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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대공의 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4.12.03 18:02
최근연재일 :
2014.12.13 18:32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2,897
추천수 :
57
글자수 :
59,495

작성
14.12.12 17:09
조회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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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대공의 난 # 10

DUMMY

종막 - 2


"카심 네가, 네가!"


카심이 조금씩, 이내 입이 터져나갈 정도로 박장대소했다. 그는 진정으로 환희에 차 있었다. 26년, 그 길고 모진 세월을 대공의 밑에서 견뎌온 그의 감춰둔 감정이 흘러나왔다.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이야! 호위기사단도 오르카시엄도, 마법사까지! 반역자들과 공멸할 줄 누가 알았겠나. 자네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군 자리프."

"네놈이 왜?"


자리프의 물음에 카심이 대공을 보며 말했다.


"당신의 반응을 보고 알 수 있었소. 그 오랜 세월 품어온 내 의심이 맞았어. 당신이 천민의 자식이라는 것도, 연 대신이 그걸 알고 죽이려 한다는 것도."

"이, 이! 이 놈을 죽여라. 어서 죽여!"


대공이 절박하게 외쳤지만 1백기의 기병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용없소. 이들은 그간 내가 포섭한 내 부하들이지. 자 이제 끝을 낼 시간이오 대공."

"이러는 이유가 뭐냐. 네가, 네가!"

"명색이 귀족인 내가 천민을 모실 수는 없지 않겠나?"


카심은 비릿하게 웃었다. 그가 도끼창을 들어올렸다.


"잘 가시게 대공. 자네 아비는 살려두지. 내가 모든 힘을 이어받을 때 까지는 말이야."


자리프 2세는 실소했다. 판이 완전히 엎어졌다. 이렇게 된다면 대공은 죽겠지만 또 하나의 대공이 탄생하는 것이다. 어쩌면 저자보다도 흉악한 자가.

26년을 대공 밑에서 숨죽이고 있던 자가 또 권력을 잡는다면 얼마만큼의 피바람이 불겠는가.


'하늘이 우릴 버리는군.'


자리프 2세는 낙담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라도르는 아니었다. 이 비범한 청년은 뒤에서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연 대신이 남은 병력 300기를 통솔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뒤에 700기의 아퀴네스 블란츠가 추격해오고 있었지만 이건 분명 기회였다.


"자리프 공 카심을 죽시이오, 어서!"


작은 속삼임에 자리프 2세의 가슴에도 혹시나 하는 희망이 번졌다. 자리프 2세는 재빠르게 창을 내려놓고 활을 꺼내 들어 쏘았다.

번개 같은 속사였지만 카심은 피해냈다. 엉뚱한 기병이 미간에 화살을 맞고 즉사했다.


"모두 쳐라!"

"겁도 없는 놈들, 다 죽여라!"


눈은 침침해지고 창의 무게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투구의 무게마저도 힘겨웠지만 자리프 2세는 누구보다도 먼저 기병들 싸이로 뛰어들어 카심과 합을 겨뤘다.

내리쳐오는 도끼를 막을때마다 상처에서 핏물이 터졌다.


'원통하다.'


대공의 목을 치는 순간을 그토록 그렸건만. 눈 앞의 이 놈이 다 가져가 버렸다. 그 인내의 세월을 감내하며 오늘만을 위해 칼을 갈았건만 고작 1백기의 기병으로 그의 복수도, 이 시대도 거머쥔 것이다.


자리프 2세는 그것이 참을 수 없었다.

도끼창이 날아와 자리프 2세의 창을 날려버렸다. 충격이 심장까지 전해져왔다. 칼을 뽑을 힘이 없어 자리프 2세는 움직임을 멈췄다.


"피하시오 자리프!"


연 대신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우스운 광경이 펼쳐졌다. 추격당하는 연 대신의 병력 3백기가 창을 겨누고 돌격하고 있었다.


"여기서 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대공은 격살한다."


연 대신조차 투구를 쓰고 창을 들었다. 카심은 당황했다.

10분, 아니 5분만 있었다면 뒤에서 따라오는 7백기의 아퀴네스 블란츠가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5분이 늦은 700기의 아퀴네스 블란츠는 무용지물이었다.

상황은 다시 1백대 3백으로 반전되었다.


"버텨라. 조금만 버티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카심은 독하게 마음먹고 창을 들었다. 하지만 휘하의 병력이 동요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내달려오는 연 대신 휘하 3백기의 병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도처에서 이건 아니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자리프 2세가 허리춤에 있는 칼을 뽑았다.

평생에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기회였다.


"가자!"


연 대신의 병력과 때를 함께해 자리프 2세와 살라도르, 20기의 기사도 함께 달려들었다.

이 양상은 종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아퀴네스 블란츠가 학살한 이전 전투와는 극과 극이었다. 악에 받친 기사의 도끼가 창대를 분지르고 머리를 쪼갰다.

배에 창을 맞은 기병이 손도끼를 던져 목덜미에 박아넣었다.


"다 죽여버려!"

"대공의 개새끼들!"


오늘 하루의 전투에서만 너무 많은 피를 봤다.

살아남은 병력들은 연 대신의 연설로 분노와 증오가 한껏 달라올라 피로조차 잊고 있었다.

창을 맞더라도 상대에게도 똑같은 구멍을 냈다. 선두가 무너지는 건 순간이었다.


"카심, 네가 죽을 차례다."


자리프 2세 역시 죽음을 각오했다. 칼을 뽑아 들고 말을 몰아 오직 카심을 향해 달려갔다.

반면에 카심은 죽을 각오 따위는 없었다. 바로 한 순간, 천하를 이 손에 쥐었는데 여기서 죽을 순 없었다.

그런 개죽음이 어디 있는가. 욕설을 내뱉으며 도끼창을 휘두르는 그 모습에서 이미 살기가 사라져 있었다.


자리프 2세와 카심이 격돌했다. 도끼창이 하늘에서 내리쳐오고 칼이 그것을 받았다. 막강한 도끼가 철검을 쪼개버렸다.


카심의 눈에 승리가 감돌 때 자리프 2세는 다른 칼을 뽑아 카심을 스쳐지나가며 그의 목에 박아넣었다.


카심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절명했다.

오르카시엄을 상대한 수법이었다. 자리프 2세는 도끼를 받아내는 순간 칼을 놓아버리고 다른 칼을 빼든 것이다.


"됐다, 이제 대공을....."


카심마저 돌파한 자리프 2세가 주위를 훑었지만 대공은 없었다.

카심과 연 대신이 격돌한 그 순간의 틈에, 두 진영 모두 눈 앞의 적에 정신이 팔린 틈에 누구도 신경쓰지 못했던 대공이 사라졌다.


"수도 쪽을 보시오 자리프!"


대공이 창에 찔린 배를 움켜쥐고 수도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자리프 2세와 살라도르는 즉시 말을 몰아 쫓았다. 성문은 훤하게 열려있었다.

수도근위대는 대공의 휘하였지만 회의때는 국왕의 친위기사단이 호위한다.

자리프 2세와 살라도르는 막아서는 수비병을 그대로 밀치고 들어갔다.


피에 젖은 대공이 회의장에 들어서자 한바탕 난리가 났다. 국왕이 일어서고 친위기사단이 일제히 칼을 뽑았다.


"대공 전하, 어찌!"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대수장만석회의는 4년에 한번 열리는 대회의. 국왕 이하 모든 대신과 관리, 각 지방의 영주가 참석한다. 그 모두가 이 광경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대공이 말에서 내렸다.

입에서조차 피를 토하며 걷는 그에게 아무도 다가갈 수 없었다. 그때 자리프 2세와 살라도르가 회의장에 난입했다.


"자리프 후작 2세까지!"


자리프 2세는 발언석으로 걷고 있는 대공을 본 순간 허리춤의 단검을 집어던졌다. 이번에는 대공도 피하지 못했다. 단검이 대공의 등에 꽂혔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친위기사단이 나서 자리프 2세와 살라도르를 포위했다.

대공은 , 이 지독한 악귀는 단검에 맞고도 걸어 발언을 위한 탑에 올랐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회의 석장에서 칼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이야!"


진노한 국왕이 일어섰다. 자리프 2세도 살라도르도 갈팡질팡하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대공에게 치명상을 입혔으나 죽인 건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만백관이 보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흥분이 가라앉고 나니 비로소 주위 상황이 들어왔다.


"저.... 자들이 나를 죽이려 했다. 모두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저들이 이 나라의 대공이자 공주의 부마인 나를 시해하려 했다!"


대공은 피를 울컥 울컥 토해내면서도 소리쳤다. 높은 탑으로 만들어진 발언장에 서서 만백관을 향해 소리치는 목소리엔 아직도 힘이 남아 있었다.


굳어 있는 자리프 2세를 대신해 살라도르가 맞섰다. 그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입과 머리였다. 이곳이야말로 살라도르가 그토록 그려온 그의 전장이었다.


"거짓이오! 저 자는 거짓된 인생을 살아온 잡니다. 저 자는 이 나라의 대공이 아니오. 지독한 만행과 교활한 꾀로 대공의 자리를 훔친 살인마일 뿐이오!"

"그 무슨 헛소리냐!"


회의석에서 마른 인상의 노귀족이 일어섰다. 바로 대공의 아비이자 루센 남작가의 가주인 보르딕 루센이었다. 대공이 죽는다면 모든 힘과 권력을 승계할 자였다.


"저 자는, 대공이 아니라 귀족의 자리를 훔친 천민이오!"


살라도르의 이 처절한 외침은 대수장만석회의를 거칠게 휩쓸었다. 충격에 빠진 보르딕 루센이 자리에 주저앉고 귀족들이 분분히 일어섰다.

대신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하급 관리들조차 어안이 벙벙한 채로 대공을 보았다.


"거짓, 거짓이다. 거짓이다! 거짓이다. 난, 난 이 나라의 대공이다. 백작이고 공주의 부마다. 루바니엘 대공이란 말이다! 어서 저 놈을 죽여. 죽여!"


"거짓은 네가 지껄이고 있다. 아니, 네가 살아온 인생 모두가 거짓이었다!

넌 26년 전 루센 남작의 영지에서 빌어먹던 천민이었고, 선왕 폐하 암살에 가담한 역도의 자손이며 수많은 왕실 대신과 귀족들을 모반 혐의로 모함한 반역자다!

여기, 여기에 모든 증거가 있소이다!"


살라도르는 품속에서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했던 대공의 증표인 나비 목걸이와 땀에 젖은 문서를 꺼냈다.

대공이 있다면 없어지고 은폐되겠지만 그가 사라진다면 이 증거는 명명백백한 힘을 얻을 것이다.


"네가 26년 전에 죽이려 한 진짜 루센 남작가의 사생아가 살아있다. 등을 열 번이나 찔리면서도 살아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데려올 수 있다!"


대공이 피를 토했다. 장내가 침묵에 휩싸여 대공을 바라보았다. 대중의 마음이 움직였다.

모두가 아닐거야, 라는 외피 속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실임을 어림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저들이 어찌 저리 대담하게 대공을 죽이려 했으며, 회의 석상에서까지 대공에게 칼을 던졌겠는가.


"이게 대체, 대체 무슨 말인가. 대공 이 말이 사실인가?"


국왕조차 흔들렸다. 살라도르가 땀에 젖은 문서를 친위기사단에게 건내자 국왕이 전해받았다.

국왕이 펼쳐본 그 문서는 피로 쓰인 혈서도 있었고 대공의 직인이 찍힌 문서도 있었다.

그가 26년간 천민에서 대공에 오르기까지 저지른 만행의 일부가 그곳에 명백하게 쓰여있었다.


"대공 이게 대체!"


국왕조차 대공을 의심하자 대중의 생각이 고정되었다.

대공을 의심하는 눈초리가 사방에서 쏘아졌다. 대공을 그간 저주해왔던 수많은 변방의 관리들, 대공에게 무거운 조공을 바쳐야 했던 영주들.

대공에게 눌려 그간 빛을 보지 못했던 수많은 자들이 대공의 적이 되었다.


수십 년을 정치가로 살았던 대공은 누구보다도 그 흐름을 빠르게 읽었다. 그는 웃었다. 작은 흐느낌 같은 웃음이 점차 커져갔다.

마침내 그는 피를 토하면서도 박장대소했다.


"난 천민이 아니다. 난 이 왕국의 최고 권력자다. 내가 이 나라의 왕이다! 나의 시대다, 나의 시대란 말이다!"


대공은 마지막으로 허리를 펴고 섰다.

문무백관이 저 아래에 도열해 있었다.

하늘 아래 가장 하늘과 가까운 것은 자신이었다.

대공은 악귀같은 함성을 지르고 발의석 아래로 뛰어내렸다.

누구도 그 돌발적인 행동을 멈추지 못했다. 돌바닥에 떨어져내린 대공의 머리가 깨져 뇌수가 터져나왔다.


자리프 2세는 아직 분노가 식지 않은 눈으로 그의 시체를 쏘아보았다. 살라도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역시 대공의 악행에 가족을 잃은 한 명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작가의말

다음 편은 에필로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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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공의 난 # 6 14.12.08 204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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