드 왈, 길을 잃어 헤매어 죽기 직전의 자신을 구조해준 게 야만인이라 무시하던 바바리안 부족이었다나.

그는 이런저런 기술들로 이들의 마음을 열었고, 마지막에는 친구로까지 대접받았다고 한다.


내가 물었다.


“너도 자이드를 알고 있나?”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어. 그는 내가 어렸을 때 방문한 이방이었으니까.”

“......”

“하지만 내가 아주 아팠을 때 잘 듣는 약을 제조해 줬대. 자이드의 지인이라...... 좋아.”


스윽.

그녀는 활을 내리고 몸을 돌렸다.


“따라와.”





미하르는 우리를 자신들의 마을로 안내했다.

그녀는 잠깐 기다리라며 한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야만인들이 하나 둘씩 몰려든다.

그들은 적당한 크기의 원을 두르고 우리를 에워쌌다.


웅성웅성.

스윽.

한스와 폰이 양쪽에서 내 옷소매를 잡아당긴다.


“혀, 형님. 분위기가 심상찮은데요.”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그래서 더 무서워.”

“막 우리 잡아먹겠다고 하는 거 아니야?”


너네 몇 살이냐.

그런 덩치와 얼굴로 길 잃은 미아처럼 매달리지 마라. 기분 나쁘다.


‘아니. 잠깐.’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나는 다 알아듣겠는데?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명백히 제국어와는 다른 언어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모국어처럼 이해하고 있는 거지?


‘가만. 어차피 이 세상 언어들은 전부 김명철, 내가 쓴 거잖아.’


원작에서 야만인들의 언어는 글자 색깔이나 기울기만 바꿔서 다른 언어라고 표현했을 뿐, 당연히 한글로 쓰여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아들을 수 있는 건가?

이거 굉장한 특전인데?


그때 미하르와 함께 웬 인물이 집에서 나왔다.

그는 야만어로 ‘조용히!’ 라고 외쳤다.

그리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제국어로 말했다.


“자네가 자이드의 지인이라고?”


순간 나는 점수 딸 기회임을 알아차렸다.

이 바바리안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머지않아 찾아올 ‘여론의 시선’ 에게.

그래서 두 손을 모아 양쪽에서 포개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바바리안 언어’ 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크릴 데이그라고 합니다.”

“......! 우리말을 아는군? 게다가 그 인사법은.”

“여러분의 전통 인사법이라고 들었습니다. 언어도 자이드에게 배운 것이죠. 물론 유창한 수준은 아닙니다만.”

“그 정도면 충분히 유창해. 허나 자네 동료도 있으니 제국어로 하지. 나도 제국말을 할 줄 알거든.”


이 짧은 담화가 끝나자 순식간에 주변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대충 봐도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싼 이들의 눈에는 아까 전까지 없던 분명한 호의가 담겨 있었다.


“우리 말을 배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포이건도 할 줄 알고 제법이네.”

“제국에도 저런 예의바른 녀석이 있었다니.”

“인상이랑 덩치만 봐선 오크도 잡아먹게 생겼는데. 놀라워.”


참고로 포이건이란 내가 방금 했던 인사법을 의미한다.

눈치 챘을 수 있겠지만 무협 소설의 포권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왜 포권이 여기서 나오냐고?

당연히 아무 의미 없다.


미하르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거기까지 배웠다면 단순히 자이드의 지인은 아닌 모양인데? 꽤 가까운 사이였던 거 아니야?”


나보다 열 살은 어린 녀석이지만 반말이다.

하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눈앞의 남자보다는 제국어에 서투른 모양이니까.

사실 이해하지 않으면 내가 뭘 어쩌겠어.

나는 슬쩍 화제를 돌렸다.


“이 여성분에게 들었겠지만......”

“성지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던가. 그를 위해 가장 강한 전사와 싸우겠다?”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싸워서 이길 생각입니다. 그래야 성지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흐음. 자네가 보기에 우리 중 가장 강한 전사는 누구일 것 같지?”


미하르다. 3개월 뒤에는.

그래서 원작에서 페이드는 미하르와 싸우게 된다.

그녀가 가장 강한 전사였기에.


그리고 원작에서 그녀는 페이드에게 패한다.

페이드는 유유히 성지에 들어가 백화의 꽃을 따고, 퀘스트를 완료하여 대현자의 묘약을 받은 뒤 훌훌 떠나버리게 된다.


‘미하르는 패배를 설욕하겠다며 페이드의 뒤를 쫓아가지. 다시 만나는 건 한참 뒤지만, 어쨌건 이런 인연으로 얽히게 된다.’


여기서 내가 원작을 비틀면 둘의 조우는 없는 일이 되는 걸까?

원작에서 미하르가 페이드에게 끼치는 영향은 다대하다.

그의 정신적인 성장을 여러모로 보조하는 역할을 했었지.

그렇다면 지금 원작을 비틀어두는 게 나한테는 유리할 터.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미하르 씨가 가장 강해 보입니다만.”

“뭐, 뭣?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미하르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녀는 터프하게 제 옷을 펄럭거리며 열기를 식혔다.

그런 그녀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뭐, 정답에 가까웠다고 해두지.”

“그렇다면?”

“가장 강한 전사는 나다. 여동생은 두 번째야. 뭐...... 머지않아 나를 추월할 것 같긴 하지만.”

“말도 안 돼. 치켜세우지 마, 오빠.”


그래.

이게 내가 3개월 일찍 찾아온 이유였다.

페발롬과의 조우를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단 ‘지금이어야만’ 조연급인 미하르와 싸우는 것을 피할 수 있어서였다.


‘원작에서 미하르의 오빠......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이 녀석은 한 달 뒤에 죽는다.’


설정 상 미하르 오빠는 심장에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강한 전사로서 자신의 병을 숨기고 마을을 통솔하는 데 주력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전사도 중병을 이길 수 없는 법.

결국 그는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에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뒤 미하르가 <가장 강한 전사> 가 되지.’


원작에서 이 설정은 간단한 지면으로 대체됐을 뿐이다.

눈앞의 남자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미하르의 오빠라고만 하며 가끔 회상에 등장했을 뿐.

그러니 엑스트라다.

그러니 내가 이긴다.


‘하지만......’


뭔가 좀 착잡한 걸.

그만한 중병을 앓으면서도 책임감 때문에 내색조차 하지 않고 있다니.

김명철로서의 나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을 정도의 엑스트라.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이 엑스트라는 아픔과 괴로움을 참고 제게 주어진 역할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 감상 때문이었을까?

나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지금 병을 앓고 계시지 않습니까?”

“......!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미하르의 오빠가 경악했다.

미하르는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 자가 뭐라는 거야? 아니, 나도 뜻은 이해했는데.”

“그냥 헛소리다. 아마 나와 싸우기 전 심신을 흐트러뜨리기 위한 술수겠지. 비열한 제국 놈.”

“거짓말 하는 것으로는 안 보였는데......”

“됐다. 신경 쓰지 마.”


이런. 공연히 벌집을 건드린 건가.

나는 어색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미하르의 오빠는 흥분한 듯 붉어진 얼굴로 내 앞에 다가와 섰다.

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풀고 내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어떻게 알았지?”

“예? 아.”

“작게 말해주게. 부탁해.”

“저는 본래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조직의 수장이었습니다. 부하 놈들의 건강관리를 신경 쓰다 보니 항상 안색이 어떤지 살피게 되더군요. 그 경험이 나온 모양이지요.”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었지만, 남자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한 눈썰미로군. 여동생도, 우리 영역의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

“끝까지 비밀로 해주게. 그럴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서 물러났다.

그리고 바바리안 언어로 모두에게 외쳤다.


“지금부터 이방인 아크릴 데이그의 성지 방문 자격을 시험하도록 하겠다!”


순간 모두의 얼굴에 엄숙함이 담겼다.

이 의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법한 표정들이다.

곧 그들은 이리저리 움직여 길을 만들어주었다.


남자가 앞장선다.

그 뒤를 미하르가 따르며 말했다.


“따라와.”

“그러지.”

“미리 말하는데 너 죽었어.”

“......”

“응? 못 알아들었어? 이 표현이 아닌가. 죽었어, 뒈졌어...... 맞는데?”

“뜻 자체는 알고 있다만 이해가 안 돼서.”

“우리 오빠는 최강이거든. 분명 너 죽을 거야.”


보통은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만, 이번만큼은 자중하기로 했다.


“뭐, 두고 보면 알겠지.”


그러자 나 대신 미하르가 코웃음을 친다.

곧 우리는 제법 넓고 곧은 산길을 올라가게 됐다.

10분쯤 지났을까.

척.

미하르의 오빠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여기서 싸우도록 하지. 내 뒤가 바로 성지니까 나를 이기면 바로 들어가도 되네.”

“알겠습니다.”

“제국인들은 이런 걸 결투라고 한다던가? 결투의 규칙도 정해놓는다던데.”

“딱히 그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전통을 따르죠.”

“점점 마음에 드는군, 자네.”


그는 우둑 목을 풀며 말했다.


“그럼 아무 제한도 두지 않기로 하지. 나는 우리 부족의 특성인 강신술까지 활용할 생각이네.”

“......”

“자네도 뭔가 무기를 사용......”

“그 전에.”


나는 나직히 물었다.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요?”

“응? 아, 이런. 이거 실례했네. 제국인들은 통성명이 기본 예의라고 했었지. 상대방의 이름을 들으면 내 이름도 밝혀야 한다던가.”

“예, 뭐.”

“내 이름은 바하르일세. 잘 부탁하지.”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포이건을 했다.

나도 마주 포이건을 하며 생각했다.


‘바하르.’


그런 이름이었군.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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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착각 +10 24.04.06 540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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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유희 +14 24.04.01 622 21 13쪽
14 악취 +10 24.03.31 644 25 13쪽
13 주인공스러운 +16 24.03.30 664 27 13쪽
12 재회 +12 24.03.29 699 21 12쪽
11 기준 +7 24.03.28 719 27 14쪽
10 만물감별사 +10 24.03.27 738 20 12쪽
9 인면조 +10 24.03.26 772 23 13쪽
8 클리셰 +5 24.03.25 819 24 12쪽
7 고유 능력 +2 24.03.24 855 23 12쪽
6 대현자의 묘약 +2 24.03.23 844 23 13쪽
» 맥거핀 +2 24.03.22 896 22 12쪽
4 철인 24.03.21 1,041 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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