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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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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6,041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05.06 06:00
조회
30
추천
3
글자
11쪽

66. 만년필? 정말? - 3

DUMMY

한편, 집에서 차근차근 점심 준비를 하고 있던 채야는, 문득 자신도 모르게 부엌 벽에 걸어 놓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전 11시 56분. 이제 곧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인데, 카지노가 그렇게 재미있는 것일까, 아직 아무도 집에 돌아오지를 않았다.


“많이 늦는다랄까나.”


하는 수 없이, 혼자 상을 차리기로 한 채야. 그녀는 거실 탁자에, 힐끗만 봐도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쭈욱 올려놓기 시작했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고기서부터, 이슬을 머금은 것처럼 싱그러운 야채샐러드. 구수함이 절로 느껴지는 된장찌개까지. 그밖에도 여러 음식들이 앞 다투어 테이블 위로 하나 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다리 휘어지게 음식을 차렸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 거실 벽시계는 이미 12시를 훌쩍 넘어 12시 15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밥 생각이 사라질 정도로 재미있는 걸까나?”


채야가 고개르르 갸우뚱거리는 바로 그때, 천천히 열리는 현관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바로 키토였다.


“어머, 키토님 밥 먹으려고 돌아왔다랄까나~”


채야의 물음에 사정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키토. 다이어트 성공 이후 운동에 맛을 들인 모양인지, 그는 시간만 나면 밖으로 나가 운동을 했다. 밤에는 현과장 그리고 어흥선생과 함께 미드나잇 클럽 활동까지 소화한 키토. 그의 몸은 이제 완전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름하여 헬창숲주인. 단순한 귀여움을 넘어, 이제는 근육 귀여움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근육 귀여움은 뭘까? 근육도 귀여운 걸까? 근육이 있어도 귀엽다는 걸까? 아무튼! 운동을 정말 알차게 했어도 키토는 여전히 귀여웠다.


“그런데 아직 식구들이 안 왔다랄까나. 키토님 우선 먹을까나?”


먼저 먹으라는 채야의 말에 키토는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키토의 배에서 우렁차게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 그 소리를 들은 채야는 키토를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흘려보내며, 그를 쓰다듬었다.


“우리 키토님 배고프면 안 참아도 된다랄까나.”


그녀의 따스한 손길에도 키토는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가족을 향한 배려뿐만 아니라, 의리까지 갖춘 우리의 귀염둥이 키토. 정말이지, 어디 사는(여기 사는) 어느 누구(현 모씨)와 정말 많이 비교가 된다.


***


“에취!”


은색 불꽃 쪽으로 다가가던 현과장은, 코끝에서 갑작스레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반사적으로 재채기가 튀어나왔다.


“앗, 더럽다냥! 현과장!”

“미, 미안. 누가 내 욕 하나봐.”


머쓱한 듯 코를 닦는 현과장. 내가 욕한 건 어찌 알았을까. 그렇게 귀가 밝으면 진즉 좀 듣던가. 이게 뭐야, 사서 고생이나 하고.


“누가 한 건지 알 것 같다냥. 아마도 어느 생각 없는 실수쟁이가 현과장 탓을 한게 분명하다냥.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던 일 하자냥.”


어흥선생은 하늘을 한번 강하게 째려보더니, 그대로 은색 불꽃을 향해 다가갔다.

어흥선생, 그렇게 말하면 여기 생각 없는 실수쟁이 놈이, 삐지는 수가 있어. 내 이야기가 잘 들리는 어흥선생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눈빛 가득 담긴 짜증과 원망. 그래, 알았어. 내가 잘못 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선물 체크를 잘 안한 내 잘못이라고.


“어흥선생, 뭐 해?”

“아니다냥. 하늘을 향해 원망 좀 해봤다냥. 왜 우리 현과장에게 이런 물건을 줬는지.”

“집에 가라고 줬나보네. 팔아서 집에나 가라고.”


빙고. 현과장, 빙고. 그래, 그냥 준 게 아니란 말씀. 다 계산하고, 생각하고, 이야기의 과거와 미래, 좌우앞뒤까지 고려해서 만든 계획이었다. 물론 내가 실수를 하기 전까지.

이런 내 변명이 듣기 싫은 것일까. 어흥선생은 양손을 올려 머리띠의 고양이귀를 가리더니 그대로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귀를 가리면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거야? 난 처음 알았네. 아니, 내가 모르는 설정이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아무래도, 이건...”

“사람은 아니다냥. 다행히.”


다행히도 현과장과 어흥선생의 눈앞에 있는 은빛 불꽃은 사람이 타서 죽은 흔적은 아니었다. 돌 위에 올려놓은 허름한 외투에 흡사 은빛 불꽃이 엉겨 붙은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주머니 속에 단검으로 쓴 글이 들어 있었나 본데.”

“그런 거 같다냥.”


어흥선생은 재빠르게 시선을 돌려 주변 사람들을 관찰했다. 불꽃이 발생했다는 것은, 이 근처에 아직 곽자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 이런 작은 기회도 그냥 넘길 어흥선생이 아니었다. 그는 주변을 찾아보고 또 찾아보았다. 행여나 죄 없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면서.


“숨은 거 같은데.”

“숨었다고냥?”


턱 위에 손을 올리더니, 금세 추리를 시작하는 현과장. 잠깐! 현과장, 잠깐! 지금 추리하는 거야? 이봐 추리는 금물이라고!


“왜 그렇게 생각하냥?”

“우선 곽자는 단검의 비밀을 몰랐잖아. 아마 지금도 모를 가능성이 크지. 그렇다면, 이 불꽃을 어떻게 생각할까? 내 공격이나 갓패치의 공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일리있는 말이다. 그런데, 현과장 추리 소설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를 않아요. 우리 다시 생각해 보아요. 어흥선생, 빨리 움직여 봐 그렇게 가만히 서 있지 말고!


“현과장이 무서워서 숨었다는 거냥?”

“나보다는 갓패치겠지. 난... 호구니까.”

“우와... 자기 객관화가 철저한 사람이었구냥, 현과장은.”


아니, 어흥선생 그렇게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러다가 자칫 잘못하면 추리 소설이 된다니까! 내가 알아! 추리로 거하게 말아 먹은 내가 잘 안다고!

이런 내 외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사건을 추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대답 없는 어흥선생과 자신의 추리에 흠뻑 빠진 현과장. 그렇게 그들은 불꽃을 피해 우물로 몸을 던졌던 곽자가 우물에서 기어 나와 도망치는 것을 전혀 눈치 못 챈 채, 그냥 자신의 뇌피셜만 수 없이 늘어놓았다.


***


“아직도 안 오는 건 좀 이상하다랄까나?”


턱을 괸 채로 벽시계를 바라보는 채야. 그녀의 눈빛 속에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다.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들을 걱정하는 것처럼.


“키토님 그냥 키토님은 먼저 먹어야 할 거 같다랄까나.”


채야의 권유에도 단호히 고개를 젓는 키토, 그러나 그의 눈빛은 눈앞의 싱그러운 채소를 향한 채 전혀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키토님 배가 고픈데 도대체 왜 아직 안 오는 걸까나?


그녀의 눈빛에 깃든 걱정 사이로 살며시 일렁이는 짜증과 분노. 그녀의 목소리에도 나긋함이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었다.


***


이런 집 안의 사정을 전혀 알 리 없었던 현과장과 어흥선생은, 여전히 은빛의 불꽃 앞에 서서 추리를 나누고 있었다. 전혀 쓰잘머리 없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만 계속해서.


“내 생각은 이렇다냥. 인간의 평균 보폭으로 봤을 때, 곽자는 이 근방 100m 안에 있다냥.”

“아니, 난 달라, 어흥선생. 곽자는 놀라서 뛰었을 거라고. 그렇다면 200에서 500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

“그건 다시 계산이 필요하다냥.”


그렇게 계산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여러분! 방금 전에 도망갔다니까! 우물에서 기어 나와서!


“우물?”


드디어 내 말이 들린 것일까. 어흥선생은 불꽃 주변의 우물로 발걸음을 향했다.


“현과장, 이 우물에 숨어 있었을 가능성은 없냥?”

“당연히, 있지. 하지만 지금 여기에 없잖아. 과거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없군.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잠깐, 현과장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뭔지는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아는 단어를 지껄인다고 멋있어 보이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건 아니다냥!”


그래, 어흥선생! 한마디 제대로 날려줘! 당신은 원더랜드 최고의 두뇌니까!


“고양이는 귀엽다냥. 곽자는 하나도 안 귀엽다냥. 그 인간은 기레기다냥!”


아, 그거야? 고작 부정한다는 게 곽자의 귀여움이었어?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는데. 두 사람 계속 이야기 하고 있어봐. 난 좀 쉴 게.

그런데 바로 이때,


“지금 여기서 두 사람 뭘 하고 계시는 걸까나?”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아주 차가운 목소리. 마치 그 목소리는 두 사람의 심장을 단번에 얼려 버릴 것만 같았다.


“채야? 채야가 여긴 왜...”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하늘 위에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현과장과 어흥선생을 바라보고 있는 채야가 떠 있었다. 키토 또한 그녀의 머리 위에 살포시 앉아있는 채로.


“할매?”


어흥선생의 부름에, 아무런 대꾸 없이 그저 시선만을 보내는 채야. 순간 어흥선생이 몸서리를 치며 현과장 뒤로 숨어버렸다.


“진짜 화났다냥! 채야 진짜 화났다냥!”

“목소리가 화난 목소리가 아닌데?”


현과장은 어흥선생의 말이 믿기가 어려운 듯, 고개를 졌더니 이내 채야를 바라보았다. 한 눈에 딱 봐도 무덤덤한 채야의 얼굴. 현과장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채야 쪽으로 다가갔다.

그래, 40년 모태쏠로인 현과장이 알 리 없지. 지금 채야가 어딴 상태인지를.


“현과장, 돌아와라냥! 그러다 다 죽는다냥!”

“괜찮다니까. 그런데 채야 무슨 일이야?”


어흥선생의 불안이 그저 호들갑이라 생각한 현과장은, 반가운 듯 미소를 지으며 채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가 무슨 일일까나?”


순간 채야의 얼굴에서 활활 타오르는 분노가 용솟음치려고 했다. 이미 그녀의 변화를 눈치 챈 어흥선생은 우물을 향해 몸을 던진 지 오래. 주변에 있던 구경꾼들도 재앙을 예감했는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이제 남은 건 그녀의 분노가 현과장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나 도와주려고 온 거야? 소매치기 잡으려고?”

“소매치기는 무슨 말일까나?”


소매치기란 말에, 살짝 멈칫하는 채야. 비단 놀란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키토 역시 똥그랗게 커진 동공. 그는 현과장이 걱정이 되었는지, 그대로 뛰어서 현과장 머리 위로 올라가 앉았다.


“키토님도 있었어? 난 몰랐네.”

[탁!]


현과장의 말에 그의 이마 위로 앞발을 탁 올리는 키토, 마치 자신만 믿으라는 듯한 그의 몸동작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왜일까.


“누가 훔쳐 갔을까나?”

“곽자다냥!”


우물 속에서 머리만 내민 채 대답하는 어흥선생. 그 순간, 곽자라는 말에 채야의 이마 위에 주름이 한줄 생겼다.

성 안에 있었을 당시, 온갖 더러운 기사로 그녀를 괴롭혔던 기자, 곽자. 채야의 기사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치욕스러운 이야기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아니 너무나 당연하게 기재했던 그 때문에 무척이나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그 기래기 놈 어디에 있을까나?”


그녀의 목소리에서 뿜뿜 뿜어져 나오는 냉기. 듣고만 있어도 전신에 흐르는 피가 꽝꽝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건 내가 알지.”


그런 그들을 향해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순간 세 사람과 한 마리의 시선이, 모두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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