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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글장이

세상을 파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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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머니나
작품등록일 :
2015.03.20 13:48
최근연재일 :
2018.05.20 14:26
연재수 :
165 회
조회수 :
43,030
추천수 :
935
글자수 :
1,193,004

작성
16.03.12 16:04
조회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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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8쪽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8: 꿈의 끝 (25)

DUMMY

막사 안의 공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아니, 이보다 무거울 수 없었다. 가운데에 놓인 간이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대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들은 밤을 연상케 했다.


그들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후퇴가 시작되자 잽싸게 몸을 뺀 하르그니스 공작은 그렇다 쳐도, 최전선에서 격전을 치루고 목숨을 걸고 도망쳐 나온 황제와 후퍼 후작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막사를 호위하고 있는 병사들은 물론이요 임시 진지를 구축하고 고된 퇴패의 끝에 쓰러진 장병들의 모습도 보고있기 안쓰러웠다.


때문에 이번엔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멀쩡한 상태로 일을 마무리 한 루프는 모종의 죄책감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로 놀라운 결과였다. 루프가 이번 사태를 거쳐가면서 마주했던 괴물들의 전투력을 생각해 보면 루프가 멀쩡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목숨은 고사하고 팔 하나 부러지지도 않았다 바닥에 이리저리 구르면서 생채기가 좀 생기긴 했지만 그게 전부다. 라키안은 대놓고 놀라워 할 정도였다.


루프는 슬쩍 그 라키안의 눈치를 보았다.


"폐하."


으이구, 이 눈치 없는 양반...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황제를 거리낌 없이 불러 제낀다. 사실 라키안과 루프를 이 곳으로 부른 것은 다름아닌 황제였다. 불러 놓고 아무 말이 없으니 라키안이 뭐라 할 법도 하긴 하다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황제의 저 표정을 보고 당당하게 말을 걸 수 있을리가 없었다.


"후우... 그래. 불러놓고 미안하군."


황제의 시선은 테이블의 정 중앙을 무미건조하게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 뭐 딱히 위로의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답다. 너무나도 라키안답다. 예전 같았으면 심장이 콩알만해졌겠지만 이제는 루프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는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았다. 평상시였다면 길길이 날뛰었을 후퍼 후작 조차도 아무말도 못하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르그니스 공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공감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황제가 느끼고 있을 상실감을. 그리고 그들의 눈 앞에 닥쳐올 국가 존망의 위기를.


카르디언의 소실. 사상 최강의 카르디언 이사벨라를 보유하고 있던 라오디게아 였지만 그녀가 전투 중 전사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일단 타국이 카르디언을 앞세워 공격해 올 경우 방어할 수단이 전무하다는 점. 또한 한 번 패배한 적이 있다고는 해도 이사벨라에 대한 절대 신뢰를 유지하고 있던 자국민들의 민심. 모든것이 라오디게아라는 국가가 사상 초유의 위기에 맞닥드려 있다는 것을 맗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황제의 마음은 단 한 가지의 이유오 갈 곳을 잃고 정처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의 꿈을 받쳐 줄 존재가 없다.


더 이상 자신의 애정을 쏟아부을 존재가 없다.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황제의 상실감이란 그런 종류였다. 라키안은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루프는 은연중에 그가 또 무언가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무너진 황제를 일으켜 세워주진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 보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 정도는 이성적으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카르디언은 곧 새로이 등장할 겁니다."


라키안의 말에 하르그니스 공작이 반색했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예. 아마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겠지요."


후퍼 후작 역시 라키안의 말에 조금은 활기를 되찾은 모양이었다.


"그것은 불행 중 다행..."


허나 그는 말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황제의 앞에서 할 말이 못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별다른 반응 없이 그저 테이블 위를 흐릿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테이블 위로 깍지끼고 모아진 그의 두 손이 그의 정적을 대변하는 듯 했다.


"아마 타국에서 이사벨라경의 전사 소식을 듣고 군을 파견해서 라오디게아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전에 새로운 카르디언이 탄생하고 당신들을 찾아 올 겁니다. 문제는 그 햇병아리 카르디언으로 당신들 나라에 이를 박박 갈고 있을 타국의 카르디언들을 막아햐 한다는 점이죠."


라키안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시돋친 나무뿌리 같았다. 아무리 루프가 유경험자라곤 해도 서서히 긴장될 수 밖에 없다.


"그건 당신들 하기 나름입니다."


타인이었다면, 다른 상황이었다면 불경죄로 잡혀 삼족지화를 당하여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당돌한 말들이었지만 이 자리의 그 누구도 라키안에게 뭐라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억지로라도 부정하기조차 쓰라릴 정도로 차가운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이윽고 입을 뗐다.


"그렇군. 잘 알겠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눈이 라키안을 향했다. 하지만 여전히 초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거래를 훌륭히 완수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라키안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대충 대답했다.


"뭐 상인으로서 당연한거죠. 그래서 보수에 대해 마무리를 좀 지어야 하지 않겠어요?"


루프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서 땀이 난다.


황제는 별다른 반응도 없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무엇을 원하나?"


그의 시선이 다시 허무한 테이블 위로 떨어지자 라키안은 잠시 그런 황제를 말 없이 쳐다 보았다. 이내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당장이라도 불경죄로 참수형을 당해도 모자랄 정도의 막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 정말이지... 이거야 원 진짜 못해먹겠네요. 그래도 세상이 정복왕이라는 칭호까지 붙여주고 떠받들길래 뭐 얼마나 대단한지 코딱지만한 궁금증이 있기는 했다만 이래서야 대실망쇼 수준도 못되잖아요. 당신이 얼마나 이사벨라경을 아끼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이제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형편인데..."


라키안의 독설은 공작과 후작의 경악스런 표정에도 불구하고 이어졌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국가 전체의 인간들 목숨을 어깨에 짊어졌다는 황제가 저딴 꼬라지를 하고 있어서야 장사고 자시고 할 맛도 안나네요. 말이 좋아 정복왕이지 저래서야 힘 쎈 친구 뒤에 숨어 있던 겁쟁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밖에 안 돼 보이는군요."


라키안은 의도적으로 잠시 말을 끊었다.


"... 보수고 뭐고 기분 다 잡쳤어요. 우린 그냥 갈테니까 잘 먹고 잘 살아 봐요."


그러더니 그 속을 알 수 없는 행상인은 공작과 후작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휑하니 막사를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황제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시선을 못박아 둔 채로 있었고 공작과 후작은 라키안이 나가버린 막사 입구가 펄럭이는 모습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쳐다 볼 뿐이었다.


아, 갑자기 다시 얼굴만 쏙 들어왔다.


"요새 지하에 사로잡혀 있던 포로들.. 상태가 많이 안 좋긴 하지만 구출하는 것 잊지 마시구요."


그리고는 마치 애시당초 여기에는 볼 일이 전혀 없었다는 듯이 횡하니 사라지는 그 면상을 보고 있노라니 누구 하나 뭐라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라오디게아라는 거대 제국의 황제 앞에서 저렇게 당돌하게 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을 당황스럽게 한 것이었다.


물론 현재 상황의 암울함이 겹쳐지면서 그네들은 더욱 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루프는 얼떨결에 그 자리에 남겨지고 말았다.


작가의말

 황제 불쌍하네요..


 그나저나 루프 이 녀석 이제 어쩐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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