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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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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7.2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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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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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1

DUMMY

-선-



남기사에게 화가 났지만 당장 그걸 표출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 짐승은 어떻게 했어!?”


“제가 죽이긴 했는데···.”


“죽였으면 됐어! 야! 이 새끼들 다리 전부 잘라내!”


내 말에 여기사가 지체없이 원로와 짐승의 다리를 잘라냈다.


원로는 아프지도 않은 모양인지 계속해서 웃고 있었고 다른 짐승은 비명을 꽥꽥 지르더니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도깨비가 정말 피를 먹은 게 맞는 모양인지 하늘에서 붉은빛이 떨어지고 있었다.


저 붉은 빛이 한곳에 모이면 이곳은 세상에서 지워지겠지.


“뭐 하는 거야!?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


다급히 매어둔 타조에게 향했는데 그놈들도 위기감을 느낀 모양인지 어느새 도망가버리고 없었다.


“말을 타고 왔어야 했는데!”


괜히 말 내어준다는 호의를 거절하고 타조를 선택한 행동을 자책하며 입술을 짓씹었다.


“서, 선배님···.”


두 기사가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날 쳐다봤다.


“뭘 쳐다보고 있는 거야!? 타조가 없으면 두 발로 뛰어야지! 빨리 뛰어!”


“아, 알겠습니다!”


두 기사가 대답과 동시에 앞으로 뛰어갔다.


속력을 위해 갑옷을 벗으라고 명령하려 했지만 그럴 시간에 한걸음이라도 더 이곳에서 멀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이 들릴 뿐 닥쳐오는 위기에 비해 주위는 고요했다.


말할 힘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아끼는 게 좋다고 판단한듯하다.


아니면, 너무나도 강한 공포심에 말할 생각을 못 한 걸 수도.


어느 정도 달리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자리에 멈춰섰다.


두 기사는 나보다 뒤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저들도 힘들어서 멈춘듯하다.


그리고는 서로 껴안은 채 입을 맞추기 바빴다.


둘이 그런 사이였어?


눈길을 연인의 뒤로 옮겼는데 마을은 여전히 시야에 보였고 그 뜻은 아직 불바다의 영향에 놓여있다는 뜻이었다.


“끝났어···.”


저 둘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건만 나도 모르게 체념하는 말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이야.”


눈에서 눈물이 절로 나왔다.


투구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엄마···.”


수백 번, 수천 번이나 죽음을 생각했기에 닥치면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방식의 죽음이 아니라 그런가?


“하하···.”


나도 모르게 허망한 웃음이 나왔다.


실성한 듯이 웃으며 우리가 빠져나온 마을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여자 사람 하나가 두 마리의 말과 함께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내 앞에 당도했고 말에 탄 채로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눈물범벅인 얼굴로 그 여자를 마주 봤다.


눈에 익은 여자다.


“일어나요! 거기도 빨리 일어나서 말에 타세요!”


“연···.”


“내 이름 듣자고 여기 온 거 아니니까 빨리 일어나!”


연이 기수가 없는 말의 엉덩이를 짝! 하고 때려 두 기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게 만들었다.


“여긴 어떻게···.”


“일단 살고 얘기해요. 그러니까 빨리 타기나 해!”


“네, 네!”


날카로운 고함에 정신이 번쩍 들어 연의 뒤에 탔다.


“꽉 잡아요. 떨어져도 무시하고 갈 거니까.”


나는 연의 말에 뒤에서 허리를 꽉 안았다.


“이랴!”


연이 고삐를 힘껏 당기자 말이 쏜살같이 앞으로 향했다.


“살 수 있을까요?”


내 말을 들은 것인지 못 들은 것인지 연은 대답하지 않은 채 연신 채찍을 휘둘러 말을 재촉했다.


말도 느리게 가면 자신이 죽을 거란 걸 아는 모양인지 거친 숨소리를 연신 내뱉으며 연의 채근에 답했다.


그렇게 달리긴 얼마간.


세상이 떠나갈듯한 굉음이 들렸다.


천지가 요동을 쳤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굉장한 바람이 우리를 덮쳤다.


말이 깜짝 놀라 두 발로 일어섰고 우린 말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야속한 말이 우리를 버리고 앞으로 달아났다.


“아직 살아있는 걸 보니 살아있는 모양이네요.”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연을 쳐다봤다.


연은 그런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우리가 달려온 뒤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나도 시선을 옮겨 뒤를 쳐다봤는데 말로만 듣던 커다란 버섯구름이 우리에게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린 멍하게 구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불바다는 여전히 우리를 덮치지 않았고 나는 그제야 살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여태껏 서로 껴안고 있던 두 기사도 살아남았음을 인지한 것인지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없었으면 아주 그냥 여기서 자식까지 봤겠어.


“선배님···.”


“너는 옷 벗을 각오해.”


남기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사색이 된 남기사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정강이 갑은 어디다 팔아먹은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멍청한 새끼가 짐승 하나를 통제 못 해서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억눌려있던 분노가 슬그머니 튀어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남 기사의 정강이를 발로 깠다.


남기사가 신음을 흘리며 정강이를 부여잡고 깽깽이를 했다.


“선배님!”


“뭐야!? 네 남자친구라고 편드는 거야, 어!?”


“아, 아닙니다.”


내가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자 여기사가 뒷짐을 지고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였다.


“하아.”


잠깐 고개를 돌려 연을 쳐다보니 이쪽은 관심도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인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외부인이 있어서 여기까지 하겠어. 그리고 이분에게 감사 인사는?”


“아, 알겠습니다. 저기,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두 기사가 쭈뼛거리며 인사했다.


“아니에요. 참 보기 좋은 연인이네요.”


연은 그제야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려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네? 아, 저기···.”


여기사가 내 눈치를 봤다.


“네 남자친구 정강이 갑 찾아와. 그때까지 돌아올 생각하지 말고. 나는 먼저 돌아갈 테니까.”


내 말에 남기사가 할 말이 있는 듯 뭐라고 입을 벙긋거렸지만, 여기사가 황급히 입을 막고 끌고 갔다.


나는 그렇게 땅을 두리번거리며 갑옷을 찾는 연인을 보며 분노를 삭였다.


분노가 사그라드니 이번엔 의문이라는 감정이 솟아오른다.


이 여자는 내가 여기에 있는걸 어떻게 알고 온 거지?


그것도 여분의 말을 끌고.


저번에 갑자기 나타나 디쿤의 양다리를 순식간에 잘라낸 실력이 생각나서 조심스럽게 곁눈질로 연을 살펴봤다.


연은 여전히 양반다리를 하고 허리를 꽃꽂이 세운 채 앞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


“다 했어요?”


“네, 네?”


“생각 다 끝났냐고요.”


연이 사무적인 웃음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역시 이 여자.


저번에 이상한 짐승 때도 그렇고 디쿤때도 그렇고.


뭔가 꺼림칙하단 말이야.


“아, 아무런 생각도 안 했는데요?”


“그래요? 근데 왜 날 쳐다봤어요?”


“그건 그러니까··· 어떻게 날 찾은 건가 싶어서···.”


“그거 봐 생각했네.”


“그렇네···? 하하.”


누구라도 보면 어색하다고 말할 웃음을 지으며 연의 말을 받았다.


“그건 선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내 덕분에 살았고 아무런 탈이 없으면 그걸로 끝이니깐요.”


“그건··· 그렇죠.”


이상한 논리를 내세웠지만 나는 수긍하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건 따로 있어요.”


“네? 그게 뭔데요?”


“대장이, 아니 천님이 도깨비요람에 가셨어요.”


“뭐라고요!?”


돌멩이와 춤추는 거위··· 아니 함께 춤추는 거위인가?


하여튼, 그 범하고 어디로 간다고는 아닌데 거기가 도깨비요람이었어!?


“당신도 놀랄 줄 알았어요.”


“아니, 거기는 왜···. 거기에 범 새끼 빗을 찾으러 간 거예요?”


“네.”


“하-.”


너무나도 황당해 한숨만이 새어 나왔다.


근데 나도 모르는 걸 이 여자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래서요?”


“들어간 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저도 대장이랑 몇 번 갔다 왔으니까.

아이참, 왜 자꾸 대장이라고 하는 거지? 입에 익어서 아직도 안 고쳐지네.

어쨌든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뭐가 문젠데요?”


“나오지 않아요.”


“네?”


“들어간 지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 나오지 않는다고요. 무슨 사고가 생긴 게 아닐지···.

거긴 오래 있으면 안 되는 곳이에요.”


궁금하면 직접 들어가 보면 되잖아.


“저는 못 들어가요. 한계에 달했거든요.”


내 생각을 읽은 듯 답을 해주었다.


“한계?”


“그런 게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요람에 들어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봐 줬으면 한다는 거예요.”


나보고 도깨비요람에 들어가라고?



///



일단 경과를 보고하기 위해 양성소로 돌아갔다.


가는 와중, 폭발이 일어난 걸 눈치챈 양성소에서 보낸 조사병력을 마주쳤다.


마주친 병력 중 고위기사에게 찾아가 설명해주었고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인지 긴장을 놓는다.


“하하, 그래? 이런 이런, 다행히도 내 기우였군. 고맙네.”


확연히 긴장이 줄어든 모양인지 너털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근처에 기사 두 명이 있을 겁니다. 그 두 사람을···.”


징계를 요구할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왜 말을 끊나?”


“혹시나 양성소에서 조사단을 파견할까 싶어 남겨두었습니다. 그 두 사람에게 자세한 경과를 들으시면 될 겁니다.

아울러 통솔도 부탁드립니다.”


“알았네.”


고위기사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병력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양성소에 도착해 안을 걷는데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이곳에서도 폭발이 일어난걸 느꼈을 테니 당연히 비상이 걸렸겠지.


더군다나 가까운 거리였으니까.


어느덧 고위기사의 집무실 앞에 도착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아, 오셨습니까?”


부관이 완전 무장을 한 상태로 날 맞이했다.


“안에 기사님 계십니까?”


“네. 들어가 보시죠.”


문을 똑똑 두드렸고 들어오라는 소리에 열고 들어갔다.


“자네와 연관된 폭발인가?”


“네.”


“흐음. 앉게.”


고위기사의 말에 따라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돌아온 걸 보니 그리 심각한 건 아닌 모양이야?”


“네. 오는 동안 조사단을 만났고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조사단이 돌아오면 이 상황은 종결될 겁니다.”


“허허, 그래?”


고위기사가 내 말에 반색하며 책상을 한번 탁 쳤다.


“좋네. 자세히 설명해보게.”


“그것이···.”


남기사의 실수를 제외하곤 모든 걸 말해주었다.


“··· 이렇게 됐습니다.”


“가증스러운 짐승 놈! 여기가 어디라고 턱밑까지 와서···!”


분에 겨운 고위기사가 말을 잇지 못했다.


“내 그렇게 이런 상황일수록 주변 순찰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건만! 단장님은···! 흠흠.”


황급히 내 눈치를 보고 말을 맺었다.


내 앞에서 단장님 흉을 보는 건 좋지 않은 행동이지.


“알았네. 수고했네.”


“범은 돌아왔습니까?”


“돌멩이와 함께 춤추는 거위 님이 오셔야 할 시간이 진작에 지났는데 여전히 오지 않으셨네.

수업은 어떻게 하실지. 나 원.”


범이 오지 않았으면 천도 안 왔겠지.


연의 말대로다.


무슨 일이 생겨도 생긴 모양이다.


가봐야겠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 저는 이만 양성소를 떠나보려고 합니다.”


“떠난다고? 조금 더 있지?”


“단장님이 말씀하신 건 모두 처리했으니 이제 제 할 일을 마무리해야죠.

죄송스럽지만 고위기사님이 단장님께 따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뵙지 못하고 급히 떠나게 되며 죄송스럽단 말도 부탁드립니다.”


“알았네. 조심히 가게.”


“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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