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밝혀진 사실
고지영 과장이 떠나간 자리는 조재용 신임 과장이 앉았다. 그나마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른 덕에 고과장의 빈자리는 크지 않았다. 이미 모든 파트의 일이 거의 끝나가면서 ‘미래’ 팀원들은 보고서 작성을 위해 본사에서 임시로 파견됐다는 최준식이란 차장의 지시를 받고 최종보고서 작성을 서두르고 있었다.
“정도씨는 조과장하고 ‘미래’ 보고서 감수를 맡아. 최종 보고서인 만큼 오점이 있어선 안 돼.”
그런데 권이사가 보이지 않는다. 잠깐 자리를 비웠나 했는데 그가 앉았던 책상이 정리돼 있다. 조철용 대리에게 물었더니 회사의 복귀 명령을 받고 돌아갔다고 한다. 아직 프로젝트도 끝나지 않았는데 복귀라니?
“권이사님은 다른 프로젝트를 맡으실 것 같습니다.”
“그러면 총괄 팀장 없이 보고할 건가요?”
“아뇨. 내일부터 이사님 후임으로 저희 회사 부사장님이 오셔서 최종적으로 마무리 하실 예정입니다.”
그러나 왠지 개운치가 않은 게 권이사의 조기 복귀가 스캔들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희생으로 손팀장만 살아남은 셈이 됐다. 그런데 고과장은 팀원들과 인사도 없이 그만 둔 건가? 선미에게 물었더니 인사 발령이 나기 전날을 마지막으로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화해 봤는데 받질 않아요.”
“그러면 인사도 없이 그만 둔거네요.”
“그렇더라고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인사도 없이 그만 둔 것은 그만큼 이번 회사의 결정이 불만스럽다는 간접적 항변일 것이다. 그러면 회사에서는 손팀장한텐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것인가? 결국 그날의 한마디가 고과장을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감사 손에 칼을 쥐어 준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해 할 수가 없어요. 두 사람 모두 관련이 있는데 왜 고과장한테만 책임을 물은 거죠?”
“팀장급을 징계하면 여파가 너무 크기 때문이죠.”
“그러면 전에 있던 주팀장은요?”
“그 분은 직급정년을 넘겨서 퇴직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던 프로젝트다. 많은 반대가 있었음에도 손팀장을 믿고 추진했고 사장이다. 그러니 손팀장 보다는 고과장을 버리는 것이 수월했을 것이고 그래야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 잠깐 위에 좀 갔다 올 게요.”
선미가 정보관리팀으로 올라간 사이 ‘미래’ 최차장이 최종 보고서 초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초안을 본 조과장의 표정이 좋지 않다. 조과장이 못마땅해 한 것은 초안에 있는 ‘미래’직원과 관련된 내용 때문이다. 고작 일주일에 한두 번 얼굴을 비친 권이사가 매일 상주한 것으로 돼있고 조철용 대리가 복귀했을 때 대타로 나왔던 강은수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조철용 대리가 있는데 이 사람은 왜 포함시켰습니까?”
“오래 일한 건 아니지만 투입됐기 때문이죠.”
“그러면 조대리 근무 기간에서 복귀 기간은 제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스킬은 정확히 하셔야죠. 강은수씨는 중급이 아니잖아요.”
바른 소리에 최차장은 한마디 대꾸도 못한 채 멋쩍은 미소로 초안을 갖고 자리로 돌아갔다. 바로 이때, 주머니 속의 진동음 느끼고 스마트폰을 꺼내보니 선미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그 제보자 누군지 알았어요.]
[그래요?]
[잠깐 휴게실로 올 수 있어요?]
[네.]
그 제보자는 뜻밖에도 퇴직한 유부돈이다. 그동안 여기저기 자리를 알아보았으나 허탕을 치고 국내 영업팀장에게 대리점 취업에 필요한 추천을 부탁하려고 저녁을 대접하던 중 권이사로부터 봉투를 받아 챙기는 손팀장과 고과장을 본 것이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손팀장한테 쌓인 감정이 많았던 분이니 복수할 기회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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