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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맹인검마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20.05.12 16:08
최근연재일 :
2020.05.26 13:17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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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5
추천수 :
80
글자수 :
90,944

작성
20.05.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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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十三. 사파

DUMMY

十三.


천하무림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렇게 묻노라면 대부분은 정파라고 대답할 것이다. 전통의 소림이나 무당을 뽑을 수도 있고 정세에 밝은 자라면 혁련세가를 꼽을 것이다.


이십오년 전 정파와 황실의 정예를 몰살시키고도 신마가 스스로 물러나자 무림의 주인은 정파가 되었다. 개중에서도 살아남은 다섯 문파가 무림의 패권과 그 모든 이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정파의 세가 미치지 않는 곳도 있었다. 바로 남쪽의 안휘성, 복건성, 강서성이었다. 이 곳만큼은 사파의 세력이 융성해 정파도 쉽사리 침범하지 못하는 사파의 중심지였다.


기존엔 정파의 세력권이었지만 신마의 손에 수많은 문파가 멸문당하면서 사파가 그 빈자리를 메꾼 것이다. 그렇게 도적질이나 하는 무리들로 멸시받던 사파는 역사상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산길을 지나가려면 통행세를 내야 한다는 건가요?"

"물론! 그리고 내지 않아도 좋다. 이 대력패왕 님의 대도를 맞고도 살아날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아 내지 않아도 됩니까? 휴, 사천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여비가 제법 간당간당했는데."

"뭐, 이 이놈! 이 대도가 보이지 않느냐!"

"전 눈이 멀어서...."

"이 자식이 죽을려고!"


대력패왕이라는 엄청난 별호를 가진 남자는 사람 크기만한 대도를 뽑아들더니 눈 앞의 건방진 봉사 놈에게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했다.


"어?"


목 끝에 차갑고 뾰족한 칼날이 어느새 겨눠져 있었다. 이 놈이 칼을 뽑은 것 같기도 했는데 그 이후의 칼놀림이 보이지 않았다.


"자, 잠깐만."


그가 뒤로 슬쩍 물러서도 봉사 놈은 가만히 있었다. 대력패왕은 가슴을 쓸어넘기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보통 놈으로 보였다.


"내가 잠깐 방심했다. 다시 간다!"

"다시 안와도 되는데..."


거리를 충분히 벌린 대력패왕의 참격이 무시무시한 바람소리를 내며 사선으로 날았다. 그는 상대가 두동강 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뭔가 이상했지만 이제 끝이다!'


오늘따라 칼이 가벼웠다. 가끔 이렇게 가볍게 휘둘러진 참격은 위력이 엄청났다. 정파랍시고 깝죽거리는 것들은 칼과 함께 두동강이 나버리기 일쑤였다.


"오늘은 칼이 유난히 가볍군. 엉? 아니 내 칼이..."


뭔가 이상해서 쳐다보니 칼이 없었다. 대력패왕이 자랑했던 대력패도는 손잡이만을 남기고 사라져 있었다.


"더 할까요?"


봉사 놈은 환하게 웃더니 칼을 들어올렸다. 대력패왕은 저 성의 없이 겨눠진 칼을 도저히 피할 자신이 없었다. 주위의 눈이 따가웠지만 그는 눈을 딱 감고 외쳤다.


"통과!"




이미 한겨울인데도 복건의 날씨는 따듯한 편이었다. 현고는 부지런히 달려 복건성의 중심지 복주로 들어왔다.


"여기가 바로 사파의 중심지 복주구나."


눈을 감아도 도시가 활달한 것이 느껴졌다. 주위는 시끌시끌했고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현고는 처음 맡아보는 바다 냄새였다.


"거 싸게싸게 비키쇼!"

"어떤 멍청한 놈이 길을 막고 있어!"


시장통의 등쌀도 대단했다. 산 속에서만 수련하다보니 이런 인파가 몰리는 곳에서는 다른 장님이랑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현고는 외딴 골목길에서야 겨우 멈춰설 수 있었다.


"이것 참. 이리 복잡해서야 패왕문까지 어떻게 찾아간다."


다들 갈길이 바빠보여서 길을 묻기도 힘들었다. 현고는 한참만에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물었다.


"저기 말씀좀 여쭙겠습니다. 혹시 패왕문이 어딥니까?"

"패왕문? 장님이 거기는 왜?"


현고는 막상 입을 떼기가 힘들었다. 검귀를 찾아왔지만 막상 평생을 정파인으로 살다 사파로 입문하려고 하니 뭔가 꺼림칙 했던 것이다.


"거기 입문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그렇습니다."

"우하하하!"


남자는 대뜸 웃음부터 터트렸다.


"어이 여기와서 좀 봐. 웬 봉사놈 하나가 패왕문에 들어간다네."

"뭐 어디 굴러먹던 은거기인이라도 되시나?"

"사파가 만만해 보였나봐?"


목소리만 들어도 걸걸한 장정들에게 둘러싸이자 겁에 질린 불쌍한 현고는 출수와 동시에 칼을 종으로 베었다.


"어?"


장정들의 눈에는 뭔가 번쩍 하는 것 같더니 어느새 장님의 손에 칼이 들려 있는 걸로 보였다. 그 바로 다음 순간 세 장정의 바지가 일제히 잘려 흘러내렸다.


"제가 아직 미숙해서 상처가 좀 났네요."


아래를 내려다보니 소름끼치게 예리한 상처가 중요한 물건의 정확히두 촌 위에 그어져 있었다. 실로 소름 돋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히끅!"


잠깐 그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현고는 상대가 반응이 없자 두려움에 떨며 이 번엔 상의를 노리고 출수하려고 했지만 한 남자가 재빠르게 나섰다.


"하하하하, 패왕문으로 가신다고요 형님? 진작 말을 하시지! 제가 정문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알고보니 싹싹하고 착한 친구였다. 그도 매년 패왕문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히 낙방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현고가 패왕문에 들어간다고 하니 잠깐 골탕먹일 생각이었다고.


"여기서 쭉 걸어가면 패왕문인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살벌하네요."


아닌게 아니라 패왕문의 분위기는 험악 그 자체였다. 말을 탄 무사들이 쏟아져나오고 수십 명 씩 무리지은 자들이 고함치고있었다.


"일조는 시장, 이조는 술집거리, 삼조는 뒷골목을 뒤진다!"

"아가씨가 사고를 치기 전에 찾아야한다!"

"아가씨를 발견하면 싸우지 말고 그물을 던져서 생포해라. 절대 싸우지 마라!"


어딘가 살벌한 대화들이었다.


"저기 혹시 검귀 대협을 만날수...."

"바쁜데 걸리적거리지 말고 썩 꺼져라 이놈!"


눈치 없이 말 걸던 현고는 호된 불호령만 맞고 물러나야 했다.


"오늘은 물러나는게 좋겠습니다 형님."


어쩔 수 없이 현고는 그와 헤어지고 패왕문에서 조금 떨어진 풍월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낮부터 시끌벅적한 객잔이었다. 현고는 소면 하나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낮부터 술판이로군."


아닌게 아니라 객잔의 중앙엔 정말 죽자고 술을 마셔대는 인물들이 있었다.


"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천하제일검도 있고 천하제일권도 있는데 왜 천하제일주는 없느냐! 저희 풍월객잔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죽엽청주 비무대회!"


바람잡이까지 붙어서 대낮부터 신나게 마셔대고 있었다. 현고는 흐릿한 기감을 집중하자 이미 여럿 실신했고 남은 두 사람이 정말 술을 물처럼 마셔대는 것이 느껴졌다.


'죽자고도 마시는군. 그렇게 맛있나?'


사실 현고는 지금까지 제대로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화산에서야 당연히 도사의 신분이니 술을 멀리했고 천각과 다니면서도 천각이 억지로 인사불성이 되도록 먹인 것을 제외하고는 입에 대지 않았다.


"자 남은 선수는 두 명! 죽엽청 서른세 병 째에 돌입합니다. 저 커다란 덩치에 복건에서 알아주는 술꾼 왕장이냐 아니면 새롭게 나타난 작은 몸의 은월이냐, 아! 여기서 왕장이!"


왕장이라는 사내가 거품을 물고 쓰러지자 승리는 은월이라는 사내가 가져갔다. 은월은 부상으로 받은 은편 하나를 들고 희희낙락하며 오히려 술을 더 시켰다.


"후! 가뿐하구만. 저런 것도 주당이라니."


은월은 객잔에 들른 손님들의 박수갈채를 즐기며 술을 들이켰다. 그때 이미 거나하게 술이 오른 산발머리의 취객 하나가 은월에게 다가왔다.


"어이 이봐! 술 좀 하는구만!"

"당신도 덤빌거요?"

"클클 방금 죽엽청 서른네병을 마시는 걸 봤는데 그럴 바보가 있겠나. 다만 궁금한게..."


현고는 신경쓰지 않고 소면에만 집중했지만 감각이 확장된 이후엔 오히려 소리를 안 듣는게 더 어려웠다. 남자는 질척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궁금한게 아무리 봐도 계집같은데 왜 사내 흉내를 내고 있느냐 이거지."

"계집이라니! 이 수염이 보이지 않는가!"

"클클클, 계집이 사내 수염만 붙이고 있는다고 티가 안나나. 피부도 뽀얀데다 얼굴도 몸살나게 곱상하니 어딜 봐도 계집 같은데 말이야."


은월은 더 상대하기 귀찮다며 저리 꺼지라고 말하곤 사내와 등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술이 거하게 오른 사내는 등 돌린 은월의 엉덩이를 꽉 움켜잡았다.


"이 미끈한 엉덩이좀 봐! 와하하하! 여기좀 보쇼, 이러고도 계집이 아니라는 거요!"

"와하하하하!"


취객들의 주정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 정도가 되면 남자든 여자든 정도가 과했다. 현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산발머리 사내를 말리려고 했다.


"거기 잠깐..."


하지만 현고보다 은월의 대처가 더 빨랐다. 은월은 핑그르 뒤로 돌며 취객의 발목을 걷어찬 다음 두 손바닥으로 가슴팍을 때렸다. 북 터지는 소리가 나며 취객은 객잔 밖까지 나가떨어졌다. 왁자지껄한 객잔은 단숨에 빈소라도 된 것마냥 조용해졌다.


"어디 감히! 내가 어딜 봐서 여자라는 거야!"


이제는 남자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도 없었다. 높고 뾰족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여인이었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수염 붙인 여자가 아닌, 쿠웩!"


술에 취해 눈치머리가 없어진 남자가 은월을 가리키며 사실을 말하자 은월의 손바닥이 다시 날았다. 그도 똑같이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객잔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또 눈알 삔 놈들 있나?"

"어, 없지."

"저런 주당이 어찌 사내가 아닐 수 있나!"

"사내 중의 사내 은월!"


억지로 쏟아지는 찬사에도 취한 은월은 만족한 듯 했다. 현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남은 식사를 마치려 했다. 헌데 은월이 비틀거리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이봐 자네. 방금 날 구해주려고 했지?"

"으, 응? 아니 난 그냥..."

"자네 아주 마음에 드는구만. 마시게!"

"나는 술을 못 마시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자자!"


현고는 입까지 들이미는 술잔을 실수로 한 모금 넘겼다. 은월은 혼자 술을 마시다 상대가 생기자 매우 흡족한 듯 현고에게 술을 강권했다. 현고는 홀짝홀짝 은월이 주는 술을 먹다 이내 거나하게 취해서는 은월과 어깨동무를 하고 대작을 했다.


"자네 제법 술을 하는 구만."

"그런가? 난 오늘 술을 처음 마셔보는데. 히끅!"

"아주 맘에 들어! 자 한 잔 더해!"


그때 객잔의 문을 박차고 다섯 명의 무사들이 들어왔다. 무사들은 핏발선 눈으로 객잔을 샅샅히 훑더니 종이를 펴 초상화를 들고 말했다.


"사람을 찾고 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 왔다면 지금 말하도록. 변장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의심가는 자를 말한다면 은 열냥을 주겠다."


은 열냥이라는 말에 취객들의 눈이 뒤집혔지만 이미 취기가 거하게 오른 소눈깔로 초상화에 그려진 얼굴을 찾는 건 힘든 일이었다. 결국 무사들이 한명씩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뭘 저렇게 찾아대나. 히끅! 사람인 것 같은데. 이봐 은월."


하지만 은월은 이미 탁자에 머리를 박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현고는 은월을 두드려 깨웠지만 은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기! 얼굴 좀 봅시다."

"자 여기."

"누가 네 얼굴이라고 했나! 거기 엎드린 얼굴 좀 들어봐라."


이때 현고가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은월을 깨웠겠지만 만취한 현고는 이미 기분만으로는 천하제일고수였다. 게다가 술기운 이라는 것이 뒷일은 잘 기억나지 않고 근거없는 자신감을 주는 물건이 아닌가. 현고는 탁자를 쾅 하고 박차고 일어났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들이길래 기분좋게 술 한잔 하는데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

"아니 이놈이 감히! 네놈 우리가 누군지 보고도 모르느냐!"

"난 안보이는데."

"이 봉사놈이!"


무사는 칼집째 현고에게 칼을 휘둘렀다. 현고는 취기 때문에 가물가물했지만 뭐가 날아오는 느낌만은 알 수 있었다. 휘청이는 건지 숙인건지 공격을 피한 현고는 그대로 칼집으로 상대의 머리를 후려쳤다.


빠악


한대 맞고 그대로 기절한 무사가 쓰러지자 남은 무사들이 칼을 빼들었다. 현고는 벌겋게 취기가 오른 얼굴로 헤죽 웃으며 소리쳤다.


"다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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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六. 천각 20.05.15 157 8 16쪽
6 五. 천각 20.05.14 19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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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三. 파국 그리고 파문 +2 20.05.13 220 5 11쪽
3 二. 화산제일검 +2 20.05.12 24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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