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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샤 님의 서재입니다.

분홍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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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두샤
작품등록일 :
2008.10.09 02:41
최근연재일 :
2008.10.09 02:41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41,777
추천수 :
122
글자수 :
216,158

작성
08.09.17 23:10
조회
872
추천
2
글자
9쪽

분홍거미 - 새의 날개 (7)

DUMMY

7

예지는 밤에 갑자기 들이닥친 두 명의 손님을 맞이하느라 오랜만에 분주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손님이기에 그다지 자신 없는 자신의 모습도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고맙게도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진영은 저 진이라는 남자에게 가르침을 받는다고 했다. 예지는 그 말에 고마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아버지는 어째서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던 것일까? 물론 아버지인 현진이 익혔던 외적 영능력은 여자의 몸으로 익히기에는 알맞지 않은 것이라고들 하지만, 아버지인 현진은 예지에게 그 흔한 호신술 하나도 가르치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예지는 아버지가 쓰러지는 것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문득 떠오르는 진아의 모습에 몸을 부르르 떤다. 자신과 동갑내기의, 아름답고 강하고 밝았던 여자. 사실 예지는 항상 진아가 부러웠다. 진아는 모든 사람들의 호감과 시선, 그리고 인정을 한 몸에 받고 있었고 예지는 예쁘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아는 그 굴하지 않는 성격과 실력 때문에 비참하게 살해당했다고 했다. 반면 자신은 아무데에도 쓸 데가 없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어느 쪽이 더 좋은 것일까?


“우선, 차 한 잔씩 드셔요.”


예지는 급한 대로 차를 한 잔 타왔다. 커피였다. 커피를 보는 진영과 진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을 예지는 눈치 채고, 조금 후회했다. 물어볼 걸. 커피는 어떠냐고 물어볼 걸. 사실 그랬다. 진영과 진은 방금 진영의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온 참이기 때문에 커피가 영 끌리지 않았던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예지는 그저 사려 깊지 못한 자신을 탓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 부탁을 드리려고 왔어요. 무리라는 것은 알지만…….”


“아, 아니. 괜찮아요. 쓰셔도…….”


둘의 대화는 아무래도 어색했다. 진영은 진영 나름대로 예지의 청초하고 순수한 모습, 그리고 눈자위의 눈물 자국을 보며 어색해 하고 있었고, 예지는 예지 나름대로 진영이 겪었을 고통의 크기를 상상하며 어색해 하고 있었다. 예지는 급하게 허락했다.


사실, 예지의 입장에서 둘이 매일 집을 찾아와서 수련을 한다면 오히려 고마웠다. 이 큰 집에서 혼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기에. 가끔 효원이 일이 있어서 들르기는 하지만 예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인지 볼 일만 보고 황망히 가버리기 일수여서 예지는 갈수록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참이었다. 이런 때에 사람 냄새를 맡는다면 오히려 예지에게는 도움이 될 터였다.


예지는 조심스럽게 진을 훔쳐본다. 남자가 저렇게 고운 선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게다가 깊은 눈. 예지는 그날 밤, 거미에게 당할 뻔 했던 순간을 기억했다. 현진이 쓰러지고 거미의 송곳니가 자신의 목에 닿는 순간에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그것이 진이었다. 그는 놀라는 거미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단칼에 거미를 베어버렸다. 하지만 그로서도 현진의 꺼져가는 목숨을 살릴 수는 없었다. 현진은 자신을 들어 일으키는 진의 모습을 보며 웃음과 함께 이야기했었다.


“오랜만이군. 진……. 고맙네, 딸아이를 지켜……줘서.”


그게 현진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반쯤 나신이 되어 있었던 예지는 기절하고 말았다. 아마 진은 예지가 기절해 있는 동안 예지를 병원으로 옮겨 준 모양이다. 예지는 그 날의 일을 생각하며 조금 얼굴을 붉혔다. 진의 도움이 너무나 고맙기도 했고, 반라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고, 고맙습니다.”


진영은 예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진영은 아까부터 예지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눈물 자국에, 조금씩 붉어지는 얼굴. 무슨 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진영은 의심한다.


‘아, 그러고 보니.’


진영은 가만히 생각했다. 아까 현진의 집을 본 순간에 진영은 그 날 밤의 일이 떠올라 잠깐이나마 괴로웠었다. 하지만 예지는 어떨까? 예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쓰러진 바로 이 집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다. 어쩌면 예지는 매일 밤마다 괴로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경우보다 더욱 심하게.


진영은 거실을 둘러본다. 현진은 바로 이 거실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예지는 매일 거실을 볼 때마다 그 순간의 일이 기억나 견딜 수 없을 터였다. 진영은 그런 예지를 바라보며 어딘지 모르게 뭉클 하는 감정을 가져야 했다.


“그럼 허락은 받았군. 이제는 내 볼일이다.”


진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린다. 진영은 진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아까 진이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지. 그것도 극락조와 관해서.


“우선 궁금한 것이 있다. 극락조는 너희 쪽에서 말하는 영적인 생명체인가?”


진영은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어떻게 보면 그런 설명도 타당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극락조, 에스메랄다는 영령 중에서도 초고급의 영령이다. 정령 이상의 존재. 이 세계의 의지라고 스스로 밝혔듯, 그녀는 이미 이 세계와 동화되어 있는 신적인 존재다.


“그렇다면, 너는 그 극락조를 쓰러뜨릴 수 있는가?”


진영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존재를 쓰러뜨려?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힘과 힘으로 싸운다면 진은 그녀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섬뜩한 칼로 그녀를 벨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이 남자라면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진의 칼이 그녀의 몸을 벨 지라도 그녀의 존재를 벨 수는 없다. 그녀가 육신을 지니건 지니지 못하건, 그것은 그녀의 존재의 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다. 결국 그녀를 이기려면 그녀를 이루고 있는 의지. 그리고 그녀의 존재 자체를 말살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그것은 진영에게 절대 무리인 이야기였던 것이다.


“만약 최성철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진은 다시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영은 진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존칭을 붙이는 것을 보고 잠깐 놀란다. 하긴, 10년 전에 아버지는 진과 만난 적이 있다고 하셨지. 그렇다면 진은 아버지를 아는 것이 당연하다. 그건 그렇고 이 남자가 존칭을 붙이다니.


“글쎄요. 아버지라면, 어쩌면 그녀에게 절대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아울러 어머니까지 계셨더라면 꽤 높은 확률로 그녀를 쓰러뜨릴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현진 아저씨까지 살아계셨더라면…….”


진영은 현진의 이름을 언급하며 잠깐 예지의 표정을 살폈다. 예지는 별로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진영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진이 다그치듯 물어 온다.


“살아계셨더라면?”


“그 세 분이 계셨더라면, 아무리 에스메랄다가 높은 영령이라 할지라도 결코 마음대로 움직이지 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잠깐 침묵이 거실을 휘감았다. 진영은 조금의 과장도 없이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모조리 사실이었다. 만약 그 세 사람이 살아 있었더라면 설사 악마가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세계 전체를 뒤져도 찾아내기 힘든 최고의 퇴마사였으니까. 진영은 긍지를 가지고 진을 바라봤다. 진의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스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분들이……. 그럼 극락조를 잡을 방법은 전무하다는 의미인가?”


“네, 지금으로서는…….”


진영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은 정말로 에스메랄다를 잡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진영은 진을 똑똑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를, 에스메랄다를 죽이시려고 합니까?”


진은 곧장 대답했다.


“그녀에게도 어떠한 사정이 있는 것 같더군. 판단은 내가 한다. 문제는 그녀를 쓰러뜨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야. 그녀를 잡아둘 수만 있으면 된다. 아울러 그녀를 협박하여 분홍거미와 관련된 비밀을 불게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하긴 그녀를 협박하거나 잡아두려면 그녀를 쓰러뜨리는 것, 그 이상의 힘이 필요하겠지만…….”


진은 말끝을 흐렸다. 씁쓸함을 머금은 목소리. 하지만 진영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런 것이라면, 있습니다. ‘방법’이!”


-------------------------------------------------------


* 좋은 흐름이기 때문에 여기서 끊습니다. 휴우. 다행이군요.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살기도 힘들 것 같네요. 재미 있으셨는지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 작성자
    百面
    작성일
    08.09.17 23:29
    No. 1
  • 작성자
    Lv.1 두샤
    작성일
    08.09.17 23:30
    No. 2

    후아... 마음에 안 드는 문장 가득가득...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8 死門
    작성일
    08.09.17 23:54
    No. 3

    어째서 진영에게서 오렌지 머리카락의 정의의 사자 지망생이 보이는 걸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두샤
    작성일
    08.09.17 23:56
    No. 4

    死門님 그게 누군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Drn
    작성일
    08.09.18 00:07
    No. 5

    호오.. 좋은 흐름 = 절단마공의 결
    이란 말씀이신가요 ㄷㄷ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세령世領
    작성일
    08.09.18 05:45
    No. 6

    사문이 말하신 그분은 쿠로사키 이치고씨가 아닐까 싶습...
    그나저나 절단신공 OTL
    살려주세요! <응?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78 펠아하브
    작성일
    08.09.18 12:16
    No. 7

    좋은 흐름이라...
    두샤님, 절단 마공이 십이성의 경지에 오르려는 듯 합니다.
    어허...독자 입장에서는 주화입마에 걸릴 지경입니다아.

    오렌지머리라면...떠오르는 건 블리치의 주인공인 쿠로사키 이치로 군..
    만화 주인공입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두샤
    작성일
    08.09.18 19:55
    No. 8

    흐음. 예지가 이야기하는 쓸데 없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부분은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부분이었답니다. 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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