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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함무라비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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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고길동
작품등록일 :
2019.08.29 20:16
최근연재일 :
2019.10.1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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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6,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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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3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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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
글자
13쪽

5화

DUMMY

서울의 새벽녘, 알콜 섞인 토사물과 소변 자국이 곳곳에 있는 으슥한 뒷골목. 그곳에 갑자기 가죽 팬티만 달랑 입은 채 허리에는 주머니를 둘둘 두른 남자가 나타났다.


그가 입을 열었다.


“어우 추워! 이거 뭐야!”


정글의 사시사철 뜨겁고 습한 날씨에 너무 길들여진 모양이었다. 그는 당연히 서울도 여름일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추위라는 생소한 느낌에 잠시 멍하게 있던 김기민의 맨살을 차가운 바람이 할퀴었다.


생각보다 체온이 빨리 내려가는 것 같다. 몸이 더 식기 전에 대책을 궁리해야 한다.


‘보통 소설에서는 이럴 때 양아치들이 덤벼 오던데.. 그래서 그 친구들이 옷이랑 돈이랑 다 내주던데.’


그런 친구들 없나?


휙! 휙!


김기민이 기대에 차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고개를 길게 빼어 자기 주변 골목들을 쭉 스캔했다.

그러나 스산한 뒷골목엔 아무도 없었다. 전봇대 밑의 토사물만이 꽁꽁 얼어가는 중이었다.


김기민은 모르겠지만, 재수없게도 그는 이번 겨울 중 가장 추운 날에 돌아왔다.

폭한주의보 경고문자는 이미 이틀 전부터 돌았으며 오늘은 영하 32도로 이상기후가 최고조에 달했다.

서울이 영하 32도를 찍어 버린 날, 그것도 새벽녘, 게다가 대로변도 아닌 뒷골목에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 아닐까.


쐐애애!!


헛생각 하지 말라는 듯, 혹한의 칼날이 김기민의 전신을 두들겼다.


“으으..”


피부가 타오르는 느낌에, 그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온다.


동상이나 저체온증 같은 병증은 걸려도 상관없다. 방출하면 되니까. 하지만 추운 건 추운 것이고, 방출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김기민이 아무리 개같은 독종이라고 해도 그가 괴로움까지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을 연 가게라도 있다면 염치불구하고 신세를 지려 했건만, 보이는 가게가게마다 전부 불이 꺼져 어두컴컴하다.


“젠장.. 어쩌지..”


오들오들 떨면서 걷던 그의 눈에 녹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거대한 우체통처럼 생긴 물체가 들어왔다.


녹색 통에는 ‘[ 헌 옷 보 관 함 ]’이라는 하얀 글자가 크게 박혀 있었는데, 그 밑에는 ‘이 보관함은 사유재산입니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사용됩니다’라는 내용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김기민이 조용히 읊조렸다.


“괜찮아. 나도 불우이웃이니까.”


잠시 뒤.

이옷 저옷을 주렁주렁 껴입어 거의 풍선처럼 보이는 남자가 헌옷보관함을 뒤로 하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헌 옷이라 냄새는 좀 나지만 뭐 어떤가. 정글의 짐승 배설물 냄새, 각종 유기체가 썩어가는 냄새를 맡아 가며 생활했던 김기민에게는 몇 배나 향기로운 냄새일 뿐이었다.


추위가 좀 가시자 그는 그제서야 서울로 돌아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혹시 꿈이면 그 꿈에서 깨어날까 봐. 김기민은 날이 밝아 가로등이 꺼질 때까지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래도 공기는 확실히 정글이 좋네’


..가끔 떠오르는 이상한 생각을 치워 가면서.


*


평일 아침. 제아무리 날씨가 춥고 폭한주의보가 내려도 사회는 굴러가는 법이다. 사회의 충직한 톱니바퀴들은 오늘도 부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출근해야만 한다.


그리고 정장 입은 톱니바퀴의 흐름을, 이상한 히피 한 명이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으, 냄새!”


흐름 속에 그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빈칸을 만들어 가면서 말이다.



[ 스카이클로 몬스터 샵 ]


[ 세현 몬스터 샵 ]


몬스터 샵. 괴수로부터 나온 부산물 및 재료를 거래하는 가게다.


스카이클로 몬스터 샵은 지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거대하고 번쩍번쩍했다. 간판의 네온 사인이 어마무시한 것이, 해가 조금만 떨어지면 이 근처가 휘황찬란해질 것 같았다.


반면 세현 몬스터 샵은 낡고 허름했다.

스카이클로 몬스터 샵이 선팅 때문에 내부를 볼 수 없다면, 세현 몬스터 샵은 내부가 그냥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마치 경동시장의 망해 가는 약재상 느낌마저 날 정도였다.


‘복수 이전에 확보할 것들이 있다. 먼저, 자금이다.’


히피는 ‘스카이클로 몬스터 샵’ 앞에 멈추었다. 김기민은 옷을 툭툭 두들겨, 그 안에 복대처럼 감춘 주머니를 다시 확인했다.


‘좋아. 이상 없고.’


쥔듯 만듯 묘하게 쥔 그의 손 안에는 그가 챙겨온 말린 웅담 중에 가장 작은 것이 들어 있었다. 혹시나 으스러질까 봐, 김기민은 힘을 살짝 뺀 상태로 주먹을 쥐었다.


‘오케이. 들어간다.’


“에취!!”


재채기를 마친 그가 코를 쓱쓱 비빈다.


땡그랑, 땡그랑


썬팅이 두껍게 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문에 매달린 종이 울려 주인에게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의 첫 손님....”


주인이 매대를 닦으며 인사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 기민의 얼굴과 옷차림을 보고는 표정을 찡그리며 말끝을 흐렸다.

주인은 꽤나 젊어 보였는데, 목덜미부터 왼팔까지 문신이 쭉 이어져 있었다.


싹, 싹


매대를 닦는 주인의 손길이 거칠어진다.

앙다문 주인의 입을 볼 때, 적어도 그가 김기민을 좋게 보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김기민은 피식 웃었다.


‘가죽 주머니를 옷 안에 감춘 건 잘한 일이었네.’


기민이 매장 안에 준비되어 있던 테이블 앞 의자에 털썩 앉자, 가게 주인이 한숨을 다 들릴 정도로 푹 내쉰다. 어쩌면 들으라고 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김기민은 그런 것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고, 가게 내부를 휘휘 둘러보았다.


기민이 또 다른 무언가를 손댈까 두려워서인지, 주인이 매대를 닦다 만 수준으로 마무리하고는 황급히 김기민 쪽으로 다가왔다.

한쪽 손에는 여전히 걸레를 쥔 채인 것을 보니, 김기민을 얼른 보내고는 다시 가게를 청소할 생각인 듯했다.


이내 기민의 맞은편에 앉은 주인이 억지로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러, 팔러?”


“팔러. 근데 말이 좀 짧으시네?”


“그... 냄새가 오죽 심해야죠.”


가게 주인이 뜨끔한 듯, 말투를 얼른 바꾸었다.

악취를 이유로 대고 있으나, 핑계라는 것을 기민은 잘 알고 있다. 괴수사냥 끝나고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로 바로 거래에 들어가는 경우도 꽤 흔한 일이다.

괴수의 피비린내와 배설물은 냄새도 안 나나?


‘핑계를 대도 말 같은 걸 대야지.’


기민은 자신의 행색을 슬그머니 되새겼다.

텁수룩한 머리와 얼굴을 온통 가릴 정도로 제멋대로 자란 수염, 헌옷 수거함에서 빼내어 치덕치덕 걸친 옷차림.

그가 입맛을 슬그머니 다셨다.


‘아마 노숙자가 헛수작 부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차림이 이래 버리니 다른 데 가더라도 대접은 마찬가지일 것 같구만. 나야 뭐 값만 제대로 받으면 되니까.’


김기민이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 그럴 수 있죠. 이해합니다.”


주인이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물건 팔러 오셨다니, 물건 보여 주시죠.”


“좋습니다.”


김기민이 살며시 쥐고 있던 주먹을 테이블에 올리고, 손가락을 천천히 펴 보였다. 벌어지는 손가락 사이에서 붉은 광채가 빛났다.


기민의 손 안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붉은 정수.


주인의 입이 쩍 벌어지고, 쥐고 있던 걸레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


주인은 아찔해지는 정신을 다잡았다.


저 광채를 본 순간, 이제 상대가 노숙자고 거지새끼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보물은 가질 자격이 있는 자가 가져야 하는 것이다. 저 귀물(貴物)은 노숙자의 손에 있기에는 너무 아깝다.


‘대체 어떻게 저런 보물이 저딴 놈 손에 들어간 거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물을 가졌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추론을 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지금 웅담의 광채에 눈이 먼 상태였다. 남자는 지금 당장이라도 노숙자의 손에서 물건을 강탈하고 싶은 욕망을 참아내며 얼굴에 애써 미소를 띄워 보였지만, 그의 목덜미의 문신이 욕망으로 꿈틀꿈틀거리는 것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


“좋은 물건을 가져오셨군요.”


“네, 뭐.”


“...거대토끼의 심장이라니요.”


거대토끼의 심장?

어디서 개수작이란 말인가?


물론 둘이 약간 비슷하게 생기긴 했다.

빨간 데다 광채가 나는 게 비슷하다.


하지만 명색이 웅담이다. 둘을 같이 놓고 보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수준인데 지금 그걸 속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밀림에서 싸구려 재료도 좀 챙겨올 걸 그랬나?’


웅담을 꺼내자마자 똥파리가 꼬이는 것을 보면서, 기민은 밀림에 버려 두고 온 돈 안 되는 재료들이 살짝 아쉬웠다.


마비가루나 맹독가루를 팔아서 일단 작은 돈부터 챙기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 가루들은 기민의 무기다. 전쟁을 준비하는 자는 무기를 함부로 팔지 않는다.


기민이 피식 웃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드르륵-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아니 잠깐만요. 잠깐만요. 잠깐만요. 제발 잠깐만요, 선생님!!”


의자 밀리는 소리에, 주인은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 저 노숙자가 웃으며 일어서는 꼬라지를 보니 저놈은 지금 자신이 뭘 파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저놈이 그 괴수를 잡았을 리는 없으니 저건 일단 백프로 장물이다. 하지만 저런 물건은 장물이라도 손에 넣어야 한다.

장물인 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 정도 되는 물건이면 저걸 사가는 사람이 세탁 정도는 알아서 할 터이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저 물건을 주인 자신의 손에 넣는 것이고,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저놈을 일단 다시 자리에 앉혀야 한다.


“제가 잘못 봤습니다. 웅담이네요! 웅담. 아주 질 좋은 웅담이네요. 너무 좋네요.”


거의 광기에 차서 제발 다시 앉아 달라는 눈빛으로 말하는 주인에게, 노숙자가 웃으며 말했다.


“네. 웅담인 건 저도 알고요. 웅담을 토끼심장으로 속이려 하는 사람이랑 어떻게 거래합니까? 대체 믿을 수 있어야 말이지.”


주인이 거의 읍소하듯이 두 손을 모았다.


“제발... 제발!! 진짜 잘 쳐 드릴게요. 진짜로!! 저 한번 믿어보세요. 제발요.”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다.


“다음 손님에겐 그러지 마세요.”


기민은 고개를 저으며 의자를 테이블 안으로 밀어넣고는 나갈 준비를 했다. 그 때 가게 주인의 고성이 터졌다.


“야 이 씨ㅡ벌새끼야! 노숙자 새끼가 도둑질한 물건 가지고 어디서 유세야!! 운 좋게 얻은 거 그냥 조용히 놓고 꺼져, 뒤지기 싫으면. 이 씨벌럼아!”


주인이 핏발 선 눈으로 매대로 달려가더니, 안쪽 깊숙한 곳에서 샷건을 뽑고는 기민을 겨누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게 이미 웅담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기민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거 쏘면 여기 문이고 창문이고 다 깨질 텐데?”


문이랑 창문이 깨져나가면 가게 주인이 총을 쏴서 사람을 죽인 게 드러나지 않겠냐는 질문이었다. 가게 주인이 의기양양하게 답한다.


“이거 방탄유리야, 이 새끼야!!”


“아, 그래?”


기민이 낄낄 웃고는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CCTV 3대. 흠.. 형태를 보아하니 영상 원격 전송형. 여기에서 영상을 폐기하기는 어렵겠는걸. 그러면 여기서는... 그렇게 하자.’


아무래도 능력을 대놓고 보이는 것은 아직 조심스럽다. 모두의 앞에 오연하게 나서는 것은 약점을 보완하고 나서이다. 지금은, 조금 돌아갈 필요가 있다.


기민은 웃으며 가죽 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철커덕!!


주인은 웃고 있던 기민이 갑자기 고간춤에 손을 쑥 집어넣어 주물럭거리자, 화들짝 놀라 샷건을 장전했다.


“아 거 진짜. 거시기 좀 긁는 거 정돈 괜찮잖아?”


기민이 느물거리자, 주인이 이를 악물었다.


‘더러운 새끼. 지금 쏴버릴까..? 아냐. 그러다 웅담이 상할 수도 있어. 아직 유효사거리 내야. 웅담은 받고 쏘자.’


주인이 총구를 더욱 가까이 들이밀었다.


“새꺄, 웅담 당장 테이블에 놓고 여기로 굴려. 셋.. 둘.. 으웩.. 더러운 새끼..”


고간춤에 들락날락한 손가락을 김기민이 쪽쪽 빨자, 주인은 역겹다 못해 혐오하는 표정을 지었다.

김기민의 손가락에 묻었던 하얀 가루를 보았더라도 같은 반응이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민은 속으로 웃으면서 셋을 세었다.


‘셋.. 둘.. 하나.. 방출.’


그리고 가게 주인은, 기민을 역겨워하는 그 표정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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