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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함무라비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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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고길동
작품등록일 :
2019.08.29 20:16
최근연재일 :
2019.10.16 23:11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2,196,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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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39
글자수 :
216,488

작성
19.09.10 00:32
조회
59,008
추천
1,518
글자
11쪽

11화

DUMMY

“날 부른 겁니까?”


“네.”


뭔가 생각하던 검은 여우가 손뼉을 짝 친다.


“아하! 같은 여우 가면이라서 불렀군요? 분홍색 여우라니 귀엽네요.”


“네? 아니 저기.. 그....아니! 저기요!”


순간 남자의 페이스에 말리는 느낌을 받은 이세라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누구 대리로 오신 거에요?”


“대리라니.. 무슨 말씀이시죠?”


검은 여우가 고개를 갸웃한다.


“누굴 대신해서 왔냐 이거에요.”


“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 저는 저를 위해서 왔는데요?”


푸흡-


박 집사가 터지려는 웃음을 애써 막는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쪽 능력자 아니잖아요. 일반인인 거 걸리면 살아서 못 돌아가요. 조용히 보내 드릴 테니까, 그냥 지금 들키지 않았을 때 안전하게 돌아가세요.”


“아니 저 능력자 맞는데요?”


이세라는 그냥 뒤돌아서려다, 그러지 못했다.

이상하게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살아서 돌아가라고 좋은 의도로 말해 줘도 빠꾸를 놓아?’


“아, 진짜 짜증나네. 그쪽 능력자 아닌 거 다 안다고요.”


“뭔 소리야.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지. 그쪽이 나를 어떻게 알아요? 저 능력자 맞아요.”


“하, 진짜... 능력자면 입증해 보라고. 능력 써 봐!”


“아니 내가 왜?”


검은 여우는 능글능글했다.


“저 분이랑은 말이 안 통하네. 거기 이 여자 일행분들 맞죠? 저 좀 바빠서 그러는데 이제 갑니다?”


그가 피곤하다는 듯, 이세라의 일행들에게 좀 어떻게 해 보라는 표시를 보냈다.


“그럼 그럼!! 가던 길 얼른 갑시다. 여우양반 얼른 가던 길 가시게. 얼른 가시게나. 아가씨, 능력자라지 않습니까. 알아서 건사하겠지요. 자, 우리도 갑시다, 가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집사장.

집사장은 얼른 둘 사이에 끼어들어 상황을 무마하며 이세라를 데리고 가려 했다.


하지만 이세라는 너무 억울했다.

자기가 나쁜 의도로 말한 것도 아닌데 자신만 나쁜 사람이 되었다.

저놈 입으로 ‘네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들으면 되는데, 한 마디를 안 져 준다.


“아, 이거 놔!!!!”


후욱-


순간 이세라의 몸이 반투명해지며 집사장의 팔을 통과해 버린다. 이세라의 수많은 능력 중 하나인 ‘망령화’였다.


“야! 지금 어디서 거짓말이야! 당연히 니 능력창 텅 빈 거 보이니까 지금 너에게 말하는 거 아냐! 살려 주려는데 왜 그러는 거야!!”


이세라가 씩씩거리며 기민에게 말했다.


“그럼 그쪽이 내 능력창이 보인다는 걸 먼저 입증해야죠. 분홍여우님이 거짓말하는 건지 내가 어찌 압니까? 여기 다크 옥션인데? 내가 그쪽의 뭘 믿고 내 능력을 술술 불어 드려야 하나요?”


발끈하는 이세라의 말을 눈도 깜짝 않고 받아치는 기민.


기민의 말이 맞다.

이세라가 ‘간파’ 능력을 실제로 갖고 있다는 것을 먼저 입증해야 그녀의 말에 힘이 실린다.

이건 그녀가 졌다.


“이... 이....”


후우....


집사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싸움에서 패배해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세라에게 말했다.


“아가씨. 저 사람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 쪽 간파를 먼저 증명하는 게 옳아요. 계속 다투시려면 공증인을 불러야 합니다. 부르시겠어요?”


다크 옥션은 능력자간의 분쟁은 통제하나, 일반인은 보호하지 않는다. 여기서 일반인에게 무슨 짓을 하더라도 옥션 측에서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 심지어 그 일반인이 죽더라도 말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일반인이라는 것을 다크 옥션 측에서도 알아야 한다.

옥션 쪽에서는 능력자들에게만 초대장을 돌렸으니 참가자들은 전부 능력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션의 판관이자 집행자 역할을 담당하는 공증인을 부르는 것이다. 공증인에게 상대방이 일반인임을 먼저 알려야, 죽이든 아공간 주머니를 털든 문제가 없게 된다. 만약 공증인을 부르지 않고 냅다 지른다면...


집사장의 눈이 하늘 여기저기 떠 있을 드론들을 훑었다.


‘..많이 피곤해지겠지.’


“이..... 씨.... 할아범. 할아범 대체 누구 편이야? 할아범은 내 편 들어 줘야 되는 것 아냐?”


이세라가 눈을 부릅뜨고 분노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 이세라를 집사장이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가씨, 저 사람이 일반인이라고 확인되면 죽이실 겁니까?”


“....아니. 그건 아냐. 지금 살려 주려고 확인하는 거잖아.”


그녀의 기세가 푹 수그러든다. 씩씩댈 때 한껏 펴졌던 어깨가 애처롭게 줄어들었다.


“아가씨, 저 자는 본인이 일반인이 맞더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일반인 확인을 위해 저희 쪽에서는 공증인을 불러야 합니다. 그렇지요?”


“그치.. 이해했어. 할아범 말이 맞아.”


집사장은 그 뒷말을 굳이 하지 않았고, 이세라는 집사장이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

공증인이 온 후에 일반인임이 밝혀진다면, 이세라의 ‘단순한 확인 의도’라는 취지는 무색해진다. 그렇게 되면 저 자의 생존 확률은 1%도 안 될 것이다.


그냥 보내 주는 것이 맞았다.

이세라가 지금 기민에게 하려는 것은 배려이고, 배려를 강요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배려가 아니니까.


분홍 여우가 말없이 검은 여우를 보다가 고개를 내리깔았다.


“경매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얼른 가시지요.”


집사장이 이세라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경매 30분 남았습니다.”


시계를 본 박 집사가 건조하게 말했다.


후웁-


이세라는 숨을 길게 들이마신 후 몸을 돌린다.


“가자. 아까 ‘달의 눈물’ 샀던 가게로.”


“예.”


“예.”


그녀와 그녀의 일행들은 기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은 기민도 다시 발을 옮겼다.


*

*


경매장은 기민이 다크 옥션에 첫 발을 딛었던 트레일러 근처에 있었다. 가건물 주제에 웬만한 대강당 사이즈다.


‘다른 컨테이너들이야 아공간에 넣어서 들고 왔다고 치고, 저건 어떻게 지은 거야?’


기민은 어떻게 지은 걸까를 잠시 고민해 보다가 고개를 흔들고는 경매장으로 향했다.


“카탈로그 사세요! 카탈로그!! 경매장에 반드시 들고 가야 할 책자 중 올해 1위! 다크옥션 최고의 베스트셀러!!”


경매장 근처에서는 부스를 세워 놓고 곧 있을 경매물품의 카탈로그를 팔고 있었다. 물방개 가면을 쓴 여자가 복식호흡으로 이빨을 터는 중이었다.


“경매에 나오는!! 모든 물건의 사진과 자세한 설명! 그리고 이 책의 핵심!! 유명 감정사들과 경매전문가들의 적정가 등등 풍부한 코멘터리!!! 이 모든 것이 실린 책자가 단돈 300만 원!!”


“경매 전에 미리 전략을 세우세요! 경매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전쟁입니다!! 이 책은 여러분의 전우가 되어 줄 것입니다!!”


“딱 500부 인쇄했는데 지금 30부 남았습니다!! 이거 다 떨어지면 저도 부스 접고 경매 참여합니다!! 지금 안 사면 못 사신다는 이야기~~~!!”


“옛소, 300만 원.”


“감~~ 사~~ 합니다! 득템하세요!!”


부스 주변은 시끄러웠다.

경매물품 카탈로그를 구매하는 사람들, 카탈로그 한 권을 사서 함께 돌려보면서 전략을 의논하는 사람들, 누군가와 무전기로 대화하는 사람들까지, 그야말로 시장바닥이었다.


“...”


하지만 기민은 카탈로그를 사지 않았다.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소리 지르는 여자를 무심히 지나쳐 경매장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기다리는 중이었지만, 기민의 신경은 전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어디 있지..? 아, 저기 있군.’


[ INFORMATION & HELP ]


안내 데스크다.

무대와 의자밖에 없는 이 경매장에서 무엇을 안내하겠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토끼 가면이 기민을 친절하게 맞이한다.


“팸플릿 좀 가져가겠습니다.”


기민은 데스크 한쪽에 쌓여 있던 팸플릿 하나를 집어들고는 돌아갔다.


적당히 빈 자리에 앉은 그가 팸플릿을 펼쳤다.


팸플릿에는 경매 물건들의 조그만 사진들과 물품의 이름, 그리고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카탈로그에 비하면 대단히 초라했다.


‘경매장 앞에서 파는 카탈로그를 사셔도 좋지만, 선생님은 전문 경매꾼이 아니시잖습니까?’


‘말인즉슨 물건을 되팔 것이 아니잖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팸플릿으로 충분합니다.’


‘그냥 선생님께서 사고 싶은 물건에 지불하고 싶은 금액을 지불하십시오.’


‘그래도 적정가를 알아 두는 게 좋지 않겠냐고요? 허허허.. 선생님, 모두가 아는 적정가는 적정가가 아닙니다.’


조언을 떠올리던 기민이, 팸플릿을 훑었다.


‘아니, 이런 걸 사고 판단 말야?’


정상적인 물건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암시장의 경매답게 어딘가 뒤틀려 있는 상품이 태반.


바깥에서 거래하다가는 바로 쇠고랑 찰 만한 것들 투성이에, 비위 상하게 생긴 상품도 꽤나 많다.


‘괴수마약 FR9-BR... 제끼고. 애완괴수... 필요없어. 괴수마약 SN7-KR.. 뭐야. 마약상 재고떨이 모임이야? 뭔 마약이 이렇게 많아?’


‘노예는 또 뭐야. 세뇌 완료? 으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기민의 눈초리가 한 항목에서 멈추었다.


‘이건....’


[ 석조 : 생명의 나무 ]


[ 예술가 김재필의 유작. 괴석을 토대로 하여 크고 작은 기운석 50여 개로 만들어낸 나무. 석조임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영롱함을 뿜어낸다. ]


‘하나 건졌군.’


기민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그 때 누군가가 옆에서 말을 걸어 온다.


“여기서 또 만났군요.”


고개를 돌리니 뭔가 익숙한 가면 3개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룩 불독, 너구리, 분홍 여우.


‘분홍 여우?’


아까 대뜸 일반인 아니냐고 막무가내로 물어오던 여자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잠잠하다.

그냥 기민을 능력자로 취급해 주려는 듯했다.


인사는 얼룩 불독이 해 왔는데, 노인의 목소리였다.


기민은 적당히 노인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렇네요. 반갑습니다.”


그들의 눈이 기민이 들고 있는 팸플릿으로 향한다.


“팸플릿이라니..”


일행의 반응이 각기 다르다.


분홍 여우는 고개를 젓고, 너구리(박 집사)는 가만히 있었으며, 얼룩 불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없진 않을 텐데 팸플릿이라니. 정말 짠돌....”


“경매를 즐기실 줄 아는 분이시군요.”


이세라가 기민을 비꼬려다, 집사장 임학동의 말이 자신과 다르자 말꼬리를 씹어 삼킨다.


“저는 경매꾼이 아니라서요. 그래서 이 팸플릿으로 충분합니다.”


기민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세라와 집사장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그들의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


잠시 흐른 정적을 깨고 집사장 임학동이 입을 열었다.


“...좋은 철학이군요.”


“별 말씀을. 사실 돈 아끼려고 안 산 게 맞습니다.”


“으허허허!”


“하하하핫!”


서로 관심 있는 물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경매 시작 시간이었다.


“다크 옥션, 경매에 오신 신사 숙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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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9

  • 작성자
    Lv.78 무지개향기
    작성일
    19.10.08 22:57
    No. 31

    여자가 너무 빡대가리 발암녀네
    설마 히로인은 아니겠지?
    쥔공이 일반인이라고 동네방네 크게 떠들면서 증명까지 하려들면서 무슨 일반인이라 보호할려고 한다는 개소릴;;
    말도안되는 ㅂㅅ짓을 하는데
    저런 심각한 무개념 발암캐릭이 주요캐릭이 아니길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ch*****
    작성일
    19.10.12 12:46
    No. 32

    잘보고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물물방울
    작성일
    19.10.13 03:48
    No. 33

    다음 연재가 기대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2 Freewell
    작성일
    19.10.14 00:22
    No. 34

    내가 댓글을봤다 나와 같은 생각이 여러분계시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재미잡이
    작성일
    19.10.14 04:31
    No. 35

    배려를 너 일반인이지 너 죽고싶어?로 한다는건
    현대가 아니라 배경이 무협인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탈퇴계정]
    작성일
    19.10.14 09:21
    No. 36

    아니 대리면 사정이 있겠지;
    그걸 저리 동네방네 다 까발리는게 무례 아닌가.
    애초에 암시장에서 간파를 쓰는 것에 대비가 없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탈퇴계정]
    작성일
    19.10.14 12:07
    No. 37

    근데 이세라가 남자였으면
    '저 남자'가 아니라 '저 캐릭터'가 욕먹었을텐데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2 흙색불사조
    작성일
    19.10.15 17:48
    No. 38

    아니 여자가 가면 바꿔와라 억지 부렸단 거에서 답 나오지 않습니까?
    그냥 생각이 짧은 캐릭터 같은데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21 9158
    작성일
    19.10.19 01:01
    No. 39

    간파나 탐지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는게 알려져있지 않다는 설정이 있는건가요? 자신의 간파에 아무 능력이 잡히지않았다해서 일반인이라 확신하는 모습이 좀 허술하긴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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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23 19.09.03 68,022 1,49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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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화 +50 19.09.01 74,496 1,68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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