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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9,262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19.11.12 17:48
조회
532
추천
15
글자
9쪽

13. 몸통과 깃털

DUMMY

그날 이후 사무실을 제집 드나들듯 했던 JEMIS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고 새 식구가 된 WEBSTAR 엔지니어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편하게 드나든 것은 아니다. 바로 주팀장의 따가운 시선이 그들에게 쏟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옛날에 JEMIS에 있다가 WEBATAR로 이직한 엔지니어들은 죄인마냥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런 의리 없는 놈들. 주군 배신하니까 좋냐?”


그럴 때마다 엔지니어들은 지은 죄도 없이 주팀장의 비위를 맞춰야 했고 급기야 사장까지 불러들여 말도 안 되는 불평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JEMIS와는 달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WEBATAR 사장이 오너 대표 강철주와 절친이었던 것이다. 주팀장은 그런 줄도 모르고 엔지니어들을 과거 JEMIS 직원들 다루듯 막말을 쏟아냈다.


“손과장. 저 WEBSTAR 애들 말이야. 시스템실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데 저래도 되는 거야?”

“안에 조대리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대리한테 맡겨놓고 당신은 나 몰라라 하는 거야?”

“전에 JEMIS 직원들 드나들 땐 아무 말씀 안하시더니 왜 그러십니까?”

“그때는 서로 잘 아니까 그랬던 거고.”

“지금 안에 있는 사람들 다 JEMIS에 있었던 직원들입니다.”


손과장의 반박에 할 말을 잃은 주팀장은 못마땅해 하며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이런 일은 WEBSTAR 직원들이 방문할 때마다 반복됐고 주팀장의 억지 트집이 계속되던 어느 날, 뜻밖의 인물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주팀장과 한동안 깊은 대화를 이어갔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에 모두 회사와 신규거래를 트기 위해 방문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와 몇 마디 주고 답은 주팀장의 표정이 심각해면서 모두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던 고대리가 유과장에게 물었다.


“저 사람 누구에요?”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누구지?”


그 사이 주팀장은 그를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잠시 후, 스마트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유과장이 사색이 되어 사무실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순간, 고대리가 뭔가 알았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고 눈치 빠른 무용이 고대리와 무언가를 소삭이기 시작했다.


“무용씨는 모른 척해요. 괜히 함부로 입 놀렸다간 큰일 나요. 알았죠?”

“당연하죠. 제가 짬밥이 얼만데.”


그러나 둘이 얘기해주지 않아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추측하는 데는 오래 걸릴 필요가 없었다, 주팀장과 유과장 모두를 사색으로 만든 그가 어디서 왔는지 자명했기 때문이다. 지금쯤 두 사람 모두 죽을 맛으로 그와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정도씨도 이미 짐작했을 거예요. 하지만 다른 사람한텐 비밀이에요. 알았죠?”

“네.”


고대리의 다짐에 동의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평소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들을 왜 감싸주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고대리가 입 단속시키는 이유가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한 사풍(社風) 때문이었지만 그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지나야했다.


“고대리.”

“예. 과장님.”

“유과장님 어디 가셨어?”

“아까. 전화 받고 나가시더니 안 돌아오셨어요.”

“퇴근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어딜 가셨지? 그러면 일단 모두 퇴근해.”

“그래도 저희 과장님이 퇴근 안하셨는데.”

“괜찮아. 내가 좀 더 있다가 들어오면 얘기할 게.”


그로부터 며칠 후, 여느 때처럼 출근해 다른 팀 직원들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가던 중 다른 팀 과장 둘이 소곤거리는 이상한 대화를 엿듣게 됐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관리팀 과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감사팀 과장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뻔한 것 아냐? 자기만 살겠다는 거지. 뭐.”

“진짜 못됐네. 감사님 뭐래?”


무슨 일인지 더 듣고 싶었으나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바람에 포기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오늘도 선미의 반가운 인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됐다. 늘 하던 대로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책상위에 있는 노트북으로 혹시 어제 누락된 일이 없나 확인했다. 그러나 오더를 받을 때마다 퇴근 전에 모두 끝낸 덕에 아침햇살을 만끽하는 여우를 가질 수 있었다.


“벌써 가을이네요.”

“그러게요. 이번 여름은 진짜 더웠죠?”

“갈수록 더할 거래요. 어떤 기상학자가 그랬다는데 여름이 5개월이 될 수도 있대요.”

“인간이 그렇게 만든 거죠.”


선미와 잠시 여유를 갖는 사이 팀원들 자리가 하나 둘 채워졌고 무용의 자리가 마지막으로 채워지면서 하루가 시작됐다. 그런데 문득 뭔가 허전한 느낌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유과장이 보이질 않는다.


“고대리님. 과장님 아직 안 오셨어요?”

“네. 아마 늦으실 거예요.”


순간, 좀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이 만든 한편의 소설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혹시 유과장과 관련된 얘기가 아닐까? 평소 지각하는 일이 없었던 유과장이 3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데도 누구도 찾는 이가 없다. 특히 출근하자마자 시스템실부터 둘러본 주팀장도 아무 얘기가 없다.


“야. 여기가 네 집 안방이야? 조심해.”


직위여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1분만 늦어도 주팀장의 호된 질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거의 10시가 임박한 지금, 유과장 자리가 빈 것을 보고도 아무 소리가 없다. 고대리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 없다. 정보관리팀 특파원 무용도 아는 게 없는지 연신 유과장 자리만 힐긋거릴 뿐 말이 없다. 바로 이때, 사내 게시판을 읽어가던 무용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게 뭐야?”

“뭔데요?”

“고대리님, 다들 이것 좀 봐요.”

“어머!”


선미의 외마디소리와 함께 무용이 가리키는 모니터엔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던 인사명령이 올라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장 유부돈의 퇴직발령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모두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동안 주팀장은 사내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조용히 밖으로 사라졌다.


“무용씨. 뭐 들은 것 없어요?”

“아뇨. 고대리님. 제가 한번 알아볼까요?”


평소 같으면 괜히 나대지 말라고 했을 고대리도 오늘 만큼은 특파원의 필요성을 느꼈는지 흔쾌히 승낙했다. 무용이 쏜살같이 사라지자 고대리는 유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가 꺼져있어 끝내 통화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한 고대리는 손과장에게 다가가 소곤거리듯 물었다.


“과장님. 혹시 알고 계셨어요?”

“그렇긴 한데 나도 이유는 몰라.”


둘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인사팀장 정선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다른 사람이라면 건방져 보이겠지만 담당 과장과 관련된 일이니 정선배도 이해할 것이라 믿었다.


“전화할 줄 알았어. 너무 갑작스럽지?”

“네.”

“실은 일이 좀 있었는데 그냥 그렇게 알고 있어. 알았지?”

“알겠습니다.”


정선배의 말과 무용으로 들은 얘기가 어우리지면서 결국 일이 터졌다는 것을 알았다, 하긴, 생돈을 뜯겼는데 JEMIS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지. 그런데 같이 해먹은 주팀장은? 이에 대한 답은 한 시간이나 자리를 비웠던 무용씨가 내놓았다.


“며칠 전 주팀장 만나러 왔던 사람이 바로 JEMIS 관리이사인데 환불 요구하러 왔던 거예요.”

“그러니 둘 다 사색이 될 수밖에. 그래서요?”

“그런데 주팀장은 은행에서 대출받아서 돌려줬는데 유과장은 대출 받으려고 해도 이미 한도가 차서 돈을 못 구했나 봐요. 결국 유과장이 차일피일 미루니까 참다못한 JEMIS에서 감사실에 투서를 했대요.”


결국 유과장만 자른 것은 회사 입장에서 부장급 직원을 자르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이런 얘기가 밖으로 새어나갔을 경우, 팀장까지 연루된 사실이 공개되면 대외 이미지에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몸통은 그대로 두고 깃털만 자른 거네.”


그로부터 며칠 후, 머쓱한 표정으로 사물을 정리하러 온 유과장은 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회사를 떠났다. 다행히 근속년수가 길었던 덕에 퇴직금으로 JEMIS에서 받은 돈을 돌려줄 수 있어 소송은 면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운영과장은 고대리가 과장 대우로 승진하면서 맡게 되었고 고대리 요청에 신입사원이 충원되었다.


“은하얀입니다.”

“고과장님. 여직원이었어요?”

“응. 왜요? 무용씨. 마음에 안 들어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서 말이죠. 아무튼 환영합니다.”


은하얀은 선미보다 한 살 어렸고 대학 졸업 후 1년간 취업준비를 하던 중 선미의 추천으로 특채로 입사하게 되었다. 하얀의 가세로 운영과는 여인천하가 되었고 모두의 부러움까지 사게 되었다.


“자리는 선미씨 옆으로 하고 일은 정도씨가 가르치도록 해요.”

“제가요?”

“무용씨는 지금 하는 일이 많아서 시간이 안 돼요. 그렇죠? 무용씨?”

“아, 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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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인연 19.11.24 507 13 5쪽
18 18. 초라한 퇴장 19.11.23 517 13 9쪽
17 17. 진상 19.11.21 507 12 7쪽
16 16. 갑질 19.11.18 506 11 6쪽
15 15. 배려와 동정 19.11.15 545 16 7쪽
14 14. 행복한 고민 19.11.13 535 13 5쪽
» 13. 몸통과 깃털 19.11.12 533 15 9쪽
12 12. 쓰레기 19.11.11 557 16 10쪽
11 11. 고래싸움. 19.11.10 568 12 7쪽
10 10. 수심가지(水深可知) 19.11.08 569 13 6쪽
9 9. 폭풍전야 19.11.08 573 13 5쪽
8 8. 입방정 19.11.07 615 13 6쪽
7 7. 싸가지 19.11.05 607 15 5쪽
6 6. 악연 19.11.04 635 17 6쪽
5 5. 갈등 19.11.03 672 14 8쪽
4 4. 신세계 19.11.03 698 14 3쪽
3 3. 처신 19.11.03 729 15 6쪽
2 2. 가시밭길 19.11.03 829 19 6쪽
1 1. 첫 출근 19.11.01 1,304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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