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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852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19.11.07 00:16
조회
608
추천
13
글자
6쪽

8. 입방정

DUMMY

아버지 말씀대로 내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모르나 나도 손과장을 닮아가는 것 같다. 아니면 부전자전? 그런데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팀장과 두 과장이 들어간 회의실에서 고함소리가 새어나온다.


“갑자기 왜 업체를 바꾸려는 거야?”

“바꾸려는 게 아니라 전 그냥 회사 방침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그 업체하고 거래한 지가 5년이야. 이미 검증됐는데 왜 일을 번거롭게 만들어? 유과장. 안 그래?”

“그래. 손과장. 어차피 같은 장비니까 기존하던 대로 하자고.”


무용 선배의 말에 의하면 주팀장은 한 번도 거래처를 바꾼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거래처의 대표가 이중성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러면 회사에서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위에서 승인했으니까요. 사실 우리도 소문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일부러 모른 척 한 거예요. 정도씨도 그냥 모른 척 해요. 회사에서 최고참 유과장이 왜 후배 과장에게 쩔쩔매는지 이제 알겠죠?”


얘기를 듣고 보니 마치 서로의 약점을 잡고 그것을 미끼로 거래하는 정치판을 보는 것 같다. 결국 직장이라는 조직에서의 직위에 밀린 손과장이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고 주팀장과 유과장은 물건을 팔아준 대가로 남들 몰래 짭짤한 부수입을 챙길 것이다.


“한편으론 유과장이 저러는 것도 이해는 가요. 저 사람 이번 년도가 직급 정년이거든요.”

“직급 정년이요?”

“그동안 3번이나 진급 심사에서 떨어졌는데 올해 연말에 진급 못하면 아주 그만둬야 해요.”


그것은 주팀장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직급이 부장인 그도 유과장과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의 목표는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이었지만 견적가를 조작했던 일이 발각되면서 부름을 받지 못한 채 만년 부장으로 버티는 중이다.


“그때 욕심만 부리지 않았으면 작년에 승진했을 거예요.”

“그럼 주팀장 나가면 손과장이 그 자리 앉는 건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손과장은 회사에서 인정받은 사람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선배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는 대답대신 미묘한 미소로 여기 있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면서 입을 닫았다. 그런데 며칠 뒤 인사팀 정선배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동안 이것저것 많은 것을 얘기해 주었던 무용선배도 올해 대리로 진급 못하면 만년 사원을 면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간부급들은 퇴직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계열사로 보내 2년 정도 다닐 수 있게 해주는데 사원들은 공장으로 가거나 계열사로 가면 대부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더군.”

“살벌하네요.”

“혹시 김무용하고 친해?”

“친한 건 아닌데 저한테 도움 되는 얘기를 많이 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죠.”


그러나 좋은 선배로 알았던 무용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입이 가벼워 누구도 그와는 말을 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다 속과 겉이 달라 이미 이중인격자로 소문이 나 있었다.


“아무튼 그 사람한텐 속을 내보이면 안 돼. 그 즉시 생중계 될 테니까.”

“그러면 혹시 그런 점 때문에?”

“맞아. 일은 그럭저럭 하는데 그 입이 말썽이라 만년 사원이 됐지. 그리고 명심할 게 있어. 청육에선 과오를 저지르면 관용이라는 게 없어. 그러니 긴장감을 늦추면 안 돼.”


2년 전, 진급 대상자였던 무용은 연말에 있을 인사명령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아침부터 속이 불편해 화장실에 죽치고 있던 그가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요즘 잘 돼가?”

“응.”

“조심해. 사내 연애하다 걸리면 둘 다 끝이야.”

“알아. 그래서 너한테만 얘기한 거야.”


회사에서는 과거에 삼각관계로 불거진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사내연애를 금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비밀스런 얘기가 무용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입이 가벼워 몇 차례 주의를 들었던 무용은 애써 모른 척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천성은 어쩔 수 없었는지 결국 동기들 모임에 갔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한 그의 입이 열리고 만 것이다.


“그 바람에 두 사람 모두 사규를 위반한 것 때문에 사표를 썼고 그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던 소속 팀장들은 사장님한테 호된 질책을 받았어.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때 질책을 받은 팀장 중 한 사람이 인사팀장이었던 거야. 만약 그 사람이 팀장들한테 먼저 말했으면 결과는 달라졌겠지. 나도 아직 과장이었을 테고.”


결국 그 일로 인해 무용은 팀장들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진급 심사에서도 밀려나 지금가지 만년 사원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혼이 나고도 여전히 그의 입은 생중계용이었고 잊을 만하면 동기들 술버릇을 공개하는 바람에 왕따까지 당하고 있었다.


“너한테 친근하게 구는 이유가 뭔지 알아? 그동안 정보관리팀은 신입사원이 없어서 말 붙일 상대가 없었던 거야.”


생각해 보니 무용 선배가 회의 때를 제외하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한편으론 그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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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진상 19.11.21 504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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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행복한 고민 19.11.13 533 13 5쪽
13 13. 몸통과 깃털 19.11.12 530 15 9쪽
12 12. 쓰레기 19.11.11 556 16 10쪽
11 11. 고래싸움. 19.11.10 566 12 7쪽
10 10. 수심가지(水深可知) 19.11.08 568 13 6쪽
9 9. 폭풍전야 19.11.08 572 13 5쪽
» 8. 입방정 19.11.07 609 13 6쪽
7 7. 싸가지 19.11.05 601 15 5쪽
6 6. 악연 19.11.04 633 17 6쪽
5 5. 갈등 19.11.03 670 14 8쪽
4 4. 신세계 19.11.03 697 14 3쪽
3 3. 처신 19.11.03 727 15 6쪽
2 2. 가시밭길 19.11.03 825 19 6쪽
1 1. 첫 출근 19.11.01 1,296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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