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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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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12.04.05 01:07
최근연재일 :
2012.04.05 01:07
연재수 :
83 회
조회수 :
326,424
추천수 :
1,751
글자수 :
427,977

작성
12.02.08 23:42
조회
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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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8쪽

봉황대기 66 - 노을은 밝건만

DUMMY

Chapter 66


광주제일고.

언젠가부터 최강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 이름이었다.

중학 시절의 내 간절한 목표이자 불패의 우상.

그리고 이제는 결승에서 맞이할 최강의 적.

오랜 시간을 이 무대만을 위해 달려왔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우리 모두 숨을 골랐다. 저 앞에, 그토록 바라던 빛이 있었다.



“한수연 차 있지? 당장 끌고 와. 태경이랑 나도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해.”

“뭐? 이제 막 경기 끝났는데 뭘 그렇게 급하게……”

“결승전은 바로 내일이다! 지금 이렇게 꾸물거릴 시간 없어. 빨리!”

대명고가 워낙에 강적이라 모두들 잊고 있었지만 결승전은 준결승전 다음 날이었다. 이미 우리보다 먼저 결승에 진출한 광주제일고가 바로 내일 광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지? 이 근방엔 아는 곳이……”

“그냥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

어차피 강진철도 그곳으로 이송되었을 것이다. 가서 녀석의 병세도 봐야 했다.

그 말을 들은 한수연은 그야말로 바람처럼 달렸다. 요란스런 배기음을 울리는 파워풀한 엔진이 열을 올렸고 매끈한 오픈카가 도로를 질주했다.

병원에 도착한 것은 고작 이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 어떻습니까?”

이제야 조금 아픔이 실감이 나서 얼굴을 찡그리고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침대에 엎드린 태경이의 허리를 몇 군데 눌렀다.

“아윽!”

“보아하니 이미 부상중인 것 같은데, 또 이렇게 던지면 정말 큰일 나네. 평생 야구는커녕 달리지도 못할 수도 있어.”

“그, 그럼……?”

“상태가 악화는 됐지만 다행히 최악은 면했어. 앞으로 한 달간은 뛰지도 말고 얌전히 걸으면서 물리치료를 받게. 어지간하면 오래 걷지도 말고.”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안심이 됐다. 휴우, 하고 긴 숨을 토해내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의사는 쓸데없이 밝은 펜라이트를 비추며 내 얼굴도 살폈다.

“아~ 해 보게.”

“아~~~.”

피가 쌓여 입 냄새가 났던지 의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했다.

“이쪽도 심하군. 얼음을 잘 대서 붓기는 많이 빠졌지만 입 안이 많이 찢어졌어. 머리는 괜찮나? 구역질이 나거나 어지럽진 않고?”

“처음엔 구역질도 좀 나고 어지러웠는데 좀 지나니까 괜찮아 졌어요. 혹시 심각합니까?”

“뇌출혈이면 심각하지. 하지만 뇌출혈은 아니고, 뇌진탕이 심하게 왔군. 그냥 이틀 정도 푹 쉬고 입 안엔 약을 바르면 될 거야.”

“휴…….”

하지만 한 가지가 더 남았다. 아직도 혼절해 있는 강진철. 녀석이 가장 중태였다.

“저 녀석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까지의 질문엔 지체 없이 답했던 의사지만 지금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가 고개를 조금 젓더니 침중하게 말했다.

“그는…… 이제 배트를 쥐게 하지도 말게.”



무겁게 내리누르는 어깨와 몸을 차 쿠션에 맡긴 채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매캐한 매연이 적잖이 섞였을 텐데도 도시에서 자란 내게는 상쾌하기만 했다.

“그 놈 둘은 내버려 두고 와도 돼?”

“……어쩔 수 없지. 내일이 결승전인데. 태경이가 강진철 곁에 있기로 했어.”

팀을 재정비하는 게 가장 시급했다. 너무 힘든 격전에 녀석들 모두 지쳐버렸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내려 손을 보았다. 조금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고문이었다. 어릴 때 이후로 꼭꼭 숨겨둔 전력을 들춰낸 대가는 생각보다도 가혹했다.

‘젠장…… 어깨를 제대로 돌리지도 못하겠다.’

오늘 하루 180구도 넘는 공을 던졌고, 무엇보다 처음 내는 진짜 힘에 몸이 적응하질 못했다. 아직 단련되지 못한 어깨가 불협화음을 내며 망가진 것이다.

내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는 사이 한수연의 차는 학교에 도착했다. 이미 6시를 넘어 천천히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래도 학교에 도착하니까 숨이 좀 트이네.”

오늘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가 너무 심했다. 당장 합숙소로 들어가서 들이 눕고 싶었지만 가야 할 곳이 있었다.

‘아버지.’

내일이 당장 광주제일고와의 시합이다. 그 전에 아버지에게 가서 확인해 두고 싶었다. 아버지와 나, 우리들의 어긋난 지난 시간들. 서로 칼날을 세우며 살아온 날들에 대한 답을 풀어야만 했다.

“바로 합숙소로 갈 거야?”

“아니…… 가 봐야 할 곳이 있어.”

“어딘데? 나도 같이 가.”

“너랑 같이 갈 곳은 아닌데…… 병원이라 심심할 거야.”

“상관없어.”

요즈음의 한수연을 보자면,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그 짜증 많고 감정 기복 심하던 지지배가 어떻게 이런 쿨한 여자가 되었지?

요즘은 어지간한 일에도 신경질도 내지 않고 시원스럽게 넘어갔다. 그 밉상이던 금발도 이제는 매력 덩어리로 보였다.

‘요 이쁜 것!’

물론 세 살이나 연상이지만 속 마음의 특권은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이지. 차는 학교에 주차해 놓고 아버지가 있는 녹색 병원으로 천천히 걸었다.

이를 테면 경기 뒤의 쿨 다운이라고나 할까. 너무 급하게 나와서 제대로 된 스트레칭도 하지 못했다.

“광주제일고는 왜 그렇게 이기고 싶어 하는 거야?”

“거기에 꺾을 놈이 있거든! 둘씩이나.”

가볍고 부드럽게 와인드업 하면서 대답했다.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는 유연한 동작이 포인트. 덤으로 바람을 찢는 감각도 되새길 수 있는 괜찮은 쿨 다운 동작이었다.

“누구? 백일현?”

“백일현도 알아? 하긴, 고교야구에서 떠오르는 선수 하면 백일현 밖에 없지.”

서휘영과 홍진성도 백일현의 활약에 비하면 한 수 쳐졌다. 그리고 한수연까지 백일현을 알고 있다니 어쩐지 입맛이 썼다. 이 빌어먹을 백일현. 고교야구 사상 최강의 괴물인데다 키도 나보다 크고 심지어 얼굴까지 멀끔하게 잘 생겼다.

그야말로 남자들의 적! 다 가진 못된 놈의 표본이었다.

‘결승전에서 이마빡에다가 공을 꽂아버릴까 부다.’

“백일현이 싫어?”

“그래! 좋을 수가 없지. 내 첫사랑을 흙발로 짓밟았는데 좋을 리가 있나. 아직도 영하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다 찌릿찌릿 하다구.”

종종 감독실에서 맥주잔을 부딪치며 나눴던 이야기엔 영하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때 한수연이 조금 한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레 발을 멈추고 고개를 떨구자 나도 모르게 멈춰 섰다.

이미 해가 져 가고 있었다. 어쩐지 감상적인 주홍빛에 비친 한수연의 얼굴은 몰라보게 예뻤다. 예전의 표독스러움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 씻겨 내려간 듯이, 그 자리엔 멋지고 시원시원한 여자가 웃고 있었다.

“첫 사랑이 끝났으면…… 난 어때?”

뭐? 그렇게 되물을 시간조차 없었다. 수줍은 듯 볼을 붉히며 묻고 있는 한수연의 뒤로 커다란 덩치가 달려왔다. 어둑한 골목에서 달려오는 그 모습!

나도 모르게 그 순간 몸이 움직였다. 부지불식간에 확인한 얼굴, 김재환의 흉흉한 기세가 파도처럼 엄습해왔다.

“안……!”

그 손에 들린 쇠파이프를 본 순간 본능적으로 팔을 뻗었다. 꼼짝하지 못하는 한수연을 감싸 안는 순간, 광기 어린 흉기가 내리쳐졌다.

“어딜 붙어 먹어 이 개 같은 새끼들아!”

카앙!

그 오랜 시간 잠자고 있다 이제서야 깨어난 오른팔이 구슬픈 비명을 흘렸다. 그 뒤로 이어진 정적, 놀란 한수연의 비명 소리.

오른팔을 쥔 채 쓰러지며 난 그저 헛웃음만 흘렸다.

져 가는 주홍빛 노을은 어찌나 밝은지. 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는구나.


작가의말

흐엉엉
사디스트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연참을 하려고 했건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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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Epilogue +76 12.04.05 2,714 52 10쪽
82 봉황대기 최종화 +17 12.04.02 2,920 36 22쪽
81 봉황대기 80 - 결승전! 광주제일고 <10> 터널의 끝 +19 12.03.26 2,463 28 15쪽
80 봉황대기 79 - 결승전! 광주제일고 <9> 종막을 눈앞에 두고 +12 12.03.21 2,216 25 15쪽
79 봉황대기 78 - 결승전! 광주제일고 <8> 불운 +12 12.03.17 2,367 25 15쪽
78 봉황대기 77 - 결승전! 광주제일고 <7> 조그만 결의 +15 12.03.16 2,255 25 15쪽
77 봉황대기 76 - 결승전! 광주제일고 <6> 회광반조 +11 12.03.10 2,319 21 11쪽
76 봉황대기 75 - 결승전! 광주제일고 <5> 맹독의 전초 +12 12.03.06 2,536 26 10쪽
75 봉황대기 74 - 결승전! 광주제일고 <4> 최강이라는 이름 +13 12.02.29 2,816 27 8쪽
74 봉황대기 73 - 결승전! 광주제일고 <3> 격돌 +9 12.02.25 2,722 19 13쪽
73 봉황대기 72 - 결승전! 광주제일고 <2> 괴물의 힘 +12 12.02.22 2,615 18 12쪽
72 봉황대기 71 - 결승전! 광주제일고 <1> 이곳에 서서 +15 12.02.18 2,765 19 9쪽
71 봉황대기 70 - 꿈의 무대로 +9 12.02.16 2,762 17 11쪽
70 봉황대기 69 - 매듭 +5 12.02.15 2,368 17 11쪽
69 봉황대기 68 - 파워 진통제 +10 12.02.12 2,551 21 15쪽
68 봉황대기 67 - 아버지... +6 12.02.09 2,525 19 14쪽
» 봉황대기 66 - 노을은 밝건만 +12 12.02.08 2,726 18 8쪽
66 봉황대기 65 - VS 대명고 終 +11 12.02.06 2,738 22 17쪽
65 봉황대기 64 - VS 대명고 (11) 누가 비극을 바랬나 +10 12.01.30 2,696 22 16쪽
64 봉황대기 63 - VS 대명고 (10) 무제 +4 12.01.30 2,540 15 8쪽
63 봉황대기 62 - VS 대명고 (9) 각성! +8 12.01.26 2,741 23 12쪽
62 봉황대기 61 - VS 대명고 (8) 안돼 +4 12.01.25 2,612 15 12쪽
61 봉황대기 60 - VS 대명고 (7) 힘 +5 12.01.17 2,642 17 12쪽
60 봉황대기 59 - VS 대명고 (6) 등장 +9 12.01.15 2,568 20 11쪽
59 봉황대기 58 - VS 대명고 (5) 최대호 +4 12.01.14 2,694 12 12쪽
58 봉황대기 57 – VS 대명고 (4) 끊겨버린 기억 +7 12.01.12 2,677 16 9쪽
57 봉황대기 56 - VS 대명고 (3) 이변 +9 12.01.10 2,669 14 9쪽
56 봉황대기 55 - VS 대명고 (2) +7 12.01.07 2,667 15 10쪽
55 봉황대기 54 - VS 대명고(1) +8 12.01.04 2,675 17 12쪽
54 봉황대기 53 - 조약돌 +9 11.12.28 2,743 1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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