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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 님의 서재입니다.

맹인검마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은깨비
작품등록일 :
2020.05.12 16:08
최근연재일 :
2020.05.26 13:17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2,699
추천수 :
80
글자수 :
90,944

작성
20.05.1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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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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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三. 파국 그리고 파문

DUMMY

三.


폭음이 울린 후에 싸움은 오히려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둘 모두 서로에게 필승을 자신했건만 숨겨둔 비장의 일수가 사납기 그지 없었다.


"어찌 이런 검술을 가지고 사손을 죽이려 했나, 네놈은 부끄럽지도 않느냐!"

"글쎄, 화산 장문이 명한 일을 내가 어찌 거역하겠나."

"너는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일의 배후에 네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대체 현고를 왜 노린 것이냐? 이미 나와는 십 년 전에 사제의 인연을 끊어놓았다. 비무대회에서 무당의 우홍도 꺾었으니 그만하면 화산의 명예를 드높혔다고 볼 수 있을 터. 대체 왜냐?"

"아직도 모르겠나?"


풍련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하며 비릿하게 웃었다.


"화산 장문인을 충동질해 네 제자를 핍박하고 눈을 멀게했다. 왜겠느냐. 너를 그 동굴에서 끌어내 내 손으로 죽이기 위해서였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그까짓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저 아이를 반죽음으로 몰고 백안분독까지 뿌렸단 말이냐?"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다만 이 기회를 노릴 수는 있었지. 내게는 십 년만에 온 기회였으니까."

"나를 십 년 전에 동굴에 가둔 것도 너였다!"

"십 년 전에도 널 죽이려 했을 뿐이다. 일이 꼬여서 네가 동굴에 갇히게 됐을 뿐."

"이 개만도 못한 자식이!"


두 검객은 섬광처럼 날아 검강이 실린 참격을 맞부딪쳤다. 좀전보다도 흉폭한 폭음에 산봉우리가 몸을 떨고 현고는 날아가지 않기 위해 나무를 붙들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화산제일검의 그 알량한 명자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니냐! 그 것이 그리도 소중해 십 년이나 동굴에 매인 나를 겁내고 내 제자까지 헤쳤나!"

"헛소리! 화산제일검은 너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리고 십 년 전에도 지금도 내가 네깟 놈에게 질 것 같으냐!"


둘의 칼부림은 점점 더 흉흉하게 달아올랐다. 둘 중 하나의 숨이 끊어져야 끝이 날 것이었으나 둘의 실력은 호각세였다.

영호성은 십수 년 전부터도 괴이할 정도로 검술이 뛰어나 검괴라고 불렸다. 일류 시절부터 몇이나 되는 절정고수를 꺾은 기린아였으나 화산과는 척을 져 자하신공을 전수받지 못해 풍련에 비하면 내공이 크게 밀렸다. 동굴에 갇혀 손발이 묶인 채로 오로지 내공만을 연마해 영호성은 풍련의 내공을 따라잡고 풍련은 영호성의 검술을 따라잡아 비로소 둘은 맞수가 되었던 것이다.


영호성의 칼이 독사처럼 휘어지며 귀곡성을 뿌렸다. 시종일관 칼 끝이 풍련의 눈과 목을 노리고 엄습했다. 풍련의 검은 웅혼한 진기를 휘감아 공력으로 그 기기괴괴한 검초를 찍어눌렀다.

다시금 검강이 서로의 검에서 피어오르고 흉흉한 살초가 일어난 지 백여 초가 지났음에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결판이 나지 않는 군."


풍련이 먼저 운을 떼었다.


"고수의 싸움은 반초식도 너무 많고 천초식도 부족하다 했지. 기왕 이렇게 된거 구백 초만 더 세어보자."

"글쎄, 천초를 다 셀 필요가 있을까."

"필요하다면! 이제 와서 겁이 나나?"

"그럴 리가. 요는 이 싸움이 너무 길다는 것이지. 종지부를 찍는데 있어서."

"하하하, 그건 그렇다. 십년 전이라면 감히 네가 나와 백여 초를 겨룰 수 었었을까?"


영호성의 비웃음에 풍련은 대답하지 않고 하찮다는 듯 넘겼지만 기실 이 말은 풍련의 자격지심을 통렬하게 꿰뚫는 것이었다. 풍련은 화산에 입문 했을 때부터 삼십 년 간 기재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단 한번도 영호성을 꺾은 적이 없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화산제일검의 영광스런 칭호를 받고 스스로도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했건만 십년 동안 사슬에 매인 영호성을 당해내지 못한다?

이건 풍련의 자존심을 산산조각으로 박살내는 일이었다. 초수가 길어질수록 풍련의 눈에는 독기가 맺혔다.


"누가 위인가 두고보면 알겠지."


풍련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정신을 집중했다. 등 뒤의 살기가 악귀같은 형상으로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죽어, 풍련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을 검에 실어 검초를 펼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검기가 종으로 날고 독기어린 검강이 횡으로 파고들었다.


'십자매화음검.'


이 것은 풍련이 십년을 연마한 독수였다.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뻗어오는 풍련의 검강을 영호성의 검강이 틀어막을 때, 절정고수의 이목마저 속인 기척 없는 음유한 검기가 영호성의 옆구리를 찢었다.


'이겼다!'


설상가상으로 영호성의 검이 허물어져 갔다. 힘이 빠진 영호성의 검을 자르고 그를 베어갔다. 발끝에서 차오른 흥분이 척추를 타고 등을 오싹하게 달궜다. 이상한 것을 느낀 것은 영호성의 모습이 사라졌음에서였다. 몸을 낮춘 영호성의 모습이 보였다. 기를 거둬들여 검강에 손쉽게 베어진 영호성의 검에서 다시금 검강이 피어올랐다. 풍련의 눈에 경악이 맺혔다.

두 고수의 인형이 스쳐 지나가며 핏물이 하늘 위로 비산했다.


"영호칠검 절초 허실검강. 즉석에서 지은 이름인데 어떠냐?"

"이 개자식이!"


풍련은 노호처럼 울부짖었다. 영호성이 남긴 검상은 가슴팍에서 복부까지 이어졌다. 상처입은 가슴팍에서 핏물이 터져나오고 안색은 창백하게 변해갔다.


"바로 치료한다면 죽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십 년동안 동굴에 가둬놓고 내 제자를 망쳤지만 삼십년 간 동문이었던 너에 대한 내 마지막 온정이다. 사라져라 풍련."


가슴팍에서 복부까지 이어진 검상은 즉사는 면할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얕지도 않았다. 풍련은 큭큭, 낮은 실소를 흘리며 상처 부위를 점혈했다.

영호성의 말은 오히려 하늘같은 고수들에게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자존심을 건드린 셈이었다.


'십 년 동안 동굴에 매인 영호성에게 패해놓고 어찌 화산제일검이라고 칭하고 다녔단 말인가? 이러고도 동문 앞에서, 세상 앞에 얼굴이나 제대로 들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같이... 죽자."


가볍게 우측으로 휘두른 검을 영호성은 의아해 했을 뿐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검 끝에서 뻗어나간 음유한 비검기가 풀잎을 베고 앞을 못 보는 현고를 노렸다. 현고는 자신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 칼을 빼어들고 풍련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겨누고 있었다.


"안돼!"


영호성이 궁신탄영의 절정경공을 밟아 현고에게로 쏘아졌다. 잔상이 쭉 늘어나 보일 정도의 빠른 속도였지만 영호성은 애만 탔다.


"현고 이놈아 피해!"

"으, 으으...."


하지만 정작 현고는 발이 굳어 피하지 못했다. 죽기를 각오한 풍련에게서 흉신악살과도 같은 살기가 앞도 못보는 현고를 옭아맸다. 비검기가 코앞까지 다가와서야 현고는 몸을 떨며 칼을 꺼내 미친 듯이 휘둘렀다.

간발의 차를 뚫고 현고에게 날아온 비검기를 영호성의 검이 흩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풍련의 살초가 영호성의 뒤를 노렸다.


"같이 죽자! 이 한 칼로 너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화산제일검이 아니다!"

"풍련!"


분노한 영호성의 검강이 풍련의 허리를 베었다. 그리고 풍련의 집념어린 검강이 영호성의 어깨를 관통한 것 역시 간발의 차였다. 영호성은 칼을 놓치며 주저앉았고 풍련은 허리춤에서 피를 쏟으며 나가떨어졌다.

영호성은 마지막까지 더럽게 군다며 욕지거리를 퍼부으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려다본 가슴팍에 차가운 칼날이 꽂혀있었다.


"혀, 현, 고야."


그 짧은 한 마디조차도 입에서 쏟아지는 핏물에 잠겨버렸다. 눈 앞에서의 흉험한 충돌에 반사적으로 칼을 찔렀던 현고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힘껏 부여잡은 검의 손잡이에서 힘이 빠졌다. 떨리는 손을 떼었을 때 다시 그를 부르는 사부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현고야...."

"사부....?"


현고는 두방망이치는 심장을 걷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매만졌다. 사부일 리가 없었다. 그럴리 없었다.

하지만, 매만진 그의 얼굴은 거칠었다. 십 년은 동굴에 매여있던 것처럼. 머리도 뻣뻣한 산발이었다. 현고는 이미 터져버린 눈물조차도 부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서, 산을 내려가거라. 멀, 멀리 가 이놈아."

"아니야, 아니야, 사부, 아니죠. 그렇죠? 아니잖아요!"


현고가 필사적으로 부여잡아도 영호성의 몸에선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검에 천하를 가르던 그가 몇 마디 떼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이 불쌍한 놈을, 어찌 남겨두고, 현고야..."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부님, 제발! 제발 죽지말아요."

"내려, 내려가서.... 다 이, 잊고 살아..."

"사부님, 사부님! 먼저 가지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사부님...!"


핏기 없는 얼굴에서 새카맣게 죽은 눈이 떨림 끝에 감겼다. 죽는 순간까지도 제자를 걱정했던 영호성은 그렇게 숨은 거뒀다. 현고는 사부의 마지막 모습조차 눈에 담지 못하고, 영호성을 죽인 손으로 그의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안돼요 사부님, 안돼요.... 이렇게는, 이렇게 가는 건 안되잖아요."


핏기없는 영호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현고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영호성을 느끼며 현고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으아아아아아!"


피눈물이 눈가에서 흐르고, 현고는 떨리는 오른 팔을 들어 돌부리에 내리찍었다. 살가죽이 짓이겨지고 핏물이 그 속에서 터지듯이 흘렀다. 참혹한 고통이 차라리 가슴속을 터지듯이 메운 죄책감을 줄여주었다. 현고는 다시 팔을 들어 돌부리에 찍었다.


"이 팔, 이 개같은 팔, 이 개같은 팔로!"


정신이 나가버린 채로 몇번이고 내리찍은 팔을 멈췄을 땐 이미 살가죽이 짓뭉개지고 뼈가 부러져 있었다. 현고는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에 머리를 땅에 찧으며 오열했다.

한참 그렇게 울부짖던 현고는 떨리는 왼 손으로 사부의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았다.


"사부는 싫어하겠지만, 마지막까지 화산제일검으로 살다 갔으니 제자인 저 역시 이 빌어먹을 화산의 문하가 아니겠습니까. 나는 여기서 스스로 파문하오니, 근맥을 자르는 건 눈으로 대신해 주시구려."


현고는 피가 배어나오도록 부여잡은 칼날을 아랫배에 내리꽂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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