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거미 - 새의 날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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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 글쎄요. 그건…….”
누가 보더라도 말벌의 승리가 아닐까? 진영은 머릿속에서 거미 한 마리와 말벌이 사우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거미는 무시무시한 두 개의 독니를 지니고 있고 말벌은 단 한방에 적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독침을 지니고 있다. 싸움과 함께 말벌이 날아오른다. 거미는 공격할 방법이 없다. 결과적으로 말벌은 거미의 배에 독침을 놓는다.
“역시 말벌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거미와 사마귀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으냐?”
진영은 다시 아까 당한 거미를 머릿속으로 부르고 이번에는 말벌 대신 사마귀를 불러 보았다. 거미가 독침으로 달려들지만 사마귀의 톱날 같은 앞발이 거미를 막는다. 그리고 다른 앞발이 거미의 다리를 하나씩 자르기 시작한다. 곤충계의 포식자인 사마귀가 종국에는 거미를 잡아먹는다.
“역시 사마귀가…….”
“네 답은 둘 다 틀렸다.”
진의 엄한 목소리에 진영은 움츠러들었다. 조금 억울했다. 거미는 그렇게 강한 곤충은 아니지 않은가? 이윽고 진의 입이 열렸다.
“실제로 곤충의 세계에서는 말벌도 사마귀도 거미의 사냥감에 지나지 않는다.”
진영은 말문을 닫고 진을 바라보았다. 진은 그런 진영을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연다.
“거미는 거미줄에 묶이지 않은 적과는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강한 벌이나 사마귀라도 거미줄에 칭칭 감긴 상태로는 거미의 먹이가 될 뿐이지.”
“그, 그렇다면?”
“퇴마협회의 불행이 불어 닥친 날. 네 부모님을 비롯한 모두는 거미줄에 묶인 상태로 싸웠다는 것이다.”
아아, 진영은 이해할 수 있었다. 거미줄이라는 것은 은유적인 의미를 띄고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그런 식의 이야기라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현진 아저씨가 당한 것도 이해는 된다. 자신의 술수가 하나도 통하지 않았던 것조차도.
“그럼 거미줄을 피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너라도 간단하게 거미를 사냥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진은 웃으며 진영을 내려다보았다. 진영은 이제야 빛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 때에는 적을 모른 채로 싸웠다. 그렇다면 이 수련은 거미줄을 피하기 위한 수련이 되는 것인가. 그랬다. 거미의 가장 큰 무기는 날카로운 독니도 위협적인 생김새도 아니었다.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거미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거미줄이란 무엇인가요?”
진영의 물음에 진은 웃음을 거두고 진영을 노려보았다. 순간 진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진영을 무섭게 내려다 본 진은 그 분위기를 거두고 입을 연다.
“이게 바로 거미줄의 정체다. ‘공포’라고 하지.”
진영은 입을 벌리고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 공포? 공포라니. 고작 그 까짓 것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현진 아저씨가 당했다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 분들이 그 정도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했을 리가…….”
“‘극복’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진은 진영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영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진을 바라본다.
“거미줄에 이미 묶인 사냥감이 거미줄을 극복하려 발버둥 친다면 어찌 되겠느냐.”
진영은 비로소 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거미줄에 걸린 사냥감이 거미줄을 극복하려 하면 할수록 높은 확률로 오히려 거미줄에 더 칭칭 감기게 된다. 그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거미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그 것이 능력자라 할 지라도 말이다. 인간은 거미에 대한 무의식적인, 본능적인 공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공포를 피해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진영은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거미줄에 걸리지 않을 방법이 없단 말인가. 아라크네포비아가 이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는 진영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진영은 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어차피 진도 인간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미를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거미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진은 그런 진영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은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공포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마음 속에 있는 공포라는 감정을 완전히 삭제해 버린다. 그러면 거미줄에 걸리지 않게 되지.”
진영은 경악했다. 이 남자가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공포라는 하나의 감정을 완전히 지워버리라니. 그렇다면 자신보다 강한 적을 만나거나 위급한 순간이 되어도 몸의 반응이 늦어져 버린다. 게다가 감정을 없애 버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공포를 지워버린 인간은 보통의 인간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어쩌면 이미 인간이 아닌 자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 나처럼……. 말이다.”
진영은 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진에게서 흐르던 이상한 공기. 그리고 이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한 두려움. 그것은 이 남자에게 공포가 없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어떻게 하겠느냐. 공포라는 감정을 지워버릴 각오가 되어 있느냐?”
진영은 진의 말에 솔직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공포라는 감정을 완전히 없앤다고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앞에는 더 이상의 평범한 삶은 없을 것이다. 진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날 밤의 일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누나의 비참한 죽음.
“하겠습니다.”
***
수련은 고달팠다. 우선 수련의 제 1보는 공포에 몸이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진은 말했다. 그 후로부터 진영은 무수한 죽음을 보아야만 했다. 진의 검은 아슬아슬하게 목을 스쳐가기도 했고, 종이 한 장 차이로 가슴을 훑고 지나가기도 했다. 덕분에 온 몸에 베인 상처와 찰과상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진영의 몸은 한 마디로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깊은 상처는 하나도 없었지만 만약 진영의 몸놀림이나 판단이 한 번이라도 늦었다면 바로 치명상으로 이어질 공격들이 연이어 들어왔던 것이다. 진영은 진의 공격을 무려 여섯 시간이나 받아 내었다. 이제는 솔직히 움직일 힘도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에스메랄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고생한 모양이네? 기다리고 있었어.”
에스메랄다는 진영의 상처를 일일이 어루만지며 치료를 해주었다. 간단하게 반창고를 붙이거나 약을 발라주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눈속임이고 사실은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어 재생을 돕고 있다는 것을 진영은 알 수 있었다. 진영으로서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자, 이제 내일이면 깨끗하게 나을 거야. 그 남자는 널 어떻게 가르치던?”
진영은 에스메랄다의 투명한 눈을 바라보며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히 이야기해 주었다.
“공포를 지운다니, 그 남자다운 방법이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에스메랄다의 말에 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은 방법이고 쉽지 않은 수련이다. 아무리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공포를 없앤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오늘도 무수한 죽음의 순간을 목격했지만 결국은 진에 대한 공포감을 증대시킬 뿐이었다.
“그래, 쉽지 않겠지. 감정을 지운다는 게…….”
“흐응, 그런 것도 있지만 말이야.”
에스메랄다는 한쪽 눈을 가늘게 뜨며 진영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무척 요염해 보여서 진영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에스메랄다의 표정은 엄밀히 말하면 재미있는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는 사람의 우월감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 남자는 처음부터 공포라는 감정이 없었던 사람이거든.”
“뭐?”
그게 말이 되는 것일까? 진영은 에스메랄다를 바라보며 의구심을 품었다. 인간이 애초에 공포가 없을 수가 있는가?
“분홍거미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부터, 그 남자에게는 공포라는 것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진영은 에스메랄다라는 신비한 소녀를 바라봤다. 소녀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 신비로운 분위기에 감히 말을 걸기가 두려워, 진영은 가만히 에스메랄다를 바라보기로 했다.
어느 덧 진영은 잠에 들어 있었다. 에스메랄다는 잠이 든 진영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먼 곳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려 앉아 있었다.
에스메랄다의 눈이 진을 찾는다. 밤은 거미의 시간. 그리고 진이라는 남자가 움직이는 시간이다.
“새의 날개를 얻지 못한 거미들. 빌려 온 날개로 제대로 날지 못하고 곤두박질 쳐 추락한 분홍거미. 날개를 잃은 나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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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프롤로그가 끝난 느낌. 아, 좋은 글로 보여드려야 하는데 시간이... 흑흑. 그리고 쿠로사키 이치고라는 오렌지 머리는 블리치라는 만화에 나오더군요. 재미있나요? 이치고가 정의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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