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고도의 심리전
그 일이 있고 나서 손팀장과 고과장은 잊을 만하면 번갈아가며 감사실을 드나들었다.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 때마다 두 사람은 흙빛이 돼 돌아왔고 그 여파는 팀원들까지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이미 소문은 났고 팀원들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지 오래다.
“정도씨. 대체 무슨 일이에요?”
“글쎄요. 임대리님. 혹시 공장에서 들은 것 없어요?”
“안 그래도 전화해 봤는데 아는 사람이 없어요. 참, 음용환 대리 복귀한다던데요?”
“언제요?”
“언제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곧 갈 것 같아요.”
그리고 이틀 뒤, 음용환 대리는 할 일을 모두 마치고 공장으로 복귀했다. 환송회식은 팀 분위기를 고려해 ‘미래’ 생산프로세스 담당과 임대리 그리고 아직 환영 회식을 못한 신입사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대리가 책임지게 되었다. 손팀장은 이별 인사를 하는 음대리에게 고마움을 표했지만 얼굴 한 구석에 드리운 그림자는 여전했다.
“음대리 그동안 고생 많았어.”
“팀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대리한테 카드 줬으니까. 마음껏 먹어.”
“감사합니다.”
분위기가 어정쩡했지만 참석예정자들은 모처럼 회식에 은근히 들떠 퇴근을 서둘렀다. 그런데 그들이 퇴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머니 속에 있던 스마트폰이 진동음을 내는 것이다. 전화를 받아보니 방금 회의실로 들어간 손팀장의 전화다. 순간,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 짐작케 하는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회의실엔 언제 왔는지 고과장도 앉아 있었다.
“어서와.”
고과장은 최근 수시로 감사실에 불려 다녀서 그런지 표정이 좋지 않다. 모른 체하고 자리에 앉았으나 손팀장은 뜸을 들이며 말이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부른 걸까? 설마 그날 김무용과 같이 있는 것을 본 걸까? 그럴 리가 없다. 그날 그들은 구석에 위치한 자리에 있었고 그들과 우리 사이에 커다란 고무나무 화분이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볼 수가 없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런 생각들이 오가는 동안 굳은 표정으로 있던 손팀장이 입을 열었다.
“정도씨. 전에 ‘미래’ 팀원들 스킬에 대해 얘기한 적 있지?”
“네.”
“그거 다른 사람한테 얘기한 적 있나?”
“아뇨. 그동안 밀린 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군.”
손팀장은 고개만 끄덕일 뿐 또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고과장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쏘아보고 있었다. 침묵이 흐르는 사이 문득 고과장이 손팀장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과장이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혹시 그 제보라는 것이 ‘미래’ 팀원들의 뻥튀기 된 스킬 때문인가?
“그래. 알았어. 나가봐.”
회의실을 나오는데 등 뒤에서 이상한 기운이 쫓아온다. 저들은 지금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는 것 같다. 대놓고 물어보기엔 확증이 없어 일단 떠본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 제보라는 것이 리베이트와 연관된 것이고 내부고발자로 지목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 일 아녜요. 우리 일 얼마나 됐는지 체크하려고 불렀대요.”
“하긴, 요즘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겠죠. 마침 음대리도 복귀하고 하니 이제야 신경이 쓰였겠죠. 그만 퇴근하죠.”
선미와 퇴근 준비하는 사이 회의실에서 나온 손팀장과 고과장은 둘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선미와 하얀이 버스를 타는 것을 보고 집으로 가는데 왠지 찜찜한 것이 개운치가 않다.
‘대체 누가 제보를 했을까? 혹시 김무용?’
그럴 리는 없다. 이미 퇴직한 그가 내부사정을 알 리 없고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도 고과장이 힘을 써준 덕에 취업할 수 있었다. 김무용이 눈치가 없긴 하지만 배은망덕한 인물은 아니다. 그러면 그날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괜한 기우일까?
‘이런! 깜빡했네,’
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깜빡했다. 급히 스마트폰을 꺼내 엄마와 통화를 했다. 오늘도 하마터면 한마디 들을 뻔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