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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글장이

세상을 파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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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머니나
작품등록일 :
2015.03.20 13:48
최근연재일 :
2018.05.20 14:26
연재수 :
165 회
조회수 :
43,022
추천수 :
935
글자수 :
1,193,004

작성
16.03.09 09:42
조회
303
추천
3
글자
8쪽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8: 꿈의 끝 (22)

DUMMY

루프의 마음속의 외침이 불꽃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고작 주먹 크기만 했던 불꽃이 순식간에 원형으로 팽창해 나가며 허공에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강렬한 충격파가 공중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왔다. 루프를 마구 지나쳐가며 도주하던 라오디게아의 정규병들도 그것을 보고 아연실색해서 소리를 질러 댔다.


"히이익! 마법사다!"


"오오, 화염의 마법이다!"


살 수 있다는 희망, 아니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는 절망. 저 불꽃이 누구의 것인지 알지 못하는 저들은 저마다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루프는 그렇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눈을 들어 전방을 보니 듀라크가 어느새 몸을 일으켜 있었다. 땅과 함께 얼어 붙었던 발도 괴력으로 떼어 낸 상태였다. 살점이 뭉터기로 찢어져 나갔는지 피인지 고름인지 분간도 안 되는 괴상한 액체가 마구 뿜어져 나오는 다리였지만, 놈은 그것을 꿋꿋이 디뎌가며 몸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루프으으! 아직도 멀었는가!"


한음이 빠른 움직임으로 듀라크의 주위를 선회하며 화살을 마구 쏘아대는 모습이 보였다. 화살이 적중할 때마다 번개가 튀고 강풍이 몰아치는 등,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듀라크는 그저 잠시 움찔거릴 뿐, 이내 다시 앞으로 전진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예전의 루프가 봤다면 골백번 기절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었다.


또한 만일 저기서 한음이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스크롤의 가격이 얼마인지 안다면 루프는 대경실색해서 한 번 더 기절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리나드 역시 듀라크의 아래에 있었다. 그녀는 어느샌가 합류한 후퍼와 함께 듀라크의 발목을 마구잡이로 베어 가르고 있었다. 아직 듀라크가 자세를 완전히 갖추지 못했기에 아직까지는 별다른 반격이 없었지만 놈이 곧 자세를 다시 잡고 나면 어떻게든 발목에 들러붙는 작은 방해물들을 처리할 것이 틀림없었다.


기회는 지금 뿐이다. 루프는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서 다들 피해!"


루프는 고함을 꽥 지르고는 오른손에 든 검을 앞으로 내세웠다.


검을 써 본 적도 별로 없고, 쓸 줄도 모른다. 벨 줄도, 찌를 줄도, 들고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춰 본 적도 없다.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검의 힘에 이끌리어 거기에 자신을 맞추는 것.


책에서 보아왔던 훌륭한 모험가나 기사들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너무나 보잘것 없고, 이 검이 없다면 루프라는 그 인간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 싸움이 난다 해도 어떻게든 1초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땅바닥을 구를 정도 뿐.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세상은, 그 남자, 세상을 파는 자는 이 검을 내게 주었다. 아니, 팔았다. 그리고 이 검의 힘 또한 나의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해 왔다. 선망하는 사람의 목숨을 지키기도 했고, 악한 괴물을 쓰러뜨리기도 했으며, 좋아하는 여자애와 싸움도 해 봤다.


그러니까, 루프라는 사람이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그것으로 이 검의 힘이 내게 주어진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검으로, 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루프의 눈동자에 자리에서 벗어나는 일행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막 태세를 다시 갖춰서 달아나는 황제를 향해 달려 나갈 듀라크의 모습도 정확히 포착되었다.


허벅다리를 노려서 다리를 끊어내고 라키안이 올 시간을 번다!


아니, 그런데 잠깐. 옆에 피신한 이리나드를 슬쩍 보니 뺨이 무언가에 스쳤는지 피가 흐르고 있다. 병아리 같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는게 그렇게 속이 쓰릴 수가 없다. 내가 이 짓거리를 할 시간을 벌어주겠다고 상처를 입고 온 건가? 그것도 저 예쁜 얼굴 위헤?


덧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흉터가 남아서 평생 안 지워지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얼마나 자신을 자책하게 될까? 그녀에게 얼마나 미안할까?


아니, 저 상처가 평생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저 거룩한 얼굴에 생채기가 났다는 말이냐?!


무지막지하게 화가 났다. 이리나드 얼굴에 상터 한 줄기가 일으켰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아, 그래. 이걸 이해 하려면 아까전에 잠깐 대화를 나눴던 그 '신'이라는 작자를 떠올려야 할 지도 모른다. 그 놈이 여느때 처럼 내 성질을 긁어 놓았고, 이리나드의 저 작은 상처는 그것을 폭발시켰다.


저 듀라크라는 놈은 그 화풀이 상대다.


루프의 심장이 마치 강철처럼 단단하게 맥동했다.


"너 이 살덩이 괴물자시이이익! 남의 여자한테 무슨 짓이냐아아아!"


옆에서 근심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던 이리나드가 '뭐?!'라고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못 들은 척 하겠다. 되려 루프는 검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불꽃을 피운다. 어디에? 허벅지? 아니야, 놈의 몸 전체다. 머리처럼 생긴 저 괴상한 부분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모든 부분에, 놈의 피부 밑에다가 발화점을 발생시킨다.


모조리 태워 버린다.


"크워어어어엉!"


순간 듀라크의 전신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괴물이 빛을 뿜어내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놈의 피부라고 하기에도 모호한 표면적 아래에서 간헐적으로 커졌다 작아졌다는 반복하는 빛덩이들이 마구잡이로 피어 오르면서 생겨난 빛이었다. 정오에 가까운 태양이 한창 밝음에도 불구하고 그 불그스름한 불꽃들은 확연히 듀라크의 몸 안에서 춤추고 있었다.


놈도 고통을 느끼기는 하는지 놈의 괴성이 울려퍼졌다.


"어이... 루프 자네 지금 뭐 하려는...?"


한음이 얼빠진 얼굴로 루프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루프가 앞으로 내밀고 있던 검을 순간적으로 역수로 바꿔 쥐고 사정없이 바닥에 내리 꽃았다.


동시에 대기를 찢어 발기는 듯한 폭발음이 헤링턴 평야 가득히 울려퍼졌다.


콰아아아앙!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그 폭발음과 동시에 듀라크의 전신에서 불기둥들이 폭발하듯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놈의 썩은 살덩이들을 말 그대로 온전히 연소시키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열기가 일행이 서 있는 곳까지도 닿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시뻘건 화염이 듀라크의 그 거대한 몸체를 통째로 찢어 발기며 피어 올랐다! 놈의 산성 체액이 튀어 흐를만도 하건만 그것도차도 공기에 닿기조차 전에 통째로 증발해 사라지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연기와 아지랑이로 흐려지는 대기가 비현실적인 광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불멸할 것으로만 보이던 괴물이 산산히 스러져가고 있었다.


"마, 맙소사..."


한음의 비명에 가까운 탄성은 듀라크가 내지르는 고통의 울부짖음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했다.


루프의 시선이 흐려져갔다. 하지만 그는 똑똑히 보았다. 눈 앞에서 거대한 산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확신을 얻었다. 저 산은 이제 없어질 것이다. 흔적도, 형체도 남지기 않고 모조리 타버릴 것이다.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놈을 쓰러뜨리긴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 '신'이란 작자가 원하던 대로 되어 버렸다. 자신이 살아 남았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죽어 줄 수도 없지 않은가? 도대체 나는 뭐가 어떻게 되먹은 사람인가? 이 꿈은 뭘까? '신'은 누굴까?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심지어 진짜이긴 한 걸까?


아아, 눈이 감긴다. 루프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 마치 보쥬라크에서 세듀서가 쏘아낸 검은 회오리같은 마법을 검으로 막아냈던 그 때처럼, 루프는 힘없이 그대로 자리에 쓰러져 내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리나드가 재빠르게 쓰러지는 루프를 붙잡아 세웠다.


그녀는 소년의 얼굴을 조심스레 들여다 보았다. 마치 여차하면 깨어지기라도 하는 유리를 대하듯이 말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너... 아까 그거 무슨 뜻이야?"


하지만 기절한 소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작가의말

 오오 루프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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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 16.09.21 217 2 12쪽
13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 16.09.20 216 2 16쪽
13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0: 사랑의 묘약은 적당히 마십시다 (마지막) 16.09.19 237 3 19쪽
13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0: 사랑의 묘약은 적당히 마십시다 (3) 16.09.17 275 2 11쪽
13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0: 사랑의 묘약은 적당히 마십시다 (2) 16.09.15 214 2 8쪽
12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0: 사랑의 묘약은 적당히 마십시다 (1) 16.09.11 236 2 7쪽
12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9: 흑녀신교는 태동한다 (3) 16.09.10 205 3 10쪽
12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9: 흑녀신교는 태동한다 (2) 16.09.05 211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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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8: 꿈의 끝 (마지막) +1 16.03.17 322 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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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8: 꿈의 끝 (26) 16.03.13 310 2 7쪽
11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8: 꿈의 끝 (25) 16.03.12 249 3 8쪽
11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8: 꿈의 끝 (24) 16.03.11 168 3 10쪽
11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8: 꿈의 끝 (23) 16.03.10 266 2 14쪽
»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8: 꿈의 끝 (22) 16.03.09 303 3 8쪽
115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8: 꿈의 끝 (21) 16.03.07 312 2 10쪽
11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8: 꿈의 끝 (20) 16.01.20 265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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