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대기 75 - 결승전! 광주제일고 <5> 맹독의 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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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5
경기장이 술렁였다.
맥주 캔을 든 관중, 마이크를 든 해설자, 카메라 앵글을 돌리는 기자와 선수를 훑는 스카우터. 그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결승전을 뜨겁게 달궜던 성원과 함성 역시 멈춘 지 오래였다.
-이, 이건....... 이건 믿기지 않는 전개가 되어버렸습니다.
힘들게 뗀 해설자의 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관중들의 눈이 전광판을 향해 있었다.
광주제일고 대 광진고. 누구나 광주제일고의 압승을 점쳤다.
그들의 3경기 우승을 보러 이곳에 왔고 세계로 뻗어나갈 백일현의 봉황대기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 왔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미안하군.”
내다 꽂은 다리 위로 허벅지가 팽팽하게 성났다. 온 몸의 하중을 굳건하게 받친 채 휘두른 손으로 눈 앞의 바람을 찢었다.
스……퍼어엉!
이미 공이 날아가는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괴롭게 지르는 미트의 비명, 솟아오른 송진가루와 모래먼지만이 투구를 증명했다.
“스트-라이크!”
심판은 질린 얼굴로 판정했고 타자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이미 6회 초, 타석의 타자는 7번 박필규가 올라 있었다.
“미안하지만 네가 칠 공이 아니다.”
부릅 뜬 눈에선 불길이 피어 올랐다. 어디서부터일까, 가슴 깊은 곳에서 아니면 달궈진 오른 팔에서?
그 어디에선가부터 시작된 불씨가 온 몸을 뒤덮고 심장을 거칠게 때렸다. 올라가는 심박수와 땀을 녹여내는 체온, 증기라도 피어 오를 것 같은 입김!
“하아압!”
이를 질끈 문 와인드 업 뒤로 비틀린 손목에서 칼날 같은 공이 휘어져 나갔다. 7번 박필규의 스윙이 터져 나온 것도 동시였다.
부우웅!
7번이라지만 박필규의 스윙은 강맹했다. 흠 잡을 곳 없는 폼과 타이밍, 적절한 테이크 백과 스윙의 궤도. 대명고의 임혁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건만 타자는 그저 헛스윙만을 반복했다.
존 근처에서 솟았다 매처럼 떨어지는 커터엔 도무지 스칠 기색조차 없었다.
“스트럭 아웃!”
- 144km 컷 페스트볼로 헛스윙 삼진!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없는 전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백일현 선수도 오태오 선수도 6회 초까지 모두 퍼펙트 게임 달성중! 광주제일고의 최강 타선이 단 한명도 1루 베이스를 밟지 못했습니다!
- 이거 엄청나군요...... 저 선수가 정말 오태오 선수가 맞나요? 약물 도핑을 하지 않았나 의심될 정도의 피칭입니다. 저건, 저건 백일현 선수엔 못미치지만, 정말 대단합니다. 150km의 직구, 145km대의 커터에 체인지업까지 들어오면 이건 칠 수가 없어요.
- 모두가 광주제일고의 압승을 점쳤지만 경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근 수십 년간 본 적 없는 광주제일고의 저 초중량급 타선을 힘으로 찍어누르는 저 모습! 대단합니다. 경기는 전래없는 뜨거운 투수전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낡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해설자의 흥분된 목소리. 격동하는 관중들의 기대와 정신 없이 외치는 팀원들의 응원 소리.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 사이로 그 잡스런 소음들이 지나갔다. 투명한 유리 벽 사이로 그들과 나 사이의 경계가 갈라진 것만 같았다.
멀게만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다리를 들었다.
신기하게도, 몸은 누적되고 누적된 피로에 억눌렸지만 손에 잡힌 공에선 충실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차합!”
비오듯 흘리는 땀을 흩뿌리며 공을 뿌릴 때 마다 손 끝에 짜릿한 쾌감이 남았다. 공은 천둥과도 같은 파공음을 울리며 원하는 곳에 사납게 꽂혔다.
비명을 지르는 몸과는 다르게, 개안(開眼)이라도 한듯 새롭게 비치는 이 신세계의 한복판으로 공이 매처럼 날았다.
“허억, 허억……!”
‘이 광경…… 백일현이 보는 세계인가?’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마운드에 올라 이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시합의, 이 경기의 주도권을 쥔 절대 권력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
타자들은 원하는 곳에서 배트를 헛 휘두르고 심판은 원하는 곳에서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공은 시간이 갈수록 강성해지고 바람과 열기가 내 손아귀에 맺혀 눈 앞에서 짜릿하게 찢어졌다.
“흐리얍!’
퍼어어엉!
바람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며 날아간 공이 미트를 꿰뚫었다! 기사가 내지른 창처럼, 대포에서 날아간 포탄처럼. 막강한 화력 앞에 8번 타자는 식은땀마저 흘렸다.
“스트럭 아웃!”
주먹쥔 심판의 손이 내리쳐졌다. 씨익, 굳어진 입가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금이라면 세상 그 누가 온다 해도 질 것 같지가 않았다.
“……대단하군.”
침통한 목소리, 9번 심진성이 좌타석에 올랐다. 각오를 단단히 한 듯 고정된 눈이 아주 날카로웠다. 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달아오른 150km를 9번이 쳐낼 순 없었다. 제아무리 광주제일고의 주전이라도. 선풍기처럼 붕붕 휘둘러진 배트 사이로 공이 날아 미트에 꽂혔다.
“스트럭 아웃! 체인지!’
무려 6회 퍼펙트 피칭!
그것도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한 퍼펙트 피칭. 꿈에서나마 바라봤던 기록이 여기서 세워졌다. 녀석들이 미친 듯이 함성 치며 달려들었다.
“멋지다, 최고다 태오야!”
“너 정말……!”
녀석들도 설마 설마 했던 결과였다. 광주제일고는 상처난 자존심을 감춘채 낮게 울부짖었고 우리는 고양된 흐름을 가슴에 담고 벤치로 달렸다.
‘그래. 이길 수 있다!’
어떻게 올라온 결승전이던가.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렀던가.
이 최고의 무대에서 최강의 상대를 꺾고 가슴 시원하도록 펑펑 울며 봉황기를 흔들고서야 우리들의 봉황대기는 비로소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가자, 반격이다!”
척추 끝까지 짜릿하게 자극해오는 쾌감을 느끼며 벤치로 달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힘차게 외치며 손뼉을 친 바로 그 순간.
욱신!
불길함은 한 순간에 다가왔다. 그 어떤 단초도 없이, 상상도 못했던 큰 걸음으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내려 오른 팔을 보았다. 심장이 고동치듯이 그곳에서 작은 맹독의 전초가 퍼져나갔다.
“설마, 시작됐나……!”
일렀다. 일러도 너무 일렀다. 아직 한참 더 버텨줘야 했는데......
“태오야 안 들어오고 뭐해?”
“지, 지금 간다. 다들 구호 외치고! 이번 회엔 반드시 친다!”
우렁찬 목소리, 활기를 띄는 벤치. 그리고 몰래 쥔 팔목.
서서히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주위를 살폈다. 벤치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보였다. 강진철. 녀석의 눈과 잠시간 맞닿았다.
녀석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너도?
말 없이 그렇게 묻자 강진철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였는지, 녀석의 오른 팔과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엉망진창이로군, 우리 모두…….”
처연한 미소를 한 입 베어 물고 갈색 배트를 쥐었다. 벤치에 쓰러지듯 앉아 그라운드를 보았다.
점수 안타 에러 모두 0 행진을 그려나가는 6회 말. 지친 기색 터럭 한 점 보이지 않는 백일현이 마운드에 올랐다.
파아앙!
가슴 시원하도록 내다 꽂는 직구에 슬슬 김석곤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서렸다. 6회다. 무려 6회 동안 내리 직구만을 꽂아 넣는데 아무리 휘둘러도 칠 수 없다.
이것만큼 허탈한 일은 없다.
다음에 올 공을 아는데 건드리지도 못한다는 현실. 백일현과 자신 사이에서 느껴지는 패배감.
“젠장!”
김석곤은 온 힘을 다해 배트를 날려봤지만 소용없었다. 궁지에 몰린 타자는 어깨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 스윙 폼이 커진다. 절박하게 휘두르는 배트 따위가 저 공에 맞을 리 없었다
파앙!
“스트럭 아웃!”
김석곤도 이석진도 황기철도 치지 못했다. 하위 타선이 맞출 공이 아니었다.
‘그 뿐만이 아니야……’
백일현은 체력도 괴물이었다. 최고의 피칭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땀으로 샤워를 하고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 감각으로 던지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건가.”
벌써부터 시야가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었다. 통증과는 별개로 누적되고 누적된 피로가 중구난방으로 아우성쳤다.
“으…….”
고개를 털고 정신을 다잡았다. 결승전이다, 결승전이다 오태오! 그렇게 마음 속으로 수십 번을 외쳤다. 지금 중요한 건 이까짓 피로보다는 오른 팔이었다.
욱신!
진통제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서서히 통증이 살아났다. 맹독처럼 퍼진 이 감각이 부어 오른 팔목을 휘감았다.
의사의 말처럼 힘이 제대로 들어가질 않았다. 흠뻑 젖은 뜨거운 땀에 식은땀이 섞였다. 위기도 이런 위기가 없었다.
‘하필이면 던지는 팔로 막아서……!’
“스트럭 아웃 체인지!”
“벌써……?”
경기가 너무 하이페이스였다. 어제 입은 부상과 연투의 흔적일까, 마운드에서 신들린 듯이 던질 때는 몰랐지만 여기에 들어오고 나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자, 파이팅 한 번 하고 가자. 모두들 손 내밀어!”
“태오야 빨리 와!”
둥글게 모여 손을 모은 녀석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욱신거리는 손을 내밀었다.
“광진고-!”
“파이팅!”
구호를 외치며 서로 맞댄 손을 힘차게 들어올리는 순간 난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꾹 눌러 참았다.
‘어윽!’
누군가의 손이 팔목에 맞닿자 송곳으로 헤집는 듯한 고통이 뼛속에서부터 전해져 왔다.
“허억, 허억!”
거친 숨, 떨리는 손을 필사적으로 감추며 마운드로 나섰다.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이미 흥건해진 언더셔츠 사이로 더 배여들 곳 없는 땀이 손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이제 7회…….’
녹아내릴 듯 흐르는 땀 때문일까. 현기증이 일어 하늘도 땅도 어지럽게 흔들렸다. 뇌가 핑핑 도는 듯한 생소한 감각에 저항하며 마운드에 올라 스파이크를 박아넣었다.
“플레이!”
숨 고를 시간도 주지 않고 외치는 심판의 말에 난 반사적으로 다리를 들어올렸다. 흐릿한 시야의 너머로 1번 최익현이 살기어린 눈으로 동체를 흔들고 있었다.
-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소설이 좀 꼬여서 스트레스좀 풀다가 리그 오브 레전드에 빠져버려서....
지, 지금도 금단증상이!
빨리 아리누님을 뵈러 가야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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