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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901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20.01.15 02:21
조회
373
추천
12
글자
6쪽

38.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

DUMMY

이 사람들이 이렇게 부지런 했던가? 평소와 같은 시각에 강의실에 들어섰는데 이미 모든 자리가 꽉차있다. 역시 사람은 시험 앞에선 약해질 수밖에 없는가 보다. 평소엔 옥에 티처럼 비어있던 자리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긴장했는지 누군가 교제를 넘기는 소리만 가끔씩 들릴 뿐이다. 잠시 후, 드디어 문이 열리고 강사가 아닌 USC 직원이 모습을 나타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USC 교육센터 평가팀에서 감독관으로 임명된 부장 천경수입니다. 이제부터 IGC 인사모듈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제한시간은 120분이고 각자 자신 앞에 놓인 노트북을 여시면 세부 조건이 명시된 파일이 있습니다. 평가과제는 조건을 충족하는 인건비 예산 편성 프로세스 구성입니다. 합격여부는 각자 구성한 프로세스가 저희가 만든 자금 프로세스와 오류 없이 연계되느냐 따라 결정됩니다. 시간 내에 완료하신 분은 이 자리에서 바로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시작하십시오.”


역시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인사업무 경험이 좀 더 있었더라면 조금은 수월했을 것이다. 휴식시간 없이 치러지는 시험이라 모니터에만 시선을 집중한 채 프로세스를 구성해 나갔다. 주어진 조건만 아니었으면 크게 어렵진 않을 텐데 좀처럼 진척이 없다. 바로 이때, 어제 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초보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해.’


번거로운 단계를 생략하려다 보니 만들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30분이란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역시 잔머리는 굴릴 게 못된다. 남은 시간은 90분, 다행히 생각을 고쳐먹은 덕에 서브프로세스들이 하나씩 완성됐다. 겨우 한숨을 돌리고 주의를 슬쩍 돌아보니 어떤 이는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고 어떤 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과의 싸움에 빠져 있다.


‘휴! 겨우 끝냈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벽에 붙은 시게를 보니 남은 시간은 15분, 만약 프로세스가 오류를 발생하면 수정할 시간은 없다. 말 그대로 끝장인 것이다. 부를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감독관을 불렀다.


“어디 한번 볼까요?”


감독관이 검사를 하는 동안 슬쩍 옆을 둘러보니 이미 과제를 끝낸 사람 몇 명이 자신이 만든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괜히 불렀나? 슬슬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뭐가 급해서 그랬을까? 차라리 다른 사람들처럼 결과를 기다렸어야 하나? 여기서 불합격하면 말 그대로 대망신이다. 하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늦었다. 그런데 감사하는데 왜 이렇게 오려걸려?


“잘 하셨습니다. 여기 보이시죠?”


모니터엔 숫자들이 나열된 표 하나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등에서 땀 한줄기가 흘러내린다. 정말 다행이다. 모두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의기양양하게 강의실에서 나왔다. 잠시 후, 시험시간 종료를 알리는 차임벨과 함께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아무래도 맛이 간 것 같은데.”

“나도 그래. 뭔 놈의 것을 이렇게 어렵게 내? 젠장. 난 다 끝내지도 못했어. 빌어먹을.”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런 것은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끝낸 사람도 있고 아직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합격을 확신하는 사람도 여럿 있다. 그런데 우리 팀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정도씨. 여기 있었네?”

“과장님. 어떻게 됐어요?”

“난. 당연히 패스했죠. 그런데 정도씨도 패스했다면서요?”

“어떻게 아셨어요?”

“끝나고 전에 회사에 왔던 영업담당 이사하고 커피 한잔 하고 있다가 연락받았어요. 그 강의실에서 제일 먼저 끝냈다면서요?“

“네, 그런데 안 되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아무튼 축하해요.”

“과장님도요.”

“마침 저기들 오네.”


다른 팀원들은 시간 내에 끝냈지만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바로 이때, 천정에 있는 스피커에서 결과가 한 시간 뒤에 발표될 예정이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안 그래도 모두 입이 바짝 말라있던 터라 고과장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모두 교육받느라 고생했어요. 내가 커피 쏠 테니까, 각자 취향대로 골라요.”


그런대 모두 수강 후기로 수다를 떠는데 임사훈 대리는 말이 없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는 것 같다. 더구나 합격이 확정된 사람 옆에 있으려니 긴장감이 배가 되는 것 같다. 그 사이 결과 발표시간이 다가오면서 수다도 서서히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결과는 고과장이 대표로 확인하기로 했다.


“갔다 올게요.”


그런데 고과장이 얘길 안 했나? 누구도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역시 과장은 아무나 다는 게 아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한 고과장의 현명함에 속으로 고개가 숙여진다.


“왜 이렇게 안 오지?”


고과장이 나간 지 5분도 안 됐지만 초조함에 젖은 팀원들에겐 1분이 십년 같은가 보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입장에선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만약 평가에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뭐라고 위로하지? 만약 고과장이 미리 얘기했더라면 입장이 난처할 뻔했다. 바로 이때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린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가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언제 돌아왔는지 고과장이 복사된 합격자 명단을 들고 환한 미소를 짓고 다가온다. 그 중 제일 먼저 이름을 발견한 선미가 축하를 받았고 조대리와 도한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름을 발견한 임사훈 대리가 십년감수했다는 듯이 긴 한숨을 토했다.


“한 가지 알려줄 게 있어요. 내가 말은 하지 않았는데 진정도씨는 평가를 시간 내에 마쳤기 때문에 직접 감독관한테 검사를 받았어요. 인증서는 회사로 보내준다니까 우리 자축하러 갑시다.”


평가도 통과했고 긴장까지 풀리고 나니 야생마가 따로 없다. 평소 말이 많지 않았던 도한의 놀라운 가창력과 임대리의 현란한 몸짓으로 장식된 자축파티는 말 그대로 광란 그 자체였다. 더구나 오늘은 불금, 제법 많은 술을 마시고 새벽 2시를 넘기고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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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 그들만의 비밀 20.01.20 361 8 6쪽
39 39. 불씨 20.01.17 373 11 5쪽
» 38.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 20.01.15 374 12 6쪽
37 37. 치열한 로비 20.01.15 365 10 4쪽
36 36. 아는 체 20.01.13 389 11 4쪽
35 35. 남자 체면 20.01.10 396 8 5쪽
34 34. 철저한 계산 20.01.08 392 10 5쪽
33 33. 뜻밖의 히어로 20.01.06 394 8 4쪽
32 32. 암초 19.12.27 425 12 6쪽
31 31. 소문 19.12.25 428 10 5쪽
30 30. 갈아타기 19.12.23 431 12 5쪽
29 29. 장기판 위의 말 19.12.20 422 12 5쪽
28 28. 그 놈이 그 놈? 19.12.18 427 4 7쪽
27 27. D-Day 19.12.16 454 12 11쪽
26 26. 못 먹는 감 19.12.13 451 13 5쪽
25 25. 계약 19.12.11 465 12 9쪽
24 24. 재벌가 19.12.09 474 10 6쪽
23 23. 첩보작전 19.12.06 465 8 5쪽
22 22. 달콤한 유혹 19.12.02 488 13 7쪽
21 21. MMS(Meat Management System) 19.11.29 490 12 9쪽
20 20. 경쟁의 서막 19.11.27 478 1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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