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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비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최강 던전메이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이호비
작품등록일 :
2020.09.21 23:56
최근연재일 :
2020.10.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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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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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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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2. 우리의 주적은 플레이어

DUMMY

“고생했다.”

“엘리트보스에 비하면 시시할 따름입니다.”


소멸되어가는 리치를 바라보며 릴리는 익숙하게 전리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걸로 연금술사의 거점유적을 6번 클리어하였다.

웃기게도 리치의 약점은 악마인 릴리 존재 그 자체였다.

악마에게 입는 피해가 무려 200%다.

게다가 던전을 한 번 클리어 할 때마다 잠재력 축적스킬에 누적된 경험치를 투자해줬기 때문에 공략은 더욱 스무스하게 진행된다.

릴리의 레벨은 나와 같은 66.

던전을 3번 클리어했을 때 66을 찍었다.

이후부터는 계속 잠재력 축적으로 경험치를 누적시키는 노가다를 하고 있는 중이다.


“돈이 될 만한 것은 이번에도 없나?”

“이전까지와 똑같습니다. 리치의 로브자락과 중급HP포션, 중급MP포션이 전부입니다.”

“득템거리는 없다고 봐야겠군. 그래도 포션을 얻을 수 있다는 건 큰 메리트야.”


중간보스는 내 무투스킬로만 잡아야 한다.

스킬의 특성상 MP보단 HP를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던전의 이름이 연금술사의 거점유적이다.

리치는 생전에 연금술사였다는 설정이 부여된 것인지 내부공간은 실험실처럼 꾸며져 있었고 보스를 처치하면 보상은 물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실험실을 뒤져 포션을 챙기는 게 가능했다.


[ 던전을 정복하셨습니다. 재도전하시겠습니까? YES / NO ]


안내문구가 눈앞에 펼쳐지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재도전에 임하려고 했다.

누군가의 메시지 수신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띠링!

[ 화악산흑표범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수신되었습니다. ]


- 꽤 오래 하네?

- 너에 비하면 오래하는 것도 아니지.

- 하하, 그런가.

- 그나저나 왜?

- 아, 다름 아니고 너한테는 말해둘까 싶어서 말이지.

- 뭔데?

- 그러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삼겹살 어때?

- 현실 쪽 이야기냐?

- 아니, 게임 쪽 이야기인데. 혹시 모르잖아, 누군가 대화를 엿들을 수도 있고.

- 그런 스킬까지 존재하겠냐?

- 아무튼 로그아웃하고 나와라!


그 말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하아, 어쩔 수 없지.’


현우는 좀 뭐라고 할까.

무대포 기질이 강한 탓에 이대로 게임 속에 머물러 있다간 코드를 뽑아버리고도 남을 녀석이다.

나는 릴리에게 용무가 생긴 탓에 나가봐야하니 휴식을 취하라는 말과 함께 소환을 해제했고 곧바로 로그아웃을 하였다.

접속을 종료한 나는 헤드기어를 벗고 기지개를 켰다.

그런 뒤 방을 나와 흡연실로 들어갔는데, 현우가 이미 한 대 피고 있었다.


“레벨은?”

“66.”

“···뭐라고?”

“66이라고.”


치익!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렇게 말하니 현우는 지금까지 뭐했냐면서 따지고 들었다.

현재 윌더니스 월드의 플레이어 레벨 1순위는 199.

현우도 이미 100레벨대를 넘겼다고 한다.


“알아서 잘 키우고 있으니 걱정마라.”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냐?! 66이라면서, 지금까지 뭐했는데?!”

“뭐하긴, 캐릭터육성하고 있지.”

“뒤쳐지는 것도 정도가 있다. 이래서는 게임으로 돈 벌겠냐?”

“아! 시끄럽고. 할 이야기 있다면서, 이래보여도 바쁘다.”


후우···

현우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확실히 내 성장속도는 더디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착실하게 임하고 있다.

우리 둘은 게임을 즐기는 입장이 아니다.

다크게이머로서 한바탕 벌 목적으로 게임에 접속하고 있다.


“빨리 펴, 배고프니까.”

“새끼, 재촉은···”


반 정도 핀 담배를 끄고 밖으로 나왔다.

현우의 추천으로 집 앞의 작은 고기집에 들어왔다.

식당 안은 이미 시끌벅적했고 고기냄새가 코끝을 간질거렸다.

맛있는 냄새가 코 안으로 스며드니 이제야 허기짐을 느꼈다.

단골집답게 현우는 곧장 주문을 하였다.


“사장님! 삼겹살 4인분이요.”

“술은?”

“임마, 밥 먹고 일해야 하는데 음주가 웬 말이냐.”

“그렇지?”

“점검 때 한 잔 하는 걸로 하고 일단은 배부터 채우자고.”


밑반찬과 함께 고기쟁반을 받은 나는 곧바로 불판위에 올리려고 했다.

그러자 현호가 급히 손목을 붙잡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러냐는 시선을 보내자 내게서 집게를 낚아채고선 이리 말한다.


“불판을 달구고 난 뒤에 고기를 올려야지.”

“이래나 저래나 똑같이 구워지는 건데 뭘.”

“달라 이 자식아!”

“뭐가?”

“한 입 베어 물면 육즙부터가 다를 거다.”

“확실한 정보냐?”

“몰라, 그렇다고 들은 거뿐이거든.”


그렇게 별 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한 입 먹자 피로가 사르르 녹는 기분에 휩싸였다.


“나, 히든퀘스트 받았다고 했잖아.”

“그러고 보니 그거 깼냐? 보상은 뭐든?”

“그게 말이지···”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자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왜냐하면 나와도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마력을 주입시킨 킹 슬라임의 전리품에 의해서 히든퀘스트가 발동되었지 않은가.

현우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선 내게 말을 이었다.


“실은 아직 못 깼거든?”

“아직도? 네가 못 깰 정도면 얼마나 어려운거냐?”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복잡하다고 봐야지.”


현우의 목소리가 작아질수록 내 목소리 또한 개미 기어들어가듯 소곤거렸다.


“그래서? 내게 말하는 걸 보면 단순히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는 아니겠고, 도와 달라 뭐 이건가?”

“정답. 그래서 말인데, 너 시간 좀 낼 수 있냐?”

“흠, 그 히든퀘스트에 대해선 궁금하긴 하지만···”


내가 말끝을 흐리자 현우는 답답한 건 못 참겠다는 듯 어서 말해보라고 재촉해왔다.


“지금 던전 안에서 무한노가다 중이거든. 입장조건이 밝혀지지 않은 던전이라 최대한 이득 좀 보려고.”

“무슨 던전? 66이라고 하지 않았냐? 그 레벨대의 던전이라면 이미 다 밝혀졌을 텐데.”

“나도 이야기하자면 좀 복잡해서 그런데 요약해서 말한다?”

“뭔데? 말해봐.”


현우라면 믿고 말해도 된다.

한 지붕아래서 사는 사이면서 오랜 친구로 지내왔으니까.

물론 던전메이커란 히든클래스로 전직했다는 말은 아끼기로 했다.

녀석을 못 믿는 것이 아니다.

추후 제대로 자리를 잡고 나서 말해줄 생각이다.

지금 말했다가는 별의 별 플랜을 내세우며 시끄럽게 굴 테니까.


“연금술사의 거점유적이라고 하는 던전, 권장레벨은 대충 50에서 60정도.”

“흐음, 확실히 그런 던전은 못 들어봤는데, 입장조건은?”

“일단 들어오긴 했는데 입장조건은 모르겠네.”

“입장조건도 모르는데 어떻게 들어갔는데?”

“설명하기엔 좀 복잡하다고 했잖아, 아무튼 입장조건을 모르는 이상 거기서 죽치고 있을 생각이라 도움은 못줄 것 같다.”


현우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꽤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탓에 괜히 말해봤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이야기가 길어질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급히 잘라보였다.

현우도 곰곰이 생각해보다 그럴 것 같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본론으로 넘어갔다.


“실은 이 히든퀘스트가 진행이 안 되고 있단 말이지.”

“진행이 안 되다니?”

“위치는 표시되어 있거든?”

“어딘데?”

“검은 손 미궁.”

“푸흡!!! 커헉···! 컥···!”


목을 축이기 위해 물을 마시던 와중 현우의 말에 사례가 걸려버렸다.

고통에 찬 기침을 연발해대니 현우는 깜짝 놀란 얼굴로 서둘러 휴지를 뽑아주었다.

휴지를 받으며 짧게 감사를 전한 나는 진정하자는 의미에서 두 번의 심호흡을 가졌다.


“미안, 그래서? 위치는 검은 손 미궁인데 진행이 안 된다는 건 무슨 말이야?”

“기억나지? 레벨 1때 너 거기에 갇혀서 고생 좀 했잖아.”

“잊을 수 없지.”

“버그가 있는 던전이라 그런지 아무리 뒤져봐도 해답을 찾을 수 없겠더라고. 지금도 시간 날 때 한 번씩 들리긴 하지만 도통 뭐가 뭔지.”

“퀘스트 목표가 뭔데.”

“그 목표가 공백으로 처리된 탓에 이러고 있는 거다.”


현우의 말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히든퀘스트인데 목표가 공백이다?

킹 슬라임때와의 차이라면, 그래 몇 가지가 예상되긴 했다.


첫 번째, 킹 슬라임은 던전의 지배자다. 지배자급에 던전메이커의 권한을 부여한 탓에 히든퀘스트가 발동된 것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슬라임의 마굴과 검은 손 미궁은 내 관리에 놓인 던전이다. 던전메이커의 지배에 놓인 던전이 유기적으로 현우의 히든퀘스트에 영향을 끼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즉, 내가 경영하는 던전의 지배자에게 영향을 끼칠 시 현우의 히든퀘스트에 목표가 부여될 확률이 지극히 높다는 뜻이 되겠지.’


특정 플레이어의 행적에 따른 히든퀘스트라.

아무리 게임경력이 많은 나라고 해도 대강 추측만 될 뿐 예상은 가지 않았다.

일단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우를 바라보았다.


“좋아, 하지만 내가 도움을 주는 건···”

“오,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아직 내 얘기 안 끝났는데.”

“대충 던전의 입장조건을 밝혀내기 전까지는 못 도와준다는 말이잖아? 그 정도쯤이야 눈 딱 감고 기다려줄 수 있지.”


그렇게 우리들은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상쾌한 공기를 디저트삼아 들이마셨다.

할 이야기도 끝냈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 윌더니스에 접속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우는 날 잡아 이끌며 웬 약국으로 들어섰다.


“이게 누구야? 현우잖아. 한동안 뜸해서 이사라도 했나 싶었더니.”

“하하, 그게 최근에 조금 바빠서요.”

“우리의 VIP께서 바쁠 정도면 여간 일이 아니었겠어?”

“게임을 옮겼거든요.”


현우는 중년의 약사와 굉장히 친밀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VIP라고 언급한 걸로 보아 분명 영양제나 피로회복제 같은 현실포션을 이곳에서 충족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홀로 동떨어져서 생각하고 있으니 현우는 날 소개시켜주었다.


“이쪽은 제 친구이자 동료인 정인동이라고 해요. VIP예정이니 서비스 팍팍! 아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정인동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런 소개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급히 인사를 건네자 약사는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현우가 소개해준 만큼 서비스는 섭섭지 않게 챙겨주마. 내 이름은 이준식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현우는 내 어깨에 손을 얹은 채로 의미심장하게 웃어보였다.

약사는 현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리를 숙여 큼지막한 박스를 꺼내 들었다.


“암! 우리 딸아이 한 학기 등록금은 현우가 내줬다고 봐도 될 정도니 오늘은 그냥 가져가거라.”

“역시! 이래서 제가 아저씨네 가게만 고집한다니까요.”

‘이, 이거 설마 전부 박하스?!’


나는 놀란 얼굴로 그 박스를 받았다.

엄청난 무게에 또 한 번 더 놀랐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현우에게도 같은 박스하나를 건네주며 약사가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당연하죠!”

“가, 감사합니다.”


무거운 박스를 건네받은 나와 현우는 뒤의 의자에 잠시 놓은 뒤, 한동안 이야기꽃을 만개하였다.


“이번에는 무슨 게임이던?”

“윌더니스 월드라는 게임인데, 들어보셨어요?”

“들어는 봤지, 게임에는 관심도 없는 내가 알 정도니 현우가 뛰어드는 건 당연한가.”

“이참에 한 번 해보시는 게 어떠세요?”

“요즘 게임들은 제대로 숙지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하던데, 그럴 바에야 그냥 모르는 상태로 이대로 살련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한 번 체험해본다 생각하고 해보시지.”

“됐네, 이 사람아. 우리 딸아이도 똑같은 소릴 해대던데, 현우 네가 권한다고 넙죽 받아들면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겠냐?”

“하하, 확실히 그렇겠네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현우는 박스를 들어올렸다.


“서비스 감사합니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확실하게 팔아드릴게요.”

“그래, 그렇다고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아저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뭔가 묘한데요?”

“돈이야 벌면 그만이지만, 말동무가 사라지는 것만큼은 사양이다.”

“우와, 아무렇지 않게 살벌한 소리를.”

“하하하! 약사이기에 가능한 조크. 자네도 건강에 유의하고, 앞으로 들리거든 짧게나마 말상대나 좀 해주게.”

“네! 서비스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약국은 집과 그리 멀지 않았지만, 상당한 무게를 지닌 박스를 짊어진 상태라 걸음은 자연스레 더딜 수밖에 없었다.

현우는 익숙한 듯 보였기에 걸음의 지체는 온전히 내가 원인이었다.


“일단 마무리되면 곧바로 연락할게.”

“OK, 그동안 나는 육성에 매진하고 있을 테니 편하게 연락 줘.”


그렇게 겨우 집에 도착한 우리들은 식탁위에 박스를 올려둔 뒤 곧바로 윌더니스 월드에 접속했다.


-----


[ 던전을 정복하셨습니다. 재도전하시겠습니까? YES / NO ]


“후우~”

“한방님 고생하셨습니다.”


게임에 접속하고 곧장 무한재도전을 통한 노가다를 한 결과 내 레벨은 87을 달성하게 되었다.

정말 지긋지긋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66레벨로 경험치패널티를 받는 것도 모자라 직업패널티로 인해 요구 경험치의 대폭 상승은 무한의 굴레에 속박당한 느낌을 받게 했지만, 연금술사의 거점유적을 관리할 수 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노가다를 통해 얻은 것은 레벨의 상승만이 아니다.

곡괭이다루기와 채광의 숙련도 또한 상당히 올릴 수 있었고 획득한 칭호에 의한 힘 스탯의 상승까지, 이미 전문가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내 레벨이 87까지 상승했기 때문에 릴리의 레벨 상한선까지 풀렸다.


“그럼 슬슬 의식을 준비해볼까?”

“네!”


릴리도 반복된 노가다에 의해 상당히 지루해하는 눈치였지만, 애써 티내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끝이다.

내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릴리, 나는 던전의 재도전을 받아들였다.


띠링!

[ 연금술사의 거점유적에 들어왔습니다. ]

[ 던전메이커로서 관리권한이 부여된 던전입니다. ]

[ 관리( 연금술사의 거점유적 )를 시작합니까? YES / NO ]


“YES.”


[ 관리자의 업무실로 이동하시겠습니까? YES / NO ]


“YES.”


재도전과 동시에 고대하던 메시지창이 떠올랐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경이 전환되며 익숙한 공간속에 들어섰다.

지금까지와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이번에는 릴리도 함께였다는 점이다.


“릴리, 정말 수고 많았다.”

“한방님께서 더 고생하셨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둘은 상당히 지쳐있는 상태였다.

육체가 아닌 정신적인 부분이 말이다.

연속되는 전투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똑같은 풍경과 똑같은 몬스터 구성, 똑같은 공략방식의 세 박자는 플레이어에게 엄청난 인내를 요한다.

그건 뛰어난 AI를 탑재한 릴리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내가 앉은 자리의 옆에 서서 힘없이 축 늘어진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똑! 똑!

[ ( 연금술사의 거점유적 ) 지배자 진리를 탐구하는 리치가 관리인에게 찾아왔습니다. 안으로 들이겠습니까? YES / NO ]


“들어와.”


릴리와 똑같이 축 늘어진 목소리로 수락하자 문이 스르륵 열리며 지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지배자 진리를 탐구하는 리치가 관리인을 뵙습니다.

“널 보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 ······.

“하아···”


한숨과 함께 미간을 주무르며 나는 릴리에게 손짓을 보냈다.

릴리는 서둘러 내게 한 쪽 귀를 기울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리를 탐구하는 리치는 묵묵히 서있을 뿐이다.


“······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 ······.


릴리에게 명령을 부여한 나는 그대로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의자에 편하게 기댄 채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으로 힘겹게 읽어 내려가고 있으니, 곧바로 릴리의 목소리가 작은 공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차렷.”

- ······.

“열중 쉬어.”

- ······.

“동작 봐라! 차렷!”

- ···!!!


관리인의 옆에 서서 분위기를 잡고 있던 릴리가 대뜸 목소리를 높이자 리치는 흠칫, 떨며 곧장 따르기 시작했다.

릴리는 군기반장의 역할을 똑똑히 보여주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현 던전의 정보를 읽어 내려갔다.

눈여겨볼만한 정보는 이곳의 지배자는 한때 연금술사였으며,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스스로 리치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리치가 된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의 끝없는 탐구욕에 대한 집념이었다.

때문에 리치로의 삶을 이어준, 즉 같은 악마인 릴리에게 쪽도 못쓰고 당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약점이 악마였기 때문이지, 연금술사의 지식을 지닌 지배자는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었다.

마석의 가공, 봉인된 아이템에 대한 감정, 각종 포션과 지혜 등.

다른 던전의 지배자들과 달리 지식부문에서는 큰 점수를 매길 수 있었다.


“지배자.”

- 네!

“···지금 뭐하냐?”


서류를 내려놓고 지배자를 바라보았다.

리치는 릴리의 명령에 의해 물구나무를 선 채 대답했다.

그리고 릴리는 허리춤에 올려둔 양 손을 황급히 내리며 날 바라보았다.


“릴리, 아무리 그래도 물구나무를 세우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네?”

“정신교육을 맡겼지, 막 대하라는 의미에서 너에게 권한을 대행시킨 게 아니란 말이다. 엎드려뻗쳐.”

“···네, 죄송합니다.”


내 단호한 한 마디에 릴리는 물구나무를 선 리치의 옆으로 다가가 엎드려뻗쳤다.


“리치.”

- 네!

“원위치.”

- 알겠습니다!


서류를 확인하는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강을 확실히 다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릴리도 원위치.”

“알겠습니다!”


날 바라보는 두 존재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만큼 쌓여있지 않은가.

내가 윌더니스 월드에 접속하는 이유는 다크게이머로서, 현우처럼 재력을 쌓아올리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려서는 안 된다.

계획적으로 움직이고, 모든 정보에 귀를 기울이며, 다른 유저들과는 방식자체를 달리해야만 한다.

지금 내 앞에 서있는 이 두 녀석들은 휘황찬란한 내 앞날을 위한 첫 발자취와도 같다.

유대감을 원한다.

전우애를 원한다.

같은 배를 탄 동료로서 믿고 의지하여 시너지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악역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날 욕하는 것으로 저 두 존재가 그런 유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상관하지···아니, 처벌은 할 테지만 어쨌든 상당부분은 넘어가줄 수 있다.


“릴리, 내가 부탁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정신교육에 필요한 정도의 얼차려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방금 그 얼차려는 뭐지? 내가 너에게 물구나무를 시킨 적이 있었나?”

“없습니다!”

“너희들은 전우다. 생과 사를 나눌 전우란 말이다! 노가다가 조금 지루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감정은 배제하란 말이다! 물론! 나는 가능하다.”

“그렇습니다!”

“다시 말한다. 너희들은 동료다. 리치가 인간태생이었다곤 하지만 지금은 언데드이지 않은가.”


우리들의 주적은 플레이어들이다.

나는 이 부분을 곱씹으며 주입시켰다.


“플레이어들은 너희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사악한 존재들이다. 아무렇지 않게 동료의 등에 비수를 꽂으면서도 일말의 양심조차 느끼지 않는단 말이다.”

“네!”

- 네!

“플레이어는 본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녀석들이다. 대륙 어디에서나 칼부림이 일어나고, 죽고 죽이는 일이 비재하지.”


윌더니스 월드의 플레이어들은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이방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즉, 플레이어들의 종족은 플레이어.

이 게임세계관에서 인간은 NPC로만 되어있는 것이다.


“나와 함께 필드를 거닐었던 릴리는 느꼈을 테지.”

“그렇습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무장한 채 몬스터들을 학살해대었다.

그 광경을, 릴리가 아무렇지 않게 바라봤을 리 없었다.


“내가 관리인이 된 이유가 바로, 그런 짓을 서슴없이 벌이는 동족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다. 이 세상에 플레이어들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의미의 평화는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

- ······.


분위기를 한껏 잡고 얘기를 하니 릴리와 리치는 입을 꾹 다문 채 듣기만 하였다.


“내 태생은 플레이어다. 하지만 마왕으로부터의 계약에 따라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지. 우리들의 주적은 플레이어, 정신교육이든 육체강화훈련이든 모든 것은 그들로부터 대항하기 위한 단순한 절차에 불과하다. 사사로운 감정은 배제해라.”

“알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대충 얘기를 끝마친 나는 곧바로 중간보스, 광기에 잠식된 호문쿨루스를 불렀다.


-----


붉은 기운을 두른 호문쿨루스를 두고 나와 리치는 진중한 분위기속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광기를 지닌 악마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 호문쿨루스들을 이용했다?”

- 그렇습니다.


리치는 광기의 악마란 이명을 지닌 존재와의 계약을 통해 언데드의 삶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힘이 워낙 방대했고 또 거칠었기 때문에 억제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치가 생각해낸 방안이 바로 호문쿨루스였다.

악마의 광기는 유적의 기능을 봉인해버린다.

하지만 호문쿨루스의 신체를 그릇삼아 광기를 담아내면 유적의 기능은 마비되지 않는다.


“유적의 기능이라, 나는 호문쿨루스의 안에 내재된 광기를 이용해볼 생각이었는데.”

-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 마력인가?”

- 그렇습니다.


킹 슬라임때와 상황이 비슷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 내 마력을 주입시킬 몬스터는 지배자가 아닌 중간보스.


“내 마력을 받은 호문쿨루스는 녀석을 불러들이지 않나?”


리치에게는 내가 계획한 것의 일부를 들려주었다.

엘리트보스를 이용한 유적의 보호.

하지만 녀석을 불러들이면 유적의 기능이 마비된다고 방금 들었다.

게다가 호문쿨루스의 신체는 순두부와 같기 때문에 금방 붕괴되어 버린다.

엘리트보스는 호문쿨루스의 연약한 신체에 의해 제대로 된 전투를 행할 수 없어 조심스레 행동하지만 붕괴는 막지 못한다.

때문에 그릇이 사라진 광기는 유적을 휩쓸며 기능은 물론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든다.


- 광기를 담아내기 전에 관리인의 마력을 주입시켜 강화시킨다면 육체의 붕괴를 좀 더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붕괴되기까지의 예상시간은?”

- 실험해봐야겠으나, 대략 5~6분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5분이라, 여기서 나는 팔짱을 낀 채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었다.

엘리트보스를 한 번 부를 때 마다 새로운 호문쿨루스가 필요하다.

그 말은 내 마력을 또 주입시켜놓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윌더니스 월드의 유저수는 상상 그 이상이다.

거점유적이 공개된다면 수많은 유저들이 들락거릴 것이다.

거기에 맞춰 내 마력을 주입시킨 호문쿨루스의 수를 충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흠, 유적의 기능을 보호하면서도, 호문쿨루스의 신체가 붕괴되지 않는다면 수고도 많이 들이지 않을 텐데.”


그때였다.

내 혼잣말을 들은 리치가 대뜸 한 발자국 다가오니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띠링!

[ 던전의 몬스터( 진리를 탐구하는 리치 )로부터 관리인에게 할 말이 있어 보입니다. ]

[ 고유 패시브 스킬 : 물렁한 마음가짐이 발동하였습니다. ]

[ 던전의 몬스터( 진리를 탐구하는 리치 )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YES / NO ]


“뭔가 할 말이 있나?”

- 호문쿨루스의 신체가 붕괴되지 않길 원하시는 것 같기에.

“좋다. 들어보지.”


[ 던전의 지배자( 진리를 탐구하는 리치 )의 부탁을 승낙하였습니다. ]


흔쾌히 수락을 하자 리치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 부디 관리인의 마력을 이용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실험의 부문은.”

- 당연히 호문쿨루스입니다.


예상한 바이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 한 장을 바라보았다.

악마와 계약을 하면서까지 호문쿨루스의 연구에 영혼을 바친 이유가 적혀있는 문서였다.

나는 그 서류의 위에 노란 꽃 한 송이를 조심히 올리며 대답했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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