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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ctionist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힐링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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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Fictionist
작품등록일 :
2023.12.01 19:41
최근연재일 :
2024.04.11 16:52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58,355
추천수 :
1,520
글자수 :
573,787

작성
24.03.1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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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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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76화. 천인구 방문(2)

DUMMY

76화. 천인구 방문(2)



무너진 팔룡문 앞에서 기다리길 약 3분.

안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주위의 능력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저것들이 천선이군.’


속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그러나 아직은 내색할 수 없었기에 그냥 아니꼽다는 표정만 지어 보였다.

천선들은 내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그중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왔다.

깔끔하게 다듬은 짧은 백발과 각이 진 턱이 돋보였다. 몸집도 커서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힘 좀 쓸 법한 외모였다.


“인류의 수호자를 이끄는 왕무이라고 하오. 대만까지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소.”


왕무이가 그렇게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됐네?”


왕무이와 그 뒤에 있던 천선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보였다.


“···무슨 뜻이오?”

“뭘 입장 동등하다는 듯이 손을 내밀고 있어.”


나는 지팡이로 땅을 콱 찍었다.

천선들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제주도에 가만히 있는 나를 납치하려고 능력자 부대까지 보내놓고는 말이야. 내가 마음 넓게 한 번 눈감아주고 여기까지 직접 행차해 주셨는데 미리 나와서 머리를 박기는커녕 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 너희 엉덩이는 쇳덩어리로 만들었냐? 어디 때리면 팡팡 소리가 나는지 탕탕 소리가 나는지 확인해주랴?”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키워서 말했다.

천선들의 얼굴이 더더욱 굳어졌고 왕무이는 아예 볼을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다른 능력자들은 상상도 못 한 광경을 보았다는 듯 하나같이 입을 쩍 벌렸다.


“그나저나 여기 오자마자 웬 썩은 내가 풀풀 나서 뭔가 했는데 이제 알겠다. 네놈들 인성이 썩어 문드러져서 나는 악취였구나. 염치도 없고 머리는 텅 비어서 거만하기만 한 놈들.”


왕무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가 주먹을 꽉 쥐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겁이 없군. 우리가 누군지, 이곳이 어딘지 모르는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와서 그런 모욕을···.”

“이렇게 인성이 썩어버린 놈들이랑 손잡아 봤자 내 손만 더러워질 것 같으니 그냥 여신에게 너희 능력 뺏어가라고 하는 게 낫겠다. 돌아갈란다.”


그 순간, 왕무이의 굳은 얼굴이 무너져내렸다.

뒤에 있던 천선들 역시 공포에 물든 표정으로 자신들의 보스를 쳐다보았다.


“그 얘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시······.”

“왜? 아. 설마 여신이 꿈에 다시 나와서 한 얘기를 너희만 알고 있는 거냐?”


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주위에 가득한 능력자들을 돌아보았다.


“이야. 그동안 심장 떨려서 어떻게 살았대? 이런 곳에서 여신 말대로 되면 얼마나 힘들겠어. 응? 누구보다 너희가 잘 알겠지. 지금의 대만을 만든 게 너희잖아.”

“······.”


왕무이가 이를 꽉 깨물더니 바로 허리를 숙였다.

주위의 능력자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지난번 일은 미안하오. 그대의 신비한 능력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무례를 저질렀소.”

“아무래도 주위에 제대로 된 친구나 가족이 없나 봐. 제멋대로 살아도 쓴소리 한 번 해주는 사람 없으니 이렇게 천방지축이 되지.”


허리를 숙이고 있는 왕무이에게서 뿌드득 소리가 들렸다.


“뭐. 이제라도 고개를 숙였으니까 한 번은 용서해주지. 그런데 너희는 두목이 머리 숙였는데 뭐 하냐?”


나는 뒤에 있는 천선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산산이 부서진 팔룡문 앞에는 백 명은 확실히 넘을 만큼 능력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주위는 마치 내가 처음 도착했던 지구의 폐허 도시처럼 고요했다.

GH의 능력자들은 고개를 숙인 조직의 리더들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노린 대로였다.


‘슬슬 결정타를 날려볼까.’


나는 첸롄 쪽을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샤오한. 머리 박아. 네 아버지랑 동료들이 영 마음에 안 든다.”


순간 여기저기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순간, 첸롄이 이마를 땅에 댔다.

고개를 살짝 들어 이쪽을 바라보던 천선들의 눈이 커졌고 능력자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울렸다.

왕무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흠. 먼 길 왔더니 시장하네. 마음에도 없는 사과 보기 싫으니까 고개 들고 가서 밥이나 차려와. 맛있는 걸로.”

“······알겠소.”


고개를 든 왕무이의 얼굴은 볼 만했다. 처음 보았을 때의 빛은 사라지고 마치 5년은 앓은 환자처럼 변해 있었다.


“식사를 준비할 테니 이제 안으로 드시는 게 어떻소. 안쪽에 있는 궁에 연회장이 있으니······.”

“싫어. 저 안쪽으로 들어가면 너희들 썩은 내가 더 날 것 같아. 밥 가지고 여기로 와.”

“······.”

“불만이야?”

“······기다리시오.”


왕무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금빛 리본이 달린 제복을 입은 능력자 하나가 달려왔다.


“가서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라. 최대한 빠르게.”

“알겠습니다, 수령님.”


능력자는 거의 머리가 땅을 향할 정도로 허리를 숙여 보인 뒤 미사일처럼 안쪽으로 날아갔다.


“어디 얼마나 괜찮은 걸 가지고 오는지 보자고.”


나는 인벤토리에서 의자를 꺼내 그 위에 앉았다.


“뭐야?”

“방금 어디서 의자를···.”

“설마 WP 구현체인가?”

“계열이 전혀 다른 복수 능력자라는 거야?”


능력자들이 수군거렸다.


“샤오한.”


그때 왕무이가 첸롄 쪽을 보며 말했다.


“이쪽으로 와라. 할 얘기가 있······.”

“너도 여기서 기다려.”


나는 의자를 하나 더 꺼내서 첸롄에게 내밀었다.


“···실례지만 딸과 이야기할 게 있어서 그러니 데려가겠소.”

“싫은데?”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때 천선 중에서 대머리인 남자 하나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말하며 다가왔다.


“분명 저희가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부녀의 대화마저 가로막는 것은 그저 심술이고 억지 아닙니까.

“넌 누구야?”

“GH의 팔천선 중 하나인 독선 우성화입니다. 권기화 님. 정도가 너무 지나치십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망신을 주려고 작정하고 오신 겁니까.”

“내가 하는 게 심술이고 억지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 자리에서 이런 행동을 벌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왜 없어.”

“뭐라고요?”


나는 지팡이로 땅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아까 문지기가 그러더라? WP 실드를 풀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그런데 내가 뭘 믿고 실드를 풀고 저 안으로 들어가? 무슨 수작을 부렸을지 모르는데.”


우성화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그런··· 억측을···.”

“상식적으로 너 같으면 무력으로 널 납치하려고 한 놈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실드를 풀고 들어가겠니? 나 잡아 잡수라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너희가 준비한 능력자에게 당하면 그때는 나보고 멍청한 놈이라고 비웃기나 하겠지.”

“저, 저희는 그런 비겁한 짓은···!”

“사람 납치하려고 한 주제에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오냐? 한 번 비겁한 짓을 한 놈들이 두 번 못 할까?”


우성화가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난 실드도 없다.

만약 능력자가 아니란 게 발각되면 여기 모인 수백 명의 능력자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그래서 새로 만든 에아니움 지팡이까지 써가면서 힘자랑을 한 거다. 아예 덤빌 생각도 못 하게 말이다.

첸롄을 함부로 취급하는 걸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걸 본 능력자들은 자연스레 내가 첸롄보다 세거나 무언가 그녀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알겠으면 밥이나 가져와. 밥에 담긴 성의를 보고 여신한테 너희를 어떻게 할지 전할 테니까.”

“!!!”


여신 이야기가 나오자 우성화는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결국 뒤로 물러나 다른 천선들 속에 섞였다.


“앉아.”


나는 첸롄을 보며 말했다.

첸롄이 묵묵히 의자에 앉자 왕무이의 얼굴이 또 새빨개졌다.

저러다 고혈압으로 죽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건 내 의도랑 다른데 말이지.

왕무이가 최대한 빨리 하라고 지시를 내린 덕분인지 남자가 떠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자리가 만들어졌다.

능력자들이 염력으로 천막과 식탁, 의자 등을 가지고 와 설치했고 15분 정도 지났을 때는 제복을 입은 이들이 요리를 나르기 시작했다.

물론 바로 본격적인 것들을 가지고 오지는 못하고 떡이나 과자 등 미리 만들어 둘 수 있는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다음에는 냉채나 스프 등 전채들이 도착했다.


“왕샤오한.”


나는 옆에 앉아 있던 첸롄을 보며 말했다.


“먼저 먹어 봐.”


왕무이를 포함한 천선들이 이를 물었고 천막 바깥에서 이쪽을 지켜보던 GH의 능력자들은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저 인간이···. 감히 역선 님에게 뭘 시키는 거야?”

“젠장. 분해서 장이 끊어질 것 같아.”


그들이 떠들거나 말거나 첸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다란 젓가락을 이용해 음식들을 조금씩 집었다.


“······먹어도 괜찮아.”

“그래? 황도.”

“뀽?”

“여기 있는 거 실컷 먹어.”

“뀽!”


황도가 접시에 주둥이를 박자 그걸 본 GH의 능력자들이 혀를 찼다.


“저, 저···. 저 음식들이 얼마나 귀한 건데. 아까운 줄도 모르고 괴상하게 생긴 짐승에게···.”

“하늘이 노할 거다.”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여기 있는 음식들이 어떤 착취를 통해서 나왔을지 생각하니 참 저렇게 뻔뻔한 말도 없겠다 싶었다.

음식을 먹기 시작한 황도는 전채와 생선 요리, 고기 요리에 후식까지 먹어 치웠다.

황도는 저 작은 몸에 어떻게 저것들이 다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먹었다.


“뀨욱···.”


황도는 불룩 나와 땡그래진 배를 위로 하고 누웠다.


“시장하다고 하더니 왜 조금도 안 드시오?”


왕무이가 나를 보며 물었다.


“왜 안 먹냐고? 몰라서 물어? 하기야 모르니까 이딴 걸 먹고 살겠지.”

“뭣······.”


왕무이와 천선들, 그리고 천막 밖의 능력자들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뀽···?”


황도도 의아하다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

사실 그들이 마련한 건 이딴 거라고 말할 수 없는 요리들이었다.

설마 이런 세상에서도 북경오리나 건전복과 건해삼이 들어간 불도장, 제비집 스프 같은 게 나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대의를 위해 꾹 참았다.


“천인구에 있는 능력자들은 평소에도 이렇게 급이 떨어지는 음식을 먹나?”

“······매일은 아니지만 연회나 벌레와의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는 먹소.”

“쯧쯧. 이마저 가끔씩밖에 못 먹는 거였군. 불쌍해서 봐줄 수가 없네. 천인구에 있는 능력자들을 전부 모아 와. 내가 진짜를 먹여 줄 테니.”

“그게 무슨······.”


나는 대답 없이 커다란 원탁에 손을 댔다.

내게서 나온 파장이 커다란 식탁에 닿았다.

식탁과 그 위에 있던 모든 것들은 아이템이 되어 내 인벤토리로 들어갔다.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물건들이 통째로 사라졌어!”


외야가 시끄러운 가운데 나는 입을 벌리고 있는 왕무이에게 한 번 더 말했다.


“아니다. 천인구 말고 이 도시에 있는 능력자 전원 데리고 와..”


왕무이와 천선들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뭐해. 얼른 부하들한테 지시 안 내리고. 아니면 네가 직접 갈 거야?”

“······.”


왕무이는 짜증과 혼란이 섞인 눈빛으로 날 쳐다보다가 결국은 부하들을 불렀다.


‘자, 이제 준비는 끝났다.’


즐거운 업보 청산의 시간이었다.



***



무너진 팔룡문 앞에 벽돌을 쌓아 만든 화로 백 개가 쫙 펼쳐졌다.

그리고 그 옆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커다란 조리대가 또 이십여 개 설치되어 있었다.

화로 위에는 냄비와 솥, 프라이팬 등 온갖 조리도구가 놓여 있었고 조리대 위에도 식칼과 도마, 볼 등이 잔뜩 놓여 있었다.

그것들은 전부 기화 혼자서 설치한 것이었다.

허공에서 계속 물건을 꺼내는 그를 보며 GH의 능력자들은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건 그 다음에 일어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화는 수많은 음식 재료를 인벤토리에서 꺼내며 화로와 조리대 사이를 오고 갔다.

갖가지 채소와 닭, 돼지, 소 세 종류의 고기, 그 외에도 다양한 조미료들이 냄비와 팬으로 들어가거나 도마 위로 날아갔다.

재료가 투입됨과 동시에 화로의 불이 붙었고 도마 위의 식칼이 스스로 움직이며 요리가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기겁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수 없다고.”

“저절로 불이 붙고 식재료가 허공에서 나오고 식칼이 스스로 움직이고··· 도대체 몇 가지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거야?”

“아까 보여준 폭발 능력까지 더하면 네 종류. 게다가 전부 다른 계열로 보이는데······.”


이어서 띵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기화가 냄비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대접이 나타났다.


“저건 또 뭐야!”

“벌써 요리가 다 됐다고?”

“저런 능력은 본 적도 없어!”

“설마 저 남자, 시간을 조종하는 건가!?”

“대체 정체가 뭐야?”


GH의 능력자들은 상대가 리더들 얼굴에 먹칠을 한 사람이라는 것도 잊고 그저 놀라워했다.

천선들 역시 넋을 놓은 채 기화의 조리를 지켜보았다.


“······벽선.”


푸른색 전통복을 입고 안경을 쓴 여성이 나지막이 이름을 불렀다.


“뭔가, 암선.”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기화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당신도 저런 식으로 염력을 사용할 수 있나요?”

“될 리가 있나.”


벽선이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수십 개의 식칼을 각각 따로 움직여서 요리를 한다고? 그것도 다른 계열의 능력을 사용하는 동시에? 염력으로 흑색 등급 벌레를 찌그러뜨리는 건 가능해도 저딴 짓은 절대로 못 해. 저건 인간의 차원을 벗어났어. 저기 있는 역선조차도 저런 식의 운용은 못 할 거야.”


주위에 있는 천선 중 그 누구도 벽선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벽선의 보호막을 깨고 역선조차 불가능한 염력의 조절을 해내는 자란 말입니까.”


독선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일제히 덤비면 죽일 수 있지 않겠어?”


머리를 붉게 물들인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동료들을 보았다.


[······.]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왕무이는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핥으며 기화를 보았다.


‘벽선의 결계를 깬 것도 그렇고 자기 능력을 숨기지 않는 것도 그렇고···. 저놈은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이는 건가?’


그게 목적이라면 확실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전부 그의 능력에 질린 상태였으니까.

특히 기화의 하인처럼 구는 샤오한의 모습은 GH의 능력자들에게는 효과가 컸다.

왕무이는 샤오한이 얌전히 기화의 지시를 따르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샤오한은 기화에게 무참하게 패배한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샤오한이 저렇게 얌전할 리가 없었다.


‘다만 어째서 그 방식이 요리란 말인가? 그것도 천인구의 사람이 모두 먹을 요리를 만든다니. 대체 왜. 무슨 의도로.’


미지에서 기인한 강력한 공포심은 왕무이의 심장을 불규칙하게 흔들었다.

기화가 펼치는 능력의 서커스는 20분 조금 넘게 이어졌다.


“자. 일단 여기까지 하고···.”


그는 자기 앞에 있는 테이블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백 개가 넘는 테이블 위에 접시나 대접에 담긴 요리들이 가득했다.

그 양이 수천 명이 먹고도 남을 정도였다.

기화는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다들 먹어 봐. 지금까지 먹었던 건 음식이 아니라 쓰레기였다는 걸 깨닫게 해줄 테니까!”


그러나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GH의 능력자들은 그의 능력을 지켜볼 때와는 달리 차가운 시선으로 요리들을 쳐다보았다.


“왜. 설마 독이라도 넣었을까 봐?”


기화가 한쪽 입가를 올렸다.


“걱정하지 마. 나는 음식을 모독하는 짓은 하지 않아. 그러니까 빨리 먹어. 계속 그렇게 보고만 있으면 내 성의를 무시하는 걸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


그가 인벤토리에서 지팡이를 꺼내 땅을 두드렸다.

그러자 GH의 능력자들이 일제히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 하는 수 없지···.”

“젠장. 대체 어떤 요리길래 저딴 말을 하는지 보자고.”


사람들이 하나둘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뭐야. 그냥 평범한 요리들이잖아.”

“집에서 해 먹어도 이 정도는 나올 것 같은데.”


요리를 본 이들이 한마디씩 중얼거리며 나무젓가락을 들었다.


“억!?”

“흐업!”

“오, 오오옷!!”


그리고 입에 음식을 넣은 이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탄성을 내뱉었다.


“어떻게 이 평범해 보이는 요리에서 이런 맛이 나는 거지??”

“마치 소금을 한 톨 단위로 조절한 것처럼 완벽한 간이야. 게다가 이 터져 나오는 듯한 감칠맛은 대체 어디서···.”

“이건 천상의 맛이다. 인간의 음식이 아냐!”

“호들갑 떨기는···. 이딴 거 그냥 닭을 볶았을 뿌느오오오오옥!!!”

“젠장! 빌어먹을! 인정하기 싫은데 너무 맛있잖아!!”


요리를 향한 능력자들의 손길은 점점 빨라져서 이내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접시와 젓가락을 들고 돌아다녔다.


“너희는 안 먹고 뭐 해.”


기화는 천선들을 보며 말했다.


“끝까지 내 성의를 무시하려고?”


그가 지팡이로 땅을 쿡쿡 찍자 천선들은 어쩔 수 없이 부하들에게 요리를 가져오도록 시켰다.


“맙소사. 정말로 맛있네.”

“지금까지 먹던 요리가 평범한 걸로 느껴질 정도야.”


왕무이를 포함해 천선들은 어느새 기화의 요리에 푹 빠져들었다.

이런 세상 속에서도 고급 요리를 먹기 위해 갖은 수를 쓰던 인간들이었다.

그들의 혀는 높았던 자존심을 꺾고 입에 음식을 쑤셔 넣으라고 지시했다.

어느새 접시를 비운 천선들이 부하들에게 다른 요리들도 다 가지고 오라고 시켰던 그때.

일이 벌어졌다.


“으윽!”

“머, 머리가···!!”


여러 사람이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들 조금 전까지 평범하게 음식을 먹고 있던 이들이었다.


“뭐야, 왜 그래···. 허윽! 머, 머리가!”

“으으윽!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점점 쓰러지는 이들의 수가 늘어났다.


“아니!?”

“설마 독인가!”

“퉷! 퉷!”


그 모습을 본 천선들은 얼른 입에 든 걸 바닥에 뱉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독선이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음식에 대한 모독이 어쩌고 하더니 결국 이딴 비겁한 수단으로 저희를 공격하다니···! 이마저 그냥 넘어갈 거란 생각은 버리십시오!”

“흥.”


기화는 코웃음을 치며 독선을 쳐다보았다.


“비겁한 수단? 헛소리하네. 나는 너희 몸에 해가 될 재료는 하나도 쓰지 않았어. 오히려 약이 될 것만 썼지.”

“헛소리를 하는 건 당신이지 않습니까! 저 모습을 보고도 그런 거짓말이 나옵니까! 수령님! 이 이상 저자가 멋대로 굴게 놔둬서는 안 됩니다!!”


독선이 왕무이를 쳐다보았다.


“······.”

“수령님??”


독선의 눈빛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왕무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지는 GH의 능력자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리에 모인 능력자들 중 벌써 4할 가까이가 쓰러진 뒤였다.

나머지 6할의 능력자들은 손에 들고 있던 요리를 내려놓고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보고 있었다.


“아, 안 돼···. 설마···.”


그때 절망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암선? 왜 그러는가. 설마 자네도 머리가 아픈가?”


벽선이 물었으나 암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암선은 지금 쓰러지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수령인 왕무이의 얼굴이 창백해진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 머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쓰러진 이들은 전부 천인구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천인구 밖에 있는 자들은 알지 못하는 숨겨진 정체성이 있었다.

그건 그들이 비능력자 거주구 출신의 1급 능력자라는 것.

즉, 그녀의 정신 조작 능력에 당한 이들이라는 것이었다.


“설마··· 설마···.”


왕무이가 덜덜 떨며 샤오한의 얼굴을 보았다.

왕샤오한―본래 진첸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여자가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말했잖아. 약이 될 것만 썼다고.”


기화는 푸른 액체가 담긴 크리스털 병을 위로 던졌다가 받으며 씩 웃었다.


작가의말

힘들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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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77화. 천인구 방문(3) +1 24.03.21 211 9 14쪽
» 76화. 천인구 방문(2) 24.03.19 208 11 20쪽
75 75화. 천인구 방문(1) 24.03.18 211 7 14쪽
74 74화. 여행 직전 24.03.15 225 10 15쪽
73 73화. 기신(3) 24.03.13 222 6 13쪽
72 72화. 기신(2) 24.03.12 231 7 13쪽
71 71화. 기신(1) 24.03.08 248 10 13쪽
70 70화. 직시(3) 24.03.07 239 8 14쪽
69 69화. 직시(2) 24.03.06 246 10 14쪽
68 68화. 직시(1) 24.03.05 258 9 17쪽
67 67화. 원수 24.03.04 275 9 13쪽
66 66화. 얼굴 한번 보자(6) +1 24.03.02 309 10 15쪽
65 65화. 얼굴 한번 보자(5) 24.02.28 295 11 15쪽
64 64화. 얼굴 한번 보자(4) 24.02.27 305 11 14쪽
63 63화. 얼굴 한번 보자(3) 24.02.23 315 11 13쪽
62 62화. 얼굴 한번 보자(2) 24.02.22 328 9 13쪽
61 61화. 얼굴 한번 보자(1) 24.02.21 355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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