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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샤 님의 서재입니다.

분홍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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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두샤
작품등록일 :
2008.10.09 02:41
최근연재일 :
2008.10.09 02:41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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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84
추천수 :
122
글자수 :
216,158

작성
08.09.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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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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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0쪽

분홍거미 - 다시 한 번 날자, 이 실을 끊어버리고 - (6)

DUMMY

6

우리는 10년 전의 망령에 불과하다. 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는 일이다. 10년 전의 망령에 불과한 자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10년 전에 만난 망령과의 사투는 망령의 손에서 시작되었고, 그 망령은 자신이라는 망령을 낳았다.

진은 유키를 바라본다. 불쌍한 아이. 세계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지만, 이 아이만큼 슬픈 존재가 또 있을까. 이 아이가 싸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아이는 싸워야 한다. 이 아이만큼은 싸워야 한다. 그것이 유키라는 아이가 받아들인 내일의 모습. 그녀는 자신과 함께 싸우기 위해서 한 때 잃어버렸던 자아를 다시 꺼내야 했다.

에스메랄다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분홍거미의 계획이 이제는 드러나 버린 것이다. 진은 주저하지 않고 안면을 익혀 두었던 효원에게 연락했다. 굳어진 목소리의 효원은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사실 진은 그 악령인지 마귀인지 하는 존재가 무엇인지 모른다. 언제나 적은 명확했다. 분홍거미. 분홍거미 외에 진에게 삶의 이유나 목적은 없다. 그리고 분홍거미도 또한 진의 삶의 이유나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큰 적이 나타났으니 일시적으로 손을 잡자는 거야. 우리의 일은 그 이후에 해결하자는 거고.”

“승산은 있나?”

진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에스메랄다는 이 남자만큼은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직접 나서면 그런 녀석은 가볍게 보내버릴 수 있다고.”

“직접 나설 수 없는 상황일 텐데?”

진의 말은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에스메랄다는 멈칫 하더니 다시 입을 연다.

“내 힘을 사용해줄 사람이 있으니 상관없어.”

“그 힘을 받은 사람이 네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 진영이라는 소년은 불안하다. 복수를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지금처럼 사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불안정한 상태였다. 진이 보기에 진영은 어딘가가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그러면 다시 힘을 회수하면 그만이야. 그건 문제가 안 돼. 아무튼 작전은 이래. 지금은 시간을 조금도 더 끌 수가 없거든. 지금도 그 녀석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있어. 그러니까, 분홍거미와 거미부대는 어차피 우리 같은 능력자들과 싸워봐야 효율이 적으니까, 너희 둘이서 해결해 달란 말이야. 거미들만 쓰러뜨릴 수 있다면 녀석이 모은 사념체나 지박령 같은 건 인간 중에도 능력자는 많으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진영은 보스를 상대하는 거지.”

“결행은 언제 할 생각인가?”

“빠르게 준비한다면 내일이겠지. 진영이가 문제야. 아직도 힘을 받아들이는 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내일은 내 힘을 받아서 싸우겠다고, 오늘은 혼자 있게 해달라고 하는 통에 혼자서 여기에 온 거야.”

에스메랄다는 의외로 말이 통하는 진의 태도를 보며 조금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에스메랄다는 여전히 진이라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과거에는 신이라고도 불리던(그 정도는 아니지만) 위대한 존재가 아닌가. 그 존재 앞에서 저런 건방이라니.

하지만 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는 말이 없으니 에스메랄다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하다.

이 친구야 말을 하란 말이야. 입에 자물쇠 잠갔니?

진은 문득 회의를 느낀다. 자신은 10년 전의 망령이라고, 분명히 생각하고 있다. 10년 전의 망령은 10년 전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알겠다. 같이 싸우자."

슈퍼 히어로가 된 느낌이다. 알겠다, 같이 싸우자. 얼마나 멋진 말인가. 마치 세상을 다 때려눕히는 악당에게 용감히 덤벼 종국에는 승리하는(그렇게 되어 있는) 백인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래, 나는 영화 속의 백인이냐? 진은 조소했다.

"그럼 다행이네. 나는 이만."

그런 말을 남기며 에스메랄다는 사라졌다. 과묵한 진은 대답 없이 에스메랄다를 보낸다. 저 여자는 죽여야 한다. 세상의 균형을 맞추느니 어쩌니 하는 것은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저 여자가 분홍거미를 만들었고, 분홍거미는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 심플. 얼마나 좋은가?

진은 자조한다. 이제는 지칠 때도 되었어. 그렇지? 너도 지치고 나도 지쳤으니 이제는 결판을 내자. 이걸로 디엔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선 분홍거미는 절단을 내버리겠다. 디엔드.

어쩌면 진은 정말로 지쳤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은 10년 동안 쉬지 않고 분홍거미만을 쫓아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진은 쉬지 않고 생각했다. 분홍거미와 극락조와 나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생각은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고, 진의 상처는 날이 갈수록 곪아갔다.

한 편, 에스메랄다는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단순한 여자니까, 진영에게 힘을 주면, 진영은 슈퍼맨이 되어 저 악당을 물리쳐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집에서 그녀는 진영과 마주친다.

에스메랄다는 진영을 바라봤다. 단정한 생김새다. 단정한 얼굴, 단정한 표정, 단정한 태도. 그냥 단정한 인간이다. 도대체 저 인간은 뭘 생각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부모와 누나가 죽었는데도 멀쩡하게 '복수는 나의 힘'이라고 외치며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 진영. 영능력이 있어도 어차피 무지한 인간이야. 에스메랄다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까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온 것은 이미 까맣게 잊고 말았다.

힘을 건네주겠다는 에스메랄다의 말에 진영은 순순히 힘을 받았다. 그리고 힘을 받은 진영은 깜짝 놀라고 만다. 놀라운 힘이다. 이 정도라면 부모님과 현진 아저씨가 살아 돌아오더라도 혼자서 이길 수 있을 정도의 힘이다. 해일 같은 영기가 몸에 들이닥치는 것을 느끼며 진영은 웃었다.

이제 희미한 인생은 끝이다. 그동안 자신은 그야말로 소소했다. 굴욕의 인생이었다. 부모님을 넘어서는 힘을 지니고 싶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런 강박관념은 더해졌다. 퇴마협회를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진영은 진이라는 존재가 반가웠다. 진에게 수련을 받아 힘을 기르고 자신이 원래 지니고 있었던 영능력과 합칠 수만 있다면 그 위력은 놀라운 것이 되지 않겠는가. 자신은 거미도, 마귀도 사냥할 수 있는 전천후 폭격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영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괴물이 아니야. 그렇게 잘 될 리 없잖아? 80살 늙은이가 되어도 그런 경지는 힘들 거라고.

진영은 자신에게 완전히 들어온 힘을 보며 계속 놀란다. 이 힘이라면 분홍거미고 진이고 거대한 악이고 뭐고 그냥 단방에 박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힘을 지니고 있는 이상 퇴마협회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부모들을 능가한 위대한 천재의 탄생이라 받아들이겠지? 원래 사람들은 그런 영웅의 탄생을 고대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진영은 에스메랄다를 바라본다. 근데, 그런 계획을 실행하려면 일단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죽어야 해. 게다가 네가 살아있으면 언제 이 힘을 빼앗아갈지도 모르고 말이야. 으음, 분홍거미나 진이나 너나 우리 부모님의 원수이니까, 죽는 게 마땅하지. 진영은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 했다. 조금도 미안하지는 않았다. 에스메랄다는 자신의 원수였고, 진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잘난 척, 쿨한 척은 다 하는 진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분홍거미야말로 악의 근원, 배제해야 할 대상이다. 이제는 자신이 정의다. 힘이 있으니 정의는 자신이다. 이기는 것이 정의고 정의는 이기며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힘을 지닌 자가 곧 정의다, 오케이? 가만, 그 전에 물을 것이 있지.

"있잖아 에스메랄다. 이제 네 힘은 얼마나 남았지?"

"아주 조금."

에스메랄다는 자세히 설명했지만(아마 자신의 힘은 어느 정도이며, 이 정도라면 싸움에 도움은 어떻게 될 것이며, 진영이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경우에는 자신이 개입하여 어쩐다. 는 식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진영의 귀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힘의 원 주인인 에스메랄다가 죽으면 힘은 자연으로 환원될 것이다. 힘이 빠졌으니 목걸이 한 방에 죽겠지? 그럼 이 힘은 고스란히 자신의 것이 된다. 진영은 웃었다. 그 이후에 진과 분홍거미를 죽인다. 그리고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우며 곤란에 빠진 퇴마협회를 구함으로서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 등극하는 것이다.

진영은 가만히 에스메랄다를 바라본다. 에스메랄다는 분노한 표정으로 뭐라고 외쳤고, 진영은 그냥 웃었다.

에스메랄다의 목에서 굉음이 터지며, 에스메랄다는 목에 뚫린 큼지막한 구멍에서 피를 분출하며 몸을 떨더니, 분한 표정과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진영은 웃었다. 힘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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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팜팜팜~ 연참대전의 종료와 함께 분홍거미를 완결 지으려고 합니다. 끝까지 재미있게 지켜봐 주세요. 댓글은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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