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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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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50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19.11.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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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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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0쪽

12. 쓰레기

DUMMY

지난 한 달간 주팀장과 손과장의 고래싸움에 심신이 피폐할 정도로 힘들었던 운영과는 서버 기종이 결정되면서 악마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운영과의 설움이 아주 끝난 것은 아니다. 강도가 다소 약하긴 했지만 유과장이 그 뒤를 이은 것이다.


“조대리. 손과장 어디 갔어?”

“서버 도입 건 협의 때문에 WEBSTAR에 가셨습니다.”

“협의할 게 뭐있다고 만날 자리를 비워? 서버 교체한다고 백업 대충 받는 것 아니지?”

“당연하죠.”

“아무튼 고생길이 훤하네?”

“언제 안 그랬습니까?”

“이 사람이 과장이 얘기하는데 꼬박꼬박 말대꾸하네?”

“말대꾸라니요? 유과장님께서 물어보시니까 대답한 건데요.”


이미 끝난 일이었지만 유과장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시간만 나면 조대리를 볶아댔다. 그러다 손과장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하게 자리로 돌아가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한 달 뒤, 슬슬 폭염이 얼굴을 드러낼 무렵,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버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대리. 오늘 운영과는 철야근무야.”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전기실에 협조요청 했습니다.”

“오케이. 설치작업은 WEBSTAR에서 할 테니까 조대리는 마감 끝나는 대로 백업 시작해.”


다음날, 운영과와 WEBSTAR 엔지니어들이 밤새 고생한 덕에 아침부터 시스템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모두 신기종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동안 주팀장과 유과장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시스템실은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나할 정도로 말끔히 정리돼 있었고 마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흔적하나 찾을 수 없었다.


“고대리. 써보니까 어때?”

“상당히 빠른데요? 각 팀에도 전화해 봤는데 아주 만족스럽대요. 고생하셨어요. 손과장님.”

“고생은 무슨. 난 그냥 지켜보기만 했는데. 고생은 조대리가 했지.”


그렇게 신 기종이 도입됐고 주팀장과 유과장이 그토록 염려했던 안정화 기간은 필요치 않았다. 결국 주팀장과 유과장도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의 일상을 되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 JEMIS 대표가 찾아오면서 생각지 않았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팀장과 조용히 대화를 이어가던 대표가 갑자기 언성을 높인 것이다.


“팀장님.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없었던 일로 하자고요?”

“이미 끝난 일인데 뭐.”

“그건 경우가 아니죠. 저는 땅 파서 장사합니까?”

“이 사람이 직원들 보는데 뭐하는 짓이야? 우리 나가서 얘기해.”


그리고 몇 시간 뒤, 주팀장이 돌아온 것은 퇴근시간이 조금 지난 뒤였고 급히 유과장을 회의실로 불러들이곤 팀원들이 퇴근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엊저녁에 회의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미가 청소중인 회의실 탁자에 빈 종이컵 여러 개가 뒹굴고 있었다.


“선미씨. 어제 여기서 뭐 했어요?”

“모르겠어요. 출근해 보니까 이렇게 돼있었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런 의문은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얼마 뒤 어제 회의실에 들어갔던 주팀장과 유과장이 출근하면서 좋지 않은 기운이 사무실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유과장은 평소와 다르게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이 없었고 주팀장은 마치 울화가 치니는 것을 억제하듯이 잔뜩 일그러진 채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한참 뒤 사무실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유과장.”


침묵에 빠져 있던 주팀장이 유과장을 부른 것은 점심시간을 한 시간 앞둔 때였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한참을 소곤거리더니 둘이 동시에 옷을 갈아입고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주팀장과 유과장은 퇴근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고대리님. 우리 치맥 한잔 하죠.”

“갑자기 웬 치맥이요?”

“실은 두 분께 해드릴 얘기가 있어서요.”

“그래요? 정도씨. 어때요?”

“전 아무래도 좋습니다.”

“선미씨는?”

“전 선약이 있어서 참석 못하겠어요.”

“저런! 오케이 그러면 선미씨는 다음에 같이 가고 오랜만에 목 좀 추겨봅시다.”


갑작스런 무용의 제안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고대리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무용이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라며 이번에 서버를 도입한 WEBSTAR에 자기 대학동창으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잠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고대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머나. 웬일이래요?”

“그러게 말입니다. 제 친구가 WEBSTAR 관리팀 과장으로 있는데 알고 보니까 전에 JEMIS에도 있었더라고요.”

“그래요?”


이어지는 무용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충격이다. 이야기는 서버 교체가 한창 추진 중이던 때로 돌아갔다. 그 당시 주팀장은 노후 된 서버를 교체하기 위해 대표이사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회사의 신뢰를 잃어버린 뒤였기 때문에 허락되지 않았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실무 팀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팀장들을 불러다 회식을 시켜줬대요. 물론 비용은 JEMIS에서 댔고요. 그런데 거기서 데이터 처리 속도가 늦다면서 속도를 올릴 수 없겠느냐는 요구가 나온 거예요.”

“주팀장. 신났겠네요.”

“당연하죠. 결국 팀장들을 부추겨 대표이사 설득에 성공했죠.”


그러나 이미 주팀장을 믿을 수 없었던 회사에선 감사에게 시켜 주팀장 모르게 신기종 도입을 검토하게 했고 감사가 선택한 것은 손과장이었다. 그러나 감사의 발표가 있기 전까지 주팀장은 물론 누구도 그런 사실을 알 수 없도록 단 둘 사이에서만 일이 진행됐다.


“그래서 주팀장이 손과장한테 볼멘소리 한 거였군요.”

“어쩐지. 옛날 같으면 지랄 난리를 떨었을 텐데.”

“그런데 본론은 이제부터예요.”


무용과 고대리가 말을 주고받는 동안 듣기만 했는데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다. 서버 교체에 대한 승인이 떨어진 뒤 주팀장은 JENIS를 제 집 드나들 듯 했고 그럴 때마다 VIP 대우에 옆엔 유과장이 수행원처럼 등장했다.


“그때 JEMIS로부터 미리 리베이트를 챙긴 거예요.”

“아직 도입 결정도 안 났는데 말이에요?”

“그러니까요. 확인된 것은 아닌데 제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말이죠.”


주팀장은 JEMIS 서버를 도입해주는 조건으로 1억 2천을 요구하고 그 중 50%는 유과장 입막음에 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주팀장의 억지였다. 이미 90% 이상 확장된 마당에 굳이 서버가 도입된 후에 거래를 하느니 미리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니까. 서버가 설치되면 여기저기서 보는 눈들이 많아서 불편하다면서 미리 달라고 요구한 거예요.”

“세상에. JEMIS도 그렇지. 주팀장을 어떻게 믿고 돈을 준거야?”

“안 그래도 JEMIS 사장도 손과장이 마음에 걸려서 망설였는데 주팀장이 그렇게 못 믿겠으면 그만 두라고 겁을 줬대요.”


결국 JEMIS에서는 주팀장의 말을 안 믿을 수도 없어서 리베이트 1억 2천을 선불로 주고 말았다. 그러나 주팀장의 호언장담과 달리 기종이 변경되었고 이미 미국 본사에 선주문을 낸 JENMIS에서 그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문제는 아직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주침장은 그 돈으로 부인용 외제차를 샀고 유과장은 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에 그 돈을 합쳐서 집 사는데 썼나 봐요. 그러니 당장 1억 2천을 돌려줘야 하는데 힘들게 된 거죠.”

“완전 망했네.”

“그렇죠. 그런데 문제가 또 있어요.”


무용의 쉬지 않는 특파원 보고가 계속되면서 JEMIS에서는 리베이트 선납에 관여했던 담당 임원을 비롯한 관련자 전원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됐고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 전원 파면을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거기에 주문 취소에 따른 미국 본사의 패널티까지 물어야 할 판이다.


“그 사람들 언젠간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주팀장 믿고 우리를 개보듯 하더니 꼴좋게 됐네.”


어떻게 이런 일이?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신입사원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주팀장과 유과장이 손과장을 방해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손과장의 정직함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유과장은? 하필 왜 그런 사람 밑에 있게 됐을까? 이 모두가 그 싸가지 없던 이중성 때문이다.


“참. 무용씨. 그 이중성이 아버지가 JEMIS 사장 아니에요?”

“맞습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자기 회사에 집어넣을 것이지 여긴 왜 넣었을까?”

“그게 밀이죠. 사실은 JEMIS 오너가 따로 있더라고요. 결국 이번 일로 잘렸대요.”


알고 보니 이중성 아버지는 월급쟁이 사장이었다. 그런데 주팀장과 리베이트 거래를 하면서 오너와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지급을 결정했고 이에 화가 난 오너가 리베이트 환수 여부와 관계없이 이중성 아버지는 무조건 물러날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거금을 오너 허락도 없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으니 화가 날 수밖에요. 어쨌든 이번에 이중성 아버지도 망한 거죠.”

“내가 이중성 그 인간 까불 때부터 알아봤어. 아무튼 주팀장 믿고 오만했던 인간들 골치 아프게 됐네요.”

“그냥 망한 거죠. 뭐.”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도 어지간히 됐는데 막잔 비우고 일어납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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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진상 19.11.21 504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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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배려와 동정 19.11.15 545 16 7쪽
14 14. 행복한 고민 19.11.13 533 13 5쪽
13 13. 몸통과 깃털 19.11.12 530 15 9쪽
» 12. 쓰레기 19.11.11 556 16 10쪽
11 11. 고래싸움. 19.11.10 566 12 7쪽
10 10. 수심가지(水深可知) 19.11.08 568 13 6쪽
9 9. 폭풍전야 19.11.08 572 13 5쪽
8 8. 입방정 19.11.07 608 13 6쪽
7 7. 싸가지 19.11.05 601 15 5쪽
6 6. 악연 19.11.04 633 17 6쪽
5 5. 갈등 19.11.03 670 14 8쪽
4 4. 신세계 19.11.03 697 14 3쪽
3 3. 처신 19.11.03 727 15 6쪽
2 2. 가시밭길 19.11.03 825 19 6쪽
1 1. 첫 출근 19.11.01 1,296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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