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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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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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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
글자수 :
427,977

작성
12.02.06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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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봉황대기 65 - VS 대명고 終

DUMMY

Chapter 65


“당장 의사 부르고 이송 준비 한다. 빨리 병원에 연락해!”

강진철의 증세는 생각보다도 심각했다. 날카로운 징이 손바닥의 피부를 찢어 피가 봇물 터지듯이 흘렀다.

하나도 아니고 몇 개나 되는 징이 손바닥을 헤집어 놓자 그야말로 처참했다.

‘이건 심각해. 상처가 여섯 갈래로……’

잘못하면 정말 손을 못 쓰게 될 수도 있었다.

“뭐해 빨리 연락 하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굳어있던 녀석들이 불에라도 덴듯 화들짝 놀라며 움직였다. 대경한 심판도 당장 구장 내에 있는 닥터를 불렀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는 강진철을 들어 옮기려는데 녀석이 내 팔을 뿌리쳤다.

“괜찮아……!”

“뭐?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지금 정신 나갔어?”

하지만 녀석은 그 다리를 이끌고 일어섰다. 머리에 핏줄이 서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일어서 스스로 붕대를 감았다.

“……이제 한 타석이다. 할 수 있어.”

그 말에 왜 울컥 화가 난 걸까.

평소처럼 천연덕스럽고 뻔뻔한 얼굴을 가장하려고 해서? 아니면 그 말이 누구라도 알아 볼 만큼 심하게 떨리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순간에 내가 할일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개소리 지껄이지마! 당장 교체하겠다. 구급차 부르고 대타로 이명원 들어와!”

“어, 어? 그래.”

하지만 명원이가 그라운드로 나오려는 순간에 강진철이 나를 가로막았다.

“아니, 할 수 있다. 고작 한 타석 남기고 교체하진 않아!”

“무슨 미친 소리야! 그 손으로, 그 다리로 어떻게 타석에 서겠단 거냐. 이 경기와 함께 선수 생명을 끝내고 싶은 거냐!”

그 말에 강진철은 피 묻은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악에 받친 듯 소리지르던 내 입이 그 순간 다물어졌다. 녀석의 이런 처연한 미소를 보는 건 진정 처음이었다.

“너에게 봉황대기는 시작이지?”

피를 너무 흘린 녀석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보기에도 힘겨워 보였는데도 녀석은 꾿꾿하게 서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겐 마지막이야. 화려하게 장식해야 할 마지막…… 축제.”

“강진철!”

심판의 판정은 아웃, 이미 9회초는 종료되었다. 강진철은 벤치로 돌아가 배트를 집어 들었고 난 타석으로 향하는 녀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건, 이건 아니었다. 이건 미친 짓이었다!

“지금 네 꼴이 어떤 줄 알아? 다리는 절고 손은 찢기고! 이 팀의 감독 대행이자 주장으로써 용납할 수 없다. 물러서! 이명원이 나올 거다.”

난 윽박을 지르듯이 녀석을 가로막았지만 강진철은 힘겹게 손을 올리고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고교, 어쩌면 이 순간이 마지막 일 수도 있다. 마지막만큼은 화려하게 떨어질 수 있게 해 다오.”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상하게 몸이 힘이 빠진 채로 무너졌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강진철은 스스로를 알고 있었다. 이번 경기, 아니면 다음 경기가 녀석에겐 마지막이었다.

“가…… 강진철!”

녀석이 타석으로 휘적휘적 걸어갔고 대호가 그 등을 받치듯 걸었다. 녀석의 등을 보며 난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왜 녀석을 항상 안좋게만 바라봤던가. 왜 녀석이 게으른 놈이라고 생각 없이 내뱉었던가.

강진철은 그 가혹한 다리를 짊어지고도 어떻게든 시합을 뛰려고, 광진을 우승으로 이끌어 보려고 달리고 또 쳐 왔던 것이다.

오해를 받고 악조건 속에서 시달리면서도 변명 한마디, 앓는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4번의 자리를 지켜온, 남자였던 것이다.


마운드엔 김광호가 서고 대명고의 배치가 완료되었다. 그리고 강진철이 타석에 서려는데 심판이 제동을 걸었다.

“자네 손으론 타석에 서는 걸 허락할 수 없다. 다른 선수를 내보내게.”

그 장면을 보고 난 정신 없이 타석으로 달렸다. 뭐라 입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저 자리에 내게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한 타석이면 됩니다. 이 일로 날 막으면 평생 당신을 원망할 거요.”

“철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네 손은 이미 배트를 쥐는 것도 안되는 손이다. 물러나!”

심판의 말이 백번 천번 옳았다. 녀석의 손은 붕대로 강하게 묶었을 뿐, 제대로 된 응급처치조차 받지 못했다.

이 상태로 무리한다면 정말 최악의 결과가 생길 수도 있었다. 지금 타석에 서는 건 미친 짓이다. 그런데도 난 앞으로 걸어 심판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냥 서게 해 주십시오.”

“너희들 정말……?”

“부탁드립니다.”

심판의 눈은 아연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눈엔 미쳤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짓이지만 강진철은 타석에 섰다. 거친 스파이크를 끌고 동여맨 붕대, 그 위를 덮은 배팅 장갑을 낀 채 배트를 쥐었다.




귀를 막은 헬멧 사이로 거친 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 순간만큼은 내 몸이 똑똑하게 보여진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미동도 못할 만큼 조여 몸을 받쳤다. 배트를 쥔 손에선 고통도 없었다. 그저 마비된 감각과 시간이 갈수록 타오르는 체온, 끊임없이 떨리는 진동만이 이 말 없는 고통을 증명했다.

“쳐라 강진철! 너라면 칠 수 있다!”

아직 몽롱한 눈으로 벤치를 훑었다. 커다란 덩치에 험악하게 생겨가지고는 눈물마저 글썽이는 저 녀석이 보였다.

‘멍청한 녀석……’

그동안 빈말이라도 녀석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적이 없었다. 언제나 툴툴거리고 톡 쏘아붙이듯이 말했었지.

내가 저 녀석이라면 말조차 걸기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넌 달랐다.’

누구나 같았다. 내 상처를 보여주기 싫어서 매몰차게 밀쳐내면 곧 떨어져 나갔다. 욕하는 녀석들도 많았다. 툴툴거리면서도 저렇게 기를 쓰고 다가온 건 저 녀석 뿐이었다.

덩치만 커서 어랜애처럼 단순하고 새가슴에 멍청하기까지. 그래서 언제나 티격 태격 싸우기만 했다.

뿌드득

마지막 힘을 쏟아 넣은 배트가 힘겹게 울었다.

“그래도, 너희들과 뛴 것이 마지막이라서 기뻤다.”

마지막으로 녀석들과 야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언제나 불협화음만 만들어 냈지만 끝에선 드라마처럼 멋지게 역전해 낼 때 마다 속으로 환성을 지르고 또 질렀다.

“고마웠다 오태오. 그리고 모두…….”

김광호가 다리를 들어올렸다. 너도 지쳤겠지. 평소보다 폼이 작아지고 팔의 회전이 더뎠다. 내 눈엔 똑똑하게 보였다.

어디로 날아올지, 어떤 구종을 던질지.

“차하압!”

숨이 막히도록 쏘아진 공을 보며 이미 한참 전부터 테이크 백을 마친 배트가 천천히 나아갔다. 하품이 날 정도의 속도로 달려 간신히 존 근처에 도달한 배트가 찡 하고 울렸다.

따악!

“파울!”

“크윽……!’

배트에서 올라온 진동이 팔, 어깨를 넘어 이빨까지 두드렸다. 코가 찡하고 눈에 눈물마저 고였다. 뇌까지 울렸는지 무릎이 후들거리고 정신이 아찔했다.

‘빌어먹을 자식.’

처음 건드린 김광호의 공은 생각보다도 묵직했다. 구속은 여실하게 떨어져 지금은 145km 정도지만 그래도 강렬했다.

‘……계속 쳐내다간 부서져 버릴 것 같다......’

이 다음 공을 쳐 내고서 한 생각이었다. 김광호의 앙 다문 입술을 위안 삼아 다시 하품나도록 느린 스윙을 존에 걸쳤다. 공이 배트에 스칠 때 마다 울리는 진동에 손에 축축하게 젖었다.

붉은 장갑이라 다행이야.

사색이 되었을 얼굴엔 아마 애써 태연한 척 미소가 맺혀져 있겠지.

따악!

아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나? 둘? 아마 그 뒤엔 어떻게 될까. 다리도 손도 병신이 된 채로 이제 그라운드를 떠나야겠지. 배트를 쥐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따악!

이제는 몸 전체가 진동했다. 드디어 이 삐걱거리는 몸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소리치고 있었다. 이젠 배트를 쥘 힘조차 없었었다.

우습게도 이런 상황에서 너털웃음이 터져나왔다. 온 몸이 노곤할 정도로 늘어지고 속이 텅텅 비어버렸다. 손에선 맹수가 잡아 뜯은 것 같은 상처가 울려오고 다리는 이미 죽어버렸다. 그런 상황이 왠지 우스웠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그 실감이 참 낯설었다.

‘그 동안 고마웠다. 결승전으로 보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김광호가 다시 다리를 들어 공을 쥐었다. 바람이 춤추며 그 손에 깃들고 불길이 피어났다. 다 꺼져가는 내 불길과는 참으로 비교도 되지 않았다.

“차하압!”

손 끝에서 고속으로 회전하며 터져나온 김광호의 라스트 볼을 보았다. 세상이 느리게만 보이고 공조차 느릿 느릿하게 회전하며 다가왔다.

그래, 전부 보였다. 어디로 올 지, 어디로 쳐야 할 지. 그리고 이 공을 내가 칠 수 없는 것 마저도.

이 답답한 가슴만을 품고 절반쯤 포기했을 그 순간이었다. 느리고 느린 이 공간에 한 마디 익숙한 말이 전해졌다.

“쳐 강진철! 마지막 타석을 삼진으로 끝낼 거냐!”

녀석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느린 공간 속에서 눈을 감았다. 만신창이가 된 몸에게 처음으로 엎드려 빌었다.

제발, 이 한 순간만큼은 녀석들에게 자랑스런 4번 타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다오.

“으……아아아압!”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를 앙 다물고 휘두른 배트에 묵직한 것이 걸렸다. 팔이 부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대로, 앞을 향해 밀었다!

콰앙!

“허억, 허억!”

이미 달리기 전부터 거칠어진 호흡에 몸을 실으며 정신 없이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려 저 앞에 1루 베이스가 보이는 곳까지 달렸다. 타구따윈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저 베이스를 이 두 손으로!

“흐아아압!”

그대로 이 더운 공기 속으로 몸을 날렸다. 몽롱한 의식,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하얀 베이스를 움켜쥔 채 차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덮쳐오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강진철! 강진철 이 멍청한 놈!”

달려가 본 녀석의 중상은 중태였다. 즉시 대주자로 이명원을 넣고 엠뷸런스를 불렀다. 닥터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나와 강진철을 들것에 실었다.

“상태가 어떤 것 같아요?”

“안색이 많이 안좋군요. 창백하고 피도 많이 나고. 당장 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예……”

정신을 잃은 강진철의 코에선 코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붉은 배팅 장갑도 피로 물들어 축축했고 안색은 당장 죽을 것처럼 퍼랬다.

그런데 지금의 이 강진철이 그 어느때보다 멋있었다. 그 어떤 4번 타자보다도.

“일어났을 땐 어깨를 펴라. 최고였다 4번 타자.”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강진철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김광호의 라스트볼을 후려친 강진철의 타구는 사실 하늘로 떴다. 온 벤치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붕 뜬 타구가 애매한 위치로 날았다.

대명고 야수는 일제히 달렸지만 결국 좌익수 앞으로 떨어지는 절묘한 텍사스 안타가 만들어져 버렸다.

대명고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았던 분위기의 저울추가 기묘하게 흔들렸다. 실책과도 같은 안타가 흐름을 불러오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타자는 5번 최대호였다.

“내 타석에서 끝내겠다……”

대호의 한 마디는 김광호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로소 만개하기 시작한 재능이 끝간델 모르고 날뛰었다. 자신감마저 가진 대호의 기세에 그라운드 마저도 숨을 죽였다.

“기다렸다.”

하지만 과연 김광호였다. 오히려 투지를 피워올리며 공을 쥐는 녀석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사.

두 강적이 마주 본 순간부터 더 이상의 대화도 기다림도 소용 없었다. 김광호의 손에서 불길 같은 공이 날고 대호의 손에서 천둥 소리의 배트가 날았다.

‘어……?’

언뜻 보면 호각의 승부처럼 보였다. 그런데 난 이를 악 문 대호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녀석의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

따아악!

연속되는 파울 행진. 그리고 점점 더 가열되는 승부 속에서 대호가 눈물을 훔쳤다.

“왜……?”

신들린 듯 배트를 휘두르면서도 연신 눈물을 훔치는 녀석의 뒷 모습엔 강진철이 보였다.

그때서야 어렴풋이 알았다. 대호의 재능을 알아본 건 나지만 키운 건 강진철이었다. 녀석이 급성장이라는 말도 모자랄 정도로 오르고 또 오른데엔 강진철의 노력이 있었다.

대호는 그라운드에 남은 강진철의 마지막 자취와도 같았다.

녀석도 그걸 똑똑히 알고 있었다.

“으아아아!”

울부짖듯이 배트를 날리는 대호의 배트에 이미 지친 김광호의 공이 걸렸다.

그 순간 이명원이 달렸다. 100미터를 달리는 스프린터처럼, 웅크려 있다가 비호처럼 달린 이명원이 무서운 스피드로 다이아몬드를 돌았다.

“막아아아아!!”

김광호의 울부짖음, 그리고 달리고 또 달린 이명원이 3루를 돌아 홈으로 질주했다. 중견수에게서 송구 받은 공을 임혁이 홈으로 던진 그 순간에 이명원이 홈으로 파고들었다.

홈 플레이트에서 일어난 작은 전쟁, 그리고 어지럽게 뒤엉킨 그 순간이 끝나자 우리는 모두 숨을 멈추고 홈을 바라보았다.

고개 숙인 심판이 손을 들었다.

“아웃, 아웃!’

그 순간만큼은 무너지는 나를 주체할 자신이 없었다. 강진철이 혼절하면서까지 만들어낸 찬스가 끝내 한 낮의 꿈처럼 사라졌다.

대호가 2루에 서 있었지만 타석엔 이번 대회 타율 1할 미만의 형진이가 들어섰다.

“끝났다……”

하위 타선의 득점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광진의 득점력이 그토록 빈약했던 건 바로 이 때문. 형진이는 침착하게 타석에 섰지만 상황이 너무 가혹했다.

9회말 원 아웃 주자 2루. 그리고 상대는 고교 최고의 릴리프.

“태오야.”

헌데 놀랍게도 형진이는 웃고 있었다. 마치 오늘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배트를 쥐었다.

그 순간에서야 난 뒤늦게 알았다. 녀석이 기다리던 공이 이 공이었음을. 녹색 그물망 속에서 배팅 머신을 두드리며 2년이라는 시간을 이 순간을 위해 기다려 왔음을.

“차하압!”

초구부터 슬라이더! 직구는 힘을 잃어가고 숨을 어깨로 쉬지만 김광호의 공은 아직도 날카로웠다. 슬라이더가 절묘한 코스로 스트라이크 존을 스치며 빠져나갔다.

“스트-라이크!”

바로 그 다음. 숨쉴 틈도 없이 던져진 공이 날다 도중에서 밑으로 푹 꺾였다. 형진이의 배트가 우렁찬 소리를 울리며 쏘아졌지만 허공만을 갈랐다.

부우웅!

심판이 주먹을 쥐고 투낫싱을 선언했다. 대명고 벤치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형진이만 잡으면 다음은 타율 제로나 다름 없는 이석진. 경기는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쳐! 쳐 이 망할 자식아, 그렇게 기다려 왔잖아!”

곰 같은 얼굴로 우둔하게 기다릴 줄 밖에 몰랐던 녀석이었다. 집에서 구박 받으며 야구를 했고, 그 야구조차 제대로 못하던 얼간이 같은 녀석이었다.

그래서 항상 응원했다. 언젠가 녀석이 그 녹색 그물망을 찢고 나와 그라운드 위에서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기대했다.

그래, 그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이었다.

“끝이다 광진고!”

호쾌한 울음, 그리고 한참 전으로 돌아간 듯한 파워풀한 투구. 그리고 그의 손 앞에서 비명을 지르는 바람.

모래먼지마저 피워올리며 쏘아진 공을 보며 형진이는 푸근하게 웃었다. 녀석의 배트가 움직였다.

수천, 수만 번 반복해온 그 동작이었다.


그리고 울린 폭발과도 같은, 그 통쾌한 소리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섰다. 너 나 할 것 없이 손에 물병을 쥐고 파울 라인 밖으로 나섰다.

“달려---!”

“달려 최대호!”

발목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대호는 말 없이 외치며 그렇게 달렸다. 걸리적거리는 모자를 집어 던지고 달리고 또 달린 대호가 그대로 홈으로 뛰어들었다.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다시 두 거구가 뒤엉켰다.

그 순간 잠깐 세상이 멈췄다.

우리 모두 입만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명고도, 심판도, 그리고 관중들마저도 약속이라도 한 듯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다음 순간을 기다렸다.

“세…… 세잎, 세잎, 세잎-!!!”

연신 교차되는 심판의 손을 보며 우리는 속에 든 모든 것들 것 일제히 터트렸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겼다!!!!!”

악에 받친 함성을 지르며 손에 든 물병을 미친 듯이 뿌리며 홈 플레이트로 달렸다. 힘이 다했는지 주저앉은 대호에게 달려 물 세례를 퍼붓고 뒤엉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멋있다, 멋있었다. 너희들 진짜……!”

“진짜 최고였어 형진아!”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김광호를 꺾었다아-!”


그야말로 혈전(血戰). 피가 난무하는 악전고투 끝에 살아남은 것은 우리들이었다. 나와 태경이, 강진철이 차례대로 쓰러졌지만 결국 우리들이 이겼다.

이겼다!

언제까지고 그 말이 머리속에서 맴돌아 미친 것처럼 목이 쉴 때까지 함성을 질렀다.


김광호는 대명고 선수들의 부축을 받고 쓸쓸히 벤치로 돌아갔다. 대명고 측은 아직까지도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굳어있었다.


이렇게 대명고와 함께 김광호의 불패 신화는 종막을 고했다.

재미있게도, 전설로 이어지던 방어율 0.00의 신화를 끝낸 것은 4번 강진철도, 천재 최대호도 아닌 타율 1할 미만의 형진이의 손에 의해서였다.


작가의말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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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봉황대기 64 - VS 대명고 (11) 누가 비극을 바랬나 +10 12.01.30 2,696 2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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