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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여섯 분이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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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0
최근연재일 :
2024.05.21 17:0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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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수 :
99,438

작성
24.05.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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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10)

DUMMY

“어떻게 느꼈나.”

“가문을 굉장히 두려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성이가의 가주, 이겸은 본인의 눈으로 직접 본 사실이 아니라면 잘 믿지 않았다.


“역시 그런가...”


그런 만큼, 직접 경험한 일을 부정하는 일도 적었다.


그렇기에 그가 자신이 직접 본 것에 대해 다른 이의 의견을 묻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무래도 쌍둥이 도련님들이 멋대로 찾아가 유모... 아니, 용사의 여섯째 부인을 내쫓으려 한 것에 충격을 받으신 게 아닐지.”

“...아이가 가문에 잘 적응할 수 있게 지켜봐줘. 집사장이라면 내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럴 것 같긴 하지만...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말이야.”

“시작부터 포기하지 마십시오. 가주님께선 그 말하는 방법부터가 잘못됐습니다! 늘 자기 할 말만 하시고, 그것도 앞뒤를 다 잘라버리니, 가주님 근처엔 적 아니면 추종자밖에 없지요.”


평소라면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을 잔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아프게 다가왔다.


“...양 집사가 있잖나.”

“하아, 가보겠습니다. 1부인께 도움을 요청드려야겠으니.”

“그래... 나가며 쌍둥이에게 들어오라 말하고.”


양 집사가 문을 열자, 거기에는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뜯으며 다리를 떨고 있는 쌍둥이와 작동을 멈춘 인형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적의 유모가 보였다.


지은 죄가 있는 쌍둥이는 감히 그쪽을 향해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그럼 도련님들, 가주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서둘러 들어가 보시지요.”

“갑자기 배가 아픈데...”

“지금 들어가지 않으시면 다른 곳이 아파지실 겁니다.”


양 집사의 싸늘한 경고에 쌍둥이는 문이 닫히기 전에 후다닥,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겨우 둘만 남았군요. 오랜만입니다, 이사야.”


놀랍게도 양 집사가 그녀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혼의 최측근 가신이던 그는 용사의 아내들을 전부 한 번씩은 만나보았다.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별처럼 빛나는 여인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손바닥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늙었네.」


하지만 양 집사는 이를 적을 것을 달라는 의미로 알아들었다.


“그럼 그냥 들어주십시오...”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뱉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당신께서 용사와 혼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크게 놀라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으로 듣기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그건 ‘기도’나 ‘고해성사’를 더 닮아있었다.


어쩌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천사’는... 우리와 가치판단의 기준이 다르다고 들었으니까요.”


성녀를 대신해 ‘대전쟁’에 참여한 『공의의 천사』란 바로 그녀, ‘이사야 아가페’를 이르는 말이었으니까.


천사를 마주한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속에 든 것을 꺼내게 된다.


그가 알기로, ‘천사’가 이 땅에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건 음식 따위가 아니었다.


오직 사명(使命), 사명만이 그들을 살게 했다.


신이 그녀에게 부여한 역할은, 『성검의 전달자』


이세계로 전생한 용사가 처음 마주한 인물이자, 그에게 성검을 전달하여, 마왕을 토벌케 한 존재.


“어째서 나타나신 겁니까?”


본래라면, 사명을 이룬 그녀는 곧장 천상으로 돌아가야 했으리라.


“왜 지금 나타나신 겁니까?”


하지만 은혜를 갚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가련한 정욕에 불과했던 걸까?

용사는 굳이 혼약이라는 번거로운 방법을 써가면서까지 그녀를 지상에 묶어두기에 이른다.


천신의 대리자인 용사는 그게 가능했다.


“20년 전, 당신이 갑자기 사라진 일과 아가씨께서 돌연 사망하신 일엔... 무언가 연관이 있는 겁니까?”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묵혀두었던 감정을 쏟아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 순간, 그녀의 거울 같이 투명한 눈이 지혜의 황금빛으로 물들고, 입술이 달싹였다.


「나를 너희 인간의 눈으로 보지 마라.」


당연히 목소리는 흘러나오진 않았다.


“...실례했습니다. 손님께 이런 무례라니, 집사 실격이라고 하셔도 할 말이 없군요.”


기적에게 그랬듯, 뜻을 전달하는 것조차 할 수 없다.


「너희 인간과는 존재의 규명방식이 다르다.」


당연한 일이다.

신에게 질문을 던질 목소리를 잃고, ‘듣는 자’가 되어버린 지금도, 한낱 인간에게 닿기엔 격이 너무 높았다.


그것은 강함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

오히려 용사의 피를 이은 쌍둥이라면 이런 식으로도 대화가 통하겠지.


역대 천신교의 가장 위대한 교황이 용사와 성녀 사이에 난 자식이었던 이유다.


“그런데 그 집사조차 아니라면... 저는 대체 무엇일까요?”


설령 목소리가 닿아도 서로 이해하지 못할 대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악마가 계약의 대가로 ‘물질’을 받는다면, 천사가 요구하는 건 ‘관계’였죠. 당신께선... 여전히 아가씨의 ‘벗’인가요?”


황혼이 머잖은 노인의 눈을 바라보던 천사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물질에 구애되지 않는다. 제물을 받는 건, 악마이지. 우리가 아니야.」


“...그렇군요.”


용사에게 여러모로 유감이 많은 양 집사지만, 용사의 아내들에 대해선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문화의 차이를 인정한 것도 있지만, 그의 주인인 이혼과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양 집사마저 떠난 자리.

적막한 복도.


「너희가 살기 위해 무언가를 먹듯, 우리는 관계를 빼앗을 뿐이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할 혼잣말이 입술 끝에 맺혔다, 사라졌다.


***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마치 다른 극을 만난 자석처럼, 문이 닫힘과 동시에 쌍둥이의 무릎이 집무실 바닥에 달라붙었다.


“너희가 무얼 잘못했는지 직접 말해보거라.”

“그... 막내를 괴롭힌 거요?”

“작은 할머니를 내쫓으려 한 거?”


쌍둥이의 고해에도 가주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아니, 너희기 잘못한 건 하나다. 감히 내가 정한 규칙을 어기고 객실에 들어간 것. 왜 객실에 찾아갔지? 애초에 그 애가 거기 있단 걸 너희한테 알려준 게 누구냐.”


그의 눈을 피해서 가문 내에 자신의 사람을 심은 다른 자식들과는 다르다.


좀 더 성장한다면 모를까, 쌍둥이에게 아직 그 정도의 카리스마는 없었다.


“그게...”

“그러니까...”


쌍둥이는 가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지금 반항하는 것이냐?!”


-콰아아아!!


상대방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영적인 폭력에 쌍둥이의 바짓단이 축축히 젖어들어갔다.


“끅! 끄으윽!”

“---!”


벌레처럼 몸을 말고 추하게 꿈틀대는 모습에 이겸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정신을 잃었는지, 기세를 거뒀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쌍둥이.


“금제로군...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야.”


금제(禁制), 이 또한 계약의 일종이다.

본디 강제로 맺어진 계약엔 강제성이 없지만, 이것은 그렇지 않기에 금제라고 부른다.


“누구냐, 누가 감히 나의 영역에서...!”


당장이라도 가문을 뒤엎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어야만 했으니까.


“쯧, 잡는 건 나중으로 미뤄야겠군.”


계약은 반드시 몸 어딘가에 계약의 징표를 남긴다.

가주는 쌍둥이의 몸을 살폈다.


천사나 악마 같은 특수한 존재와 계약한 게 아닌 이상, 새겨진 신체부위를 담보로 잡는 이러한 낙인은 보통 영구적이지 않다.


문신을 생각하면 쉽다.

시간이 지나면 문신의 색이 빠져 리터치를 해야 하는 것처럼, 계약도 주기적으로 갱신하지 않으면, 날이 갈수록 옅어지고, 약해진다.


그래서 영구적인 계약을 원할 땐 보통 심장이나 뇌, 눈 등에 징표를 새긴다.


오직 이 세 부위만이 ‘세포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기에.

세포의 수명이 실제 수명과 동일하단 뜻이다.


심장은 평생 아주 미미한 정도만 재생되며, 뇌는 느리게나마 회복되지만, 죽은 세포가 재생되지는 않는다.

수정체의 경우, 결코 재생되는 일이 없기에 태어날 때부터 있던 걸 평생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불사에 가까운 재생력을 가진 용사라면 어떨까?

그 전제조건부터가 달라진다.


“아파도, 참거라. 너희들의 처벌은 이것으로 대신할 터이니.”


-파직!


가주는 마력을 일으켜 앞서 말한 세 부분을 동시에 지졌다.


용사의 후손에게 장애가 없다는 말은,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용사의 재생력을 일부나마 물려받았기에 나온 것.


너무 큰 부상만 아니라면, 어떤 상처든 언젠가는 낫는다.


마왕도 죽일 수 있는 무력에, 계약으로도 붙잡을 수 없으니, 용사가 초국가적 존재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금제는 이걸로 사라졌겠지.”


뇌에는 통각이 없지만, 심장이 뛸 때마다 찢어질 듯한 고통에 쌍둥이가 눈을 떴다.


“내, 내 눈!!”

“앞이 안 보여요! 아버지, 살려주세요!”


그리고 뿌옇게 변한 시야에 엉엉 울었다.


“조용! 다시 묻겠다. 막내에 대해 너희에게 알려준 자가 누구냐.”


이래봬도 사분의 일이나마, 용사의 피를 이었다.

이 정도 부상은 몇 주내로 나을 것이다.


“그, 그게...”

“누구였지?”


앞이 보이지 않을 텐데도, 쌍둥이는 서로가 있는 곳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뇌의 손상이 기억에도 영향을 미친 걸까?

아니, 이 경우엔 원래 이런 금제였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그리고 가주가 아는 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곳은 하나뿐이었다.


-고오오오오!!


“마신교...! 이 빌어먹을 쥐새끼들이 감히 내 땅에 숨어들어?!”


앞이 보이지 않기에 오히려 여실히 느껴지는 가주의 벼락 같은 분노에 쌍둥이는 서로를 껴안고서 벌벌 떨었다.


“그, 그만 가봐도 될까요?”

“마지막으로 하나.”


그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여기 둥지를 틀었다는 걸 안 것만 해도 커다란 수확이다.


가주는 분노를 가라앉혔다.


“...너희가 본 막내는 어땠느냐.”


스스로 내린 판단을 그 무엇보다 신뢰하는 가주였지만, 왠지 그 아이에 대해선 자꾸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게 됐다.


“걔는...”


쌍둥이의 파괴된 뇌세포가 과거의 사건들을 짜 맞춘다.


-만약 내 힘이 알려지면 다른 놈들이 나보고 가주가 되라고 할 거 아냐.


-똑똑히 봐라!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러, 럭키 잇X쿠...?”

“후, 그만 가보거라.”


가주의 축객령에 쌍둥이는 바닥을 더듬거리며 출구를 찾았다.


“그쪽은 반대방향이다.”


몇 번 방향을 수정한 뒤에야, 쌍둥이는 집무실을 나갔고, 가주는 쌍둥이가 남긴 흔적을 마력으로 깔끔하게 지워냈다.


그러나 가주의 하루는 이제 시작이었다.


“작은어머니... 듣고 계시다는 걸 다 압니다. 들어오시지오.”


***


“그보다 씻고 싶은데... 욕실은 어디 있어?”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겠지. 오늘 대화 즐거웠어. 다음에 볼 땐 ‘형아’라고 불러주면 좋겠네.”


나는 살갑게 웃는 태현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아, 실수.”


원래는 손을 흔들어줄 생각이었는데, 순간 본심이 튀어나왔다.


나한테 형 소리를 들으려면 스무 살은 더 먹고 와라.


“이런, 우리 공주님이 저런 걸 배우면 안 될 텐데 말이야. 그래도 욕은 안 해서 다행인가?”


뒤에서 들려오는 혼잣말에 나는 속으로 욕설을 뇌까렸다.


‘시발. 양 집사에 이어, 껄끄러운 게 더 늘었잖아.’


그렇게 들어선 탈의실.


“그래서 언제까지 따라올 거야?”


피가 묻은 옷을 벗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목욕시중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아직 내가 지구의 문명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정말로 이제 막 도시로 상경한 여덟 살짜리 꼬맹이였다면, 이 상황에 부끄러움을 느꼈-


‘생각해보니, 그때도 딱히 부끄러워 하진 않았네?’


수치심은 보통 앎에서 나온다.


‘이제와 부끄러움을 느끼기에도...’


나는 그녀의 몸에 점이 몇 개나 있는지도 알고 있다.

새삼 얼굴을 붉히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정신의 역치는 그대로인데, 신체의 역치만 낮아진 건가...’


뭔가 애늙은이가 된 기분이다.


“뭐, 마음대로 해.”


마지막으로 나는 장갑을 벗었다.

그러자 손등에 박힌 괴상한 모양의 점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이런 게 없었던 것 같은데, 너무 어렸을 때 일이라 확실치 않다.


‘그보다 이건 뭐지?’


왼쪽 가슴에 검푸른 울혈 같은 게 맺혀있는 것이 보였다.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아무리 재생력을 집중해봐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 무언가 묻은 건가 싶어, 장갑을 벗은 손으로 문질러보는데-


-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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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5) 24.05.10 15 1 13쪽
5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4) 24.05.09 14 1 12쪽
4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3) 24.05.09 17 1 11쪽
3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2) 24.05.08 20 1 13쪽
2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1) 24.05.08 41 1 13쪽
1 용사의 손자 24.05.08 6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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