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조회수 :
326,427
추천수 :
1,751
글자수 :
427,977

작성
12.04.05 01:07
조회
2,714
추천
52
글자
10쪽

Epilogue

DUMMY

Epilogue


“우승 광주제일고!”

“와아아아아!”

2시간 반에 걸친 혈투 끝에 결국 펄럭이는 봉황기를 차지한 것은 광주제일고였다. 사상 최초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그들에게 우렁찬 환호와 눈부신 플래시가 터졌다.

“결국, 끝났구나.”

우리 모두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조금은 씁쓸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짧은 거리였지만 이곳과의 온도 차이는 피부에 와 닿을 만큼이나 확연했다.

“그래도 대단했어, 저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여기까지…….”

형진이는 이어가던 말 꼬리를 흐렸다. 그 말에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은 그토록 절박하게 달려왔던 우리가 가장 잘 알고있었다.

“양 팀 감독과 코치는 앞으로, 광주제일고에 대한 봉황기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저 앞에서 뭐라고 떠들던 솔직히 이 축 쳐진 분위기에서 무슨 반응을 보일까. 한숨이나 폭폭 쉬고 있는데 고개 숙인 금발이 슥 지나갔다.

“자, 잠깐만!”

나도 모르게 그 엉킨 금색 실타리를 휘어잡았다. 고개를 들어 올린 한수연의 눈은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 있었다. 내 팔이 다친 건 오직 수연이만 알고 있었다.

팔이 나가도 좋다, 이 경기만은 이기고 싶다.

그런 심정으로 혼을 깎듯이 이 경기를 이어온 나를, 이곳의 누구보다 마음 졸이며 바라보았을 것이다.

"비밀, 지켜줘서 고마워."

“이 멍청아! 흐흑,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어디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나오는 걸까, 한수연은 또 다시 펑펑 울었다. 아무리 강한 척, 무심한 척 해도 스토커 하나 경찰에 신고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마음 약한 여자였다.

“울지마. 다 끝났어.”

고개를 든 수연이의 눈가를 붉게 물든 손으로 서툴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나서야 언제나 티격태격 싸우기만 했던 수연이에게 처음으로 따듯하게 웃어줄 수 있었다.

“너 우니까 진짜 못생겼다."

“이게!”

아무리 울고 있다고 해도 역시 한수연이었다. 다른 여자 같으면 싸대기가 날아왔을 텐데 본능적으로 헤드락을 걸어오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 어엇?”

심지어 예전보다 일취월장, 절묘한 팔놀림에 목을 잡힌 채로 그라운드에 풀썩 쓰러졌다.

“아야야……. 잘못, 잘못 했슴다!”

“당연하지!”

한수연은 새로 개발한 목젖 조르기를 두어번 시도 한 뒤에야 힘을 풀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한참을 웃던 내 눈이 비로소 떠졌을 때, 한수연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닿아 있었다.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내가 팔을 다친 날에…… 말했었지? 첫 사랑이 끝났으면, 나는 어떻냐고.”

한수연은 괜시리 부끄러운 듯 얼굴을 조금 붉혔지만 꿋꿋하게 끄덕였다. 그런 당찬 모습이 또 역시 한수연다웠다.

“곰곰히 생각해 봤어. 처음 본 순간은 정말 최악이었지만, 그리고 그 뒤로도 한동안은 정말 최악이었지만…….”

살짝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수연이의 얼굴을 보며 급하게 덧붙였다.

“지금은,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나도…… 네가 좋아.”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부끄럽지만, 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취해 나도 모르게 속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흘렸다.

한수연은 입술을 앙다물고 잠시 뭘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시 목을 졸라왔다.

“아야얏! 이건 왜…… 흡!”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달콤한 향이 입 안으로 퍼져나갔다. 혼미한 머리 속에서 맴도는 은은하고도 감미로운 연꽃의 향기.

쪼오오오오옥!

하늘은 맑고 구름은 뭉실 떠 있고. 만신창이가 된 채로 바닥에 누워 그 부드러운 입술의 맛을 음미했다.

입을 쩍 벌린 채 벙쪄있는 팀원들, 우리를 보며 딱딱하게 굳어버린 광주제일고, 그리고 인상을 팍 찡그린 홍진성의 얼굴까지.

무언가 해 냈을까?

이처럼 정신없이 달려온 적은 처음이라 지금 이 순간 순간이 생소했다. 눈 앞의 입술을 탐닉하느라 소리낼 순 없었지만 그 어떤 순간보다도 뿌듯했고, 또 후련했다.

"우, 우승 과, 광주제일고!"

방송사의 카메라마저 우리를 향해 있는 그 순간에 광주제일고의 우승이 결정되었다. 당황한 주최측이 봉황기를 건내다 떨어트려 참 보기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버렸다.


뒤돌아보면 한순간이었지만 우리들에게는 정말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실책 퍼레이드에 짜증도 내고 패배감에 울어도 봤었지. 기적같은 홈런도 있었고, 첫 승리의 달콤함도 맛보고. 연습에 싫증내 토라지기도, 토하면서도 달리기도 하고.

두 손으로는 셀 수 없는 추억들이 남아버렸다.

비록 결과는 준우승이라는 아쉬운 끝맺음이 되어버렸지만.


이렇게 해서 우리들이 누물과 함께 달려왔던 봉황기는 끝이 났다.

우리들의 입맞춤은 방송 삼사를 통해 널리 널리 퍼져나갔고 서영하는 백일현의 곁에서 환하게 웃었다.

우승한 것 같지 않게 광주제일고는 터벅터벅 걸어 벤치로 걸어나갔고 백일현은 봉황기를 가슴에 안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경기장엔 장태인 선배도 와 있었다. 선배는 말 없이 카드를 꺼내들더니 내 머리를 벅벅 쓰다듬었다.

“정말 멋진 경기를 봤다. 다음 일정이 없으면 뒷풀이는 내가 쏘지.”

“선배님!”

평생 나오지 않던 선배님 소리가 절로 우러나왔다. 우리 모두 직각으로 인사를 하며 무등을 태워 전세 버스에 장태인 선배를 실었다.

“태오야.”

“엇, 대수형?”

언제 왔는지 고개를 돌려보니 하나도 변하지 않은 늙수그레한 얼굴의 대수 형이 있었다. 경기할 때는 몰랐는데 광주제일고의 하얀 유니폼이 많이도 어색했다.

“솔직히 못 올라올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대수 형은 잠시 말문이 막혔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난 그런 대수 형을 말없이 콱 안아주었다.

아마도 형은 지금의 나와 함께 결승전 무대에 서고 싶었으리라. 사실은 광주제일고에 가고 싶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정말 내게 오만정이 다 떨어져 학교를 옮겼다면 내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아마 인천지역 구단에서 지명 받을 것 같다.”

처음엔 메이저를 위해서 달려왔지만, 결국 루이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우승까지 단 한 걸음이었지만 닿지 못했다.

“프로에서, 뵈요. 꼭 따라가겠습니다.”

대수 형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그렇게 떠나갔다. 이제 프로의 길을 걷는 사람답게 형의 뒷모습은 이미 어른이었다.



팀원 녀석들과 장태인 선배를 먼저 전세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난 한수연과 남았다. 아직 만나야 할 사람이 한 명 남아있었다.

“루이…….”

한수연과 아버지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저만치 떨어져 있었고, 나는 노을이 져 가는 강가에 루이와 함께 서 있었다.

뭐라고 첫 마디를 꺼내야 할 지 몰라서 계속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고 입술만 깨물다 어렵게도 첫 마디를 뗐다.

“날…… 스카우트 해 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당신이 있어서 난 정말 마법처럼 달려올 수 있었어요. 당신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어요.”

루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노을이 비치는 강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잔잔한 강물을 눈에 담고 무겁게 침묵을 지키던 그가 한참이나 후에 입을 열었다.

“우리들의 약속은 우승이었죠. 봉황대기 우승한다면, 휴스턴으로 스카우트 하기로.”

“그랬죠.”

첫마디는 생각보다도 딱딱했다. 그제서야 루이가 정말 스카우터처럼 보였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어색한 한국 말에서도 프로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난 지금, 정말 실망하고 있습니다.

“…….”

면목이 없었다. 실망이라는 것은 그만큼 루이가 나에 대해 기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내가 했던 모든 경기를 전부 보러 왔을 수도 있었다.

“난 참 3류 스카우터 입니다. 내가 했던 말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사람이에요.”

“……예?”

그 말을 마치고 루이는 활짝 웃었다. 정말 어린아이처럼, 구김살 하나 없이 환하게.

“Come to Houston! 와서 시험 받아요. 난 이번 경기에서 당신에게 반했습니다. 비록 우승 하진 못했지만 새가슴을 극복한 태오라면 자격 있어요. 약속대로 스카웃 할 수는 없지만, 난 당신을 추천할 수는 있습니다."

나 때문에 실망한 게 아니었구나.

무겁던 마음이 그제서야 편하게 내려앉았지만 난 대답 없이 서글픈 미소만을 지었다. 아마도 어제의 나였다면 이 제안에 뛸 듯이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메이저보다, 꿈보다 소중한 것이 생겨버렸다.

“미안합니다 루이.”

“가지…… 않을 건가요?”

이상하게도 루이의 말엔 아쉬움이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내 대답을 이끌어주는 것만 같았다.

"네. 나는 여기서, 한국에서 이 녀석들과 같이 좀더 열심히 노력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잃어버린 세월들을 조금씩이라도 되찾고 싶어요."

바로 그 답을 원했던 것처럼 루이는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내 오른손을 강하게 쥐어주었다.

“당신이 이제 어떤 길을 가도 믿을 겁니다. 몇 달전에 만났던 새가슴 투수는 어디에도 없어요. Good Luck! 이 최고의 경기를 기억하며 항상 당신을 응원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루이는 등을 돌렸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훌훌 털어버린 채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가슴에서 울컥 치솟은 것을 소리쳤다.

“하지만, 10년 뒤에, 프로에 들어가서 fa가 끝나는 10년 뒤에 날 다시 스카웃 해 주겠어요? 그땐 반드시 세상 모든 스카우터들이 탐낼만한 투수가 되어서 휴스턴으로 달려갈게요.”

루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 쿨한 등 뒤로 꽉 쥔 주먹만을 들어올렸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가요, 아버지.”

아버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떨어지는 눈물을 감추려는 듯이, 목 메인 목소리로 아버지는 짧게 한 마디만을 남겼다.

“고맙다.”

어느새 젖은 아버지의 눈가, 잔잔한 바람에 흩날리는 한수연의 금색 머리칼. 주홍빛으로 물든 차에 오르자 점화된 엔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짧게 속삭였다.

우리들의 이야기도, 이제 막 시동이 걸렸을 뿐이야.



봉황대기 完


작가의말

정말 오래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참 기쁜 순간인데 후기를 적으면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네요.

태오의 이야기는 즐거우셨나요?
작가인 저로서는 이런 생소한 소설을 쓰느라 정말 힘들기도 하고 즐겁기도 헀습니다. 마감에 치여 짜증도 부려보고 한껏 달아올라 키보드를 두드리며 웃기도 해 보고.
새가슴 태오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도전이 무서워 움츠리고, 넘지 못할 것 같은 산 앞에 주저앉고.
언제든지 달릴 수 있지만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최선을 다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수많은 태오들의 이야기.

전 이제 공부를 하러 갑니다.
솔직히 2011년 까지는 완결 맺으려고 했던 것을 너무 오래 끌어버려서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끝내고 크게 웃을 수 있어서 후회는 없습니다.

자, 끝을 맺은 봉황대기.
그리고 독자분들에게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봅니다.

"여러분! 잘 보셨으면 에필로그는 꼭 댓글이랑 추천 달아주세요!"

저도 댓글 수백개 속에서 행복해보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봉황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Epilogue +76 12.04.05 2,714 52 10쪽
82 봉황대기 최종화 +17 12.04.02 2,920 36 22쪽
81 봉황대기 80 - 결승전! 광주제일고 <10> 터널의 끝 +19 12.03.26 2,463 28 15쪽
80 봉황대기 79 - 결승전! 광주제일고 <9> 종막을 눈앞에 두고 +12 12.03.21 2,216 25 15쪽
79 봉황대기 78 - 결승전! 광주제일고 <8> 불운 +12 12.03.17 2,367 25 15쪽
78 봉황대기 77 - 결승전! 광주제일고 <7> 조그만 결의 +15 12.03.16 2,255 25 15쪽
77 봉황대기 76 - 결승전! 광주제일고 <6> 회광반조 +11 12.03.10 2,319 21 11쪽
76 봉황대기 75 - 결승전! 광주제일고 <5> 맹독의 전초 +12 12.03.06 2,536 26 10쪽
75 봉황대기 74 - 결승전! 광주제일고 <4> 최강이라는 이름 +13 12.02.29 2,816 27 8쪽
74 봉황대기 73 - 결승전! 광주제일고 <3> 격돌 +9 12.02.25 2,723 19 13쪽
73 봉황대기 72 - 결승전! 광주제일고 <2> 괴물의 힘 +12 12.02.22 2,615 18 12쪽
72 봉황대기 71 - 결승전! 광주제일고 <1> 이곳에 서서 +15 12.02.18 2,765 19 9쪽
71 봉황대기 70 - 꿈의 무대로 +9 12.02.16 2,762 17 11쪽
70 봉황대기 69 - 매듭 +5 12.02.15 2,368 17 11쪽
69 봉황대기 68 - 파워 진통제 +10 12.02.12 2,551 21 15쪽
68 봉황대기 67 - 아버지... +6 12.02.09 2,525 19 14쪽
67 봉황대기 66 - 노을은 밝건만 +12 12.02.08 2,726 18 8쪽
66 봉황대기 65 - VS 대명고 終 +11 12.02.06 2,738 22 17쪽
65 봉황대기 64 - VS 대명고 (11) 누가 비극을 바랬나 +10 12.01.30 2,696 22 16쪽
64 봉황대기 63 - VS 대명고 (10) 무제 +4 12.01.30 2,540 15 8쪽
63 봉황대기 62 - VS 대명고 (9) 각성! +8 12.01.26 2,741 23 12쪽
62 봉황대기 61 - VS 대명고 (8) 안돼 +4 12.01.25 2,612 15 12쪽
61 봉황대기 60 - VS 대명고 (7) 힘 +5 12.01.17 2,642 17 12쪽
60 봉황대기 59 - VS 대명고 (6) 등장 +9 12.01.15 2,568 20 11쪽
59 봉황대기 58 - VS 대명고 (5) 최대호 +4 12.01.14 2,694 12 12쪽
58 봉황대기 57 – VS 대명고 (4) 끊겨버린 기억 +7 12.01.12 2,677 16 9쪽
57 봉황대기 56 - VS 대명고 (3) 이변 +9 12.01.10 2,670 14 9쪽
56 봉황대기 55 - VS 대명고 (2) +7 12.01.07 2,667 15 10쪽
55 봉황대기 54 - VS 대명고(1) +8 12.01.04 2,675 17 12쪽
54 봉황대기 53 - 조약돌 +9 11.12.28 2,743 12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