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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여섯 분이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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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0
최근연재일 :
2024.05.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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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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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수 :
99,438

작성
24.05.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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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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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4)

DUMMY

차남, 이태현.

상대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로 병원장의 딸이라는 모양이다.


혼전임신이라니... 잠시 둘째가 자신을 닮은 건지, 아니면 간호복에 대한 패티시가 극에 달한 건지 고민하던 가주는 이내 그의 둘째 아들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의 친애하는 형제가 지구에 방문한 것도 하필 그 순간이었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가주가 저택으로 돌아왔을 땐, 그의 형제가 이미 지구를 떠난 뒤였다.


하지만 아쉬워할 시간 따윈 없었다.

조만간 태어날 아이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몇 달은 더 방치했을지도...”


가주는 손끝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그 사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는 형제를 볼 면목이 없었다.


“진짜 내 친자식일 리는 없으니, 바라는 건 직계와 같은 수준의 보호인가?”


저택의 사용인 중 하나가 그의 정액이 담긴 콘돔을 훔쳐 달아났고, 그걸로 자가 임신에 성공한 게 아님에야 아이가 그의 친자식일 가능성은 없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아이의 존재를 공표하고, 호적에 넣는 것인데...”


그와 유년시절을 함께 한 유일한 형제에겐 그럴 가치도, 자격도 충분했다.


가주는 서랍 어딘가에 넣어놨던 아이의 프로필이 담긴 서류를 꺼냈다.

8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사람의 인생이 서류 한 장에 정리되어 올라왔다.


“기적이라... 내 성을 받으면 이기적이 되는 건가? 이름을 새로 짓지 않아도 되는 건 편하군. 양 집사, 지금 밖에 있나?”


오늘이 아니라면 시간이 나지 않기에, 가주는 마력으로 문의 잠금을 풀었다.


“네, 가주님.”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단정한 차림의 노신사가 들어왔다.


‘양 집사도 많이 늙었군...’


머리 절반이 하얗게 샌 집사장의 모습에 가주는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금줄로 장식된 단안경 역시 많이 낡아있었다.


‘저 금줄이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준 선물이었지.’


아성이 가문이 아닌 기업이었을 적부터, 오너 일가를 모셔온 그는 가주의 어머니, 대기업 아성의 마지막 회장이었던 이혼의 가신이었다.


“또 술을 자셨군요... 드시는 건 좋지만, 안에 냄새가 밸 수 있으니, 취기를 빼낼 땐 항상 창문을 열어달라고 부탁드리지 않았습니까?”


바쁜 그녀를 대신해 가주를 업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집사장의 타박에 가주는 유구무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세상에는 옷걸이라는 게 있답니다. 무려 19세기에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지요. 혹, 가주님께서는 18세기십니까?”

“...발음이 조금 그렇군.”

“가, 가주냥? 집사냥...?”


뭔가 사용인으로서 들으면 안 될 걸 들은 기분에 원산폭격의 자세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넬라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잊혀져버렸다냥...”


집사장은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줍고, 술병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가주는 슬그머니 소파 위로 다리를 올렸다.


그러자 바닥에 정체불명의 액체가 고여있는 게 보였다.


정황상 아까 쏟아버린 술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집사장은 고개를 들고, 걱정 어린 눈으로 제 주인을 바라봤다.


“······.”

“...아니다. 뭔지 몰라도 아니다.”

“혹시 요실금...”

“아니라니까! 후, 그보다 지금 객실에 머무르고 있는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있나?”

“내, 내가 안다옹!”


그때 먹이를 노리는 고양이의 눈으로 벌을 끝낼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넬라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넬라...”


수인(獸人), 그것도 순혈보다 드물다는 지구인 혼혈의 2세대.


혼을 내도 들어먹지를 않는 이 건방진 고양이 메이드를 양 집사는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봤다.


“일단 들어보지.”


가주는 손을 들어 집사장을 제지했다.


인간의 피가 섞여 수화(獸化)를 조절하진 못하지만, 호감을 사기 쉬운 외형이란 건 부정할 수 없다.

그 증거로 그 깐깐한 집사장도 멋대로 벌을 끝낸 것에 대해 더 화를 내지 못했다.


이것이 실수투성이인 그녀가 신입임에도 객실에서 가주의 손님을 맞이하는 역할을 맡게 된 이유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넬라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주와 집사장의 얼굴이 심각해지자, 넬라는 눈치를 보며 말을 줄였다.


“분명... 모든 게 확실해지기 전까진, 아이에 대해 함구하라고 했을 텐데?”


쌍둥이가 무언가 사고를 칠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 막내 도련님들을 부추긴 것 같습니다. 가모님들 중 한 분일까요? 아니면 사용인 중에 입이 싼 자가...”

“나, 난 아니다 냥!”


집사장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넬라는 지레 놀라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반쪽짜리라 해도 수인은 수인인지, 넬라의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올라갔다.


“방법은 하나군. 직접 만나보는 거.”

“오랜만의 가족회의가 되겠군요.”

“명현이... 그러니까 현재 가문에 없는 첫째를 제외하고 전부 집합시켜. 새로 막내가 들어왔으니, 소개는 시켜줘야지.”


***


“‘쉬이’가 조용히 하란 거지, 소변을 보란 의미가 아니었는데...”


하얗게 질린 얼굴, 검게 물든 바지.

블랙 앤 화이트 조합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했는데 쌍둥이를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혹시 영역 표시야? 이 방은 이제 우리들 거라는?”


나는 바닥에 번지는 오줌을 피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그게...”


자꾸 말을 저는 게 당황해서인지, 겁을 먹어서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둘 다인가?


“꾸, 꿈인가...?”

“너희도 예지몽 꿨니? 그리고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앉아서 쌀 거면 아래에 그건 왜 달고 다녀?”


내가 다리 사이의 그걸 분지르기라도 할 거라 생각했는지 쌍둥이는 서둘러 다리를 오므렸다.

그리고 그 순간, 잊고 있었던 쌍둥이의 이름이 기억났다.


“아! 그래, 똥꾸! 똥구였지. 너희 별명 말이야.”


향수(香水)는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키는 법이라더니.


쌍둥이가 풍기는 말라붙은 좌변기 같은 냄새가 오랜 기억을 일깨웠다.


구남(九男) 이동현,

십남(十男) 이구현.


둘이 합쳐 똥꾸.


“그런데 동구가 맞지 않나? 쌍둥이라서? 아니면... 역시 놀리려고?”


내게서 이런 별명이 떨어진 게 열 살 이후라면, 녀석들은 열다섯 이후다.


다만 그 이유는 다소 달랐는데,

그때의 내가 함부로 건드릴 수조차 없는 존재가 됐다면,

쌍둥이는 놀리는 순간, 고인모독이 되어버리는...

즉, 고인(故人)이 되어있었다.


내가 열세 살 때의 일이다.

똥꾸는 그렇게 잊혀졌다.


“그, 그래! 동구라고 해! 네 맘대로 해. 이, 이제 가도 되는 거지?”


협박이 안 먹히니 이젠 협상으로 넘어간 건가?


“무슨 소리야?”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고작 여덟 살짜리가 열 살 애새끼 둘을 팬 것, 가지고 가문이 날 순순히 보내줄 리 없지 않은가.


“시, 싫어? 그, 그럼 이건 어때? 우, 우리가 널 돕는 거야. 가주가 되고 싶지 않아?”

“마, 맞아! 첫째 형은 힘들겠지만,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그 아래는 전부...”

“그러니까 뭔 소리를 하는 거냐고... 내가 가주가 왜 돼?”


안 그래도 그 가주가 되기 싫어서 온몸 비틀기를 하고 있는데.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쌍둥이에게 내 목적을 설명해주었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야. 판을 더 키우는 거.”

“판을... 키운다고?”

“손가락은 좀 그렇고... 눈이라도 뽑아야 하나?”

“히, 히익!!”

“농담이야. 아직 너희 외가를 감당할 자신은 없거든.”


대대로 군납을 맡고 있으며, 던전 공략을 명목으로 사설 무력집단까지 보유한 쌍둥이의 외가는 군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가문을 나오자마자 근처 뒷산에 묻히고 싶지 않다면, 위험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내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검게 죽었던 쌍둥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이내 노랗게 물든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용사의 후예라도,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쌍둥이의 째진 눈망울이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다.


“흑, 흐윽...!”

“흐아아앙! 임 비서~!”


쌍둥이가 우는 걸 보며,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콰아아아앙!


“도련니이이임!!”


거칠게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거대한 덩치의 남자.


“네놈이냐? 감히 우리 도련님들을 이렇게 만든 게?”


쌍둥이는 후다닥 도망가, 임 비서라고 불린 남자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겨땀 같은 새끼들. 겨드랑이에서 태어난 것처럼 붙어있네.”


쌍둥이의 쓸모는 이걸로 다하였기에, 굳이 잡지 않았다.

쌍둥이는 씩씩대며 내게 삿대질을 했다.


“임 비서, 저거 죽여버려!”

“우리가 책임질 테니까, 그냥 죽여버리라고!”


보호자가 왔다고 기가 산 게 우습다.


‘이기는 건 무리겠지.’


임 비서는 쌍둥이의 보호를 위해 그들의 외가에서 고용한 B급 헌터.


성장의 절반은커녕 아직 2차 성징조차 안 온 몸으로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목적을 이루는데 반드시 상대를 쓰러트려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걸로 무대에 배우는 모두 모인 건가?’


나는 계획을 점검했다.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조건들을.


첫째, 용사의 후손은 장애가 없다.

다르게 말하자면 장애가 있으면 용사의 후손이 아니다.


그리고 이 장애는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을 가리지 않는다.


둘째, 아성이가의 직계에겐 같은 직계가 아니면 손을 댈 수 없다.


자신이 직접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예외로 치더라도, 가문 내의 가주의 눈길이 닿는 곳에서는 그렇다.


그래서 가주의 부인들조차 내 식사에 몰래 독을 타면 독을 탔지, 앞에선 뺨을 때리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하지 못한 것 아닌가.


단 한 번, 그러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적어도 뺨 한 대보다는 값비싼 대가를.


마지막 셋째, 내 존재는 아직 공표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 가주의 아들이 아니라 손님의 신분으로 여기 있다는 거다.


그리고 가주는... 자신의 권위가 무슨 성감대라도 되는 듯 반응하는 사람이다.


찔렀을 때 노래 대신, 타인의 비명이 나온다는 점에선 성감대보단 역린에 더 가깝지만.


-콱!


임 비서의 행동은 빨랐다.

그는 순식간에 내 목을 움켜잡았다.


덩치 차이가 어찌나 큰지, 그는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만으로도 내 목을 완전히 옭아맸다.


“크윽!”


하지만 신음을 낸 건 내가 아니었다.


“제법이구나...”

“콜록! 콜록! 아, 시발. 목은 건드리지 말지? 예민한 곳인데.”


성장한 나였다면, 손가락 하나로 짓뭉개죽일 수 있는 상대다.


아무리 어려졌대도, 두 손으로 단단히 틀어쥐기만 한다면 손가락 하나 부러트리는 정도는 일도 아니다.


“덩치에 걸맞지 않는 괴력.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 정도라고? 과연 도련님들이 당할 만 하구나.”


기형적으로 꺾인 중지.

그는 살짝 감탄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세상은 완력이 전부가 아니지.”


이미 그의 손가락을 사용해 그에게 장대한 엿을 날려줌으로써 내 의지를 표명했기에 나는 구태여 말을 보태지 않았다.


“흡!”


그는 부러진 손가락을 붙잡고, 힘을 주었다.


-뚜두둑!


붉게 부어오른 손가락에서 그에 대비되는 푸른 마력이 피어올랐다.

비록 마나에 상처를 치유하는 힘은 없지만, 신체를 강화시키는 힘이니, 부목을 대는 것보단 나아보인다.


“팔다리만 부러트리마. 주제파악을 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마치 자비에 감사하라는 듯, 귓가에 나직한 음성이 내리꽂힌다.


‘...뭐, 어떻게 여기까지 왔네.’


남은 건, 신체를 제어해 재생을 멈추는 것뿐.


‘이로써 나는 가주의 자식도, 용사의 손자도 아니게 되겠지만...’


나는 비로소 자유를 손에 얻는다.


“반항하지 않는군... 훗, 포기한 건가?”


푸른 마나가 이글거리는 손이 내 팔목과 어깨를 붙잡았다.


“...밤길 조심해. 내가 자유를 찾으면 너부터 찾아갈 테니까.”

“기대하지.”


다가올 고통을 예감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시간이 계속 흘러감에도 예정된 아픔은 찾아오지 않았다.


“...뭐야?”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정수리가 오목해진 임 비서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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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10) 24.05.15 12 1 13쪽
10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9) 24.05.14 14 1 13쪽
9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8) 24.05.13 14 1 16쪽
8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7) 24.05.12 12 1 12쪽
7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6) 24.05.11 16 1 12쪽
6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5) 24.05.10 15 1 13쪽
»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4) 24.05.09 14 1 12쪽
4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3) 24.05.09 17 1 11쪽
3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2) 24.05.08 20 1 13쪽
2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1) 24.05.08 40 1 13쪽
1 용사의 손자 24.05.08 6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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