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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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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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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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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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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화

DUMMY

“달목, 저런 것도 도와줘?”


유리창 너머를 들여다보며 태강은 호기심이 고조되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되물어오는 달목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눈길을 그에게로 돌리며 더욱 엉뚱한 표정을 지었다.


“저토록 지극한 진심인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아니 저 사람이 지극한 진심인 거는 나도 알겠는데 말이지······ 뭐랄까, 나는 굳이 저런 거까지 도와주냐는 의미로 말한 거야.”


태강은 어색함과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광대에 힘을 주어 미소를 지었다. 제 말을 정말 곧이곧대로 알아들은 달목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요. 그렇고 말고요.”


만족스럽다는 듯이 빙그레 웃는 달목을 올려보자니 차마 토를 달지 말아야겠단 생각까지 들 정도다.


“믿음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지 않습니까.”


꽉 막힌 대화에 진전은 없는 듯 보였다. 결국 태강이 손사래를 치다가 손짓으로 서점 유리창 안을 콕 집어 가리켰다.


“있잖아. 내 말은, 저렇게 나무젓가락이 반듯하게 떨어질 거라고 믿는 사람의 마음까지 들어주냐 이거야. 저런 건 아마 아무리 마음 여린 주화도 지나칠 법한 사소한 일 아니냐구.”

“그렇지 않습니다.”


태강의 말을 완강하게 부인한 달목은 딱하다는 듯이 안쓰러운 눈길로 태강을 대하였다.


“거창해 보이는 믿음도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더더구나 지금은 하루의 시작인 아침을 막 넘긴 오전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더욱이 한 인간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저의 도리지요.”

“신뢰랑 나무젓가락이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니까?”


기운이 축 빠진 태강은 이제 궁금해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울먹거리며 답했다. 말하고 있는 자신이 제일 거창하게 떠드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달목은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태강, 그렇지 않아 보이지만 모든 사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인간이 이것을 모르지는 않더군요. 아주 다행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역시 그 대부분의 인간도, 그러니까 그 대부분의 인간의 대부분은 사물만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그리고 마음과 사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모릅니다.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언제든 관계를 끊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태강은 슬쩍 하늘을 쳐다보며 어떻게 하면 이 대화에서 빠질 수 있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수작을 알아차린 게 아니더라도 우연으로다가 달목은 오히려 태강의 두 팔을 붙들었다.


“왜, 왜 그래!”


태강이 말을 더듬으며 당황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 얼마나 기특한 자입니까!”

“누구? 나?”

“아닙니다. 바로 저 사람 말입니다. 모두가 간절함을 갖지 않고 시작하는 하루 속에서 보잘것없어 보이고 그래서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 일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그래서 믿음을 갖는 저 사람의 태도 말입니다.”


달목의 말에 태강은 고개를 돌려 다시 유리창 안을 살폈다. 좀 전에 나무젓가락을 뜯고 좋아하던 마흔 살 안팎으로 보이는 남자가 이제는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보며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다.


“제가 한 건 단지 저 사람의 희망이 끊기지 않도록 도와준 것이 전부입니다. 원래야 인간은 스스로 그 힘을 지녀야 하는 법이지만, 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노력을 저희가 언제쯤 알아주냐 안 알아주냐 하는 문제겠지요. 그래서 저는 마침 이 운이라는 것이 찾아온 저 사나이의 마음에 따라준 것일 뿐입니다.”


웅변처럼 들리는 달목의 말은 이제는 두 팔을 한껏 벌리며 그가 이야기하는 탓에 더욱 장대해졌다.


“나라면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도와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래도 여전히 쉽게 동의할 수는 없는 게 달목의 의견이었다. 떨떠름하게 자신만의 반박을 하는 태강의 태도에 금방 시무룩해진 달목이 팔을 오므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에 대꾸했다.


“그야 태강의 기적과 저의 믿음은 아예 방향이 다르니 말이지요.”


시들은 이야기에 마음이 상했는지 달목은 뒷짐을 지고 무작정 걸음을 떼었다. 빠르게 지나는 길 뒤에서 태강의 높아진 소리가 들려왔다.


“달목! 난연은 그쪽 방향 아니야!”


자신의 말에 대한 답변이 아닌 것을 알아챈 달목은 큼큼거리며 다시 태강에게로 돌아왔다. 웃음을 참는 듯 보이는 태강의 얼굴을 보는 게 낯뜨거워졌다.


“달목도 은근히 방향치라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심연도를 헤맨 적은 없으니까요. 단지 저는 아직 속세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것입니다.”


놀림조에도 엄격하게 대꾸하며 달목은 자신의 낯이 더 붉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뒤로 몇 초 더 히죽거리다가 태강은 자신이 먼저 달목이 갔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걸었다.


“그 말 정말 믿어도 되는 거야? 달목이 나랑 만나기로 장소에 오는 길을 못 찾는 바람에 아직도 수도를 못 떠났는데. 아, 이쪽으로 가면 돼.”


잠시 멈춘 태강이 뒤돌아보았다. 한쪽 손으로 길을 가리키며 안내를 가장한 장난을 치기 위해서다. 달목은 턱에 호두주름을 그리면서도 어쨌거나 그 길을 향해 자신 또한 움직였다.


“알고 있습니다.”


체면을 위한 거짓말도 더하면서. 아직 점심이 먼 시점의 거리는 인적이 드물었다. 오직 달목이 잘못 들던 방향의 길 너머로 보이는 부교(浮橋)에 몇몇 이들만이 있다가 사라지는 행적을 반복한다. 그쪽을 넌지시 보던 태강은 고개를 바로 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시집(詩集)이라고 그랬지? 녹수가 시집을 찾으러 다닐 정도로 그렇게 감수성이 풍부했었나? 녹수는 너에 버금갈 정도로 재미없고 무뚝뚝하잖아.”

“태강의 마지막 말은 이해할 수 없군요. 하지만 저 또한 그 점이 매우 의문입니다. 오히려 야담이 잡으려는 자가 녹수가 아닌 황호라고 하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 백나나 양이 거짓말을 하진 않은 모양이니, 가서 확인하는 길밖에 없겠지요.”

“그래. 그게 희한하단 말이지. 게다가 야담은 황호를 찾으려고 했었잖아.”


달목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동의합니다. 초영도 이에 마음을 쓰는 듯 보였습니다.”

“아무튼 이해할 수 없다니까. 그나저나 난연에 가면 야담이 있으려나? 아님 이미 녹수가 흑석의 거울을 가져간 거면 어떡해?”


손깍지를 낀 두 팔로 제 뒷머리를 감싼 태강이 안달난 말투로 근심을 털어놓았다. 그는 대충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마침 달 근처로 슬그머니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이 찌그러진 달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변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희는 한 명만 찾으면 됩니다.”

“한 명? 셋 중에 누구를 말하는 거야, 야담, 녹수 아니면 황호?”


그래서 그는 쏘아보는 눈짓으로 구름을 완만하게 둥근 원으로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무척 만족스러웠지만 어쩐지 계속 보기에는 조금 질리는 느낌이 들어 태강은 감기가 가시지 않은 듯한 열난 표정을 지었다.


“태강.”


세 선택지 안에 들어간 이름 중 하나가 들릴 줄 알았던 그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옆의 달목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이름은 상상도 하지 않았던 듯한 당황감이 그의 얼굴 전체에 드러났다.


“태강이야말로 만만치 않다는 것 아십니까? 구름의 모양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일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 어떤 인간보다도 꾸중을 자신이 제일 많이 들었을 거라 태강은 자부했지만, 그래도 혼나는 일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삐쭉 나온 입술로 그는 변명 아닌 변명을 구차하게 늘어놓아야 했다.


“그래도 이건 그 인간의 일에 관계가 있는 나와 관계가 있는 일이거든. 저 구름이 무척 거슬려서 말이야.”

“그런 데 마음을 쓰는 일에도 기적이 이루어지나 봅니다.”


눈썹을 치켜뜨며 난처한 기색을 표한 태강은 삐걱대며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달목의 눈초리가 평소 그의 언행처럼 재미없고 무뚝뚝해졌다. 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에둘러 말하던 것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어쨌든 내가 원하는 기적이었으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 곳에 마음을 쓴다는 것을 말입니다.”


달목은 기분 나쁜 얼굴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자세로 안면 근육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도시락 먹으려는 사람이 젓가락 뜯는 것에까지 관여하는 달목한테서 그런 소리 듣는 거 완전히 어이가 없는 거 알지?”


그의 대답에 기가 차고 만 태강이 보다 고압적인 말투로 그에게 따졌다. 하지만 상대방은 여전히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모르겠습니다만.”


얄밉게 답을 피하는 달목이 조금 앞서 걸었다. 왜 다들 저만을 괴롭히는 것인지 모르는 억울함으로 태강이 씩씩거리며 그 옆으로 금세 따라붙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눈에 들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원을 만들던 구름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자신의 방에 종일 머무를 작정으로 나나는 침대의 중심에서 몸을 웅크려 앉았다. 어제부터 자신을 뒤쫓는 우울감이 좀처럼 물러서지를 않아 무릎 위에 팔꿈치를 얹었다. 그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그녀는 손등 위에 턱을 얹은 후에야 짙은 한숨을 규칙적으로 두 번 내쉬었다.

구부린 등에 무리가 오자 이제는 침대에 엎어져 돌아누웠다. 허무감은 따분함으로 바뀌었다. 시간을 허비한다기보다는 시간에 붙잡힌 듯하다. 선택의 권리를 잃어 불안해지는 감정이 하루를 기다리는 일을 고역으로 만들었다. 이불 위에 이리저리 파묻던 얼굴을 들고 천장을 바라보니 어지러워진 머리카락이 나나의 얼굴을 마구 감쌌다.

어차피 천장으로 향하는 시야는 얼핏 머리카락 틈새로 충분히 보였기에 불만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이를 만나 부채로 차면한 것 같은 포근함이 오히려 안심이 되어주었다. 그래. 부채, 부채였다.

상체를 일으킨 나나가 얼굴에 들러붙은 머리를 하나둘 떼어내어 정리하며 오늘 꾼 꿈을 상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아 일방적인 통보나 다름없었던 말을 이틀 연속으로 들었다. 그러나 꿈은 사흘 연속으로 꾼 것이다. 그 숫자의 차이에서 묘한 위로를 받은 나나가 침대에서 완전히 일어섰다.

드디어 자신의 임무를 찾은 자의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나나는 방밖으로 성큼 나섰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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