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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함무라비 스타일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검성고길동
작품등록일 :
2019.08.29 20:16
최근연재일 :
2019.10.1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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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6,488

작성
19.09.0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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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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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5
글자
12쪽

10화

DUMMY

걷고 있는 기민 주변을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미로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컨테이너에는 각각 간판이 달려 있었는데, 가게 컨셉을 나타낼 만한 그림이 크게 그려져 있고 그 밑에 글자가 쓰여 있었다.


기민은 약도를 잘 체크하면서 목표하던 위치로 향했다.


‘거의 다 왔나? 이상하군.. 사장님 말로는 분명히 두어 명 정도 달라붙을 거랬는데.’


고개를 갸웃하며 걸음을 옮기던 기민. 그의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팔 옆가에 누군가가 달라붙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찾으시는 물건 있으세요?”


‘나왔군.’


다크 옥션의 호객꾼이었다.

호객꾼들은 보통 나비 가면을 착용한다. 지금 기민을 상대하는 호객꾼은 호랑나비 가면을 쓰고 있었다.

노인에게 들은 요령들을 상기하면서 짧게짧게 입을 여는 기민.


“인피면구. 신분 같이 팔면 더 좋고.”


“야~ 사장님 완전 저랑 천생연분이잖아. 제가 바로 사장님 가시는 가게에서 나왔거든요. 거기 완전 괜찮습니다.”


‘내가 어디 가는지 니가 어떻게 아는데?’

기민은 실소를 참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가죽은?”


“저희 가게는 유인원 가죽과 사람 가죽을 모두 취급합니다. 일단 가셔서 편하게 고르시죠.”


“아 거 진짜. 와꾸는 봐야 될 거 아냐. 아다라시 다루듯 할래? 기분 상하게 하지 맙시다.”


필요할 때 강하게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제세현의 조언에 맞추어 행동하는 김기민이었다.


“...죄송합니다.”


“그, 사람 가죽은 처리 다 된 거고? 설마 생은 아니죠?”


“당연하죠. 그딴 야매 샵이랑 저희랑 비교하시면 섭섭합니다.”


“각인은?”


“물론입니다.”


“그럼 카탈로그 봅시다.”


“예.”


다크 옥션의 호객꾼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태도가 완전히 바뀐다.

초행자에게는 ’교육비‘를 무자비하게 뜯어가지만, 경험자에게는 약간의 리스펙트를 해 준다. 소위 ’비즈니스 상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인피면구는 가죽을 베이스로 하여 여러 특수재료들을 합성·부여해서 만들어진다.


사람이 얼굴에 쓰는 것이다 보니 사람과 비슷한 동물의 가죽이 보다 잘 어울리고, 그 중 유인원의 가죽이 많이 쓰인다.


하지만 유인원보다 사람에게 더 가까운 동물이 있다.

그건 머리털 달린 짐승 즉 사람이다.

그래서 인피면구의 최고급 재료는 사람 가죽, 특히 얼굴가죽이다.


사람 시체는 은근 구하기 쉽다. 화장터에서 화장하는 척 하고 시체를 빼돌려도 되고, 아예 유가족들에게 대놓고 시체를 구매하기도 한다. 반면 유인원 가죽은 구하기 쉽지 않다.


사람 얼굴가죽보다 유인원 가죽이 더 구하기 어려운데도 사람 얼굴가죽 인피면구가 더 비싸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사람 가죽을 다른 괴수재료와 합성하는 난이도가 지랄맞기 때문이다. 사람 가죽을 많이 구해서 합성·부여를 들이부어도 성공작은 손에 꼽는다(그래서 가끔 합성·부여‘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생면구를 파는 야매 가게들이 있다).

또한 유인원가죽 베이스의 인피면구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 없다는 것 역시 가격 차이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리고 고인의 생전 사진으로 착용샷을 대체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인피면구 특성상 이 물건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는 좀 껄쩍지근하다.

그래서 만들 때 구매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각인’ 능력을 부여해서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인이 된 인피면구는 착용하는 순간 주인이 정해져 버려서, 착용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그래서 생전 사진으로 착용샷을 대체하게 된다.


또한 사람 얼굴가죽은 대단히 예민한 재료라, 유인원의 가죽과 달리 성형이 매우 곤란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생전에 어떻게 생겼는지를 사진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한 이유로 고인들의 생전 사진을 모아 놓은 것이 ‘카탈로그’이다.


기민은 먼저 ‘가죽’에 관해 물어봄으로써 인피면구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한 뒤, ‘처리 및 각인’ 여부와 ‘카탈로그’까지 확인하였다.


기민의 대처는 호객꾼이 속아넘어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정도였다.

그가 기민을 베테랑으로 믿기 시작했다.


호객꾼은 품 안에서 무전기를 꺼내고 버튼을 누른 채 훅, 훅 두 번 불었다. 그리고 무전기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여기 김선달, 김선달이라 알림. ‘진짜’ 인피면구 카탈로그 전송 가능한지? 아, 양호.”


답이 들려오지 않음에도 호객꾼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귓속에 리시버를 끼고 있으리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오케이, 전송완료. 여기 있습니다. 이번 매물들 와꾸가 아주 끝납니다. 뭘 선택하셔도 후회 없으실 겁니다.”


호객꾼이 사진들이 떠 있는 태블릿을 하나 내민다. 기민이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


‘젠장....’


고인의 생전 사진 옆에, 얼굴가죽 가면이 같이 첨부되어 있다. 상품사진을 같이 첨부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각오를 하고 있었음에도 기민의 얼굴이 잠깐 일그러졌다. 그러나 가면 덕분에 티는 전혀 나지 않았다.


‘후.... 산 사람은 살아야지.’


마음을 정돈한 기민이, 냉정하게 얼굴들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한다.


기민이 원하는 얼굴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어 그런 친구가 있었어? 본 것 같기도 한데 전혀 모르겠는 것 같기도 하고?’ 하면서 스리슬쩍 넘어가는 무색·무미·무취의 얼굴이다.


다행히 구석에 그런 얼굴이 눈에 하나 띈다. 하지만 여기서 ‘이 얼굴 괜찮네’라는 말을 미리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대략적 가격대는 어떻게 됩니까?”


“조금씩 차이는 나는데 대부분 7000 안팎입니다.”


7천만 원이면 약간 비싸나, 인피면구 퀄리티에 따라 감수할 만한 가격이다. 게다가 만족할 만한 얼굴이 나오면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구매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도 들었다.


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퀄리티를 봐야겠는데요. 담당 샵 이름이? 피닉스? 레저렉션?”


“레저렉션입니다. 혹시 기존 고객이신지....?”


당연히 기존 고객일 리는 없다, 제세현에게 들었을 뿐.

기민은 인피면구 관련해서 믿을 만한 샵 3개 정도가 있으니 그 셋 중에서 구매하면 웬만하면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그의 조언을 되새겼다.


“아.. 피닉스는 자주 갔었죠. 레저렉션이라.. 평이 별로 좋지 않던데.”


사실 그런 곳 가 본 적 없다.


“아이고 사장님, 혹시 그 평가 피닉스 사장에게 들으신 거 아닙니까?”


“에,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 들었지 뭐.”


사실 그런 평가를 들은 적도 없다.


“사장님, 피닉스 그 새끼들 이빨 터는 거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 이번에 저희 샵 와 보시면 피닉스? 그딴 가게는 앞으로 생각도 안 나실 겁니다. 제가 사장에게 얘기해 놓겠습니다. 제가 사장이랑 형 동생 하는 사이에요.”


경쟁점과의 사이가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던져 본 떡밥을 호객꾼이 덥석 물었다.

가게로 걸어가며 기민은 확신했다.


‘손해는 보지 않겠군.’


가게에 도착한 기민은 제세현에게 들은 지식을 떠올리며 인피면구들을 살폈다.


‘좋네. 아주 훌륭해.’


흠잡을 곳이 없는 퀄리티다.


원하던 얼굴을 구매하고 신분을 새로이 만드는 데 쓴 돈은 1억 원 미만.

심지어 신분을 원래 얼굴과 인피면구상의 얼굴 2개로 만들었는데도 말이다.


경쟁점과 거래해 왔다는 사실을 들은 사장이, 앞으로는 자신의 가게를 이용해 달라는 의미로 특별 할인을 제공한 덕이었다.


‘혹시 모르니 예비 얼굴을 좀 더 사 놓자.’


만약을 대비해, 기민은 할인받은 돈에 조금 더 보태어 추가 인피면구까지 조금 더 사 놓았다.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다크 옥션에 온 가장 큰 목적을 달성하니 어깨가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제서야 기민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다크 옥션을 제대로 즐기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물건이 정말 많았지만 기민은 아이 쇼핑으로 만족한 채 돈을 최대한 아꼈다. 제세현이 강조한 다크 옥션의 꽃, ‘경매’를 위해서였다.


「 1시간 뒤에 경매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경매에 참여하실 분은 옥션 중앙의 건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


이윽고 기다렸던 경매 예고 방송이 나오고, 기민은 경매 개최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아직 안 산 컬렉션이 있나?”


“계획했던 물건들은 전부 사셨습니다, 아가씨.”


“흠... 근데 뭔가 부족해.”


“벌써 50억 가까이 쓰셨습니다. 경매도 참여하셔야지요. 다음에 오실 때 사는 게 어떠신지...”


“아냐. 나를 부르는 무언가가 있어. 할아범은 안 들려?”


[ 세라님- 저를 데려가 주세요- ]


“아가씨, 망령화를 목소리 변조용 같은 걸로 쓰시면 안 됩니다.”


“뭐라는 거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결정! 경매 전까지 한 바퀴만 더 도는 걸로!!”


신나서 뛰어가는 분홍여우 가면을 보며, 뒤에 남겨진 얼룩불독 가면과 너구리 가면이 한숨을 내쉬었다.


“박 집사, 아공간 여유가 좀 남나?”

“아뇨.. 저도 다 찼습니다.”


“지배자들에 가입하고 나서는 정신을 좀 차리신 줄 알았는데, 큰일이야 큰일. 아가씨가 언제 철이 드시려고 저러시나 모르겠어.”


가면이 마음에 안 드니 분홍 가면으로 바꿔 오라고 자신을 닦달하던 이세라를 떠올리던 얼룩불독이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 정도의 능력자시면 철들 필요 없는 삶을 사셔도 되지 않을까요,”


“이 사람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저희랑 함께 계시면 편안해서 저러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휴.. 편안하긴 개뿔.. 세현이 형님이랑 같이 일할 때는 내가 이 고생 안 해도 됐었는데..”


얼룩불독 가면이 허리를 두들겼다. 너구리 가면은 고개를 빼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세현 선생님 말씀이시군요. 저는 이야기로만 들었던 분이네요.”


“어. 형님은 정말 엄청나셨지. 아가씨가 형님을 그렇게 잘 따랐는데. 요새는 소일하면서 쉬고 계신다던가?”


“그럼 그냥 본가에 계셨어도 좋았을 텐데요.”


“흠.. 글쎄.. 그랬으면 제대로 못 쉬셨을 것 같네만... 아가씨가.. 아, 저기 계시는구만.”


이세라를 보좌하는 두 집사가 그녀를 허겁지겁 따라갔다.


“빨리도 뛰셨군요 아가씨... 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이세라는 검은 여우 가면을 쓴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할아범. 여기 대리 입장 안 되는 거 아냐?”


“그럼요. 안 되죠.”


“여기 초대장은 능력자들에게만 발부되는 거잖아?”


“그렇고말고요. 애초에 여기 물건들이란 게 거의 능력자 위주의 물건들이잖습니까.누구 발견이라도 하셨는지요?”


“저기 검은 여우 가면, 일반인인데?”


이세라가 김기민을 가리켰다.


검은 여우가면은 이세라 일행 쪽의 대각선 맞은편에서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는 일행을 지나쳐 갈 것이었다.


‘하필 아가씨는 이 때 간파능력을 쓰고 그러시나...’

집사장은 입맛이 썼다.


‘아가씨 성격상 나쁜 의도로 그러시는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어휴.. 그놈의 오지랖은 정말....’


그는 굳이 오지랖 부리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자는 입장이다.


“아가씨. 그냥 조용히 넘어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맞아요, 한 바퀴 더 도신다면서요. 경매 얼마 안 남았는데 한 바퀴 도시려면 지금 저런 사람에게 쓸 시간 없습니다. 얼른 물건 보러 가시죠.”


집사장이 이세라에게 조용히 속삭이고, 박 집사도 집사장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나 이세라는 고개를 저었다.


“충고만 해 주려는 거야. 오래 안 걸려.”


집사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침 타이밍도 얄궂게, 검은 여우가 이세라 일행 옆을 지나간다.


“저기요!”


이세라가 여우가면을 불렀다.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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