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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글장이

세상을 파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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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머니나
작품등록일 :
2015.03.20 13:48
최근연재일 :
2018.05.20 14:26
연재수 :
165 회
조회수 :
43,043
추천수 :
935
글자수 :
1,193,004

작성
16.09.1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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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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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8쪽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0: 사랑의 묘약은 적당히 마십시다 (2)

DUMMY

루프는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아 자신의 안일함을 후회해야만 했다.

"엄청 금방 꺼지네..."

루프는 눈 앞에서 어렴풋이밖에 보이지 않는 희끄무리한 연기를 내뿜으며 사그라드는 나무 막대기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어떠한 발화 물질도 묻히지 않은 생나무 막대기에 붙은 불은 순식간에 없어졌다. 루프는 한 손으론 그 막대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론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손잡이 부분까지 타지도 않다니..."

루프는 막대기를 냅다 던져버리고 허리춤에서 검을 꺼냈다. 들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이 더 바보이 느껴진다.

'그냥 여기에 불 붙여서 들고 다니면 됐잖아!'

루프는 다시금 정신을 집중하고 검의 끝에 타오르는 불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내 보았다. 느낌이 온다! 이 느낌은, 손 끝에서 흐르던 피가 검 손잡이를 타고 그 끝까지 주욱 빨려 나가는 이 느낌은, 틀림없는 그 느낌이다!

"하앗!"

루프는 괜시리 기합까지 질렀다! 그러나...

"엥?"

불은 전혀 붙지 않았다. 당황한 루프는 다시금 열심히 검에 불꽃을 일으키려고 낑낑거렸다. 그러나 검은 아까의 그 성공이 거짓말이라도 된다는 듯 무심하게 그런 루프를 비웃을 뿐, 아무런 반응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꼭 중요할 때 말을 안듣냐, 네놈은! 아악!"

루프는 씩씩거리면서 검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떨구고 다시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래도 자기 전재산인데... 사실 라키안과 함께 다니면서 '루프의 소유'라고 할 만한 물건이라곤 이 검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말 잘 안 듣는다고 아무렇게나 버리고 갈 수도 없다.

"아오 열받아!"

루프는 씩씩거리면서 발을 팍팍 굴렀다. 그런데 의외의 소리가 발바닥을 치고 울려퍼졌다. '찰박'하는 맑고 경쾌한 소리였다. 루프는 반신반의하며 다리를 굽혀 주저 앉았다.

그제서야 검에 정신이 팔려 들리지 않았던 작은 개울물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졸졸졸 흐르는 그 소리는 루프의 정신을 대뜸 일깨웠다. 루프는 반색하며 검을 고이고이 허리에 다시 차고 준비해 온 물통에 그 냇물을 담기 시작했다.

이래저리 말을 잘 듣는 종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이 검. 팔아먹은 사람인 라키안하고 어째 이리 비슷한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루프는 무사히 물을 확보 할 수 있었다. 그래, 루프에 있어서는 아무 문제 없었다. 이 날 밤에는 말이다. 문제가 있는 곳은 이리나드, 그녀가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반쯤 감은 눈으로 바닥에 내팽겨쳐 놓은 라키안의 베낭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 고이 나무에 기대어 세워져 있는 그녀의 검, 미스트랄이 내뿜한 하이얀 빛 아래에서 그 가방은 정신을 혼미시키는 향이라도 내뿜는 것처럼 미묘한 호기심으로 이리나드를 유혹하고 있었다.

"흐음..."

조심스레 숨을 고른 이리나드는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타박거리던 루프의 발소리도 어둠 너머로 사라진지 오래다. 그것이 돌아오는 기미도 아직은 없다.

완벽히 혼자라는 것이다. 이리나드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가방으로 손을 가져갔다.

목이 마르긴 하다. 배도 고프다. 베낭 안에 뭔가 먹을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 물건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평상시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그것이 막상 자기 손에 들어오니 궁금한걸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이리나드는 루프가 돌아오는 기색이 있진 않은지 최대한 주의하면서 베낭을 열어 보았다. 예상대로, 베낭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텅 빈 가죽베낭의 축 쳐진 공간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리나드는 이내 그 안으로 손을 쑥 집어 넣었다.

'마실거... 마실거... 마실거 하나만 찾자.'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분명 눈으로 볼 때에는 아무것도 없던 베낭 손에서 뭔가가 턱, 하고 손에 걸렸다! 익숙한 모양의 그것은 틀림없는 병이었다. 마법에 대해 여려가지 지식을 가지고 있던 이리나드였지만 이것은 정말로 신기했다. 그녀는 뭔가 기분이 좋아져서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손에 잡힌 것을 쑥 끄집어냈다.

"이게 뭐지?"

이리나드가 꺼낸 것은 목이 얄팍한 팔각형 모양의 고급져 보이는 크리스탈 병. 그 안에 채워진 은은한 핑크색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다. 순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미스트랄의 빛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병 안의 액체가 자체적으로 발광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퐁, 하고 대충 끼워 놓은 코르그 마개를 잡아 당긴다. 순간적으로 강렬한, 어마어마하게 유혹적인 달콤한 향기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이리나드의 입 안에 저도 모르게 침이 분출된다.

이건 100% 맛있다. 뭐가 어찌 되었건 이 정체 모를 액체는 정말로, 정말정말정말정말 맛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목마름 또한 달랠 수 있으리라.

게다가 설마 이렇게 맛있는 향기를 풍기면서 독극물일리는 없겠지. 그것이 이 병 마개를 연 이리나드가 한 인생 역대급의 헛생각이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에 감싸인 병이 자연스럽게 소녀의 입으로 끌려갔다. 그 넘실대는 핑크색 액체는 농익은 포도주처럼 소녀의 목구멍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리나드! 나 왔어! 이거봐, 내가 물을 찾았어. 하하핫!"

루프는 목마른 이리나드에게 물을 줄 수 있다는 즐거움에 목소리가 한껏 고양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스트랄이 횡덩그레 홀로 남겨져 있는 공터에 돌아온 그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단 이리나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리나드? 이리나드, 어디갔어?"

루프는 조심스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다. 되려 저어 멀리서 뜬금없는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루프는 이 드넓은 숲에 혼자가 되었다는 공포감에 몸을 떨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이리나드가 아닌 무언가가 찾아오진 않을까 미지수의 공포가 몸을 덮친다!

"야! 이리나드 이 말괄량이 아가씨야! 어디로 간거야? 빨랑 안나와!?"

이번 한 번만이다. 이것만 꽥 소리치고 나면 절대 다시는 소리 안 칠거다. 루프는 속으로 바락바락 다짐을 하면서 소리를 있는대로 고래고래 내질렀다.

천만 다행히도, 이리나드는 루프의 그 마지막 고함을 듣고 모습을 드러냈다.

루프의 등 뒤에서!

와락, 하고 무언가가 목덜미를 껴안았다. 루프는 기겁해서 들고 있던 물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으웨악!"

매우 참신한 비명소리를 내뱉은 루프는 곧 자신의 목을 감싼 팔이 이리나드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그저, 이 아가씨가 자신을 놀려먹으려고 숨어있었구나, 그렇게 장난으로 치부해버렸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상상조차도 못한 채.

"아놔... 이리나드, 이게 무슨 짓이야? 깜짝 놀랐잖아."

"루프..."

그녀의 목소리는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쯤 되어, 루프는 이 숲 속 공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달콤한 향기가 공중에 가득히 퍼져 있다는 것에 눈치챘다. 그리고 이 향기는 은연중에 루프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어딘가에서 분명히 맡아 본 적이 있는 향기였다!

그리고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루프의 기억은, 지금 루프가 굉장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직감을 통해 처절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동시에, 등 뒤에 서 있던 이리나드가 루프를 밀쳐 땅에 넘어뜨렸다.

"왁!"

넘어지는 루프를 확 잡아채 얼굴이 하늘을 향하게 한다. 이리나드는 그렇게 루프를 자빠뜨리고 그 위에 올라 앉았다. 루프는 둥글 달 아래에서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웃음을 지으며 자신 위에 올라탄 그 소녀의 얼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아... 하아... 루프... 루프..!"

그녀의 동공이 하트모양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작가의말

 야밤에 숲 속에서 이게 뭔일이랍니까? 게다가 지금의 이리나드는 좀 무섭기까지 하군요... 루프 이 녀석 이제 어쩐담?

 

 아, 원래 이 묘약은 2장에서 야카르가 썼던 그 물약과 같은겁니다. 원래는 시전자의 피를 타서 먹여야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만일 피를 안타고 마시면 그냥 주변에 보이는 사람은 닥치는대로 사랑하게되고 마는, 무시무시한 독약입니다. 라키안이 파는 물건에 걸맞는 악함입죠. 네네.

 

 루프의 명복을 빌어 줍시다.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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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0: 사랑의 묘약은 적당히 마십시다 (3) 16.09.17 275 2 11쪽
»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0: 사랑의 묘약은 적당히 마십시다 (2) 16.09.15 216 2 8쪽
12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0: 사랑의 묘약은 적당히 마십시다 (1) 16.09.11 236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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