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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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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19.12.11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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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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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25. 계약

DUMMY

생각지도 않았던 미호와의 만남으로 원래 그런 인간이니 신경 쓰지 말자는 결정을 내리게 됐고 잠시 격분했던 마음도 진정됐다. 그런데 왜 그렇게 흥분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만날 일도 없는데 말이다. 바로 이때, 귀가 솔깃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직접 확인하셨지 않습니까?”


전화를 끊는 손과장의 입에서 긴 한숨이 나오는 것을 보니 오늘도 강전무에게 시달린 게 분명했다. 그런데다 뻔질나게 드나드는 ‘앤트’ 사장 때문에 일할 시간마저 없게 된 손과장은 그의 끈질긴 초대를 거절하느라 진담을 빼기도 했다.


“선정 작업이 끝나기 전엔 누구와도 만나선 안 됩니다.”

“과장님도 참, 그냥 저녁이나 같이 하는 건데 너무하십니다.”

“아무튼 저희 사장님 방침이 그러니 저녁은 끝난 뒤에 하시죠.”


그런데 손과장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앤트’의 끈질긴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손과장에게 강전무가 손을 내밀었으나 그때마다 사장을 팔아가며 꿋꿋하게 버티는 것이다. 아무리 안하무인 강전무도 사장을 앞세우는 데는 어절 도리가 없는지 그 뒤로 ‘앤트’ 시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고과장과 팀원들은 업체들의 제안 설명회 때 선정위원들에게 배포한 자료와 업체 비교 검토서를 모두 끝냈다.


“이제 더 시달릴 일 없겠네. 모두 수고했어요.”


그리고 이틀 후, 드디어 업체들의 제안 설명회 날이 다가왔다. 회의는 설명회에 앞서 선정위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업체별 제안 개요 설명이 시작됐다. 그동안 강전무를 앞세운 ‘앤트’에 시달리느라 힘들었는지 아니면 최고 경영자들 앞에서 긴장이 됐는지 손과장은 핼쑥해진 얼굴로 발표를 시작했다. 그러나 설명이 계속되는 동안 선정위원 중 하나인 강전무는 내내 못마땅한 얼굴이다.


“이상. 발표를 마칩니다.”

“이봐요. 손과장.”

“네. 전무님.”

“여기 가장 중요한 견적가 비교가 빠졌어요.”

“그것은 공정함을 기하기 위해 설명회가 종료된 다음에 발표하겠습니다.”

“번거롭게 그럴 필요가 있어요? 어차피 공개할 건데.”

“강전무. 그건 손과장 말이 맞아. 이런 프로젝트는 돈 보다는 누구와 할 것이냐가 먼저야. 손과장님. 다음 시작하세요.”


강전무의 태클을 막은 것은 사장이다. 안하무인 강철호도 그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일 수밖에 없는지 한마디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제안 설명은 각 업체별로 시간차를 두고 진행됐고 오후까지 계속된 끝에 ‘앤트’만 남게 되었다. 그런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지났는데도 ‘앤트’기 오질 않는 것이다.


“손과장님. 5개 업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비서실에 물어봤더니 ‘앤트’는 오질 않았답니다.”

“그것 참. 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앤트‘는 뺍시다.”

“저, 사장님.”

“강전무. 할 얘기 있어?”


회의 중 강전무가 ‘앤트’로부터 메시지 몇 통을 받았는데 처음엔 갑자기 회사에 사정이 생겨서 좀 늦을 것 같다고 하더니 결국 일정을 연기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건방진 사람들 아냐? 필요 없어. 손과장님. 오늘 참여한 4개 업체 견적 공개하세요.”

“네.”


설명회 시작 전에 스마트폰에 있던 견적서를 옮겨놓은 USB를 손과장에게 건넸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강전무는 폭망했다는 식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디어 위원들이 보는 가운데 업체들의 견적서가 공개되고 곧이어 선정 위원들의 투표가 진행됐다.


“열 분의 위원 중 일곱 분이 ‘미래’를 선택하셨습니다.”

“좋습니다. 모두의 생각이 그렇다니 ‘미래‘로 결정합시다.”


역시나 결과는 강전무 얼굴에 깔린 표정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강전무는 끝가지 포기할 생각이 없는지 다시 한 번 태클을 걸었다.


“사장님. 견적가는 ‘앤트’가 가장 낮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높은 ‘미래‘를 선택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강전무. 내가 돈 아끼려 했다면 프로젝트 시작도 안했어.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이만 끝내.”


사장의 단호한 한마디에 입이 굳게 닫힌 강전무는 거의 의자를 박차듯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의 손아귀에 있는 핵심부서인 경영관리본부의 협조가 없이는 프로젝트 진행이 부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심기가 상했으니 다가올 시간들이 순탄치 않을 것 같다.


“고과장님. 이게 다 그 리베이트 때문이죠?”

“맞아요. 돈이 뭔지.”

“하지만 강전무는 돈도 많은데 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잖아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욕심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강전무처럼 욕심을 억제하지 못해 선을 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욕심을 억제함으로서 유혹을 뿌리치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 강전무의 외압과 거액의 리베이트를 손에 쥘 수 있었음에도 ‘앤트’를 외면한 손과장도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동안 모두 수고 많았어요. 이런 날 한 잔 해야 하는데 내일 계약하고 나서 ‘미래’하고 같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고과장 어때?”

“그게 좋겠어요. 오늘은 일찍 집에 가서 눕고 싶네요.”


다음 날, 연락을 받은 ‘미래’의 임원들이 사장실에서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미래에서는 총 20명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우리 팀에 새로 충원될 인력까지 합쳐 30명이나 되는 TFT가 구성된다.


“미래 대표이사 한지훈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은 저희가 드려야죠.”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미래’ 사장과 다른 임원들은 돌아가며 팀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시건방졌던 ‘앤트’ 사장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미래’측 팀장으로는 임원급이 오기로 했고 우리는 당연히 손과장이 팀장을 맡기로 했다. ‘미래’에서 제시한 용역비용은 시스템 런칭용 소프트웨어를 포함해 총 75억, 원래는 80억을 제시했는데 협의 끝에 5억이 감액된 것이다.


“여러분. 오늘 ‘미래’에서 오신 분들과 저녁 같이 하기로 했어요. 모두 괜찮죠?”


첫인상이 좋아서였을까? 생전 처음 마주했지만 왠지 느낌이 좋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술잔이 오가고 모두 거나하게 취했을 때 ‘매래’측 팀장인 권준영 이사가 2차를 제안하면서 한식집에서 이루어진 1차 회식이 끝났다. 그런데 어찌나 술들을 잘 마시는지 손과장을 비롯한 팀원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한사장님. 1차는 저희가 계산했습니다.”

“아이고. 팀장님. 그건 아니죠. 당연히 저희가 내야죠.”

“한사장님. 저는 우리 사이에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하면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1차는 저희가 샀으니 2차는 사장님께서 사주시죠.”


손과장 요청대로 고급 노래주점에서 이루어진 2차는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마치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사이처럼 같이 마이크를 잡고 춤을 추는 시간이 자정이 넘도록 계속됐다. 그 와중에 얼떨결에 불려나가 마이크를 잡고 숨겨진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아까 손팀장 말씀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팀원들에게 돌아가며 술을 권하던 ‘미래’ 팀장 권준영이사는 여러 기업들과 일해 봤지만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며 손과장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그런데 그의 얘기를 듣는 동안 문득 지난 시간의 조각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한동안 말이 없던 손과장의 모습이다. 마침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권이사가 들어온다.


“권이사님. 총 계약금액이 75억이라고 했습니까?”

“네.”


그러면 리베이트는 7억 5천, ‘앤트’가 제시한 금액은 70억이다. 그러면 손과장은 7억을 포기했단 말인가? 지금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실력을 뽐내고 있는 손과장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모습이다. 이럴 때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권이사와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놀랐습니다. 실은 저희가 80억을 제시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했는데 그럴 거면 아예 그만큼 조정하자고 하시지 뭡니까?”

“그러면 ‘미래’에서 제시한 리베이트가 5억이었겠군요.”

“리베이트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런 셈이죠. 와! 그런데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세상에 아버지 같은 사람이 또 있었나? 권이사의 말을 드는 동안 진심으로 회사를 아끼는 팀장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이 힘든 시간으로의 여정이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2차까지 이어진 자축 파티는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마침 빈 택시가 눈에 띠어 곧바로 집으로 가는데 취기 때문일까? 혼잣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아버지 같은 사람이 또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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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 소문 19.12.25 428 10 5쪽
30 30. 갈아타기 19.12.23 431 12 5쪽
29 29. 장기판 위의 말 19.12.20 422 12 5쪽
28 28. 그 놈이 그 놈? 19.12.18 427 4 7쪽
27 27. D-Day 19.12.16 454 12 11쪽
26 26. 못 먹는 감 19.12.13 451 13 5쪽
» 25. 계약 19.12.11 465 12 9쪽
24 24. 재벌가 19.12.09 473 10 6쪽
23 23. 첩보작전 19.12.06 465 8 5쪽
22 22. 달콤한 유혹 19.12.02 488 13 7쪽
21 21. MMS(Meat Management System) 19.11.29 490 12 9쪽
20 20. 경쟁의 서막 19.11.27 478 1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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