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뜻밖의 히어로
암초에 부딪쳐 아무것도 못한 채 이틀을 보냈다. 결국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그동안 프로젝트를 고깝지 않게 바라봤던 실무 팀장들의 가식적인 위로에 희망은 사라지고 이러다 자칫 해체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까지 엄습하고 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설마 사장이 여기까지 외서 포기하겠어?”
말들은 이렇게 하지만 표정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이다. 오늘도 권이사는 스마트폰을 붙잡고 좀처럼 내려놓질 못한다. 그러나 결국엔 실망스런 표정으로 통화를 끝내고 만다.
“손팀장. 잠깐 봅시다.”
“네. 사장님.”
전화를 받은 손팀장은 바인더 북을 손에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다. 결국 이것으로 끝나는 건가?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팀원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모니터만 응시한 채 말이 없다. 그런데 같은 시각, 사장실에선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가 진작 알았더라면 손을 썼을 텐데, 손팀장님. 마음고생 많았죠?”
“감사합니다. 전무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장실에 다녀온 손팀장 얼굴에 화색이 돈다. 화색이 도는 것은 손팀장 뿐이 아니다. 사무실에서 본사의 연락을 받은 권이사도 마찬가지다.
“예? 정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사장님.”
손팀장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권이사와 손을 잡고 한숨을 토했다. 뭔가 좋은 일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영문을 알 리 없는 고과장과 팀원들은 멀뚱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저희 민전무님께서 USC 미국 본사 사장과 친분이 있더군요.”
“얘기 들었습니다. 이 정도로 해결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지난 이틀 동안 TFT를 위기에 빠뜨렸던 문제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해결된 것이다. 부임한지 얼마 안 되는 민진태 전무가 사장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미국 체류시절 가까이 지냈던 USC 본사 사장에게 직접 협조를 구한 것이다. 그러나 초과된 1억 5천만 원 전액이 감액된 것은 아니다.
“조금 전에 저희 사장님께서 이번에 인상된 8천만 원은 저희 ‘미래’가 부담하겠다고 연락하셨습니다.”
만약 민전무가 아니었다면 최악을 사태를 맞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손팀장은 이번 일로 사장의 신뢰에 금이 가고 말았다. 물론 본인의 과실은 아니지만 ‘미래’만 믿고 시장조사에 소홀했던 사실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당장 계약하시죠.”
“그래야죠.”
그로부터 한 시간도 안 돼 USC KOREA에서 영업팀장과 팀원 몇이 방문하면서 일사천리로 공급계약이 체결됐고 조정된 3억 8천에 IGS가 도입됐다. 그들은 감사의 표시로 팀원 전원에게 USC 홍보용 선물까지 전했다.
“저희 IGS를 구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도 본사에서 갑자기 통보 받는 바람에 ‘미래’측에 사전에 연락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이런 날 자축이라도 해야 하지만 이미 사장의 심기를 거스른 전과가 있어 다음으로 미뤘다. 하지만 강남 유흥가에 위치한 고급 술집에선 굵직한 인사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저희 민전무가 USC 본사 사장과 가까운 사이였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미래’ 손실이 컸을 거예요.”
“미국 본사 사장과 그런 사인인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조치했을 텐데 송구스럽습니다.”
“그게 어디 USC KOREA 잘못 입니까? 자, 어찌됐든 서로 윈윈 했으니 오늘은 무조건 즐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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