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프롤로그 - 지옥은 어느 곳이든 존재한다. -
*0*
환청은 사람들이 나타날 때마다 들려왔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야.]
빨리 쾌차하라고 하면서, 등 돌린 자들은 모두 나를 비웃었다.
-봐봐. 저렇게 지만 잘난 잘 알고, 나대면 꼭 문제가 생긴다니까.
-맞아. 우리가 고개 숙이고 고맙다고 했을 때, 거만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얼마나 역겹던지. 운 좋게 우릴 구했으면서.
-KS에서 돈 줘서 왔는데, 우연히 우릴 구한 거라면서? 최변인이 분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영상보고 소름 돋았다니까.
-조용히 해, 그러다 TS나 KS 쪽 사람이 들으면 바로 신고 들어와. 누군가 SNS에 그런 글 올렸다가 마티즈로 끌려갔다잖아.
그들의 말이 끝날 때마다 또 다른 환청이 들려온다.
[너도 그들과 똑같아.]
‘아니야. 나는 달라.’
내 귀를 막고 싶었지만, 나는 움직이지 못한다.
나는 전신 마비 환자이기 때문이다.
오늘이 깨어난 지 삼십 일째가 되었다.
눈동자를 움직여, 작게나마 보이는 바깥은 여전히 눈발이 날리는 겨울이다.
또 각. 또 각. 또 각.
병원에서 어울리지 않는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
크기와 박자 등을 따져보았을 때, 내가 아는 사람이다.
‘이미소.’
부스럭.
[그녀도 너와 똑같아.]
“오늘은 조화를 가져왔어요. 시드는 꽃보단, 나을 것 같아서요.”
밝게 미소 지으며 말하는 그녀가 보였다.
뒤로 묶은 머리와 코트 안에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미소씨는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가 찾아오는 날들의 간격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전신 마비 환자인 나에게 신경을 쏟는 것이 더 이상하지, 내가 고백을 한 것도 아니니까.’
애써 위로를 하는 나에게,
[아니잖아. 넌 지금 원망하고 있어. 너 자신의 욕심을 부정하지 마.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야. 순응하고 받아들여.]
내 마음의 비수를 찌르는 환청이 들려왔다.
깨어난 지 육십사 일이 되었다.
‘아니 육십오 일인가?’
눈앞에 있던 달력도, 간호사가 집에다 건다면서 가져가 버렸다.
간신히 눈동자를 움직여 볼 수 있는 창밖으로 보이는 전경을 보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위안거리다.
창밖에선 눈을 흩날리고 있었다.
‘그래... 내가 쓰러진 날이 십이월 십칠일이었으니까. 이월 말이구나. 졸업 때문에 바쁘겠어.’
그 때문인지, 양의는 사흘이 넘도록 찾아오지 않았다.
요즘엔 그 아이만 자주 병실로 찾아왔다.
‘아. 뜻밖에 오광민... 아니 남궁민이지. 그 녀석도 일주일에 한 번씩을 꼭 찾아오는군.’
이제는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찾아오지 않는다.
‘이해해.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열심히 살아야지. 그래도 가끔은 찾아오잖아.’
[아직도 포기 못 했구나, 나중에 울지나 말라고.]
그럴 리는 없었다. 최소한 우리 양의만 내 곁에 있으면 되니까.
게임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꾸준히 찾아오는 우리 양의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는 마음속으로 환청에 가운뎃손가락을 내미는 상상을 했다.
‘난 믿어.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지옥이 시작된 지 십삼 일째.
나는 오늘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주임 간호사가 나를 상대로 신입 간호사들의 실습대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야! 손톱 기르면 환자에게 생채기를 낸다고 했잖아.”
“죄송-”
짝.
“악!”
“너같이 외모나 신경 쓰는 것들 때문에, 환자들이 죽거나 다치면 병원이 욕을 먹지. 여기서 간호사 생활하고 싶으면, 손톱도 제때 깎고, 화장은 절대 하지 말고, 탈모 있으면 머리도 그냥 짧게 잘라버려. 알았어!”
“네...”
“하여간 신입들은 이래서 문제야. 경력직을 뽑아주면 얼마나 편한데...”
40대의 여성이 나가자, 신입 간호사들이 뺨은 맞은 여자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응.”
“그러게 좀 깎지.”
“주임처럼 나도 기르면 되는 줄 알았지. 지도 기르면서 왜 나에게-”
“쉿! 그만해. 나까지 엮일라.”
“맞아. 그분이야 경력 삼십 년이 넘은 베테랑이시잖아. 그리고 현직보다는 은퇴를 앞두고 우리 관리만 주로 하시는 분이기도 하고.”
“쳇. 그건 나도 알아. 이만 가자.”
“그래.”
물건을 정리하던 간호사가 턱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런데 이 환자는 누구야? 누군데 VIP 병실에서 누워있어?”
“강회강이라고 알지? 예전에 영교 박살 냈던 분.”
“어 알아. 폭발사고로 전신 마비되었다던. 헉. 그럼 이분이?”
“응. 그게 이분이래.”
“그럼,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거야? TS에서도 항상 이분이 영웅이라면서 추켜세우고 있잖아.”
“그게...”
간호사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린다.
나는 바로 눈을 감았다.
“가망이 없데. 절대 깨어날 수 없다나. 진화라는 게임도 멈춘 상황이라서, 돌발미션으로는 진화할 수 없으니 앞으로 계속 저 신세라고 그랬어. 게다가 하필이면 우리 병원을 구해주셨던 분이기도 해서, 치료비 공짜라고 주변에다 광고한 적이 있었는데, 꼼짝없이 덤터기를 쓰게 됐지. 그것 때문에 이렇게라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의사들이 있었나 봐.”
“안됐다.”
“그러게.”
“안 됐긴 뭐가 안 돼. 이놈 때문에 맨날 여기서 뺨 맞게 된 내가 더 불쌍하지.”
“그거야. 네가 잘못을-”
“됐어! 그만 말해. 그리고 이자 불쌍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야. 아무나 영웅을 하나. 어디 팔 병신인 자식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다가 당해서 이렇게 남들 힘들게나 하는 쓰레기 주제에 영웅은 무슨.”
“말이 너무 심하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여러 사람을 구해주신-”
“너희들! 여기서 뭐 해.”
“헉 주임님.”
“아까 뺨까지 때렸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니? 자정되기 십 분 전 경보 울렸잖아. 숙소로 어서 움직여!”
“네!”
그들이 나가고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야.]
‘그래...’
간만에 들려온 환청. 그의 주장을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의마저 어느 순간 내 곁에서 사라졌다. 현실과 게임 속 모두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뒤, 찾아올 거란 믿음이 사라지고 지옥이 도래했다.
긴 고독의 시간 속에서 나의 유일한 행복은 오로지 게임 속 생활뿐이다.
‘이제 이곳은 싫어’
나는 눈을 감았다.
*00*
이제 회강에겐 호구들밖에 남지 않았다.
‘너희들이 전부구나.’
인간들과 달리 녀석들은 언제나 자신의 곁에서 지켜주었다.
회강도 알고 있다. 그들이 영 과 일 로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상관없어... 나는 이들도 하나의 생명으로 보니까.’
그는 애써 부정하며 녀석들과 함께 있었다.
회강은 진화가 멈춘 이후로 최소한의 먹이만 구하며, 자연 풍경과 별을 보며 걸어 다녔다.
인간들을 볼 때면 무시하거나, 멀리 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람들이 많은 남쪽보단,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북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헉! 저건!’
자신이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기적인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어. 그리고,]
'그래 그렇지... 잊고 있었다.'
예전에 그는 성폭행범들과 식인플레이어를 여기서 처음 보았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을 할퀴고 지나간 곳은 끔찍했기에, 그는 그들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기도 했었다.
‘저런 놈들...’
회강은 오른손으로 등 뒤에 매달려 있던 자신의 나무창을 잡았다.
[그들은 어디든 그곳을 지옥으로 만들지.]
'저런 놈들 때문에 내 현실은 지옥이 되었지.'
회강의 오른손이 뒤로 크게 젖혀졌다.
'그러면 나도 이곳을 너희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주겠어!'
“우워~~~~~”
회강은 고함과 함께 나무창을 던졌다.
- 작가의말
70화로 1부가 끝났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세상과 회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속에서 그는 나약한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추락했죠.
이제 내일부터 본격적인 2부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과연 우리 회강은 어떻게 될까요?
제글을 읽어주고 계신 여러분 사랑합니다. ^^
추신) 축하 댓글이... 없었습니다. 저 우울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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