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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851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19.11.18 01:21
조회
505
추천
11
글자
6쪽

16. 갑질

DUMMY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바쁜 시간들을 보내던 어느 가을날, 추석이 코앞에 다가오자 모두의 관심은 상여금이 얼마나 될까에 쏠려있다. 지난해까진 매년 현상유지 수준이라 100%로 만족했지만 올해는 최근 3년 간 최고의 매출을 달성하여 모두 기대가 크다. 특히 이번에 과장으로 승진한 고과장은 누구보다도 더할 것이다.


“고과장. 이번 추석 때 몫 돈 생기겠네.”

“에이. 손과장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아직 대우인데.”

“그래도 작년 보다는 많겠지.”

“혹시 얼마나 나오는지 모르세요?”

“아직 위에서 상의 중인데 최소한 150%는 되지 않을까?”

“설마요. 매출 실적이 잔년대비 300%나 되는데.”


모두가 들떠 있는 가운데 주팀장은 고민이 많은지 무덤덤했다. 무덤덤하기는 무용도 다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자리를 비웠다가 오후 늦게 돌아오면 긴 한숨을 토하는 게 요즘 그의 일과다. 그럴 때마다 고과장이 조심스럽게 묻곤 했지만 늘 같은 대답뿐이다.


“무용씨. 어떻게 됐어요?”

“여기저기 알아보긴 하는데 연락이 없네요.”

“지금 추석 때문에 다들 바빠서 그럴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되겠죠.”

“미안해요. 도움이 못 돼서.”

“과장님께서 미안하실 게 뭐 있어요. 안 그래도 도움 많이 받고 있는데.”


며칠 후, 추석 연휴가 내일 모레로 다가왔지만 무용의 쳐진 어깨는 펴질 기미가 없다. 그런데 한창 들떠있던 분위기가 주팀장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았다. 주팀장은 아직도 JEMIS를 내친 손과장에게 앙금이 남았는지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딴죽을 걸었다.


“손과장. 그 WEBSTAR인지 뭔지는 인사도 할 줄 모르나?”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JEMIS는 매년 때마나 성의표시를 했는데 WEBSTAR 이놈들은 싸가지가 없어.”


매년 명절 때면 업체들 마다 선물 보따리를 들고 방문하던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무용의 말에 의하면 주팀장은 명절 때마다 업체로부터 고가의 선물과 함께 여행비를 상납 받았다고 한다. 그 중 가장 규모가 컸던 JEMIS가 사라졌으니 주팀장 입장에선 여간 불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다 내일 모레가 연휴 시작인데 WEBSTAR에선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으니 부아가 날 수밖에.


“아무튼 말이야. 지네들 물건 팔아줬는데 사장이란 놈이 인사 한번 없어.”


혼자 성이 난 주팀장이 주절대는 사이 손과장은 어이가 없는지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 주팀장의 볼멘소리를 듣기라도 했는지 천정 스피커를 통해 각 팀에 할당된 선물을 수령해 가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남자 직원들 내려가.”


손과장의 지시에 조대리와 관리팀 창고로 내려갔다. 무용도 있었으나 현재 그의 처지를 생각해 조대리와 둘만 가게 됐다. 창고엔 먼저 온 실무 팀 팀원들이 줄을 서 있었고 창고 안엔 화려하게 포장된 박스들이 쇼핑백에 담겨 천정까지 쌓여있었다. 무엇인지는 모르나 수령을 마친 다른 팀 직원들은 양손에 쇼핑백 서너 개씩 들고 사라졌다.


“저게 뭐죠?”

“홍삼세트 아니면 통조림세트 같은데요? 그것도 아니면 욕실 용품이겠죠 뭐.”

“혹시 고기 아닐까요?”

“작년에 그랬는데 올해는 아닌 것 같은데요?”


조대리 말대로 선물은 욕실 용품세트였다. 정육회사이니 한우세트 같은 것을 기대했지만 올해는 주문이 폭주해 당장 물량을 대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지됐든 취직해서 처음으로 선물을 들고 집으로 갈 생각을 하니 뿌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뭐가 들었기에 이렇게 무거울까? 둘이서 9개나 되는 선물을 나눠 들었는데도 손가락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러면 그렇지. 돈도 많이 벌었는데 겨우 이거야? 어떻게 JEMIS 보다도 못해.”


주팀장은 선물이 못마땅했는지 연신 툴툴대며 조대리가 갖다 준 선물을 여기저기 살폈다. 그러면서 계속 JEMIS 타령을 멈추지 않았고 자기 덕에 그동안 푸짐한 선물을 받은 것이라며 공치사까지 했다. 어찌 보면 주팀장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무용의 얘기를 들어보니 JEMIS에서는 명절 때마다 소형 가전제품을 팀원들 집으로 실어 날랐다고 한다.


“네.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나 참. 제가 대신 사과드리죠. 죄송합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전화를 받은 손과장은 통화를 끝내곤 혼자 분을 삭였다. 마침 출근한 주팀장이 사무실에 들어서는 데도 손과장은 모른 척 시스템실로 피하듯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일까? 의문은 서버 정기 점검 차 방문한 WEBSTAR 엔지니어를 만난 조대리에 의해 밝혀졌다.


“주팀장이 어제 WEBSTAR 영업팀장한테 명절이 코앞인데 인사도 없냐고 전화했나 봐요. 그러면서 기본이 안 돼 있네 뭐네 하면서 주접을 떨어서 한우 세트 하나 보냈대요.”

“그거 불법 아닙니까? 정말 어이가 없네요.”

“저도 어처구니가 없어요. 그 얘기 듣는데 창피해서 혼났어요.”


TV 뉴스에서나 보던 갑질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그 한우세트 때문인지 평소 같으면 이러저런 트집으로 한마디 했을 주팀장이 오늘은 일을 끝내고 철수하는 엔지니어의 인사를 조용히 받아들였다.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대놓고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지 점심 식사는 주팀장을 향한 성토가 반찬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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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인연 19.11.24 504 13 5쪽
18 18. 초라한 퇴장 19.11.23 513 13 9쪽
17 17. 진상 19.11.21 504 12 7쪽
» 16. 갑질 19.11.18 506 11 6쪽
15 15. 배려와 동정 19.11.15 545 16 7쪽
14 14. 행복한 고민 19.11.13 533 13 5쪽
13 13. 몸통과 깃털 19.11.12 530 15 9쪽
12 12. 쓰레기 19.11.11 556 16 10쪽
11 11. 고래싸움. 19.11.10 566 12 7쪽
10 10. 수심가지(水深可知) 19.11.08 568 13 6쪽
9 9. 폭풍전야 19.11.08 572 13 5쪽
8 8. 입방정 19.11.07 608 13 6쪽
7 7. 싸가지 19.11.05 601 15 5쪽
6 6. 악연 19.11.04 633 17 6쪽
5 5. 갈등 19.11.03 670 14 8쪽
4 4. 신세계 19.11.03 697 14 3쪽
3 3. 처신 19.11.03 727 15 6쪽
2 2. 가시밭길 19.11.03 825 19 6쪽
1 1. 첫 출근 19.11.01 1,296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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