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하나씩 하나씩.
선택의 방.
의식을 찾은 그가 처음으로 본 것은 뇌 모형이었다.
이것은 지능 및 뇌와 관련된 신체 요소들의 자세한 단계와 종류들을 볼 수 있는 홀로그램이다.
여기엔 최근 들어 많아진 초록빛의 점들이 보였다.
그리고...
보라색 빛이. 머리 앞부분에 있었다.
그동안 인내에 해당하는 빛만 발견하고 본 적이 없었다.
‘검은색 글씨라서 안 보였던 건가.’
스윽.
가만히 손을 올려서 불굴을 만지는 회강.
‘불굴?’
-*불굴* 온갖 어려움에도 굽히지 아니함
-*개방조건* 셋 중에 하나 완료 시 개방.
1. 최초로 튜토리얼 미션 완료.
2. 10개 이상의 미션을 연속 성공. 단 난이도는 최하 남색 물결 이상.
3. 3개 지역의 최강 포식자 사냥. 단, 혼자서.
-*효과*
1. 모든 선택 미션의 난이도를 최고 난이도로 만든다.
2. 성공한 모든 미션의 보상이 두 배.
3. 단계가 오를수록 난이도를 내려도 두 배를 받을 수 있다. 단 그럴 경우 변이 억제 가능 시간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4. 자신보다 강한 적과 싸울시 [공포] [경직] 상태 이상 무시.
지켜보던 회강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이것 때문이구나.’
남들은 두 개의 맛만 찾으면 끝이었다. 하다못해 몇 단계의 난이도를 올려서 해도 포식자도 한두 마리가 최대였다. 더군다나 난이도 설정은 선택사항이지 자신처럼 강제된 것은 아니었다.
난이도를 상승 시키면 돌발 미션이 나타날 확률 증가와 요소 숙련도 상승률을 최대 9%까지 올라가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자신의 능력을 자신하는 자들이나 하는 선택이었다.
‘최저 난도로 하면 나이 드신 분들도 7일이면 끝나는 미션을...’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다. 게다가 최악은 아니야.’
그렇다, 최악은 아니다. 오히려 최고 난이도 덕분에 최초 메시지를 여럿 얻었다. 만약 남들처럼 했다면 몇 개는 놓쳤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 보상 두 배는 마음에 든다.’
앞으로 여러 요소의 보유와 단계 상황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 와중에 단계를 남들과 같은 미션을 했을 때 두 배로 올려준다면...
‘이럴 때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미션을 시작하자.’
“흣 차.”
몸을 일으킨 회강은 우선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털 길이도 줄어들고, 굽어졌던 등과 몸도 약간은 펴졌다. 앞으로 진화할수록 인간처럼 되어가겠지...’
툭 툭.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왼팔을 쳐보지만, 아직은 감각이 없었다. 왼발목도 전과 거의 비슷한 상태.
‘남들도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난 이제야 메인 미션 하나를 깬 상태다. 실망하지 말자.’
마음을 추스른 회강은 방을 둘러보았다.
제일 처음 해결한 채집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회색빛으로 된 문을 회강이 잠시 바라보았다.
‘다른 미션을 두 개 이상 성공해야 재도전이 된다고 들었다. 나야... 다시 할 생각이 없지만...’
그는 시선을 옮겨 빛이 흘려 나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잠기지 않은 문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채집2]였고, 다른 하나는 저번에도 보았던 [석기]였다.
다른 점이라면 석기의 문 색이 보라색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한 번씩 미룰 때마다 단계가 오른다더니.’
검보남파초노주빨흰 총 9단계로 미션 난이도와 단계가 표시된다. 요소 난이도는 주황색 단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핸드폰에 나온 설명서에서 친절하게 쓰여 있었고, 플레이어 모두가 제일 먼저 접하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난 최고 난이도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최대한 적은 시도로도 깰 수 있는 미션 선택이다.
‘한 번에 성공한다면 더 좋겠지만... 일단 채집2를 볼까?’
[채집2]
생존 능력 중 가장 기초적이면서 제일 중요한 요소.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을 알아낸다.
*완료 조건*
지능이 부족해 선택 후 알 수 있다. 신중히 결정해.
*실패 조건*
변이 전까지.
*완료 보상*
성공: 변이 억제 가능. 초식 숙련도 +1
실패: 변이 억제 실패.
*주의점*
너 자신을 알라.
‘설명도 참...’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고작 위의 숫자 하나 붙었을 뿐이다.
‘그래도 석기보단 난이도가 낮을 거야.’
최저 난이도의 석기 미션에서 포식자가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최고 난이도에선 맹수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는 장소라는 뜻이 된다.
게다가...
‘어쩌면 종류가 더 늘어날지도...’
회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회강이 예상한 것이 맞는다면, 몸이 불편한 그로서는 생존율이 더욱 떨어진다. 결국, 다른 미션으로 최대한 몸을 정상화해놓고 가야 한다. 아니면 피하거나 대항할 요소라도 몇 개 더 얻어야 한다.
‘쉽지 않겠지.’
입맛이 썼지만, 이번에도 선택지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
‘이번엔 채집2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손잡이 잡아 돌렸다.
-오 쿨한데?-
갑자기 뜬 메시지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랄’
문이 열리자, 이번에도 안에는 하얀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채집2에 대한 완료 조건을 알려주지.
*완료 조건*
1. 하루 기준 섭취량 달성.
2. 완료까지 생존.
3. 제한 기간 남은 변이 억제 가능 시간. 31일....
‘이미 예상했다. 이만 들어가자.’
그는 하얀 물결 속으로 몸을 던졌다.
하늘에 노을빛이 물들어 있었다.
그 아래, 인간 허리춤 높이의 억센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군데군데 그리 높지 않은 나무들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부스럭 부스럭.
유난히 엉덩이가 빨간 동물 한 마리가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그 서성이는 유인원인 강회강의 얼굴이 살짝 구겨져 있었다.
‘실수했다.’
회강은 들어오자마자 주변을 돌아본 뒤 내린 결론이었다.
이런 결론이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늦은 시간에 들어오는 바람에 먹이와 은신처를 구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원래 내일 들어왔어도 됐는데...’
선택의 방 대기시간 제한은 오직 눈을 감고 들어왔을 때만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잊고 급한 마음에 그냥 들어와 버린 것이다.
‘다음번부터는 더욱더 신중하자.’
굳은 다짐과 함께 그는 주변을 둘러본다.
‘일단 잘 곳을 먼저 찾아야 돼.’
그는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웃기게도 이 게임은 잠도 중요하다. 만약 자지 않으면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심하면 그냥 쓰러져 버린다.
석기로 넘어간 유저들 중 첫 죽음의 원인이 바로 잠이었다. 왜냐하면, 포식자 때문에 잠을 자지 않고 버티다가, 냄새를 맡고 찾아온 포식자에게 아무 저항도 못 한 채 먹혀버리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자신이 죽을 때까지 먹히는 것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큰 고통과 함께 말이다.
이 때문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거나 불만을 성토하는 이가 여럿 나오고 있었다.
결국, 잠은 무조건 자야 한다. 그것도 은신처를 마련해서.
‘이 나무도 그냥 열매잖아. 아니 숲에선 그리 많던 독 열매가 왜 여기엔 없는 거야.’
더 빨리 움직이고 싶은 회강이었다. 하지만 숲보다 훨씬 멀리 열매들이 떨어져 있는 데다, 억센 갈대가 자꾸 움직임을 방해했다. 거기에 축축하고 푹푹 파이는 바닥이 그를 더욱더 지지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결국,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그는 사과 모양의 열매나무덤불 속에서 몸을 숨기기로 했다.
그는 몸 주변에 으깬 열매를 바르기 시작했다.
‘최소한 내 냄새는 지워주니 바르지만’
불안감에 주변을 더 찾고 싶었던 그였다. 하지만 곧 밤이다.
또한, 전 미션 장소처럼 드문드문 주변이 보이는 곳이 아니다. 억센 갈대로 시야가 제한된 곳이다.
‘불안해하고 있을 시간에 주변 시야 차단이라도 시키자.’
모아놨던 풀들을 움켜쥐고 옮기기 시작하는 회강이었다.
그리고 그가 분주히 은신처를 정비하는 동안 밤이 다가왔다.
‘이제는 운에 맡긴다.’
주변에 벌레 소리 빼고는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눈을 감았다.
*4*
썩은 내가 진동하는 아가리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딱 딱 딱.
다행히 긴 주둥이가 그의 털끝만 건드리고는 물러난다.
그르릉
작은 틈 사이로 나타나는 긴주둥이늑대의 얼굴.
날카로운 늑대의 눈동자가 초록빛 빛나며 자신들을 쳐다본다.
‘분명 효과가 나타날 때도 됐는데... 설마 면역인가?’
회강은 분명 암컷 타조의 사체에 독들을 발랐다.
마비 또는 수면이 되면 그사이 죽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무려 한 시간이 넘도록 작은 틈으로 주둥이를 밀어 넣고 있었다.
그는 더욱더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젠장 벽이야.’
하지만 뒤가 돌과 단단한 흙으로 막혀 있어서 움직일 공간이 없었다..
놈이 주둥이를 들이밀 때마다 구멍은 커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놈의 얼굴이 더 들어왔고, 한 번만 더 들어오면 이젠...
‘죽는다. 젠장. 돌이라도 던질 걸 그랬나.’
낮에 터졌던 입술에서 피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지니고 있는 무기나 독도 없었고, 신체는 차가운 돌 때문에 굳어져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놈의 공격이 너무 실감 나서 오줌까지 지린 상태였다.
그러나 그 공포도 질릴 만큼 겪으니, 분노만이 남아버렸다.
회강은 놈을 노려보았다.
‘다시 도전할 때 꼭 너를 죽이고 만다.’
“퉷”
그가 뱉은 침이 늑대의 얼굴까지 날아갔다.
탁.
맞자마자 틈에서 늑대의 얼굴이 사라졌다.
아오오오.
분노의 울음이 울리고 늑대의 얼굴이 나타났다.
들이미는 놈의 얼굴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러자 구멍이 넓어졌는지 점점 주둥이가 그에게 다가갔다.
‘죽는 건가.’
회강은 바로 자기 얼굴에 다다른 주둥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주둥이는 다물어졌다.
탁!
강렬한 충격이 그의 이마에서 느껴졌다.
*5*
강렬한 충격이 그의 이마에서 느껴졌다.
“아악!”
이마에 오른손을 옮기자. 물건이 하나 잡혔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핸드폰이었다.
-6시입니다. 일어나세요.-
이마의 통증의 원인은, 알람에 진동이 계속되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던 것 때문이었다.
그는 핸드폰을 다시 머리맡에 놓은 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꿈이구나...’
그것은 회강이 호구를 구하면서 겪었던 일이었다.
“후우.”
‘요즘 들어 계속 꾸네...’
긴장이 풀어지자. 그는 전신에서 땀에 절어 축축해진 몸이 느껴졌다.
4월 중순 임에도 추운 바깥 온도 때문인지 서늘한 방 공기에 몸이 으스스 떨리고 있었다.
‘샤워해야- 컥’
전신을 관통하는 통증이 시작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진화 때문에 그렇구나.- 억’
비명도 지르지 못할 고통이 계속되었다.
꿈틀거리는 그의 몸은 10분이 지나자 축 늘어졌다.
그의 떨리는 오른손이 바로 왼쪽으로 움직였다.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나아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감각만 그것 하나만이라도!’
떨리는 오른손이 그의 왼손에 다가갔다. 그리고 차근차근 찔러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점점 찌푸려졌다.
‘남들은 다 됐다는데. 설마 사기였- 응?’
고개가 돌아가고 그의 시선은 천장이 아닌 그의 왼쪽 어깨를 향했다. 그리고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느껴진다. 전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부분이’
쿡. 쿡.
믿어지지 않았기에 어깨 부분을 몇 번이나 누르는 회강.
“으하 으하 하아 하”
어눌한 웃음소리가 그의 방안에 가득 찼다.
잠시 뒤, 샤워를 마치고 회강은 거실에서 쉬고 있었다.
‘정말이었다.’
과거에 왼손 신경 치료를 위해 들렸던 세 군데 병원 모두가 가망이 없다고 했다.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 게임도 처음엔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그냥 빛이라면 불이라도 달려드는 나방들처럼 그도 그냥 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지 않았어도 죽었을 것이기에...
‘그런데 아주 조금이지만 나아졌어.’
희망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해 증거 수집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몸만 회복되면 은밀하게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
꾸욱.
오른손에 힘을 준 회강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으드득.
‘기다려라 최변인. 언젠가는 꼭 너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뜨리마.’
그렇게 신체 회복과 복수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에 휩싸인 순간.
띵동.
그의 집안에 벨이 울렸다. 누군가 찾아온 것이다.
‘택배는 아니다. 이 집을 아는 자는 유의명과 최변인 뿐인데...’
하지만 신혼의 단꿈에 빠진 유의명은 올 일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웃고 있었던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최변인’
그놈밖에 없었다. 문제는 매번 찾아올 때마다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이 왔을 수도 있기에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다음번부턴 인터폰이라도 달아야겠어. 매번 얼굴을 확인 못 하니, 외면하고 싶어도 못하잖아.’
가면까지 착용한 회강이 현관을 나서고 바깥으로 나섰다. 그리고 대문을 열자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최변인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얼굴이 살짝 굳어있던 최변인의 얼굴이 빠르게 변했다.
“하하. 잘 지내나 감시하러 왔다. 부탁할 것도 있고. 일단 들어가도 돼?”
회강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그가 몸을 뒤로 돌렸다.
“자 어서 들어오세요.”
‘여자와... 아이?’
기억에 없는 삼십 대 여자와 남자아이가 최변인과 함께 들어왔다.
회강이 대문을 닫는 사이에,
휘이익.
집안으로 들어간 그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역시 기억을 잃어도 너는 너다. 매번 볼 때마다 이 청결함에 놀란다니까.”
뒤따라온 회강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앉아주세요-
멀뚱히 서 있는 두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여준 뒤, 최변인에게 다가갔다.
-너도 앉아. 밥이나 같이 먹자.-
최변인이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아니야. 됐어. 스케줄 때문에 곧 나가봐야 하고... 변함없이 청결한 집안을 보니, 잘살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하고 이만 가보련다.”
-그럼 부탁이란 게 뭐야?-
“아. 그게...”
“헛”
갑자기 회강의 손을 잡은 최변인. 그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친구야. 미안한데 이 두 사람 좀 데리고 있어 줘라.”
그의 말에 회강의 눈이 살짝 커졌다. 최변인에게 잡힌 손을 천천히 빼기 시작한 회강.
‘이 녀석...’
-혹시 또 사고 쳤냐?-
움찔한 최변인이 손사래를 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모자가 갈 곳이 없다면서 어제 회사로 찾아왔더라고. 사실 이들이...”
잠깐 말을 흐리던 최변인이 그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화재 사건 피해자들 가족이야.”
‘피해자? 아...’
툭.
회강의 오른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순간 비릿한 미소를 지은 최변인이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래서 말인데...”
“아 흐 랐다.”
“뭐?”
“가... 라...”
회강이 최변인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오로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회강의 턱 아래로 침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최변인이 회강의 손등을 두드렸다.
“고맙다 고마워. 역시 내 친구다. 짐은 그리 많지 않으니 집안이 더러워질 걱정은 마라. 그럼 이만 갈 시간이 돼서.”
일어난 최변인이 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친구입니다. 힘들게 하면 경찰을 불러서라도 쫓아낼 겁니다. 아시겠죠?”
굳은 얼굴로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였다.
그의 말에 두 모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네...”
모자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지자.
최변인은 몸을 회강에게로 돌렸다.
“회강아. 미안하다. 그럼 이만 가볼게.”
멍하니 서있는 회강은 안중에도 없이 그냥 나가버리는 최변인이었다.
덜컹.
문이 닫히고... 실내는 한동안 침묵에 휩싸였다.
*6*
회강의 집 앞.
최변인은 대문 앞에서 멈춰 선다.
“네놈 손톱도 이제 아프겠구나.”
허름한 2층짜리 주택을 잠시 쳐다본 최변인.
“후후후”
그는 몸을 돌려 차를 향해 걸어갔다.
“나보다도 못났던 놈이 기어오르려고 하면 밟아 줘야지.”
운전석에 앉은 그가 낡은 대문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친구야. 하지만 어쩌겠냐. 예전처럼 잘나가는 네놈의 모습은 다시는 보기 싫어서 말이야.”
그는 차에 시동을 켰다.
부우웅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변인은 백미러로 한 번 더 친구의 집을 쳐다봤다.
“친구야. 괜히 기억 떠올라서 여러 사람 지옥 보내지 말자. 과거의 망령에 잡혀서 쭉 살아가라고. 후후”
그의 비릿한 미소가 맺히고...
차는 떠나갔다.
시커먼 매연만을 남긴 채.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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