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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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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7.2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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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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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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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DUMMY

-짐승-



“우리의 여정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선님이 무표정하게 천님을 보며 말했다.


나는 선님의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주인님을 쳐다봤다.


하지만 주인님의 얼굴엔 어떠한 표정도 나타나지 않는다.


“네가 이따금 헤어지자고 말했잖아. 랑이 사도가 된 이상 내가 필요 없으니까. 생각해보니 그게 맞아.

애초에 난 네 부탁으로 랑을 보살피기 위해 동행한 거고, 랑이 없으니 이제 난 필요 없다고 생각해.”


여전히 주인님은 아무런 표정 없이 선님을 빤히 쳐다보신다.


“허락··· 네 허락 같은 건 필요 없어. 내가 너와의 여정을 그만두겠다고 결정했고 내가 결정했으면 그걸로 된 거야.”


왜, 왜 갑자기 그만두겠다는 거지?


지금까지 주인님이 떨어지자고 했을 땐 화를 내며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


언제 마음이 바뀐 거지?


왜 마음이 바뀐 거지?


··· 양성소에서 그리고 잠가위때 이후로 말이 점점 없어지기는 했는데.


“알았소.”


평소와 다른 바 없는 목소리로 주인님이 대답하셨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살짝 가라앉은듯하다.


“저 마을까지 같이 갈게.”


선님의 말씀에 나는 눈앞에 보이는 마을을 쳐다봤다.


채 50가구도 안 되어 보이는 조그마한 마을.


저곳에서 주인님과 선님의 여정이 끝난다.


예정된 헤어짐이 주는 어색함을 안고, 우리는 침묵 속에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마을 입구 앞에 도착했고 우리는 맞이하는 건 아무도 없다.


여태껏 보아왔던 마을처럼 짐승의 습격을 받은 모양인지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목책은 이미 제 기능을 잃어버렸고 망루는 지금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평소에 이런 상황이라면 선님이 무슨 말이라도 할 게 분명하지만, 그저 주변을 둘러본 후 마을로 들어가 버린다.


주인님은 그런 선님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마을 안으로 걸어가신다.


“이런 곳에서 필요한 물품을 보충할 수 있을까요? 하하.”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고자 쓸데없는 말과 웃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주인님과 선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걸음을 걸으셨다.


“주막으로 갈 거야. 거기서··· 밥이나 먹고 헤어지자.”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 모양이군.”


“어. 생도 시절에.”


짧은 대화가 끝나니 어느새 주막 앞에 도착했고 역시나 보이는 사람은 없다.


“거기 앉아있어. 안에 뭐가 있나 보고 올 테니까.”


선님은 주인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부엌 안으로 들어가셨다.


“아무것도 없네. 야, 짐승. 아궁이에 불피우고 고기 꺼내서 솥에 올려.”


그리곤 곧바로 나와 내게 명령했다.


“네.”


주변에 있는 우물로 가 물을 퍼 솥에 채워 넣고 불을 피웠다.


배낭에서 고기를 꺼내 묻은 먼지를 씻어내고 칼을 들어 썰려고 하니 선님이 날 막아 세운다.


“고기는 자르지 말고 통째로 넣어.”


“설렁탕을 하실 건가요?”


“어.”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설렁탕을?


선님은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와 헤어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빨리 넣어. 지체할 시간 없다.”


“네···.”


주인님은 자신의 행동과 말이 모순된다는 걸 아시는 걸까?


지체하실 시간이 없다고 하셨으면서 정작 오래 걸리는 음식을 보고도 아무 말을 안 하시다니.


더군다나 고기를 삶으면 냄새가 퍼져 주의를 끌 수도 있는데.


솥에 고깃덩이를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저게 우러나려면 못해서 6시간은 있어야 하는데.


“잘 보고 있어. 나는 방 안에 들어가서 쉴 테니까.”


“네.”


선님이 내게 당부하시고 주막의 빈방으로 들어가셨다.


“특이사항이 있으면 내게 말하도록.”


“네.”


주인님도 말씀하시곤 방 안에 들어가셨다.


평소라도 같은 방에 들어가셨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선님과 다른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렇게 나는 아궁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음식이 완성되길 기다렸다.



///



시간이 제법 지나자 고기 삶는 냄새가 부엌 온 가득 퍼졌다.


냄새는 부엌이 좁다고 느낀 것인지 밖으로 나가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뽐냈고, 그런 냄새의 존재감에 끌린 불청객이 찾아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불청객은 자신의 기척을 숨기기 위해 살금살금 다가왔지만, 기척을 죽이는 솜씨가 미천한 것인지 내 귀엔 어느 소리보다 또렷이 들렸다.


주인님과 선님도 이 기척을 느꼈을 테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내가 알아서 처리하길 원하고 있는 듯하다.


양 손톱을 빼 들고 부엌 출입구를 가만히 노려다 본다.


냄새를 맡는다고 닳는 건 아니니 그것까지 허락하겠어.


하지만, 냄새를 넘어서 우리 음식까지 먹겠다고 부엌에 들어오면 봐주지 않을 거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냄새의 근원이 부엌이라는 걸 눈치챈 것인지 소리가 이쪽으로 향한다.


정황상 1명 또는 1마리다.


잠깐, 1명? 명이라는 단위를 써야 할 인간이 오면···.


“깜짝이야!”


내가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어린 여자 사람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듯하다.


어, 어떡하지 공격해야 하나?


아니면···.


“아저씨, 그거 뭐예요?”


“네, 네?”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눈이 안 보이는 아인가?


내가 짐승이라는 걸 모르는 거야?


왜 이렇게 나를 태연히 대하는 거지?


어린 여자 사람을 자세히 뜯어보니 꽤 고생한 듯 꾀죄죄한 모습이다.


눈동자를 보니 앞이 보이는 것 같은데.


“아저씨, 거기 고기 삶고 있는 거 맞죠?”


“아, 네, 네. 맞아요.”


“맛있겠다···.”


어린 여자 사람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며 안쓰럽게 날 쳐다본다.


달라는 건가?


하지만 이건···.


“잠시만요! 제가 한번 물어보고 올게요.”


부엌을 나가 주인님이 계시는 방으로 가려는데 어느새 나와 계셨다.


“뭐지?”


“저기, 이, 일단 부엌으로 좀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선님도 어느새 밖으로 나와 날 쳐다본다.


“누가 왔어?”


“네, 네. 어린 여자 사람이···.”


“여기 누가 살고 있어?”


선님은 내 대답을 듣지 않고 부엌으로 향하셨고 주인님도 부엌으로 향하셨다.


“안녕하세요!”


두 분을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니 어린 여자 사람이 주인님과 선님을 향해 배꼽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제 이름은 희라고 해요!”


“어, 그래 나는 선이고 쟤는 천이야. 너 여기 사니?”


“이 주막에 사는 건 아니고 이 마을에 살긴 해요.”


“그래? 그런데 여긴 왜 왔니?”


“맛있는 냄새가 나서 저도 모르게 그만···.”


“밥 안 먹어··· 하긴 이런 곳에서 굶는 건 당연하겠지. 야, 대충 안 됐어?”


선님의 말에 나는 솥뚜껑을 열고 국물을 확인했다.


뽀얀 걸 보니 어느 정도 우러났나 보다.


국물을 확인하고 젓가락을 들어 고기를 찔러봤다.


“네. 먹어도 될 것 같아요.”


“우리는 저 평상에 앉아있을 테니까 네가 3그릇만 준비해서 가져와. 얘 그릇에는 고기 많이 넣고.”


“네.”


선님이 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저는 그냥 뭔지 궁금해서 그런거예요. 전혀 배고프지 않아요.”


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또다시 꼬르륵 소리를 내보냈다.


“언니가 주는 거니까 그냥 먹어. 자, 이리 와.”


선님이 희의 손을 잡고 부엌 밖으로 데려가셨다.


주인님은 그런 선님과 희를 보시곤 내게 고개를 돌리신다.


“네 것도 포함해 4그릇 가져와.”


“제 것도요?”


“그래.”


말을 마친 주인님이 몸을 돌려 선님과 희가 계신곳으로 향하셨다.


찬장을 뒤져 뚝배기 4개를 꺼내 물로 씻어내고 하나씩 고기와 국물을 담았다.


쟁반에 올려놓고 주인님이 계신 평상으로 가 상위에 한 그릇씩 앞에 내놓았다.


“맛있게 드세요.”


나는 남은 1그릇을 챙겨 떨어진 평상으로 가 앉았다.


“희야, 어서 먹어. 너 배고프다며?”


“저 배고프다고 안 했는데요···.”


희가 뚝배기에서 눈을 못 때며 말했다.


“그래그래, 배 안 고픈 거 아니까 어서 먹어.”


어린아이의 눈에 보이는 행동에 선님은 귀여워 참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언니가 널 위해 준비했는데 안 먹으면 속상할 것 같아.”


“그, 그럼 언니가 속상하면 안 되니까···.”


희가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한번 떠먹어보더니 흡입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만족한 것인지 자기 배를 통통 두드린다.


“다 먹었어? 더 줄까?”


“아니에요. 저 진짜 배불러요.”


“그래? 우리는 저거 다 못 먹는데 네가 들고 갈래?”


“진짜요? 진짜 그래도 돼요?”


“그럼. 당연히 되고말고. 근데 여기서 너 혼자 사는 거야?”


“아니에요. 제 엄마도 있고요! 그리고 제 동생도 있고요! 또, 또 제 동생도 있어요!”


“그러니까 네 엄마랑 동생이 2명이 있다는 거지?”


“맞아요!”


“괜찮지? 저거 줘도.”


“저것뿐만 아니라 남은 고기도 줘야겠소.”


“고마워. 자, 어디 보자. 그런데 희는 몇 살이야?”


“저는 9살이에요.”


희가 선님에게 손가락 9개를 보이며 말했다.


“희의 어머니가 고생이 많겠군. 여자 혼자서 아이 3명을 기르기 힘들지.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 말이야.”


선님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희를 쳐다보신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어?”


“어, 어. 그러니까···.”


희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 대충 알 것 같아. 근데 희 동생은 어디 있어?”


희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걸 본 선님이 능숙하게 화제를 돌리셨다.


“우리 엄마하고 같이 있어요.”


“그런데 희는 왜 밖으로 나온 거야? 설마 먹을 걸 구하려고?”


“네···.”


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와-! 우리 희는 엄청 용감하네!”


선님은 여전히 표정이 안 좋은 희를 보며 다소 과장되게 말했다.


“헤, 헤헤···.”


단순한 아이답게 자신을 칭찬하자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모르면서 쑥스러워했다.


“우리 희는 엄청 용감해서 나중에 기사가 되도 되겠다! 그렇지?”


“음. 그렇군.”


선님이 주인님을 보며 말씀하셨고 주인님은 선님의 말에 긍정하셨다.


“희는 나중에 커서 세상 제일가는 기사가 되겠어.”


“기사··· 히히. 나는 커서 기사가 될 거야. 헤헤헤.”


“우리 용감한 희가 우리를 너희 집까지 안내해줄래?”


“우리 집이요?”


“응, 힘센 네가 저 솥을 옮겨도 되지만 우리가 해주고 싶어서 말이야.”


“그, 그렇지 저걸 가지고 가야 하지.”


희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린아이지만 낯선 이를 자신의 집에 들여오면 안된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좋아요.”



///



어느새 희의 집 앞에 도착했고 희는 부리나케 뛰어가 문을 쾅쾅 두드리며 엄마를 찾는다.


“엄마! 엄마! 이리 좀 나와보세요! 제가 아주 맛있는 걸 가져왔어요!”


“어머,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렴.”


응?


내가 착각한 건가?


“왜 그러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인님이 날 보시며 말씀하셨다.


“아,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지.


곧이어 문이 열렸고 희는 누가 있는지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보라색 피부를 가진 짐승이다.


“이런, 씨발!”


품에 먹을 걸 한가득 안은 채 웃음을 짓고 있던 선님이 욕설과 함께 칼을 뽑으며 앞으로 뛰쳐 간다.


그리곤 어깨로 짐승을 넘어뜨리고 머리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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