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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함무라비 스타일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검성고길동
작품등록일 :
2019.08.29 20:16
최근연재일 :
2019.10.1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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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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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2화

DUMMY

광대 가면을 쓴 진행자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자, 박수가 쏟아진다.


“네, 네. 다 공사다망하신 분들일 테니 빠르게 시작하죠. 자 다들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진행자는 크게 소리치며 무대의 분위기를 띄운 후에, 손가락 세 개를 펴서 내밀었다.


“셋!!”


“둘!!!”


“하나!!!”


지잉-


경매가 이루어질 무대와 객석 사이에 투명에 가까운 결계가 드리워졌다.

능력 감지 결계.

경매물품에 개수작을 부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다크 옥션, 경매를 시-작-합니다!!!”


첫 박수보다 수 배는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첫 물건! 유령족제비 소음기!”


“자는 마누라 옆에서 80명을 쏘아죽여도 마누라가 깨지 않는 멋진 물건이지요. 아, 마누라를 제일 먼저 쏜 거 아니냐고요? 하하, 선생님 혹시 결혼하셨습니까? 네, 역시 하셨군요.”


“유령족제비 소음기, 믿고 사는 TEAM 트라이앵글의 작품!! 자자, 가겠습니다. 시작가 1000! 아, 바로 1300! 1400! 1500!!! 더 안 계십니까? 네! 1500에 낙찰되었습니다!


경매는 유쾌하면서도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점점 달아오르는 분위기에 더 이상 경매장 안의 빈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특히 중간중간 마약이 등장할 때 분위기가 격하게 달구어졌다.

차지한 사람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신경전이 어찌나 흉흉했는지, 경매장 중간중간 서 있는 공증인과 보안요원들이 그 사람들 옆으로 자리를 옮겨 대기하는 일도 있었다.


“워.. 저 마약 한 덩어리가 500억 원? 미친 거 아닌가요?”


“저 한 덩어리로 천만 명이 파멸할 거에요. 천만 명 인생값으로 500억 원이면 싼 거죠. 아, 보통 하는 놈이 또 하니까 천만 명까지는 아닌가?”


이세라의 답변에 기민이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 거래면 경찰도 보고 있을 것 같은데요.”


“다크 옥션에 경찰 프락치, 당연히 있죠. 왜 없겠어요? 그런데 못 막고 못 잡아요. 다크 옥션은 호구가 아니니까요. 상상 이상의 일들이 많았고, 다크 옥션은 그 모든 일을 이겨내 왔어요.”


“하긴, 그런 신뢰가 없었다면 다크 옥션에 아무도 오지 않았겠네요.”


“비교적 최근 시도로는 일단 내부로 들어온 경찰이 소환석으로 동료들을 부르려고 한 적이 있었죠.”


“오.. 신선한 접근이네요. 어떻게 되었나요.....라고 묻기엔 지금 다크 옥션이 너무 멀쩡하군요.”


“맞아요. 다크 옥션에 발을 들인 경찰은 단 한 명도 없었죠. 전부 행방불명 처리됐어요.”


“발을 들이지조차 못하다니..”


“그런 곳이에요. 아무튼, 일반인이 올 곳은 아니란 이야기죠.”


“아이고, 그놈의 일반인. 유념해 두죠. 일반인을 만나면 꼭 주의를 주겠습니다.”


뜬금 기승전 일반인이다.


기민은 고개를 팩 돌려버리는 이세라를 보며 픽 웃고는, 지금 대화에서 떠올린 것들에 집중했다.

지금 대화에는 곱씹어볼 만한 부분들이 꽤나 있다.

그가 당연하게 생각해서 놓쳐 온 부분들이다.


‘초대장. 초대장부터가 좀 이상해.’


생각해 보면 초대장부터가 이상했다.

명함 사이즈의 종이 한 장 찢었다고 공간이동이 발동한다? 이는 초대장이 보통 물건이 아니고, 이는 그 물건을 만든 사람 역시 일반인은 아님을 의미한다.


당장 귀환석하고만 비교를 해 봐도 알 수 있다.


돌을 정성스레 세공하고, 여러 공간능력자들이 합심해서 합성·부여능력을 때려박는다.

세공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합성·부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염려가 있어, 능력을 최적으로 발휘하기 위한 세팅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이 초대장은?

그야말로 일반적인 명함이다. 게다가 그걸 어떻게 찢으라는 지시도 없이, 그냥 찢으면 발동한다. 말이 안 되는 기술력이다.


‘그리고 방금 경찰 이야기도 그렇고.. 다크 옥션에는 공간왜곡이나 교란 결계가 쳐져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 아니면 지금 이 다크 옥션이 열리는 공간 자체가 아공간이라던지... 어?!’


기민은 순간 자신의 상상에 소름이 돋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게 아공간이라고? 아냐. 그랬다면 굳이 컨테이너와 트레일러를 쓸 이유가 없지. 건물을 지어도 되잖아.’


‘...아냐. 진짜 아공간일 수도 있어. 컨테이너와 트레일러는 아공간을 위장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어. 가능성을 열어 놓자.’


‘찜찜하다.. 얼른 볼일 보고 여기를 나가고 싶군.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런 추론을 한 것만으로 그는 이 다크 옥션이라는 장소 자체가 싫어졌다.

타인의 아공간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기민은 생각을 정리했다.


‘어떤 경우든간에 다크옥션의 주최 측에는 공간계열 능력자,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능력자가 개입하고 있다.’


공간계열 능력자, 힘, 이권...

기민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자가 있었다.


‘최세헌... ?’


기민은 일단 이 화두와 추론을 마음에 묻어 두었다.

그가 무대로 고개를 돌렸다.


“자!! 다음 작품!!! 이재필의 비운의 유작, 생명의 나무를 소개합니다!!”


마침 경매 진행자가 ‘생명의 나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생명의 나무.

기민의 목표물이다.


‘돈 주고 사진 않을 거지만.’


기민은 앉은 자세를 바꾼 후, 팔짱을 끼어 자신의 손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했다. 작전을 수행할 때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그의 옆에서, 이세라 일행이 나직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노리는 사람이 많은 예술품인데, 저희도 한 발 걸쳐볼까요?”


“차익을 노리는 거야? 할아범, 삼촌에게 혼날걸?”


“허허허, 아닙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영험함이 있는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모르잖습니까. 그분께 효험이 있을지..”


“...”


꺄르르 웃던 이세라가 조용해졌다.


드르르륵-


그 때 물건이 실린 트레이가 무대로 나오기 시작한다.

조각상이 넘어지거나 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경매물품에 그러한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대부분의 경매장에서는 염동력 능력자를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도 보이지 않는 힘이 부드럽게 조각상을 받치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트레이가 무대 가운데 도착했다.


경매 진행자가 팔을 높이 치켜올렸다가 허리를 굽히며 아래로 휘두른다.

지휘봉 휘두르듯 팔을 던지는 그의 모션에 맞추어, 조각상에 덮인 하얀 천이 흘러내리듯 벗겨졌다.


오오오-


조각상은 압도적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경매꾼들까지 탄성을 지를 정도로.


나무의 몸통과 가지는 바위를 조각해서 만들었는데, 질감과 양감 모두를 기가 막히게 살렸다.


들어갈 곳 들어가고 나올 데 완벽히 나왔는데 거기에다가 껍질의 표현은 더 끝내 준다. 멋모르는 사람이 보았으면 회색빛 나무인 줄 알았을 것이다.


가지는 부드럽고 유연하게 뻗었으면서도 돌의 물성을 탄탄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하늘로 뻗은 가지들을 보면서, 진짜 나무에다가 돌가루를 씌워 나온 게 아닌가 의문을 품는 경매꾼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뭇가지 군데군데에 기운석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어설프게 배치하였다면 바로 ‘나무에 붙은 흉측한 암세포’ 소리를 들어도 쌌겠지만.. 그랬다면 예술품으로 이 자리에 나오진 못했으리라.


잎사귀 하나 없이 몸통과 가지만 있는 조각상에, 기운석을 배치한 것만으로 나무가 살아나고 있었다.


‘이래서 생명의 나무구나..’


경매장은 잠시나마 엄숙한 감동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순간에 기민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게 까딱이고.


찰나의 정적을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박살낸다.


“아니.... 아니!!!”


생명의 나무가 빛을 발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나무에 붙어 있던 기운석들이 빛으로 산화하는 중이었다.


빛무리가 불타오르듯 나무를 뒤덮었다.

장내가 웅성웅성해졌다.


나무를 휩싼 빛은 미친 듯이 타오르다가, 안개처럼 흩어지다가, 도깨비불처럼 일렁이다가, 흐느끼듯 나부끼다가, 최후의 한 마디처럼 장엄하게 확 타오르고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더 이상 나무에 생명은 없었다.

그리고 객석의 술렁임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 때 누군가가 무대 옆에서 난입해, 진행자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진행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경매는 무사합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아무래도 경매를 일단 그대로 진행하기로 한 듯 싶다.

마이크 볼륨을 조금 올린 것인지, 아까보다 볼륨이 좀 더 컸다.


객석의 술렁임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리고 기민은, 사랑을 담뿍 담은 눈빛으로 자신 앞의 능력창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성 본사건물의 그 거대한 변이석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 했었는데.

이제서야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변이석은 일반 변이석이 아니었어.’


‘잠재 특성 가챠 변이석이라니...!’


변이석 등급도 괜찮은 편이다. A등급은 없었지만 최소가 C등급이고, B등급 숫자가 은근히 있었다.


50여 개의 변이석을 한 번에 흡수하니 가챠 성공률이 제법 괜찮다.


[ 상태이상흡수(S)의 특성 중 하나가 향상됩니다. 향상될 특성 : 흡수 거리 ]


.

.

.


일반 능력향상 메시지들을 고갯짓으로 치운 기민이, 잠재특성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상태이상흡수(S)의 새로운 잠재 특성이 개방됩니다 : 일기장 ]


[ 당신은 현재 당신이 보유한 상태이상을 ‘일기장’에 저장해 둘 수 있습니다. 저장해 둔 상태이상은 언제든지 방출이 가능합니다.

현재 책갈피 : 3개 ]


‘쉽게 말하면, 무기고로군.’


원래 방출을 위해서는 기민에게 해당 상태이상이 걸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투를 위해 몸에 상태이상을 달고 다니는 것은 귀찮고 괴로운 일이다.

기민은 이러한 점을 ‘가루’ 사용으로 메꿔 왔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하지만 ‘일기장’이 있다면?

상태이상을 저장해 두고 쾌적하게 다닐 수 있다.

게다가 방출할 생명체가 없더라도 일기장에 저장해서 살아날 수 있다.


또한 희귀한 상태이상을 발견했을 때, 흡수해서 비밀무기처럼 보관해 둘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좋아. 아주 좋아.’


잠재 특성은 언제나 옳다.

앞에서 경매가 진행되든 말든, 생명을 잃은 ‘생명의 나무’가 오히려 예정가보다 몇 배나 되는 고가에 낙찰되건 말건 더 이상 기민은 관심이 없었다.


*

*

*


그 시각 무대 뒤쪽에서는 피의 폭풍이 불기 직전이었다.


“누구야?”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긴 뭘 몰라. 이 개 씨발 새끼들아. 저 앞에 감지 커튼이 멀쩡한데? 그럼 관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수작 부렸단 얘기야? 말이 안 되잖아. 누구야?”


이 추론은 거의 다 맞았으나, 단 한 가지 오류가 있었다.

기민의 능력이 ‘감지’에 면역이라는 걸 상정하지 못한 것.

하지만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어찌 대비하겠는가?


“진짜 저흰 아닙니다.”


경매를 보조하던 사람들이 사색이 되어 변명한다.

하지만 책임을 묻는 자는 추궁의 고삐를 늦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아니긴 뭐가 아냐. 아 그렇네. 야 염동력.”


화살이 조각상을 염력으로 받쳐 주던 능력자에게 돌아갔다.


“...너 조각상 받치다가 힘조절 잘못한 거 아냐?”


기운석에 실수로 힘 줘서 날려먹은 게 아니냐는 추궁.

제법 그럴 듯한 의심이다.

순간 십여 개의 눈동자가 한 명에게 쏠린다.


책임을 추궁중인 저 자는 ‘공증인’으로, 즉결처분에 충분한 능력과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염동능력자는 지금 자신이 하는 말 한 마디가 유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절대 아니에요. 절대로. 기운석 날아갈 정도로 힘 줬으면 가지가 먼저 부러졌겠죠. 가장 가느다란 가지 하나도 상하지 않았어요.”


염동력 능력자는 입술을 떨면서, 사력을 다해 변명했다.


“흠....”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염동능력자를 바라보던 공증인이 근처에 있던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 때, 그의 직속수하가 조심스레 간언했다.


“그냥 지금 객석에다가 죄다 간파 돌려 버리라고 할까요?”


“유지력은 되냐? 돌리다 찍 쌀 거잖어.”


공증인이 짜증스레 답했다.


“그래도 저희도 윗선에 보고는 올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되는 만큼만 하죠 뭐. 사고 터지고 오히려 더 비싸게 팔아제끼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만 해 놓으면 위에서 뭐라고 안 할 겁니다.”


공증인이 직속수하를 바라보았다.


“새끼. 많이 컸네. 이제 보여주기식 가라도 치자고 하고.”


“헤헤헤.”


“하긴, 중요한 건 와꾸긴 하지. 와꾸 괜찮으니까 이 정도는 봐 주실 거야. 지금 눈깔이 몇 명 비지?”


“짬찌 3명에 어르신 한 분입니다.”


지금 일손이 비는 정보 계열 능력자가 몇 명이냐는 질문에, 짬찌(=짬밥 찌끄래기)인 조무래기 셋에 공증인 하나라고 답하는 직속 수하였다.


“아 씨. 여기서 어르신 얘기가 왜 나와. 새꺄, 내 가오는 생각 안 하냐? 짬찌만 죄다 불러서 풀가동해.”


“예.”


해파리 가면을 쓴 직속수하가 허리를 숙여 보인 후 조용히 물러났다.


작가의말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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