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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함무라비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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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고길동
작품등록일 :
2019.08.29 20:16
최근연재일 :
2019.10.16 23:11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2,196,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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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6,488

작성
19.09.13 21:25
조회
58,529
추천
1,605
글자
12쪽

13화

DUMMY

*

*


새로 얻은 능력의 정리를 끝낸 기민이 주위를 슬그머니 둘러보았다.

다들 눈길이 무대와 경매물건, 진행자에게 박혀 있는 것을 보니 경매에 정신이 팔린 모양이다.


‘응?’


기민의 왼쪽으로 이세라 일행이 앉아 있던 세 자리 중 두 자리가 비었다.


‘양 옆이 모두 비었네. 일어날 때 눈에 띄려나?’


‘화장실이라도 갔나 보군.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 난 이제 가야겠다.’


기민은 그들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이이고 잠깐의 만남일 뿐이니까. 그저, ‘약간은 좋은 사람들 같았어’라는 느낌이 그가 갖는 감상의 전부였다.


기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어-이차.”


비어 있는 그의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으면서 기민의 어깨를 잡아눌러 강제로 앉힌다.


“?”


어이없는 사태에 기민이 자리에 앉은 채 옆을 돌아본다.

해파리 가면이다. 그가 가면 안으로 눈웃음을 짓는 것이 보였다.


“야,, 웃어 웃어. 분위기 씹창내지 말고.”


“!”


기민의 오른쪽 옆자리에도 한 명이 앉았다.

황금 가면이다.

다크 옥션에서 가면에 황금색을 쓸 수 있는 자들은 정해져 있다.


‘공증인...!’


공증인을 본 주위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황금 가면이 기민에게, 조용히 따라나오라는 손짓을 한다.

기민은 어깨를 으쓱하며 양 손을 치켜들어, 이유를 모르겠다는 동작을 취해 보였다.


그러자 해파리 가면이 기민을 툭 친다.


기민이 그를 바라보자, 해파리는 검지손가락으로 기민을 가리켜 보인 후, 양손 검지손가락을 교차시켜 X자를 만들어 보였다.


찌-익


그리고는 목을 손가락으로 긋는 시늉을 한다.

가면 너머로 보이는 해파리의 눈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여기서 죽고 싶지 않으면 나가자. 경매 방해하지 말고 곱게 죽자고.”


황금 가면이 나직하게 속삭여 왔다.


“뭔 개소리야. 지금 나 일반인 취급하는 거야? 증거 있어?”


기민의 항변에, 해파리 가면이 말없이 거울 하나를 내밀어 기민의 얼굴을 비추었다.

잠시 뒤 거울 위편에 박힌 보석이 푸르게 점등한다.


“간파 아티팩트다. 네놈이 능력자라면 붉게 반짝였을 거야. 더 할 말은?”


거울의 푸른 빛을 본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더욱 커졌다.

결국엔 경매가 잠시 멈추고.

웅성거림이 섞인 기분 나쁜 고요함이 기민의 주변을 맴돈다.


기민은 선택을 해야 했다.


‘조져? 아니면 그냥 숙일까?’


하지만 이미 너무 오래 참았다. 그리고..


‘얼굴엔 인피면구. 그리고 그 위에 가면. 여기선... 괜찮지 않을까?’


..웬지 여기서는 참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기민은 가슴이 속삭이는 감정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좆까. 씹새들아.”


“허, 뭐라고?”


“니들이 좆밥이라서 못 보는 걸 왜 내 핑계를 대는 거야? 싸물고. 공증인이면 판이나 깔어. 이미 깐 거야?”


황금가면이 헛웃음을 지었다.


‘허장성세? 경매를 방해하긴 좀 그럴 테니까 버텨 보자는 심산인가?’


“야. 일단 기절시켜서 데리고 나가.”


“옙.”


빠악!!


해파리 가면이 기민의 뒷목을 수도로 내리쳤다.


“아야.”


[ 카틀레토의 정신 방벽이 작동합니다. ]


하지만, 기민은 기절 면역이다.


“어...? 뭐지?”


“에라이 병신 모자란 새끼야.”


황금가면이 부하의 부족함을 욕하며, 기민의 목을 다시 내리쳤다.


빠각.


무서운 소리가 났지만, 기민은 한 번 휘청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기민이 으르렁거렸다.


“씨팔아. 아프잖아.”


이제 셋 중에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파리 가면의 일격을 버틴 거야 그렇다 쳐도, 공증인의 일격을 버틴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너 진짜 능력자야?”


황금 가면이 반신반의하면서 기민에게 다시 물었다.


“니들은 오늘 뒈질 건데 알아서 뭐하게?”


“허, 미친 새끼네 이거.”


공증인 일을 처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미친개처럼 덤벼 오는 새끼는 처음이다.

심지어 간파 보석이 파란색으로 반짝이는 일반인이 말이다.


황금 가면은 확신했다.


‘이 새끼 뻥카구만. 어디서 약을 팔어?’


‘배를 째 달라는데 째 주어야지.’


‘이미 경매도 지금 멈춘 판인데.. 빨리 끝내자.’


황금 가면이 쯧 하고 혀를 차고는 주머니에서 구슬 하나를 꺼냈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구슬을 바닥에 놓자 붉은 범위가 표시된다.

공증인만이 갖는 권한, ‘도피성’이다.


다크 옥션에서의 분쟁은 도피성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도피성은 다크 옥션 최고의 구경거리 중 하나다.


도피성의 등장과 함께 경매는 완전히 중단되었다.

경매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붉은 영역을 비우고, 이들을 멀찌감치에서 둘러싼다. 당분간 이들의 관심은 경매가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황금가면과 해파리 가면이 일어서서 기민으로부터 적당히 떨어졌다.

그들은 집행의 준비를 마쳤다.


“남길 유언은?”


“셋.”


“세 가지..? 그래 말해 봐라.”


“둘.”


“이런 씨발.”


탕-!!


농락당했다고 생각한 황금가면이 능력발동을 준비했으나, 그 전에 해파리가면이 권총을 쏴 버렸다. ‘일반인’의 가슴팍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뭐하러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씁니까. 투사체 방어도 없는 새끼에게 그런 거 쓰시면 낭비입니다 낭비.”


“허이구, 이 새끼 봐라.”


손에 모인 빛무리를 다시 흩어 버린 황금가면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하나.”


멀쩡하지 않아야 할 누군가가, 너무나 멀쩡하게 서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슈슉!!


황금가면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몸을 날리며 다시 능력을 준비했으나, 그의 행동은 ‘몸을 날리는 것’까지만 유효했다.


털썩.


황금 가면은 몸을 날리는 순간 몸이 굳어져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고, 해파리 가면은 의기양양한 표정 그대로 굳었다.


미리 저장해 둔 책갈피 슬롯 1, 2번의 힘이었다.

책갈피를 쓰면 3초를 셀 필요는 없으나, 기민은 의도적으로 3초를 세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3초가 필요하다’라고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


웅성웅성-


- 공증인이? 지금 공증인이 당한 거야?’

-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비교도 안 되게 커진 술렁임 사이에서, 기민은 짜증을 섞어 입을 열었다.

모두 들으라고 하는 얘기다.


“간파? 씨팔 개병신 새끼들이. 급도 안 맞는 새끼들이 간파 어쩌고 지랄이야. 일반인? 그래? 일반인으로 보였어? 이젠 좀 능력자 같나?”


기민이 해파리 가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해파리 가면을 벗긴다.

눈 밑에 세 갈래 발톱흉터 문신이 있는 남자다.


주위에서 어느 파의 누구니, 뒷배가 누구니 하는 수군거림이 들려왔지만 그딴 것은 기민에게 아무 영향도 줄 수 없었다.


빠악, 빠악!!


넘어지지 않게 목을 잡아 고정하고는 주먹으로 얼굴을 계속해서 후려갈긴다.


“각오했잖아, 그렇지? 나를 죽이려고 했으면 당연히 너희도 죽을 각오를 하고 온 거잖아.”


주먹을 내린 후 숨을 몰아쉬던 기민의 말과 함께, 그의 세 번째 책갈피가 펼쳐졌다.

아까 해파리가 쏘았던 총상을 저장해 둔 곳이다.


문신남의 가슴팍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켁, 커컥.


입에서 핏줄기를 흘리던 문신남은 그저 멍한 눈으로 기민을 바라보다 툭 고개를 떨구었다.

기민은 쓰레기 봉투 버리듯, 잡고 있던 문신남의 목을 놓고는 시체를 발로 밀어 찼다.


물기 섞인 쓰레기가 바닥에 던져지는 소리가 나고, 주위가 고요해진다.


이제 한 명 남았다.

기민이 손가락에 듬뿍 묻은 주황색 가루를 계속해서 빨아 삼켰다.


[ 상태이상이 책갈피 슬롯 1번에 저장됩니다. ]


[ 상태이상이 책갈피 슬롯 2번에 저장됩니다. ]


뚜벅, 뚜벅.


밀림의 정수를 모은 맹독을 목구멍으로 넘긴 기민이, 바닥에 쓰러진 공증인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 때.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있던 황금가면이 공중으로 휙 떠오르더니 날아간다.


“거기까지만 하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기민은 그저 웃었다.


[ 책갈피 슬롯 1번이 사용되었습니다. ]


거기까지고 자시고, 이미 더 할 것도 없었으니까.


“으큭, 푸헉!”


날아가던 황금가면이 경련을 일으키더니 피분수를 뿜어낸다.

뿜어내는 피 색깔이 검녹색이다.


“독혈이다!! 피해!!!”


검녹색 피가 흩날리자, 마침 공증인이 날아가던 경로에 있던 사람들이 대경실색한다.

우르르 흩어지는 사람들.


황금가면이 누군가의 발치에 도달했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


사람들의 술렁임이 엄청나게 커졌다.


- 상처 전이 능력에, 중독 능력에.. 굉장한걸.

- 마비 능력도 있는 것 같아.

- 촉매나 시전 재료 없이.. 노 카운트는 아니었지?

- 3초 세는 것 같던데.

- 3초면 준수하지.

- 저 공증인 능력을 제대로 못 본 게 아쉽네. 이거 공증인이라는 것들도 별 것 아닌가 본데?


으득.


누군가의 눈빛이 무섭게 타오르고.

그 옆에서 시킨 대로 염동력을 사용한 염동능력자가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난다.


저벅 저벅.


그 ‘누군가’가 흩어진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다른 황금 가면이었다.


달칵.


그가 조용히 붉은 구슬을 눌러 도피성을 해제하고는 구슬을 품 안에 넣었다.

도피성은 이제 없다. 분쟁은 끝났다.


하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왜 그랬지?”


“뭘?”


“능력자가 맞다면.. 죽이지 않고 능력을 보여주는 방법도 있었지 않나.”


기민이 헛웃음을 흘렸다.


“지들이 못 보고 덤빈 걸 왜 나에게 지랄이신지?”


“능력에 은폐 속성이 붙은 것 같은데. 그런 능력을 보라고 하는 건 좀 가혹하지 않은가? 일반인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어.”


“모르면 죽어야지. 아니면 덤비지를 말던가. 총 맞고 그대로 죽어 줬어야 한다는 의미면 아쉽게 됐군.”


“말이 통하지 않는군.”


“중요한 것은 규칙이겠지. 그래서, 내가 다크 옥션의 규정을 어긴 것이 있나?”


능력자가 일반인으로 의심받은 뒤에 도피성에서 정당하게 싸웠다. 도피성의 싸움에서 공격해 온 상대를 능력으로 죽여 자신의 결백을 입증했다.


이보다 규정에 더 합당할 수 있을까?


“...아니. 규정은 잘 지켰지.”


“그럼? 설마 도덕을 논하려는 건 아니지? 다크 옥션에서?”


“....”


‘저 새끼 방금 욕한 것 같은데?’


어떤 논쟁에서나 통하는 논리가 하나 있다.

먼저 욕하는 사람이 진다는 것.


“어디 보자.. 여기 있구나.”


해파리 가면의 시체를 뒤져 아공간주머니를 챙기고는, 떠날 준비를 한다.

기민이 피식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뒤에서 황금 가면이 뭐라고 지껄였지만 기민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이제 진짜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기민이 발걸음을 내딛자, 아직도 그를 둘러싸고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좍 갈라졌다.

홍해의 바닷길 같은 인간 통로를 걸어 나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걷자 술렁거림이 더 크게 들려 왔다.


- 함께 일할 생각이 있다면 이 채팅방에 들어오게.


중간중간 채팅방이 적힌 명함을 건네 오던 손길이 있었으나 그는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 건방진 새끼.

- 그런 싸가지로는 오래 살지 못할 거다.


부질없는 악담이 속삭임처럼 귓가에 맴돌다 사라졌다.


나가는 도중 익숙한 가면들과 시선이 마주친다.

그들 역시 기민을 바라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능력자 맞다니까. 이제 좀 믿겠어요?”


기민이 분홍 여우가면에게 웃으며 한 마디 던졌다,

물론 가면에 가려 웃음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지만.


“...”


“...”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


짧게 한숨을 내쉰 기민은 조용히 걸어 그들을 지나쳤다.

여전히 그의 뒤를 찌르는 시선들.


한참을 걸었다.

다크 옥션의 출구 쪽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그의 옆에, 갑자기 목소리 하나가 끼어든다.


“헉, 헉. 겨우 따라왔네. 실례했습니다.”


독수리 가면이다.

기민은 그를 신경쓰지 않고 계속 자기 갈 길을 걷는다. 하지만 독수리 가면은 끈질겼다.

그가 속삭인다.

“아까 공증인 상대하는 걸 보고 확신했습니다. 하늘발톱 몬스터 샵 들르신 저주술사님 맞으시죠?”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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