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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맹인검마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20.05.12 16:08
최근연재일 :
2020.05.26 13:17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2,697
추천수 :
80
글자수 :
90,944

작성
20.05.2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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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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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十二. 신마교

DUMMY

十二.


역근경.

처음 등장했을 때는 천하제일의 내공심법이었으나 그건 정말 달마 대사 시절에나 통하는 이야기였다. 이 것은 도(道)를 깨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 심법이었다. 당금 무림에선 더 뛰어나고 위력적인 심법들이 계속 나타났고 발전되었기 때문에 역근경의 무공으로써의 가치는 삼류 이하였다.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의 무공비급이라더니..."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없었다. 무림 고수들부터 시골마을의 촌부에게까지 역근경처럼 유명한 것이 없었고 달마대사가 창안한 전설의 무공비급도 맞았다.


"험험! 네가 또 이 놈 저 놈에게 보여주고 다닐까 싶어 하는 말이다. 소림에서도 잘 익히지 않는 것이지만 잘못 들켰다간 경을 칠 수 있으니 잘 감춰서 다니거라."


천각이 부연 설명을 이어갔지만 충격에 빠진 현고에겐 들리지 않았다.


"저기, 현고야?"

"역근경이라니...."


넋나간 현고가 진정된 것은 얼마가 지난 뒤였다. 역근경으로 저 강대한 화산파에 복수하려고 했던 것이 허망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놈아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알려준 무공이나 열심히 익히고 있거라."

"....이제 바로 가십니까?"

"그래야지. 몸도 쾌차 했고 당적 저 녀석에게 적주의 해독약도 얻었고. 사천에 와서 험한 꼴을 실컷 당하긴 했지만 그만큼 먹고 마셨지 않느냐."


독 때문에 살이 서너근은 빠졌으면서도 천각은 호탕하게 웃었다. 헤어지려고 하니 보면 볼수록 영호성과 닮은 그였다.


"너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 생각해 둔 곳은 있고?"

"사부께서 제게 해 주신 말이 있습니다. 무공을 익히고 싶다면, 정도 어느 문파에서도 절 받아주지 않을 테니 패왕문의 검귀에게로 가라고."

"검귀라. 정파의 품에 있으면 좋을 것을."


하지만 천각도 그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무림사성이라고는 하나 자신은 떠돌이 부평초 같은 신세이고 정파 무림에서 화산의 입김은 강대한 것이었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군요."

"그래, 그 나름대로가 네 길이겠지."

"아 참. 제가 말씀드릴 건 아니지만 홍 형은 좋은 사람 같습니다. 죽을 위기에서도 사부를 버리지도 않고."


홍에게 의발을 전해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현고는 조금 돌려 전했다. 천각은 잠시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 사실 그 놈에게 전수해준 것이 금환신공과 풍신여의보다.


현고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 밖에는 짓지 못했다. 오늘처럼 여러번 놀라는 날도 없었다. 홍은 항상 천각이 전해준 무공을 시장바닥에 가도 널려있을 삼류무공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것이 천각의 그 전설적인 무공이 되는가?

그렇게 생각하던 현고는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혀까지 씹었다.


"그, 그렇다면..."

"비밀이다 욘석아."


홍이 익힌 것이 금환신공과 풍신여의보라면 자신이 익힌 무공도 같다는 것이 아닌가! 자신도 삼류 무공이라 생각했던 것이 바로 그 천하제일경공인 풍신여의보이며 금환신공이라고? 현고는 믿을 수 없으면서도 가슴이 벅차왔다.


'아니 그럼 이 사실을 7년 동안이나 말해주지 않았다는 거잖아?'


그리고 홍은 7년이나 배우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된다.


"하, 하하하하!"


현고는 간만에 시원하게 웃었다. 천각도 박장대소하며 둘은 자그만 암자가 떠나갈 듯이 웃었다.


한바탕 웃고나니 이제는 정말 떠날 때가 되었다. 천각은 바위에서 일어서 채비를 했다. 천하가 다 그의 다리 아래에 놓여 있는 만큼 천각의 짐은 단촐하기 그지 없었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겠다. 더 있고 싶지만 내게는 조금의 여유도 없구나."


천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도 그는 5년 간 온 정파를 위해 떠돌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물건을 품을 지니고,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의 앞마당에서.


"몸 조심하세요, 5년 뒤에는 저도 제법 강해져 있을 겁니다. 그때는...."


그때는 같이 다녀도 되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쉽게 내뱉지 못했다. 하지만 천각은 인자하게 웃으며 현고의 머리를 한 번 헤집어 놓았다.


"그래 그때는 느긋하게 유람이나 다니자꾸나. 네게 술도 좀 가르쳐 주고. 눈은, 너무 탓하지는 말거라. 눈이 닫혔으면 마음을 한 번 열어보는 것도 좋겠지. 잘 지내거라."


그렇게 둘은 작별인사를 나눴다.




현고는 기억을 더듬어 당적의 거처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눈이 먼 뒤로 다른 감각들이 살아났다. 귀가 밝아지고 기억력이 놀랍도록 연마됐다. 이제는 집중한다면 반 각 정도 걸은 길과 보폭까지도 전부 외울 수 있었다.


'저 멀리 떨어진 토끼의 호흡, 새가 나무를 쪼는 소리. 희미하게 들린다. 묘하게도 내공을 잃기 전보다 감각이 확장되는 걸 느낀다.'


헌데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질적인 기가 현고의 감각에 걸렸다. 큰 바위 뒤에서 숨을 죽인 뭔가가 있었다. 현고가 손을 뻗자 물컹한 것이 만져졌다.


"으허엇!"

"웟 깜짝이야!"


바위 뒤에 숨죽이고 있던 것은 홍이었다. 현고가 대뜸 만지자 홍도 현고도 화들짝 놀랐다.


"아니 여기서 뭐하십니까?"

"아, 아니 그게.... 그, 그보다 내가 보였나? 어떻게 알았지?"

"그냥 뭔가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자, 자네 신기한 재주를 익혔구만."

"풍신보께서는 이제 가신다는데 여기 있어도 됩니까?"

"안돼지! 내가 따라가야지. 그, 그럼 이만 나는 감세!"


홍은 진땀을 빼며 허둥지둥 천각에게로 달려갔다.


'엿듣고 있었던 건가? 왜?'


천각이 그에게만 무공을 알려줄까봐 걱정되었던 것인가? 현고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곧 잊어버렸다. 홍의 평소 행동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홍은 허겁지겁 달려 천각에게로 향했고 그렇게 둘은 북방으로 떠나갔다. 현고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들이 떠나간 자리를 꽤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이제부터 어떡해야 하나."


마음을 연다, 천각의 마지막 말은 현고가 가장 여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죽음의 위기가 닥치자 마음 속에 그려진 복잡한 검초들을 꿰뚫는 하얀 선, 기를 눈으로 보듯 느껴지는 기감. 그리고 운공하면 운공할수록 자연과 동화되듯 뻗어가는 감각.


'화산파의 내공을 익히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새로운 심법이라고 하기엔, 말이 안돼. 역근경이 그보다 뛰어날리는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는 천각의 금환신공은 뒷전이었고 사부가 준 역근경에 몰두했었다. 현고는 차이점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역근경을 집중해서 운용했다. 천천히 자연의 선기가 현고에게 밀려왔다. 비어있는 단전이 천천히 순후한 기로 가득 차며 포만감이 느껴졌다.


'어?'


헌데 이변이 일어났다. 현고의 단전이 한계점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새하얀 기가 그 곳으로 차곡차곡 갈무리되며 뻐근한 느낌까지 주었다. 현고는 역근경에 심취하여 운공을 이어갔다.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축기는 가장 거짓이 없는 과정이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심법에 따라 지루한 축기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내공은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으며 한 순간에 늘어나지도 않는다. 이 것은 분명한 이상 상황이었다.


"후우우... 역근경에 내가 모르는 효용이 있었나?"


하지만 무림에서 가장 오래된 심법에 그런 효용이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오래됐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동공의 심법이 이렇게 빠르게 축기할 수 있을리가..."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연마하는 심법을 좌공, 평시에 움직이거나 자면서도 쌓을 수 있는 심법을 동공이라고 한다. 이 말만 들으면 동공이 월등해 보이지만 실상 축기하는 양은 좌공이 월등했다. 현고가 화산파에서 연마한 심법 역시도 좌공이었다. 그래서 현고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고수가 되기까지 평생을 쌓아도 모자란 역근경이다. 영문을 모르겠군."


화산파에서 쌓았던 내공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였으나 평소에 현고가 역근경으로 쌓아오던 축기의 양과 지금은 두배 이상 차이가 났다.


"산에서의 일과 관련이 있는 걸까? 죽음의 고비를 넘겨서, 아니면 내가 오르지 못했던 경지에 나도 모르게 발을 디뎠던 걸까?"


고민해 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당적에게 물어도 답은 마찬가지이리라. 현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았다. 칼날의 서늘함이 손으로 전해졌다.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부웅!


한 번 빠르게 종으로 휘두르자 그 안에 실린 내력은 대단치 않았지만 차갑고 날카로운 예기가 움직였다. 현고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기 위해 밤낮으로 칼을 휘두르고 심법에 매달렸다. 새로운 길에 눈을 뜨니 똑같이 칼을 휘둘러도 화산파의 검법 같지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해가 질 때까지 검을 휘둘렀고 역근경을 끊이지 않도록 운용했다. 당적의 거처로 돌아와서는 가부좌를 틀고 잠 잘 시간도 쪼개가며 천각이 남겨준 금환신공을 연마했다.

그렇게 하나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가는가?"


함박 눈이 하늘을 덮으며 펑펑 내리는 겨울 날이었다. 현고는 부산하게 짐을 꾸렸다. 허리춤엔 칼을 차고 짐이라고는 등에 맨 건량과 물이 다인 단촐한 것이었다.


"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아저씨. 이제 가볼까 합니다."

"눈이 이렇게 오는데 괜찮겠나? 가는 길이 험할텐데."

"이제 괜찮습니다. 몸도 다 나았고 더 신세지면 죄송하죠."

"신세는..."


당적은 못내 아쉬운 듯 했다. 당적의 거처는 사천당문 안에 있지 않고 외딴 곳에 홀로 떨어져 있었다. 폐쇄적이라는 당문 내에서도 당적이 별종이었던 탓이다.


"자네 눈의 백안분독을 해독해 주지 못해서 그게 좀 걸리는군. 독 자체는 별거 아닌데 하필 눈에 중독되어서..."

"제 운명인가 봅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여러번 당적은 현고의 눈을 고쳐주려 했지만 그 것이 쉽지가 않았다. 독을 누르는 것은 독이라, 독성을 없앨순 있지만 현고의 눈이 실명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당 아저씨."

"저기 뭐 갈 곳 없으면 종종 들르게."

"꼭 다시 오지요."


현고는 환하게 웃으며 당적에게 큰 절을 하고는 길을 떠났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겨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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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四. 파국 그리고 파문 +2 20.05.13 208 5 8쪽
4 三. 파국 그리고 파문 +2 20.05.13 220 5 11쪽
3 二. 화산제일검 +2 20.05.12 245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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