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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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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조회수 :
326,386
추천수 :
1,751
글자수 :
427,977

작성
12.02.18 23:05
조회
2,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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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9쪽

봉황대기 71 - 결승전! 광주제일고 <1> 이곳에 서서

DUMMY

Chapter 71


기묘한 땅울림 위에 서자 내 심장도 같이 뛰었다.

평소보다 높게 느껴지는 마운드 위로 후덥지근한 열기가 밀려들었다.

열기가 웃음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흥겹게 춤을 추며 다가온 열기가 오른 팔로 스며들어, 심장을 거쳐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따스하다…….’

이상하기도 하지. 열기는 김재환에게 얻어 맞은 그 상처를 통해서 들어왔다. 그 곳을 중심으로 몸이 하나씩 허물을 벗고 온기를 채워갔다.

“다들 고맙다.”

이렇게까지 나를 믿고 달려 나와준 이 바보 같은 녀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더 이상 이 녀석들은 의지 못 할 보호대상이 아니었다. 언제고 내 뒤를 맡길 수 있는 든든한 동료이며 팀이었다.

등 뒤를 돌아보았다.

절뚝거리면서 3루를 지키는 강진철, 어느새 훌륭한 유격수가 된 황기철과 2루수 김석곤. 최고의 타자로 성장해 나가는 1루수 대호가 보였다.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수비의 핵인 중견수 성래와 좌익수 명호, 우익수로 전향한 이석진.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마음을 맞춰가고 있는 형진이까지.

“드디어 결승전이다! 태오야 힘 내!”

그래. 벤치에서도 활기를 불어주는 태경이도 있었다.

“자, 가자! 드디어 마지막 무대다!”

“가자아아!”

“광진고 파이팅!”

그와 동시에 관중석에서도 함성이 쏟아졌다. 이미 1, 3루를 빽빽하게 채운 관중과 기자, 관계자들까지 달아오른 분위기에 몸을 일으켰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들 대부분은 광주제일고를 응원하고 있겠지. 우리 광진을 응원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일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이 모든 환호가 우리의 것만 같았다.

눈이 부셨다. 꿈의 무대에 서 느끼는 전율과 함성은 꿈처럼 달콤했다.



“자, 틀어 볼까!”

벤치에서 태경이가 가져온 라디오를 틀었다. 이번 경기는 라디오로도 중계가 된다. 한창 예민해진 귓가로 빠른 해설위원들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 드디어! 드디어 봉황대기 결승전입니다. 대 파란의 연속이었던 올해의 봉황대기! 김선임 해설위원께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올해는 특히나 반전이 많군요. 광주제일고는 예상대로 결승전까지 올라왔지만 대명고, 백상고 등의 쟁쟁한 우승 후보들을 모두 꺾고 광진고가 올라 온 것은 정말 예상 밖의 일 입니다.

몇 달 전의 그 불미스러운 일로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었는데, 참 대단한 팀입니다.

- 무서운 기세로 올라온 광진고와 압도적인 힘을 가진 광주제일고. 이 두 팀의 전력을 비교하시면 어떻죠?

- 하하…… 아무리 광진고가 기세가 좋다지만 광주제일고에는 백일현 투수가 있어요. 광진고의 오태오 선수도 2학년이면서 벌써 143km대의 빠른 공을 던지지만 백일현 선수와는 급이 달라요. 백일현 선수는 근 10년 동안 본 적 없는 최강의 파이어볼러입니다. 미국에서도 통하는 강속구에요. 저는 광주제일고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누가 봐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다. 거인과 아이만큼의 차이가 저들과 우리에게 있었다.

그런데 왤까. 가슴속에서 저며오는 이 흥분은.

“후우우…….”

심판의 구령과 함께 광주제일고 1번 최익현이 좌타석에 들어섰다.

까칠한 실밥을 쥐고 타자를 보았다. 신기했다. 그 어떤 때보다 긴장되어야 할 텐데 가슴이 너무나도 편안했다.

지금까지의 불안, 초조가 전부 거짓처럼 느껴졌다.

“인정하고 다 내려 놓으니 이렇게 편하구나…….”

이혼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현실을 뒷전으로 밀어놓았던 이전의 오태오는 그저 짜증만 부리는 철부지였다.

정면으로 맞붙을 용기도 없이, 그렇다고 마냥 내버려 둘 배짱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시키는 대로 새가슴이라는 방패막이만을 내세운 채, 현실에도, 눈 앞의 타자에도 맞서지 못하고 변명만 앞섰던 남자였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방에 들어올 때 방 밑에 떨어진 돌 조각에도 신경 쓸 만큼 겁쟁이었다.

시합을 치르고 배고픈 아들을 위해 먹다 남은 족발로 밖에 애정을 표현하지 못했던 그런 바보 같은 남자였다.


그랬던 아버지가 드디어 용기를 냈다. 언제나 차갑게 날 노려보던 안경을 벗고, 무표정한 가면을 벗고 처음으로 날 똑바로 마주해 주었다.

이제 내가 화답할 차례였다.

가슴을 당당하게 피고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물러섬 없이 눈 앞의 상대를 보았다. 받아들여야 할 현실을, 꺾어야 할 상대를.

“간다, 광주제일고!”

큼지막하게 들어올린 다리로 마운드를 찍으며 땅울림을 내었다. 관중들이 환호하며 목청을 높였고 최익현은 배트를 꽉 부여쥐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지막 여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쐐애액!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묵직한 직구가 그라운드를 날았다. 최익현은 신중하게 지켜봤고, 이 시합 최초의 공이 미트에 닿았다.

터업!

솟아 오른 송진 가루와 모래 먼지. 형진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떠오른 구속은 144km. 녀석들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최익현은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강 광주제일고의 1번 타자라면 가볍게 때려낼 만한 공이었다.

“자, 이어서 간다!”

연이어 날아간 공이 내각 깊은 곳의 볼 코스로 꽂혔다. 최익현은 비웃으면서 배트를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 다음 공 역시 144km의 직구. 쌔앵, 하며 쏘아진 공이 이번엔 외곽 꽉찬 코스로 멋들어지게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후우…… 이제 좀 쳐 볼까?”

최익현이 목 근육을 풀었다. 우득 거리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리며 본격적으로 상체와 배트를 흔들었다.

183cm의 키에 고밀도로 다져진 타자의 근육. 명실공히 이번 대회 6할 이상을 치고 있는 광주제일고의 선봉장이었다.

1번 타자로써 지금까지는 구질을 살펴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거겠지.

“와라.”

마운드까지 오싹할 정도의 기세가 풍겼다. 과연 광주제일고에서 1군으로 3년을 버틴 자의 기세는 달라도 무언가 달랐다.

“그럼 가지요.”

하지만 난 오히려 씨익 웃었다.

까칠한 공을 잡고, 허리까지 들어 올린 다리로 땅을 찍고, 오른 손에 이 모든 바람을 모아 눈 앞에서 맹렬하게 찢었다!

부아아앙 터업!

제트기가 나는 것처럼 허공엔 희뿌연 것들이 남겨지고 미트가 터질 듯이 울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총탄 같은 공이 스트라이크 존에 꽂혔다.

대경한 최익현의 배트가 가속해 날았지만 반박자나 늦어버렸다. 부릅 뜬 그의 눈이 불신으로 물들었다.

“스, 스트럭아웃!”

심판마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전광판에 떠오른 150km는 그토록 강렬했다.

“이, 이럴 수가! 최고 구속 144km가 아니었나? 아니, 저 구질은…….”

1번 타자가 이토록 어이없게 물러나자 관중석이 술렁였다. 누가 봐도 지금 첫 기세를 잡은 건 광진이었다.

“까불지 말고 전력으로 덤벼라 광주제일고. 여기는 결승전이다!”

사자의 수염을 뽑은 듯이 광주제일고 벤치가 꿈틀거렸다. 최강자의 자존심이 서서히 이빨을 드러냈다.



- 아! 여기에 와서 다시 150km의 초강속구 폭발! 오태오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그 막강한 광주제일고 중량 타선을 힘으로 찍어 누르고 있어요!

아직 경기 초반이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입니다. 지금까지는 실력을 감춰왔었던 걸까요?

- 그, 글쎄요. 투수의 컨디션에 따라서 구위가 좌우되는건 흔히 있는 일이지만 최고 구속이 5km 가까이 늘어난 건 좀 믿기지 않는군요. 실력을 감춰왔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 대로였다. 1번 최익현이 삼진으로 물러난 후 2번 조성찬이 이를 악 물고 덤벼왔다.

부웅 터어업!

고교 정상급 배트가 세차게 날았지만 150km는 가공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내 손에서 날았다고 믿기 힘들 만큼.

번개 치는 소리와 함께 날아 포탄처럼 틀어박힌 공이 마치 치솟아오르는 것 같은 궤도를 그렸다.

“흐아아압!’

조성찬이 입술을 깨물며 바람을 찢어발겼지만 배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공의 밑을 지났다.

부우웅!

“스트럭 아웃!”

울려퍼진 삼진 소리와 함께 주먹쥔 손을 들어올렸다.

“이게 나 오태오다!”

타자에게 겁먹고 굳은 손으로 얻어맞아 속으로만 눈물 흘렸던 새가슴의 울부짖음 이었다.

언제고 상상해왔던 이 순간. 머리 속에서 그리고 또 그려왔던 이 순간의 느낌은, 숨이 벅차올 만큼이나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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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봉황대기 최종화 +17 12.04.02 2,920 36 22쪽
81 봉황대기 80 - 결승전! 광주제일고 <10> 터널의 끝 +19 12.03.26 2,462 28 15쪽
80 봉황대기 79 - 결승전! 광주제일고 <9> 종막을 눈앞에 두고 +12 12.03.21 2,216 25 15쪽
79 봉황대기 78 - 결승전! 광주제일고 <8> 불운 +12 12.03.17 2,366 25 15쪽
78 봉황대기 77 - 결승전! 광주제일고 <7> 조그만 결의 +15 12.03.16 2,255 25 15쪽
77 봉황대기 76 - 결승전! 광주제일고 <6> 회광반조 +11 12.03.10 2,318 21 11쪽
76 봉황대기 75 - 결승전! 광주제일고 <5> 맹독의 전초 +12 12.03.06 2,534 26 10쪽
75 봉황대기 74 - 결승전! 광주제일고 <4> 최강이라는 이름 +13 12.02.29 2,815 27 8쪽
74 봉황대기 73 - 결승전! 광주제일고 <3> 격돌 +9 12.02.25 2,722 19 13쪽
73 봉황대기 72 - 결승전! 광주제일고 <2> 괴물의 힘 +12 12.02.22 2,615 18 12쪽
» 봉황대기 71 - 결승전! 광주제일고 <1> 이곳에 서서 +15 12.02.18 2,765 19 9쪽
71 봉황대기 70 - 꿈의 무대로 +9 12.02.16 2,761 17 11쪽
70 봉황대기 69 - 매듭 +5 12.02.15 2,367 17 11쪽
69 봉황대기 68 - 파워 진통제 +10 12.02.12 2,551 21 15쪽
68 봉황대기 67 - 아버지... +6 12.02.09 2,525 19 14쪽
67 봉황대기 66 - 노을은 밝건만 +12 12.02.08 2,724 18 8쪽
66 봉황대기 65 - VS 대명고 終 +11 12.02.06 2,737 22 17쪽
65 봉황대기 64 - VS 대명고 (11) 누가 비극을 바랬나 +10 12.01.30 2,696 22 16쪽
64 봉황대기 63 - VS 대명고 (10) 무제 +4 12.01.30 2,540 15 8쪽
63 봉황대기 62 - VS 대명고 (9) 각성! +8 12.01.26 2,740 23 12쪽
62 봉황대기 61 - VS 대명고 (8) 안돼 +4 12.01.25 2,612 15 12쪽
61 봉황대기 60 - VS 대명고 (7) 힘 +5 12.01.17 2,642 17 12쪽
60 봉황대기 59 - VS 대명고 (6) 등장 +9 12.01.15 2,568 20 11쪽
59 봉황대기 58 - VS 대명고 (5) 최대호 +4 12.01.14 2,694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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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봉황대기 53 - 조약돌 +9 11.12.28 2,742 1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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