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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여섯 분이셨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0
최근연재일 :
2024.05.21 17: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286
추천수 :
13
글자수 :
99,438

작성
24.05.13 17:00
조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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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꿈속에서 이전 꿈의 내용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8)

DUMMY

“정장이 참 잘 어울리십니다, 도련님.”


거울에 비친 나를 향해 양 집사가 말했다.


“그런가요...”


어색하다.


산발이 된 머리만 조금 다듬었을 뿐인데,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된 것 같다.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혹 마음에 안 드십니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다는 말은 맞지 않았다.

꿈속의 나는 늘 이런 복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뇨, 좋아하는 색이에요. 판다도, 범고래도 다 이렇게 입잖아요.”


흰색과 검은색, 이 단정하면서도 강렬한 색 배합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다.


“하하, 귀여운 표현이군요.”


하지만 그 옷을 입은 몸이 적응되지 않았다.

거울을 보고 마주하게 되니, 더더욱.


하긴, 숲에서 거울을 볼 일이 얼마나 될까.

모습을 비춰볼 일이 없다는 게 아니라, 거울 자체를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절 알아볼 수 있을까요?”


나는 처음 가족들을 만난다는 것에 설렘과 두려움을 품은 아이를 연기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약속드리죠.”


그는 내게 어울릴 법한 색을 더 찾아주겠다며, 웬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그 안에는 재각기 다른 색과 형태, 무늬를 가진 넥타이가 가득했다.


“아, 넥타이는 싫어요.”


무덤에 한 번 찾아가본 적도 없는 불편한 얼굴들.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도 고역인데, 목까지 조여 매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도련님, 가주님과 형제분들을 처음 마주하는 자리입니다. 좀 더 격식을 차리시는 편이...”

“싫어요.”


친절은 고맙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알겠습니다.”


그는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으나, 내 단호한 거절에 더 권하거나 하진 않았다.


***


나는 양 집사의 손을 잡고 연회장에 들어섰다.

우리가 너무 늦은 탓인지, 식사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쉼없이 음식을 나르던 사용인들이 그를 보고 고개를 숙였고,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잠시 안색을 굳히는가 싶더니, 이내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기고, 연회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름 닳고 닳은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죽인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니, 조금 떨렸다.


“늦었군.”

“늙어서 뼈마디가 시린지라. 그리고 원래 주인공은 가장 늦게 등장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사용인들이 사라진 자리, 연회장을 가로지르는 긴 식탁이 먼저 보였다.


가장 상석에는 가주가 앉았고, 그 옆으로 서열에 따라 가주의 자식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떨어진 자리에, 온몸에 붕대를 감은 쌍둥이가 보였다.


녀석들은 손가락으로 내가 앉을 자리를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자신들보다 낮은 서열의, 더 안 좋은 자리에 앉을 사람이 생겨 기쁜 것 같다.


그러다 이내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고 안색을 굳혔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나한테서 더 멀어지고자, 의자를 움직였다.


‘다행히 학습능력은 있나 보네. 바지를 갈아입으며, 오줌 지린 기억도 갈아 낀 줄 알고 놀랐는데.’


아성이가의 식탁에서 포크가 미끄러져 다른 형제의 손등에 박히는 것 정도는 흔한 일이었다.


“그럼 도련님, 부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 집시는 짧은 목례 후, 자신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저 자리에 앉을 필요는 없겠지.’


마침 적당한 자리가 보였다.


가주와 가장 멀리 떨어져있지만, 그와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유일한 자리.


나는 가주의 맞은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런, 앞이 안 보여.’


예상치 못한 문제다.

식탁이 너무 높다.


다행히 잠시 당황하던 사용인들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내게 식기와 음식 그리고 높다란 방석을 가져다주었다.


식탁 위로 머리를 내밈과 동시에 열두 쌍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조용하네... 먼저 인사라도 하라는 건가?’


나는 오른손의 손바닥으로 주먹을 쥔 왼 팔을 쓸어내리고, 두 주먹을 가슴 아래로 내렸다.


「안녕하세요.」


당연히 이를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 시선들을 무시하며, 내 앞에 놓인 고기를 썰었다.


서걱서걱, 칼이 생각보다 잘 든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잘 구웠네. 좀 덜 익혔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보다 이 소스, 과일을 졸인 건가? 괜찮네. 달달한 게 딱 내 취향이야.’


그렇게 오랜만의 만찬을 즐기는데, 어째선지 식기 달그락대는 소리가 내 것 하나밖에 들리지 않았다.


의문을 느낀 나는 고개를 들었다.


“뭐해요, 안 먹어요?”

“말할 수 있었냐!!”

“말 못하는 줄 알고 놀랐잖아!”


왜 저러지?

그때부터 만찬장은 무척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 그것도 남자만 열 명이다.


이미 성인이 된 이도 있지만, 볼꼴 못 볼 꼴 다 본 형제들 앞에서 근엄한 척 무게를 잡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어려운 걸 하는 놈이 여기 있네.’


나는 가주의 왼편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이번에도 사내아이인가? 용사가 인간과 맺어지면 2세대까지는 남자아이만 태어난다더니, 그게 정말이었나 보군.”


3남, 이철현.


장남을 제외하면 가주 자리에 가장 가까운 남자.


먹는 속도는 여전한지, 그의 접시는 이미 비워져있었다.


“그보다 막내들 상태가 안 좋던데... 아, 이젠 저 아이가 막내가 되나? 반가워~ 난 둘째 형이야.”


차남, 이태현.


조만간 애 아빠가 되는 그는 어린 내가 마냥 반가운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귀엽게 생기긴 했네. 그보다 나만 빼고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4남, 이수현.

곳곳에 피어싱을 착용한 그는 턱을 괸 채, 정보를 공유해주지 않은 형제들을 노려보았다.


“아버지가 공표하기 전까진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으니ㄲ- 시발, 저거 내 옷 아냐?!”


7남, 이도현.


역시 그는 허락도 없이 자신의 물건을 사용한 낯선 이에게 경악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점마 또 미치려칸다. 누가 좀 말려보!”


옆에서 이를 말리는 5남, 이대현.


형제들 중 유일한 사투리 구사자.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와 서글서글한 인상은 밀짚모자가 잘 어울리는 시골 소년과 같지만, 딱히 시골과 연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어디로 여행을 가면 그쪽 지역 사투리가 입에 붙어 한동안 떨어지지 않는 것뿐.


말투로 보아, 최근에는 전라도 인근 던전에라도 다녀온 모양이다.


“...안 닮았네.”


8남, 이검현.


그는 내 얼굴과 가주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곤, 작게 중얼거리며, 접시 위의 고기를 더 잘게 조각내었다.


“흐아암~ 가문 일로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요? 요즘 상대도 안 해준다며, 어머니 우시던데... 애는 또 언제 낳았대?”


늘어지게 하품하는 이 녀석은 6남, 이강현으로 아성이가의 게으른 천재다.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긴 형제들이지만, 녀석은 유난히 더 가주를 닮았다.


“뭐, 뭘 봐?”

“왜, 왜, 또 때리게?”


그리고 나머지 떨거지가 둘.

내가 가까이에 없다고 기가 산 게 웃기다.


‘대충 장남을 제외한 아성이가의 직계 전원이 모인 건가?’


그때, 식사를 마친 가주가 냅킨으로 입을 스윽, 닦고는 손을 들어올렸다.


소음이 뚝, 끊겼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잠시 머물러다, 이내 내가 낀 장갑에 향했다.


“...그 장갑, 어디서 났느냐.”


딱히 감동스런 재회를 기대한 건 아니다만...

그래도 8년 만에 만난 자식에게 하는 첫마디가 추궁인 건 너무하지 않나?


“크흠!”


이를 보다 못한 양 집사가 옆에서 가주를 쿡하고 찌르자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넥타이를 매지 않았구나. 혹, 매는 법을 모르는 것이냐?”


양 집사가 머리를 쥐어뜯는다.


표정만 보면, 당장이라도 가주를 누르면 ‘I love you~’ 소리가 나는 곰인형으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다.


“혹시 누가 목 조르는 거 좋아해요?”


조금은 내숭을 떨 생각이었는데, 조건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일부러 하지 않았다는 거군. 불편해도 다음부터는 하고 오거라. 그게 예의다.”


격식은 진짜 더럽게 따져요, 어휴.


“장례식 때는 해드릴게요. 특별히 검은색으로.”


누구의 장례식인지는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를 말한 거다만?”


그런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가주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치 지금이라도 말을 바꾸면, 봐주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원래라면 이쯤에서 고개를 숙이고,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맞겠지.’


이번에도 가주의 아들내미로 살 거라면.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


내 목적은 그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거다.


그러니 동등한 위치에 서야 했다.

여기서 물러났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나는 그 기세를 정면에서 받아내며 말했다.


“앞으로는 만날 일 자체가 없지 않을까요? 날 태어나게 해준 면상 한 번 봤으니, 판게아로 돌아갈 생각이라.”

“하아?”


가주의 황당한 표정과 함께 기세가 흩어졌다.


“쟤, 지금 뭐라 한 거야?”

“가주 자리를 포기하겠단 거 같은데?”

“그거 상속 포기잖아...”

“그럼 여기 왜 온 건데? 설마 진짜 얼굴만 보러?”


형제들의 반응은 그보다 극적이었다.


단순히 가능성이 없어서 내려놓는 것과는 달랐다.


가문을 나오겠다는 것은 아성이가의 일원에게 주어지는 모든 특권을 버리겠다는 뜻.


아성이가에서 태어나, 가문이 전부였던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아성이가는 우물이 아닌 거대한 호수 정도 되니까.

갇혔다고 느끼기엔 천장에 닿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차남, 이태현만이 이해한다는 듯, 안타깝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다시 말해봐라.”


마지막 경고라는 듯, 가주가 낮게 으르렁거린다.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격렬한 마력의 파도에 테이블에 놓인 포크의 네 끝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가주님!”


그때 양 집사가 팔을 뻗어, 나와 가주 사이를 가로막았다.


“진정하십시오. 제가,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그새 친해졌나? 하긴, 생긴 게 어머니를 많이 닮았구나. 그분의 어릴 적 모습을 아는 양 집사에겐 더욱 그럴 테지.”


가주는 알만 하다는 듯, 양 집사를 바라봤다.


“도련님께서는 판게아에서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지구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걸 겁니다. 그렇지요, 도련님?”


아무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헛소리로 몰아가려는 것 같다.


“그런 것치곤 혀가 제법 매섭다만... 유모가 말을 못한다고 했었나? 의문이구나. 그럼 말을 어떻게 뗀 거지?”

“펠 도련님께서 가르치신 게 아닐는지요.”

“형님이?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기적’이라고 했느냐? 내 아들이 됐으니, 이젠 ‘이기적’이 되겠구나.”


풉! 누군가 웃었다.


쌍둥이인가? 다음에 볼 때, 둘은 샴쌍둥이가 되어있을 거다.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뒤따른다. 아이야, 나는 너를 직계로 인정했고, 너는 공식적인 용사가 손자가 되었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의무는 원한다고 버릴 수 없어.”


마치 어린애를 달래는 것 같은 말투.


가주를 싫어하는 나지만, ‘의무’와 ‘책임’이 그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모범이 될 수 없는 자는 본보기로.


그가 나와 형제들을 대한 방식이다.


“아, 그런가요?”


나는 나이프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내며 답했다.

예기는 아까 전에 확인했고, 위치는... 대충 이쯤인가?


“흐읍!”


누군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목에서 피가 튀었다.


“도련님!!!”


고기 써는 칼은 아담이 오래 전 삼켰던 사과 조각(Adam's apple)을 지나, 목소리의 떨림을 전하는 성대에 도달했다.


“무슨 짓이냐! 자살? 기껏 생각해낸 게 그것이냐?!”


어느새 나타난 가주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땡그랑.


손에서 힘이 풀리며, 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쉽네. 겨우 유모랑 같아질 수 있었는데.’


스스로 성대를 도려내는 건 생각보다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았어도 목적을 달성했을진 의문이다.


‘거 뒤지게 빠르네.’


그가 달려온 직선거리를 따라, 식탁이 부서지고, 공기가 타들어갔다.


“자살...? 쿨럭! 기껏 생각해낸 게... 그건가요?”


피 중 일부가 기도로 넘어갔는지, 자꾸 기침이 나왔다.


“이 자리가 싫다면, 그냥 포기한다고만 해도 되었다!”

“그런다고... 형제들이 순순히 믿어줄까요?”


말에는 무게가 없다.

오직 행동에만 무게가 실린다.


장애를 가진 자는 용사의 후손이 아니게 된다.

타고난 핏줄을 부정하기에 이보다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저리 비키십시오!”


양 집사는 가주를 밀쳐내고, 지혈을 시작했다.

두 눈에 핏줄이 잔뜩 곤두선 게 어딘지 섬뜩했다.


‘빌어먹을 용사, 네놈이 모든 걸 망쳤어!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내 머리를 감싸 안고,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너무 꽉 안아서 그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각 잡고 두 시간이면 다 낫겠네.’


설령 성대를 완전히 적출했대도, 재생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거다.


‘그보단 숨이...’


지금 내 목을 조르고 있는 팔을 필사적으로 두드리니 양 집사는 깜짝 놀라 나를 떨어트렸다.


-콩!


꼬리뼈와 대리석 바닥의 아찔한 만남.

통증이 척추를 타고, 벼락줄기처럼 퍼진다.


솔직히 목을 그은 것보다 이게 더 아팠다.


그는 떨어진 나를 잡지도, 놓지도 못한 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아픔은 빠르게 가셨다.

아마 출혈도 멎었을 거다.


“하아, 이거 좋네요... 새빨간 넥타이. 목도 안 조이고... 쿨럭! 목이 좀 아픈 게 흠이다만.”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흰 셔츠를 적셨다.

그 모양새가 마치 붉은 넥타이를 맨 것 같았.


모든 형제가 날 내려다보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그 눈에 두려움이 담긴 탓이려나?


“그렇게 가문을 나가고 싶으냐? 그런다고 가문을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적어도... 제 의지는 보여줬네요.”

“애초에 형님이 왜 널 이곳에 보냈다고 생각하느냐! 지난 전쟁의 패배자들이 저 깊은 지하 던전에서 다시 기어나오려 하고 있으니까!”


마신교가 벌써 활동을 시작했나?

예상보다 계획을 타이트하게 잡아야할 지도 모르겠다.


“넌! 보호받아 마땅한, 망할 애새끼니까! 후, 제길!”


처음 본다.

가주가 저런 당황한 모습은.


‘그러고 보니, 지금 가주가 몇 살이더라? 한 오십 되나? 뭐야, 띠 동갑이면 친구네.’


예지몽 속의 나는 서른여덟에 생을 마감했다.

젊지만, 적어도 형제들 중 나보다 오래 산 사람은 없다.


“마신교... 그 미친놈들이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여기만 할까요? 웃기지도 않아. 용사의 피를 이은 괴물들이 그깟 가주 자리가 탐나서 각축전은 벌인다는 게...”


여기가 무슨 상어 뱃속도 아니고, 태어나려면 형제들을 모두 잡아먹어야만 한다니.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한다면 그런 다툼에 끼지 않게 해주마. 그러니─”


-손님, 여기 오시면 안 됩니다!

-막아! 못 막으면 감봉으론 안 끝난다고!

-무슨 힘이...!


‘아까도 이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뭔가 데자뷰가 느껴지는 상황이다.


-콰앙!


연회장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유모?”


팔다리에 사용인들을 마치 장신구처럼 매달고 있긴 하지만, 분명 유모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입 꼬리를 미미하게 올렸다가, 목에 난 상처를 보고는 올렸던 것보다 많이 내렸다.


“유모가 왜 여기... 왜 울려고 그래?”


역광에 비친 유모의 얼굴이 유독 더 어둡게 느껴진다.


「또 다쳤어. 내가 있는데 또.」


그녀가 귀찮다는 듯이 몸을 털자, 달라붙어있던 사용인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날아갔다.


그리고 뭐에 놀란 건지, 굳어 움직일 줄을 모르는 가주.

유모는 그런 애비에게서 나를 빼앗아 안았다.


“작은... 어머니?”


그리고 들려오는 믿기지 않는 말.


가주에게 벌써 치매가 왔나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가주를 부축하고 있는 양 집사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유모가 할머니라고? 용사의 부인은 다섯 명이 끝이었던 게... 아니, 그보다 아까는 왜 못 알아봤-’


생각해 보니, 그때 유모는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어, 양 집사가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 머리야...’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눈앞이 점점 흐려진다.


‘나 너무 많은 일이 잇엇어 힘들다진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는 빨래집게에 목덜미를 집힌 고양이마냥 추욱,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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