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두샤 님의 서재입니다.

분홍거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두샤
작품등록일 :
2008.10.09 02:41
최근연재일 :
2008.10.09 02:41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41,779
추천수 :
122
글자수 :
216,158

작성
08.09.20 23:36
조회
788
추천
2
글자
8쪽

2. 다치게 한 건 미워서가 아니야 (4)

DUMMY

4

쿄코는 유키를 자신의 몸으로 가리고 남편을, 아니 ‘남편이었던 것’을 노려봤다.


“도, 도대체 뭐야!”


쿄코의 용감한 외침에 거미는 킥킥하고 웃어 보였다.


“크헤헤. 뭐야 자기? 나야, 모르겠어? 그건 그렇고 그 여자가 찾으라는 날개가 자기였을 줄이야.”


거미는 슬쩍 쿄코의 등 뒤를 바라본다. 분명히 날개가 보인다. 저것으로 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날개잖아. 저걸 빼앗아서 내 등에 달면 되는 거야. 거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다. 그건 그렇고 아내를 조금 괴롭혀주고 싶은데 말이야.


“귀여운 유키야. 이리 오렴.”


쿄코는 남편이었던 것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건 인간의 목소리라고 볼 수 없어. 저 눈도. 쿄코는 그런 괴물을 바라보며 유키를 뒤로 꼭꼭 숨겼다. 너무나도 무섭다. 쿄코의 이가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아니야. 유키, 움직이면 안 된다. 저건 아버지가 아니야.”


쿄코의 단호한 태도에 미노루는 킥킥거리며 웃는다.


“무슨 소리야? 나야. 당신 남편 미노루라고.”


“웃기지마.”


쿄코는 용감하게 거미를 노려본다. 그 확고한 모습은 오히려 거미를 압도하는 것 같다.


“내 남편은 너 같은 괴물이 아니야. 미노루는 상냥한 남자야.”


거미는 웃었다. 이건 정말로 웃기는 일이 아닌가. 설마하니 그 똑똑하고 잘나신 아내가 이렇게까지 속고 있었을 줄이야.


“미노루는 상냥한 남자라고? 크크큭.”


미노루의 비아냥거리는 태도에 쿄코는 적잖이 당황한다. 여자의 직감, 여자로서의 본능적인 감각이 미노루의 다음 이야기는 듣지 않는 것이 좋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쿄코에게는 미노루를 멈출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나?”


거미는 그렇게 말하며 눈앞의 날개에게로 걸음을 옮긴다. 쿄코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는 일이었기에 충격은 덜했지만 여자로서 자신의 남자에게 저런 이야기를 드는 것은 충분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따지거나 울부짖을 때가 아니다. 미노루의 저 눈, 저 눈은 이미 사람이 아니야.


“게다가 나는 유키를 말이야…….”


거미는 쿄코의 바로 옆까지 다가가 쿄코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쿄코의 절규가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

소년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애초에 표정이라고 할 만 한 것이 있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표정의 변화가 적은 소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충분히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상대하는 적이 만만치가 않다. ‘유사 날개’라 할 수 있는 능력자를 섭취하여 이성을 얻은 거미인데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날개를 절반 정도 섭취한 상태였다. 능력만으로 따지자면 다른 거미들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다. 소년은 거미가 먹다 남긴, 아마도 여자였던 것으로 추청되는 인간의 하반신을 바라본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녀석은 분홍거미와 거의 같은 급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소년으로서도 처음 상대해보는 강적이었다.


거미의 팔이 휘둘러진다. 소년은 빈틈없는 동작으로 그 공격을 피해낸다. 거미가 팔을 휘두른 속도는 가공할 수준이었다. 거미가 휘두른 팔의 궤적을 따라 잔영이 남을 정도였다.


거미의 공격에 소년의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소년은 두근거리는 긴장감을 온 몸으로 만끽하며 거미를 노려본다. 그의 눈이 빛을 발하고 있다. 어쩌면 상대는 분홍거미에 가장 가까운 존재. 아니나 다를까, 거미의 몸이 변형을 하기 시작한다.


거미는 커졌다. 2미터가 넘는다. 어깨가 강화되어 있었다. 튀어나온 어깨는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거미의 눈에 흰자위는 없었다. 그는 점점 무엇인가로 변하고 있었다.


소년은 그런 거미의 변화를 느긋하게 기다린다. 바라던 바다. 더 강해져라. 전에 없던 긴장감을 느끼며 소년은 나이프를 고쳐 쥔다. 그리고 변형을 완전히 끝낸 거미가 순식간에 소년에게로 달려든다. 거미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의 소년은, 자신을 사냥하러 온 천적이라는 사실을.


거미는 정확하게 소년을 두 번 공격했다. 그리고 두 번째의 공격은 소년에게 적중했다. 첫 번째로 휘두른 왼팔은 소년이 정확히 보고 피했다. 하지만 소년이 피하는 위치를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거미의 오른팔이 덮쳐오고 있었다. 소년은 거미의 오른팔에 맞아 형편없이 나가떨어진다.


벽에 격하게 부딪친 소년은 입에서 피를 한 움큼 쏟아낸다. 소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적이 너무 강하다. 이미 승산은 없었다. 소년은 직감했다. 자신은 여기서 죽는다.


거미가 다시 달려들었다. 소년은 피할 수 없다. 소년은 거미가 달려오는 정면을 주시했지만 거미는 어느 순간 사라져서 소년의 오른 편에 나타난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도.


소년의 옆구리에 거미의 공격이 적중한다. 소년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벽에 처박혔다. 묘한 느낌이었다.


소년은 거미를 바라본다. 거미를 뛰어넘은 존재. 그 존재를 바라보며 소년은 더할 수 없는 경멸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소년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정도 거미도 당해내지 못한다면, '분홍거미'는…….'


소년은 나이프를 쥐고 자세를 고친다. 그리고 뚜벅뚜벅, 거미에게로 다가간다. 거미는 오히려 놀란다. 이미 상황은 반전되고 거미와 소년의 관계는 역전되어, 이제는 거미가 소년을 사냥하는 입장이 되었는데도 소년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자연스럽게 거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은 거미보다 느리다. 굳이 속도를 올릴 필요도 없다. 기회는 단 한 번뿐. 소년은 더 이상 긴장감도 느끼지 않았다. 소년에게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누락되어 있었던 것이다.


거미는 그런 소년을 보며 공포를 느낀다. 두렵다. 저 소년이. 거미는 이해한다. 두려운 상대를 대할 때에는 그 두려움의 대상을 피하던가, 아니면 없애던가 하는 두 가지의 선택밖에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거미는 선택의 여지도 두지 않고 두 번째의 방법을 선택한다.


거미는 정직하게 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 순간,


거미의 목이 깨끗하게 절단 되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진다.


최후의 순간에 거미는 보았다. 거미는 그의 머리를 날려버릴 생각으로 달려들었고, 소년은 그런 거미에게 오히려 머리를 허락했다. 쳐 보라는 듯이. 그 행동에 거미는 당황했다. 이건 뭐지? 계략인가?

그리고 그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소년은 그 순간만큼은 속도에서 거미를 능가했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소년은 거실에 주저앉아서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소녀를 바라봤다. 나신으로 앉아 있는 어린 소녀. 나이는 열두 살 정도 되었을까. 소녀의 다리 사이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눈은 멍하게 거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년은 천천히 소녀에게로 다가간다. 피 묻은 나이프를 들고, 소녀에게 다가간 소년은 소녀를 꼭 앉아 주었다.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그 허망한 눈은, 분명히 소년을 닮아 있었던 것이다.


-------------------------------------------------------


* 자 일단 엔터는 있다가 치고, 우선은 올립니다. 세이프가 중요하거든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분홍거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분홍거미 - 분홍빛 구름이 하늘을 떠도네 (완결) +19 08.10.09 832 3 8쪽
43 분홍거미 - 사랑은 얼마면 살 수 있죠? (6) +10 08.09.30 940 3 14쪽
42 분홍거미 - 사랑은 얼마면 살 수 있죠? (5) +4 08.09.30 762 3 11쪽
41 분홍거미 - 사랑은 얼마면 살 수 있죠? (4) +6 08.09.29 775 2 9쪽
40 분홍거미 - 사랑은 얼마면 살 수 있죠? (3) +1 08.09.29 815 2 16쪽
39 분홍거미 - 사랑은 얼마면 살 수 있죠? (2) +5 08.09.27 823 2 25쪽
38 분홍거미 - 사랑은 얼마면 살 수 있죠? (1) +8 08.09.26 890 3 15쪽
37 분홍거미 - 다시 한 번 날자, 이 실을 끊어버리고 - (6) +2 08.09.26 811 2 10쪽
36 분홍거미 - 다시 한 번 날자, 이 실을 끊어버리고 - (5) +10 08.09.25 780 2 13쪽
35 분홍거미 - 다시 한 번 날자, 이 실을 끊어버리고 - (4) +3 08.09.25 744 2 13쪽
34 분홍거미 - 다시 한 번 날자. 이 실을 끊어버리고 - (3) +8 08.09.24 821 2 9쪽
33 분홍거미 - 다시 한 번 날자. 이 실을 끊어버리고 - (2) +2 08.09.24 751 2 8쪽
32 분홍거미 - 다시 한 번 날자. 이 실을 끊어버리고 - (1) +2 08.09.24 786 2 9쪽
31 2. 다치게 한 건 미워서가 아니야 (10) +9 08.09.23 905 2 12쪽
30 2. 다치게 한 건 미워서가 아니야 (9) +5 08.09.23 771 2 10쪽
29 2. 다치게 한 건 미워서가 아니야 (8) +2 08.09.23 811 2 9쪽
28 2. 다치게 한 건 미워서가 아니야 (7) +8 08.09.22 810 2 17쪽
27 2. 다치게 한 건 미워서가 아니야 (6) +3 08.09.22 720 2 9쪽
26 2. 다치게 한 건 미워서가 아니야 (5) +5 08.09.20 695 2 10쪽
» 2. 다치게 한 건 미워서가 아니야 (4) +2 08.09.20 789 2 8쪽
24 2. 다치게 한 건 미워서가 아니야 (3) +3 08.09.20 777 2 9쪽
23 2. 다치게 한 건 미워서가 아니야 (2) +9 08.09.19 913 3 13쪽
22 2. 다치게 한 건 미워서가 아니야 (1) +6 08.09.19 980 2 12쪽
21 분홍거미 - 새의 날개 (10) +9 08.09.18 954 2 9쪽
20 분홍거미 - 새의 날개 (9) +5 08.09.18 879 2 10쪽
19 분홍거미 - 새의 날개 (8) +4 08.09.18 863 2 8쪽
18 분홍거미 - 새의 날개 (7) +8 08.09.17 873 2 9쪽
17 분홍거미 - 새의 날개 (6) +5 08.09.17 917 2 7쪽
16 분홍거미 - 새의 날개 (5) +4 08.09.17 914 2 10쪽
15 분홍거미 - 새의 날개 (4) +10 08.09.16 949 2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