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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9,261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19.11.10 03:37
조회
567
추천
12
글자
7쪽

11. 고래싸움.

DUMMY

“정도씨. 어제 술 마셨나 보네?”


언제 나타났는지 유과장이 재킷을 벗으며 던진 아침 인사에 가슴이 철렁했다. 어제 운영과 직원들과 어울린 것을 유과장에게 들킨 건가? 그런데 어느새 내가 이렇게 성장했을까? 나도 모르게 입에서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어제 퇴근하려는데 친구가 요 앞에 왔다고 전화가 외서 저녁이나 간단히 먹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럴 때 진짜 싫어. 나도 전에 한번 그런 적이 있는데 여기까지 온 친구한테 돈 내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서 내가 독박 썼다니까. 정도씨도 그랬을 것 같은데?”

“왜 아니겠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표정 하나 안변하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그런데 그런 자신에 대한 대견스러움도 잠시, 팀장 회의에 갔던 주팀장이 사무실에 나타면서 한동안 조용했던 사무실에 토네이도가 고개를 들었다.


“과장들 회의실로 모여.”


손에 서류를 든 주팀장을 따라 손과장과 유과장이 회의실로 들어가고 한동안 안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 평화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주팀장의 고성이 새어나왔다.


“또 시작이군.”


고대리의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빈정거림을 배경으로 고성은 계속됐고 숨을 죽인 채 안에서 주팀장과 손과장의 한판에 팀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기에 주팀장이 난리를 치는 걸까? 하지만 고대리의 냉정함에 모두 파티션 밑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냥. 신경 꺼요. 하루 이틀도 아닌데. 참, 정도씨 어젠 미안했어요. 영업본부에서 연락 받았는데 정도씨가 손봤던 프로그램 잘됐다고 얘기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이상 없으면 됐죠. 뭐.”

“그리고 무용씨한테 맡긴 건 어떻게 됐어요?”


그러나 무용은 입을 떼지 못했고 곧이어 고대리의 타이르듯 하는 냉기서린 충고가 이어졌다. 어제 야근을 했어야 할 무용이 일을 팽개치고 퇴근해 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대리의 질책에 가까운 충고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올해 직급 정년인 입장을 생각했는지 잠시 무용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감사가 그렇게 지시했어도 최소한 나한테 먼저 보고를 했어야지.”


회의실을 나오며 손과장에게 서운함을 뱉어낸 주팀장은 오전 내내 혼자 분을 삭이는지 말이 없었고 유과장도 무뚝뚝한 얼굴로 책상 위에 있던 서류들을 뒤적였다. 그러나 고대리와 유과장 사이엔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는지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침묵 속의 오전이 지나고 식곤증이 슬슬 엄습할 때였다.


“조대리. 손과장 어디 갔어?”

“좀 전에 감사님이 찾으신다는 연락 받고 나갔습니다.”

“넌 요즘 뭐해?”

“과장님께서 시키신 제품별 비교표 만들고 있습니다.”

“넌 대리씩이나 되면서 손과장이 시킨 것만 하냐?”

“네?”

“아니다. 내가 너한테 무슨 얘길 하겠냐? 처신을 그따위로 하니까 엊그제 들어온 신입사원이 우습게 보는 거야. 멍청해 갖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이보다는 덜 할 것이다. 난데없이 무시당한 조대리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이가 없었는지 혼자 실실 웃기만 했다. 그날 이후 운영과를 향한 주팀장의 깐죽거림은 멈추지 않았고 전에는 선미가 전담했던 커피 심부름까지 미호가 도맡아야 했다.


“조대리님. 요즘 저 인간 왜 저러래요?”

“뻔하지. 뭐. 과장님이 자기 뜻대로 안 움직이니까 화풀이 하는 거지.”

“개새끼.”


날이 갈수록 주팀장의 운영과를 향한 시비는 점점 강도를 더해 갔고 조대리와 미호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주팀장은 미호가 가져온 커피가 너무 진하네 뭐네 하면서 투정을 부렸고 죄 없이 미운털이 박힌 조대리에겐 시스템실 관리가 엉망이라며 트집을 잡기 일쑤였다. 그가 이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유과장. 어떻게 생각해?”

“글쎄요. 제가 보기엔 괜히 기종 바꿨다가 안정화 기간 길어지면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그렇지? 내 생각도 그래. 옛날 우리 처음 시작했을 때 어땠어? 기종 바꿨다가 생고생 했잖아. 무엇보다 그 업체가 우리 내부 사정을 잘 모른다는 점이야.”


주팀장과 유과장이 합동작전으로 기존 서버와 같은 JEMIS 기종을 강하게 밀어붙이려 했지만 손과장은 눈 하나 깜짝 안하는 것이다. 손과장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현재 지원원과에서 관리 중인 패키지가 상용화 된 것이라 기종에 관계없이 즉시 적용이 가능했고 이미 주팀장 모르게 새로 도입하려는 WEBSTAR 기종에 대한 시험까지 끝냈기 때문이다.


“두 분 말씀 모르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아직 소식 못 들으셨나 보군요.”

“무슨 소식?”

“JEMIS에 있던 엔지니어 핵심들이 WEBSTAR로 이직한 것 모르셨죠?”

“그래? 이것들이 감히 내 허락도 없이.”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다른 팀원들은 주팀장이 왜 이러지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후, 대표이사가 주재한 임원회의에 참석했던 주팀장과 두 과장이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한동안 가졌던 의문이 풀렸다.


“임원회의에서 그렇게 결정이 됐지 뭐야. 그리고 그 놈들 그만 뒀으면 진작 얘길 했어야지. 내가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잖아. 아무튼 미안하게 됐어.”


회의에서 돌아오자마자 통화를 시작한 주팀장은 평소 볼 수 없었던 저자세로 상대에게 연신 사과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손과장은 여느 때처럼 표정이 없었다. 그러나 유과장은 무슨 일이 있는지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연신 한숨을 토했다.


“고대리님. 제가 알아봤는데요. 이번에 서버 교체하는 것 있잖아요? 다른 기종으로 결정됐대요.”

“알아요. 어쩜 이리도 고소할 수가. 아무튼 주팀장하고 유과장 망했네.”

“고대리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차차 알게 될 거예요.”


고대리의 흐뭇해하는 표정은 곧 놀라운 일의 발생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뒤 운영과에 대한 주팀장의 괴롭힘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과장의 수심에 찬 얼굴은 여전했고 주팀장은 뭐가 바쁜지 자리를 비우는 날이 갈수록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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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인연 19.11.24 507 13 5쪽
18 18. 초라한 퇴장 19.11.23 517 13 9쪽
17 17. 진상 19.11.21 507 12 7쪽
16 16. 갑질 19.11.18 506 11 6쪽
15 15. 배려와 동정 19.11.15 545 16 7쪽
14 14. 행복한 고민 19.11.13 535 13 5쪽
13 13. 몸통과 깃털 19.11.12 532 15 9쪽
12 12. 쓰레기 19.11.11 557 16 10쪽
» 11. 고래싸움. 19.11.10 567 12 7쪽
10 10. 수심가지(水深可知) 19.11.08 569 13 6쪽
9 9. 폭풍전야 19.11.08 573 13 5쪽
8 8. 입방정 19.11.07 615 13 6쪽
7 7. 싸가지 19.11.05 607 15 5쪽
6 6. 악연 19.11.04 635 17 6쪽
5 5. 갈등 19.11.03 672 14 8쪽
4 4. 신세계 19.11.03 698 14 3쪽
3 3. 처신 19.11.03 729 15 6쪽
2 2. 가시밭길 19.11.03 829 19 6쪽
1 1. 첫 출근 19.11.01 1,304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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