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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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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7.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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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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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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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3

DUMMY

-천-



다음 날 아침.


“오늘은 내가 같이 못 다녀.”


“나 혼자 움직이라는 말이오?”


“어.”


선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어이가 없군.


하기 싫은 사람을 끌어들여 놓고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이해가 안 되는군. 이 일을 내가 하자고 했소?”


“으, 응?”


“하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하게 해놓고 이제는 나보고 알아서 해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뭘 말하는 거요?

당신이 하도 노래를 불러,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해줬더니 이제는 나 몰라라 한다?

내가 제안을 받았으니까 알아서 할거라 생각했소?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아쉬운 건 내가 아니오.”


잠깐.


다른 목적이 있었나?


다른 목적이 있어서 공적을 올린다는 핑계로 양성소로 인도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공적을 올린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일을 진행할 이유가 없는데.


“당신, 다른 꿍꿍이가 있소?”


“무, 무슨 소리야!?”


선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이 나를 더더욱 의심하게 한다.


“있나 보군. 그래서 날 풀어놓고 혼자서 작당을 벌일 작정이었어.”


“자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혼자 일을 해결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어제 모님이 말씀하셨잖아!? ”


아무 말 없이 선을 쳐다보니 흥분한 듯 계속해서 입을 연다.


“그래서 같이 돌아다니면 안 되니까 나 혼자 조사하려고 했던 거야!”


“그, 렇소?”


“그래!”


선은 꽤 억울한 듯 소리를 빽 질렀다.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였고 선을 그런 나를 한번 쳐다보고 짐을 챙긴다.


“알았소.”


“여긴 하루 만에 전부 못 돌아봐. 훑어본다고 해도 이틀은 잡아야 해.

조사까지 할 거니까 그 이상이 걸릴 테고.

네가 사흘이 되면 간다고 했는데 그중 하루는 지나갔으니 이제 이틀 남았잖아.

반 갈라서 조사하면 어느 정도 시간은 맞추겠다.”


“그래서 뭔가가 있으면 하루 더 있자고 했소?”


“어.”


선이 날 보지 않고 여전히 짐을 챙기며 말했다.


“나는 나가서 여기 안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보고 다음에 볼 때는 지금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겠지.”


“왔다 갔다 하면 시간 낭비니 그게 낫겠군.”


“이틀 후 점심 먹기 전에 여기서 보자.

내가 모님에게 허가는 받았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주요 시설은 아마 안 되거나 동행인이 있어야 하겠지만.”


“알았소.”


“그리고··· 너도 알지 모르겠는데, 기사를 양성하는 과정에선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


어제 내가 본 환영식.


그리고, 그걸 제외하더라도 그렇게 좋은 풍문이 떠도는 건 아니지.


사람들이 다들 기사를 휘하에 두고 싶어라 하지만 정작 자신의 핏줄은 양성소에 보내기 싫어하는 것처럼.


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는다.


“나는 네가 거기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분명히 기분 나쁘고 이상한 일들을 보게 될 거야.

그건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알고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도 알아.

하지만 예전부터 이어 내려온 전통이고 나도 그걸 겪었어.

그리고 그걸 겪어야 진정한 기사가 되는 거고.”


“알겠소.”


“그래, 너는 랑을 제외하고 남 일에 관심이 없는 성향이지만 혹시나 해서 말해봤어.

나 먼저 가볼게.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틀 후에 보자.”


선이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가 다시 들어온다.


“왜 그러시오?”


“지도 필요 있어? 너는 여기 지리를 잘 모르잖아.”


“있으면 좋지.”


선이 내 대답에 품에서 지도를 꺼내어준다.


“고맙소.”


받은 지도를 펼쳐 보니 옆에서 선이 고개를 들이밀어 지도를 쳐다본다.


“역시나, 달라진 건 없네. 나 진짜 간다.”



///



내가 맡은 구역에서 물건이 가장 많이 없어진 기숙사로 향하는데 정체 모를 범이 길 한가운데서 자신의 몸을 뒤적거리고 있다.


사무원이 암살자로 추정되는 것을 봤다고 했는데 범의 형체를 가졌다고 했지.


얼토당토않은 말이지만 어쨌든 범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하니 칼을 뽑아 조심해서 범의 뒤로 향했다.


살금살금 다가가는데 범이 뒤를 홱 돌아본다.


세로로 길쭉한 범의 동공이 급격하게 팽창되어 온 눈을 잠시 덮고 이내 원래대로 돌아온다.


“깜짝이야.”


범이 날 보며 전혀 놀라지 않은 투로 말했다.


“칼은 집어넣지?”


범이 육중한 몸을 완전히 돌려서 날 쳐다봤다.


“하나만 물어보겠소. 당신은 누구시오?”


칼을 집어넣지 않고 범의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나? 나는 여기 초빙된 범인데.”


아, 초빙.


그렇지, 엄밀히 말하면 여긴 사람만 있는 게 아니지.


“그렇소?”


칼은 여전히 손에 쥔 채 대답했다.


범은 칼을 쥔 내 손을 한번 쳐다보고 대꾸한다.


“그래, 너는 누구니? 아무리 봐도 기사가 되려고 온 사람처럼 안 보이는데.”


“양성소에 볼일이 있어서 이곳으로 왔고, 지금은 한 고위기사의 부탁을 받아 누군가를 찾고 있소.”


“아하! 너 지금 내가 범의 형상을 한 암살자라고 생각해서 왔구나, 그렇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내가 그 새끼 때문에 말이 아니야.

너 같은 놈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대놓고 앞에서 말은 안 하는데 뒤에서 얼마나 수군대는지 참, 나 원.

그래도 너는 칼 빼 들고 오기는 했네.”


갑자기 하소연하기 시작하더니 바닥에 털썩 앉았다.


“야,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여기 단장이 하도 부탁해서 오기 싫은데 기껏 와줬거든? 그런데 뭐!?

암살자로 의심한다고? 너희 물건은 줘도 안 가져!”


꽤 분한 듯 범의 줄무늬가 살짝 뒤틀렸다.


“내가 여기에서 유일한 범이고 암살자가 범의 형상을 했다고 했으니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말이 너무 많아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범이 내 어깨에 손을 털썩 얹는다.


“어디 가려고? 가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범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내 앞에 앉았다.


“수업 없소?”


“어. 없으니까 내 말 좀 들어봐.”


한숨을 쉬며 말했지만, 범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까지 말했지···? 아, 내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라니까? 내가 여기서 유일한 범이니까.

그래도 이해 못 하는 거랑 기분 나쁜 거랑 별개잖아.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아봤거든, 어떻게 된 줄 알아?”


“못 잡았겠지.”


“그건 당연한 거고.”


범이 괜히 뜸을 들이며 내 관심을 유도했다.


“어떻게 됐소?”


물어보고 싶지 않았지만,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물었다.


범이 주위를 둘러보고 내 귀에 입을 가져댄다.


범의 수염이 뺨을 간질거려 빼고 싶었지만, 대답을 듣기 위해 가까스로 참았다.


“진짜 범이었어.”


“정말이오?”


그 얼토당토않은 말이 사실이라고?


장난을 치는가 싶어 범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봤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왜 보고하지 않았소?”


“미쳤어!? 안 그래도 의심하는데 내가 범이라고 확언까지 하면 더욱 날 의심하지 않겠어?”


“나한테는 왜 말했소?”


“너는 여기 사람이 아니잖아? 여기 있는 족속들이 얼마나 자긍심으로 똘똘 뭉쳐있는지 너도 알지 않아?”


양성소가 유별나다는 건 세상 모든 인간이 알고 있지.


“별로 신망이 없나 보오. 아니라고 하는데 의심하는 걸 보니.”


“내가 신망이 없는 게 아니라 여기 놈들이 인정을 못 하는 거야.

내가 방금 말했잖아? 자긍심으로 똘똘 뭉쳐있다고.

그러니까 뚫린 걸 인정 못 하는 거야.”


그럴 바에 차라리 이 범을 암살자로 몰자는 생각이군.


“기분 나쁠 텐데, 내팽개치고 나오면 되지 않소?”


“아니, 그냥 나가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 못 해.”


그리고 범도 유별난 것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럽지.


“그리고 그놈이 내 빗도 훔쳐갔단 말이야. 찾아야 해.”


빗을 잃어버렸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군.


“그래서 길 한가운데서 당신의 몸을 뒤적거리고 있었소?”


“털 손질하려고 빗을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야. 그래서 그랬지.

너하고 이야기하는 와중에 계속 생각해봤는데 훔쳐갈 놈은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어. 바로 그놈.”


“알겠소. 행운을 빌겠소.”


수다쟁이 범이 자신의 빗까지 찾아달라고 할까 봐 얼른 가려는데 또다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살짝 짜증을 담은 얼굴로 범을 쳐다봤다.


“나 좀 도와줘.”


“싫소.”


“빚 하나 달아.”


“미안하오만 당신의 빚을 얻어 내가 특별히 할 일이 없소.”


“너 진짜 희한한 놈이네? 범의 빚을 마다해?”


“나는 가겠소. 그럼 이만.”


범을 지나쳐 걸었고 이번에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그렇게 기숙사를 향해 발걸음을 바삐 옮기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해 뒤돌아보니 방금 만났던 범이다.


이윽고 내 앞에 서더니 입을 연다.


“같이 가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그러시오?”


“기숙사 아니야? 이쪽 방향에선 거기가 제일 많이 털렸잖아.”


“··· 그렇게 한가하시오? 여기 교관은 참 편하군.”


“어허,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그리고 내가 있으면 조사가 더 쉬울 거 아니야?

어라? 그러고 보니까 너 제법 한가락 하나 보네?

이놈들은 기사 아니면 아무한테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는데. 너 기사야?”


“아니라고 진작 말했소.”


“기사가 되기 위해 온 게 아니라고 했지 기사가 아니라고는 하지 않았는데.”


머리가 지끈거려 잠시 자리에 멈춰 하늘을 쳐다봤다.


“왜 위에 뭐 있어?”


범도 나를 따라 하늘을 쳐다봤다.


“제발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되겠소?”


“왜?”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



기숙사 앞.


나와 범은 기숙사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황당하게 쳐다보고 있다.


“정말 이해 못 하겠단 말이지. 저런 게 정말 기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될까?

내가 보기엔 단순히 전통이란 핑계로 자신의 심리적, 신체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야.

그리고 그런 게 대물림돼서 전통 비슷한 거로 포장된 거지.”


범이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서서 보고 있는데 생도 중 하나가 우리를 보고 다가온다.


“무슨 일이십니까, 교관님?”


내가 아닌 범을 보고 말했는데, 이로 보아 내가 혼자 왔으면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내가 아니라 이 사람한테 물어봐.”


그제야 생도가 내게 눈길을 줬다.


하지만 마땅치 않은 눈빛이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암살자의 흔적을 찾으러 왔소.”


“아! 어제 사감님이 말씀하셨던 분입니까? 실례했습니다.”


생도가 방긋 웃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이 이 시간에 오시리라 생각하지 못해 한심한 후배들의 추태를 보여 드렸습니다.”


생도가 뒤를 쳐다보며 말했다.


남녀 불문하고 옷을 발가벗은 상태로 땅을 구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암살자에게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을 면담하고 싶소.”


“그렇습니까? 일단 안에 계시면 제가 하나씩 들여보내겠습니다.”


생도가 손짓하자 다른 생도가 뛰어와 우리에게 인사했다.


“이분들을 접견실로 모셔다드려. 이분은 우리 선배니까 극진히 모시는 걸 잊지 말고.”


“네!”


“그리고 암살자에게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은 열외를 시키고 목욕 후 접견실로 하나씩 보내.”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선배님.”


··· 정말 불편하군.


안내에 따라 범과 함께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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